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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차 IAU 총회(The Hague, THE NETHERLANDS), 1994-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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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참여한 회원:

나일성(부인 동반), 천문석, 박홍서, 이형묵, 이명균, 이영욱(이상은

『List of Participants』에서). 단, 개회식 때 현장에서 등록한 회원이 있은 것 같으나 기억할 수가 없다. 3년 전인 Baltimore총회 때 보다는 출석 인원이 적었다. List of Participants』에 는 없으나, 학생신분으로 이명현과 김영수 군이 참석했었다.

발표자:

이번 총회에서 논문을 발표한 회원은 유일하게 이형묵 뿐으로, 논문 제목은 “The evolution of the central star cluster and the importance of stellar collisions”였다.

여러 Symposium이나 Joint Discussion 그리고 Working Group Meeting의 SOC member 로 참여한 회원은 한 사람도 없는 회원국이 되고 말았다.

이 해의 여행은 Poland의 Cracow로부터 시작된다(별항1을 참조). IAU총회가 시작하기 전 의 한 달 동안 머문 곳이다. Cracow에 있는 Pedagogical University의 대외 부총장인 Jerzy Kreiner교수가 자기의 임기 중에 방문해 달라고 해서 내 딸(사라)과 함께 한 달을 그곳에서 지내다가, 딸은 나보다 몇 일 먼저 Amsterdam을 거쳐 서울로 돌아가고, 나는 8월 15일에 Amsterdam 국제공항으로 갔다. 서울에서 나 보다 하루 먼저 Amsterdam에 도착한 아내를 그곳에서 만나 함께 기차로 The Hague로 가서 Promenade Hotel에 Check-in하고 여장을 풀었다. 이 호텔은 이번 총회의 LOC가 추천한 곳으로 회의장인 “The Ridderzaal(Hall of Knights)”가 있는 “Binnenhof”에 가까우며, 비교적 고급 호텔이다. 하지만, 3박만 하고 시내 에 있는 호텔로 옮겼다. 화의장에 가는데 걸리는 시간은 별로 차이가 없은데, 시내 여러 곳을

구경하려면 시내가 더 편리하기 때문이다.

총회 희의 중 내가 관여한 일정과 그 후의 알정을 간단히 적어 보면 다음과 같다.

14-16일: 등록과 예비 모임

15일(월) 오후: Compact stars in binaries 16일(화) 오전: Compact stars in binaries 17일(수) 오전: Compact stars in binaries 오후: 총회 개회식과 저녁에는 환영만찬 24일(수): 폐회식과 만찬

영국으로 가서 Milton Keynes에서 큰 딸의 가족을 만나고, New Castle Upon-tyne에 가서는 Richard Stephenson교수를 만남.

27일(금): New Castle Upon-tyne ⤑ Amsterdam ⤑ Seoul로 돌아 옴

---별항 1 : Krakow에서의 한 달

Krakow는 Cracow로도 표기되는데, 왜 두 표기를 쓰고 있는지 이유를 나는 물 어보지 않았다. 나는 제22차 IAU 총회에 참가하기 위해 The Hague로 가는 길 에 딸과 함께 우선 이곳에서 4주일(7월18일-8월15일)을 지내기로 했다. 3년 전 제21차 IAU Buenos Aires총회 때 김천휘 교수 등과 함께 약속한 식쌍성의 O-C를 위한 공동연구를 더 구체화한다는 명목으로 방문하였고, Cracow에서의 일정이 끝나면 그와 함께 그의 자동차로 The Hague로 가려고 했었다.

사진 6-1. Jagiellonian대학 박물관. 이곳에서 진귀한 해시계를 조사하는 동안

사진에는 나타나지 않았으나 건장한 체격의 경비원이 삼엄하게 감시하고 있었다.

이곳에서의 나날은 아주 의미있고 즐거운 일정으로 채워졌었다. 별로 하는 일 은 없었는데도 한 달 월급을 받았으니 코페르니쿠스, 큐리 부인, 쇼팽의 나라 이 곳저곳을 마음껏 누비며 다닐 수 있었다. 그의 부인 Kristina는 지질학자이다.

어려서 자랄 때 부모의 집이 Babel궁전의 바로 밑에 있는 상류층이 살던 곳이어 서 궁전에 있는 큰 종소리를 가장 잘 들을 수 있는 위치를 알고 있었다. 그래서 어느 날 이 부부와 함께 Babel궁전을 구경한 후 이 종소리가 울리는 시간에 맞 춰서 들어 보았다. 종은 경주에 있는 성덕대왕신종과 거의 비슷한 크기인데, 종 소리는 나를 크게 실망시켰다. 그럭저럭 많은 추억거리가 쌓였으니, 어렵지만 그 중에서 두 가지만 추려 보자. 첫째는 Jagiellonian대학 박물관 방문이다. 이 대학 은 유럽에서는 중세에 시작한 몇 대학 중 하나로서 박물관의 수장품은 방문자의 눈을 황홀하게 하였다. 나와 사라는 수장품의 수와 질에 압도당했다. 우리는 Kreiner교수의 주선으로 수장고에 있는 몇 가지 물건을 열람할 기회까지 얻었 다. 이 중 하나는 지난 2015년에 국립중앙박물관이 《폴란드, 천년의 예술전》 때 전시한 Torquetum이다. (주: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의 방문은 1996년으로 우 리보다 2년 뒤였고, 일본의 아끼히도 천왕 내외의 방문은 그 보다도 6년이나 지 난 2002년이었다.)

사진 6-2. Kreiner 교수 부부와 그가 복제한 Torquetum.

둘째는 Jedrzejow시에 있는 해시계박물관 방문이다. 폴란드어에는 자음이 여 러 개 연이어 붙어있는 단어가 많아서 외국인은 발음하기 어렵다. Jedrzejow의 경우도 영어에만 익숙한 나는 Kreiner 교수의 발음이 “옌제이예프”에 가깝다고 생각하고 한글로 쓸 때는 이렇게 쓰기로 했다. 옌제이예프는 인구가 2만명 정도 인 작은 도시로 Warsaw와 Krakow의 중간지점에 위치해 있다. 여름 휴가철이 되면 유럽 각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는데, 이곳에 1000 여개의 해시계를 수장한 박물관이 있기 때문이다. 이곳도 Kreiner교수의 안내를 받아 견학하고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이 박물관의 공식 명칭은 그저 The Museum이며, 프르 집코프스키(Przykowskich) 일가가 3대에 걸쳐 수집한 해시계를 전시하고 있다.

이곳의 큐레이터는 동양의 해시계도 있다면서 수장고에서 중국 신안 지평일귀 (新安地平日晷) 2점을 어렵게 찾아내서 나에게 들고 왔다. 많은 유럽과 아라비아

해시계 속에 감춰져 있던 단 두 점의 중국 해시계를 보면서, 나와 내 딸은 한·

중·일 3국의 해시계와 천문도만을 전시하는 박물관을 만들어 보겠다는 오래전의 생각을 더욱 굳히게 되었다.

사진 6-3. 폴란드의 일간지 Slowo ludu의 1994년 7월 27일자 기사에서 옮김. 탁자의 왼쪽에 新安地平日晷 하나가 보인다.

The Hague에 도착한 아내와 내가 처음에 3박한 Promenade Hotel은 주체측이 추천한 조 용한 숲속에 자리잡고 있는 휴양지 같은 느낌을 갖게 하는 곳이라고 이미 말한 바 있다. 싼 곳을 찾은 아는 사람들이 모두 시내에 있으니까 우리는 좀 적적하게 느꼈었는데, 하루 밤을 자고 아침을 먹으러 식당에 가 보니 낯익은 사람들이 많다. 우선 나의 지도교수 부부인 Bob and Joanne Koch, 국제무대에서 활발하게 활약하는 Edward Guinan(나의 2년 선배), Raymond Pfeiffer(나의 2년 후배)와 그의 애인과 대학생 딸이 보인다. 이 정도면 작은 U of Penn 동창회도 될 만하다.

총회 개회 다음날 주최측이 참가자들을 버스에 태우고 City tour를 시켜주었다. 처음 온 손 님들이 낯설지 않고 시내를 구경하도록 미리 안내하는 셈인데, 이것은 좋은 발상이다. 버스는 시가지만이 아니라 바닷가에도 데려다 주었다. 바다가 이렇게 가까이 있는 것을 보고 과연 땅 이 좁은 나라라는 것을 실감했다. 덕분에 이 tour를 통해 사람들은 제각기 한 번 찾아가 볼만 한 곳을 마음속에 담았을 것이다, 나도 그랬듯이(별항2를 참조).

---별항 2 : 멋지게 저녁 먹을 곳은?

주체측이 제공한 City tour때 약간 언덕진 곳에 고색 찬란한 건물이 한 채가 보였다. Bus에 타고 있던 guide가 저녁식사를 할 만한 좋은 식당이라고 말했다.

그래서였는지는 몰라도 U of Penn 동창들은 이 식당을 이날 저녁 먹을 곳으로 의견을 모았다. 저녁이 되어 호텔 정문 앞에서 Koch교수 부부가 나오기를 기다 리는데, 먼저 와서 기다리는 Ray Pfeiffer의 애인과 딸의 복장이 가관이다. 앞가 슴이 보이는 Evening dress차림인 것이다. 10 m 정도 떨어진 곳에도 한무리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는데, 내가 선배처럼 모시는 후루가와(古川麒一郞, 1929-2016) 교수를 비롯해서 몇 사람은 아는 일본인들이다. 후루가와 교수가 나 를 보시더니 나에게 다가와서 하시는 말씀이 지금 어디서 저녁을 먹을까 의론중

이라고 하신다. 그래서 잘됐다 싶어서 “오늘 시내관광 때 소개받은 그 식당으로 우리는 가기로 정했습니다. 그러니 함께 가십시다” 했더니, 동행한 일본 학자들 에게 가서 의론하고 돌아와서 하시는 말씀이 “다음에 따로 가겠다.”고 하신다.

우리 일행들의 옷차림을 보고 감히 동석할 엄두를 내지 못해서 주저하는 모습이 며, 백인들과 어울린다는 것에 거부감이 작용한 탓이겠지. 다음날 아침 후루가와 교수가 나에게 “음식은 어떻든가? 값은 얼마였나?” 하시기에 사실대로 답했더 니, “그만하면 우리도 먹을만 하네” 하신다. 경제대국의 학자들로서 국제적으로 도 업적이 많은 이들인데 이날의 모습은 나에게는 어쩐지 초라하게만 보였다. 이 것이 국제회의에 참가할 때마다 늘 보는 일본, 중국, 한국 사람들의 모습이다.

모두 국제무대에서 문화적으로 섞이려고 하지 않는다.

아침에는 발표장에 가서 공부하는 흉내라도 냈지만, 오후가 되면 여기저기 다니는 중에 주 로 박물관을 찾았다. The Hague는 대단히 매력있는 도시여서 극동에서 온 나에게는 모든 것 이 신기하게 느껴졌지만, 뚜렷하게 찾아갈 곳을 미리 조사해 오지 못한 탓에 거리에 나섰지만 갈 곳이 머리에 떠오르지 않는다. 그래서 기차로 20분 거리에 있는 Amsterdam으로 가 보기 로 했다. Amsterdam에는 영국 UCL에서 공부하고 있는 김영수군이 길을 잘 안내해 줘서 큰 도움을 받았다. 그러나 찾아다닌다 해도 하루에 2-3곳이면 족하다. 그런데 어느 날 골동품가 게에서 무엇인가를 샀다고 나에게 자랑하던 Kam-Ching Leung(《셋째 묶음》을 참조) 생각 이 나서 나도 골동품 가게를 찾아가 보기로 했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못한 주제에 걸맞지 않는 행동이라 생각하면서도 행여나 옛 성도나 해시계를 보기라도 했으면 하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별항3을 참조). 그 친구가 나더러 제2차 Pacific Rim Colloquium을 서울에서 개최하 라고 강력하게 권했기 때문에 4년 전에 내가 주관할 수 있었던 일은 이미 《셋째 묶음, 사진 2》에서 소개한 바 있다. 그래서 나는 그 친구가 하는 일을 따라하면 늘 좋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별항 3 : 박물관과 골동품

내가 찾아간 한 가게에서 한국의 그림이 있는 족자 하나를 발견했다. 미술품에

내가 찾아간 한 가게에서 한국의 그림이 있는 족자 하나를 발견했다. 미술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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