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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무거운 발걸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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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해의 총회에 참석하기 위해서 나는 아내와 함께 2003년 7월15일(화)에 인천국제공항을 출 발하여 Bangkok국제공항에서 TG 991을 타고 Sydney에는 18일에 도착하여, Crest Hotel (주소: 111 Darlinghurst Road, Sydney 2011)에 Check-in했다. 그리고 24일에 Sydney를 떠날 때까지 그곳에서만 묵었다. 그러나 실상을 고백한다면 나는 이 Sydney 총회에 참석하지 않으려고 여러 가지로 노력했었다.

Sydney 총회에 참석하지 않으려고 생각한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그 이유 중 첫째는 여기에는 소개하지 않겠지만 (L 아무개)와 (김 아무개 검사)와의 악연이 있어서 괴로움을 당하 고 에너지 소모가 많았던 탓이다. 둘째는 IAU의 총회와 여러 국제 행사에 자주 참여하다보니 내가 오래전부터 집필해 오던 『한국천문학사 대계』 10권의 출판이 자꾸 지연되고 있는 것이 마음에 결렸던 것이다. 나는 IAU 총회와 ICOA 회의에 참석하는 것은 나의 의무처럼 생각하 고 있었지만, 여행경비와 시간 소비와 에너지 소모가 너무 클 뿐만 아니라 내 나이를 생각해 서라도 이번 (Sydney 총회)에는 참석하지 않으려고 마음먹고 있었다.

그런데 일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C41의 President인 Richard Stephenson과 Secretary인 Wayne Orchiston에게서 나를 Vice-President로 추천하겠으니 출마를 하라는 e-mail이 왔다. 그래서 정중히 사양하는 e-mail을 다음과 같이 보냈다(사진 9-3을 참조).

To: Wayne Orchiston<wo@aaoepp.aao.GOV.AU>

From: Nha Il-Seong <slisnha@chollian.net>

Date: 30 May 2003 Subject: Vice-Presidency

cc. Richard Stephenson<f.r.stephenson@durham.ac.uk>

Dear Wayne,

Thank you for your e-mail and I am happy to know that Rajesh is planning to stand for the Vice-Presidency. I do now have a good reason not to stand for this position leaving myself to concentrate on my book writing before getting too old. In addition, my resignation of OC is also included, but if there is no candidate for the WG3, I may remain for the next triennial.

I wish you understand me, Wayne.

With best regards. Il-Seong

사진 9-4. 2003년 5월 30에 Wayne Orchiston에게 보낸 나의 e-mail.

그런데 이 정도면 분명하게 나의 뜻을 전했다고 생각했지만 그들에게는 받아지지 않았다. 뿐 만 아니라 결국 나는 그들의 각본에 따라 Vice-President에 출마했고, IAU에는 사전등록도 하지 못한 채 아내와 함께 Sydney로 개회 직전에 간 것이다. 나는 70세를 넘은 Senior member이므로 Registration fee는 아주 적고 또 늦었다고 과태료를 물지 않아도 되게 되어 있다. 이런 이유로 『Participant list』가 출간된 이후에 도착하여 현장에서 등록했기 때문에

내 이름이 없는 것은 당연하다.

내가 출국 직전에 Wayne Orchiston에게 e-mail로 보낸 나의 항복 선언문은 다음과 같다.

Date: 15 July 2003

Dear Wayne,

With my wife I have finalized our trip to Sydney.

Arrive at Sydney International Airport at 0615 on 18th(Friday) via TG 991.

Leave from Sydney at 1630 on 24th(Thursday) via TG 992.

Stay in Crest Hotel

111 Darlinghurst Road, Sydney 2011 Tel: 011-812-9358-2755

Fax: 011-612-9358-2888

I am happy to join you in the evening of Friday, 18 July, in the GA Registration area at 5:45pm.

Please kindly inform this to Richard.

I am looking forward to meeting you soon.

Il-Seong

사진 9-5. 2003년 7월 15일에 Wayne Orchiston에게 보낸 나의 e-mail.

---별항 2 : C41의 Working Groups

지난 번 Manchester 총회 회고록에 Division과 Commission에 속한 Working Group에 관하여 짧게 언급한 일이 있었지만, 이번 총회에서 새로 조직한 C41의 Working Group 4개의 이름과 임기 3년(2003-2006)의 SOC Chair와 Member 를 참고로 소개해 두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여 (표 5)를 만들었다. 나는 1년 전 청주에서 IAU Commission 41의 이름으로 《International Conference on the Astronomical Instruments and Archives from the Asia-Pacific Region》을 주관했다는 것이 빌미가 되어 WG on Historical Instruments의 Chair 자리를 피할 수 없게 되고 말았다. 다행히 다른 세 WG가 뚜렷한 업적을 세운 것이 없기 때문에 나는 그 후 3년간의 업적으로 청주 Conference를 위한 Proceedings를 출판하는 일만으로도 공을 세울 수 있게 되었다. 사실 Proceedings를 제대로 출판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다행히 나는 이미 몇 차례 그런 일을 해 왔었고, Stephenson의 헌신적인 영어교정과 Orchiston의 탁월한 editorial work가 있어서 나에게는 그리 큰일은 아니었다 (사진 9-4를 참조).

C41의 Business Session에서는 이미 예상했던 대로 영향력이 있는 몇 사람 (Ansari, Debarbat, Stephenson, Orchiston 등)의 후원을 얻어 나는 R.

Kochhar (India)와 경합하여 C41(Commission of History of Astronomy)의 다음 회기(2003-2006)의 Vice-President로 선출되었다. 하지만, 이 Vice-Presidency는 3년 후에는 임기 3년(2006-2009)의 President를 자동 승계 하는 자리여서 정말로 마음이 무거웠다. 영어 구사에 자신이 없는데다가 그 때가

되면 내 나이는 77세가 되는데, 서양 친구들의 눈에는 동양 사람이라 젊게 보는 것이 탈이다.

참고로 C41은 Vice-President로 당선된 사람만 발표할 뿐, 차점자의 명예를 위해서 득표수는 공개하지 않는 전통을 지키고 있다.

표 5. Commission 41의 조직 President

Alexander Gurshtein 1818 N. 20th Street

US-Grand Junction CO 81501 USA

Vice-President Il-Seong Nha

Dept of Astronomy & Space Science 134 Sinchon-dong, Seodaemun-ku Seoul 120-449

Korea R

① WG on Astronomical Archives

S. Debarbat (France, Chair), W. Dick (Germany), W.

Orchiston (Australia)

② WG on Historical Instruments

Nha Il-Seong (Korea, Chair), J. Briggs (USA), W.

Orchiston (Australia)

③ WG on Transit of Venus

W. Orchiston (Australia, Chair), S. Dick (USA), R.

Kochhar (India)

④ WG on Astronomical Chronology

A. Gurshtein (USA/Russia, Chair), A. Blauw (Netherlands), T. de Jong (Netherlands), B. Warner

(South Africa)

회의 기간 중 어느 날 내 Mail box를 보니 Canada의 U of Calgary의 Eugene Milone교 수가 쪽지를 남겼다. 내가 Binary Session에 나타나지 않으니까 그 동안 만나지 못하고 있었 던 것이다. 각 총회 때마다 Main Conference Hall에는 Alphabet 순서로 등록한 참가자들의 Mail box가 설치되어 있어서 서로 연락하는데 이용한다. 그런데 처음 총회에 참석한 사람이 나 또 어떤 사람은 이 Mail box를 모르고 있어서 이용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2,000명 이상이나 모이는 총회인데다가 여러 Session이 동시에 여기저기 흩어져서 진행되 기 때문에 이 Mail box에 메모를 남기지 않고는 묵고 있는 호텔이나 만날 장소를 알릴 방접 이 없다.

Eugene Milone의 쪽지에는 어느 날 몇 시에 어느 Lobby의 어느 쪽 구석에서 만나자는 것 이었다. 그리고 자기 아내도 왔으니 나에게 점심을 대접하고 싶다고 한다. 이것은 의외의 제 안이다. 여러 사람들이 서로 함께 점심이나 저녁을 먹는 경우는 회의 기간 중 자주 있는 일이 지만, 식비는 당연히 N분의 1인데 왜 점심을 사겠다고 하는 걸까?

---별항 3 : Eugene Milone(1939- )과 그의 아내

Eugene Milone과 처음 만난 것은 1990년 서울에서 열린 제2차 Pacific Rim Colloquium on New Frontiers in Binary Star Research 때였다. 그 대회 경 비를 충분히 조성하였기 때문에 내가 그에게 참가비용을 제공한 일이 있었는데, 그때 그는 초청받은 인사 중에서 비중이 있는 학자라고 Kam-Ching Leung에게 서 소개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두 번째 만남은 다음 해인 1991년 IAU Buenos Aires 총회 때여서 Buenos Aires에 이어 Cordoba에서도 만났으나 그가 Chair 를 맡았기 때문에 바쁘게 지냈고, 마지막 만남은 1995년 태국 Chiang Mai에서 열린 제3차 Pacific Rim Colloquium on Binary Star Research때로 기억한다.

Chiang Mai에서는 회의 중에 일요일이 끼어 있어서, 참가자들은 세 패로 나뉘어 서 이 날을 보냈다. 첫째 패는 주체측이 제공하는 관광이어서 10여 명이 이에 참 여했고, 둘째는 시내에 있는 장로교교회로 가서 예배드린 5-6명이었고, 마지막 셋 째는 단 두 사람인데 성공회 예배당으로 간 강영운과 Eugene Milone이었다.

무대는 Sydney 총회 Main Hall. 이날 점심 약속대로 나와 아내는 정해진 곳을 찾아가 기다리고 있는데, Eugene이 부인과 나란히 그러나 아주 느린 걸음으로 걸어오는 모습이 이상하게 보였다. 두 사람이 발을 맞춰서 걷는 모습이 마치 결혼 식을 마치고 걸어서 나가는 신부와 신랑의 걸음걸이를 꼭 닮았다. Eugene은 우 리를 보고도 태연스럽게 결혼 예행연습이나 하듯이 여전히 느린 걸음으로 걸어오 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은 엄숙해 보였다.

어느 식당에서 음식을 먹었는지 도무지 기억나지 않으나, 대체 무슨 일로 점심 을 사느냐고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말이 내가 자기에게 평소에 잘 해 주었기 에 아내와 함께 온 이 기회에 신세 갚으려고 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의 말의 뜻은 지금까지도 나에게는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이다. 내가 7년 연상이라는 것 외에는 학문적으로나 인품으로나 더 나은 점이 없는데, 무엇을 잘 해 주었다는 것일까.

그는 나에게 1년간 U of Calgary에 교환교수로 오면 좋겠다고 하면서 묵직한 신 청서를 보내준 일이 있었다. 그러나 그때는 연세대학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서 마음 편히 1년이나 자리를 비울 처지가 아니었다. 그의 호의도 사양했으니 누를 끼친 쪽은 오히려 나였다.

한 식탁에 앉은 네 사람이 나눈 대화 중 큰 몫을 차지한 것은 Eugene의 부인 이 시력을 점점 잃어가고 있다는 대목이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눈동자가 살아 움 직이고 있어서 우리에게는 정상인과 다르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부인의 말 로는 이제 Canada로 돌아가면 완전히 실명할 것이므로, 자기가 담당하고 있는 교회 주일학교 교재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가 걱정된다고 한다.

이제야 비로소 Eugene이 부인과 팔짱을 끼고 Wedding march를 하듯 우리에 게 걸어온 이유를 알았다. 그 때로부터 벌써 15년이 지났다. 궁금하면서도 편지 한 장도 보내지 못하고 있다.

=《열번째 묶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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