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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 전파원은 곧 客星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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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을 비롯하여 한국과 일본에는 천문현상을 관측했다는 역사 기록이 많이 남아 있다. 그 중 대표적인 예로는 갈릴레오가 망원경으로 태양 흑점을 발견하기 훨씬 전에 이미 맨 눈으로 “흑 자(黑子)”를 태양 표면에서 관측했다고 하는 기록이다. 가장 최초의 기록은 BC 28년의 『한서 오행지(漢書 五行志)』에 있다. 이 기록에 의해서 아주 예전에는 태양 활동이 지금 보다 훨씬 큰 규모로 활발했을 것이라는 학설이 나오게 되었다. 말하자면 동양의 흑자(黑子) 기록이 있었

기 때문에 가능해 진 것이다.

그런데 또 하나의 기록은 얼마 전까지도 서양 천문학자들에게는 받아드릴 수 없는 것이었는 데, 그것은 “객성(客星)”이다. 객성이란 이름이 등장한 것은 BC 134년의 『한서(漢書)』의 기록 이고, 『삼국사기』에는 BC 4년에 있다. Xi Zezong은 일본의 기록까지 합해서 모두 90개의 객 성 기록을 가지고 그 위치를 추정해 보았더니, 놀랍게도 전파원의 위치와 대부분 일치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제자인 Bo Shouren(薄樹人, 1934-1997)과 더불어 《中·朝·日 三國古代的新 星記錄及在射電天文學中的意義》라는 제목의 논문을 1965년에 『天文學報』에 발표했다. 이것 이 서방세계에 알려지자 다음 해인 1966년에 『Science』와 『NASA TTF-388』에 거의 동시에 번역되어 출판되었다.

외계 전파원의 실상을 탐구하던 전파천문학자들은 너도나도 앞 다투어 전파망원경을 Xi와 Bo가 제시한 객성(논문에는 新星이라 했음)의 위치로 돌려서 전파를 수신하는데 열중했다. 그 결과 시간이 흐름에 따라 신성 기록은 하나씩 전파원으로 확인되었다. 이것은 엄청난 사건이 었다. 이때가 내가 U of Penn에서 공부하던 때인데, 이런 내용을 강연하기 위해 초청받은 전 파천문학자들은 ‘Chinese, Korean and Japanese records of supernovae’ 하다가 너무 기 니까 ‘Japanese’를 빼고 ‘Chinese and Korean records’라고 유행처럼 말하게 되었다. 실로 20세기 하반기의 첨단 연구과제인 우주전파원, pulsars, neutron stars, gamma ray and x-ray sources 등의 연구에 큰 돌파구를 제공한 셈이다.

Xi와 Bo의 논문에 사진 6-6과 같은 초신성의 광도곡선이 소개되어 있었다. 일찍이 Baade 가 초신성의 광도변화를 이론적으로 주장한 바가 있었는데, Xi와 Bo가 중국과 한국의 1604년 Kepler 초신성의 기록을 가지고 Baade의 광도변화를 입증한 것이다. Baade의 이론적인 곡선 (파선)과 관측된 Xi와 Bo의 곡선(실선)은 놀라울 정도로 잘 일치하고 있다. [주: 이 광도곡선은 내가 『한국천문학회지』 1권 1호에 이미 소개한 바가 있다.]

사진 6-6. 중국과 한국의 관측 기록으로 만든 Kepler의 초신성의 광도곡선.

“Declare yourself!”라고 큰 소리로 나에게 외친 Sullivan은 나 보다 12살이나 연하이므로 1966년 당시의 일은 모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만약 그가 앞에 소개한 중국과 한국의 고대기 록이 이렇게 우수했다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그는 나에게 “We welcome you, indeed!”라고 말 했으리라.

---별항 5 : 위대한 천문사학자 Xi Zezong(席澤宗)

Xi Zezong 선생은 어렸을 때 일본군이 그가 살던 지역을 점령하자 섬서성(陝西 省)으로 도망가서, 14살 때 중학교에 입학했다. 그리고 이 학교를 졸업하자 과학 을 공부하려고 더 남쪽에 있는 中山大學에 입학했다. 그러나 집이 너무 가난하 여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홍콩과 광동 지역 신문에 천문학에 관한 해설 기사를 썼다. 그런데 이런 것이 오히려 경력으로 인정받아 1952년에는 자신의 책인 『恒 星』을 북경 상무인서관(商務印書館)에서 출판하기에 이르렀다.

1949년에 중국인민공화국이 건국되면서 그는 중국과학원에 들어가서 천문학을 연구했다. 그가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일한 분야는 중국 고서에 기록된 초신성이 었다. 그는 마침내 90개의 신성을 찾아내서 1955년에 《古新星新表》를 『天文學 報』에 발표했다. 이 논문은 당시의 천문학자와 물리학자들의 큰 관심을 받게 되 었는데, 10년 후에 다시 Bo Shouren과 함께 《增訂古新星新表》를 완성하여 또

『天文學報』에 발표한 것이다.

Xi Zezong 선생은 내가 《동양천문학사 국제회의(International Conference on Oriental Astronomy(약해서 ICOA)》를 창설하고, 제1회 때 중국학자 23명을 서울로 초청한 일을 두고두고 고맙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 때가 1990년이었으니 23명 중에 여권을 가지고 있던 사람은 단 1명이고, 나머지 22명은 그때까지 외 국 여행을 한 번도 가 본 일이 없었다. 따라서 나 때문에 처음 여권을 갖게 되었 고, 북경에 있는 한국대사관에서 입국 visa를 발급받았으니 그들에게는 감개무량 한 일이었다.

사진 6-7. 왼쪽은 2002년에 출판한 Xi Zezong 교수의 自選集 표지이고, 오른쪽은 그 속에 있는 화집에서 나와 한께 찍은 사진을 옮긴 것이다.

총회가 끝나고 서울로 돌아오기 전에 Milton Keynes에 사는 큰 딸(가영) 식구를 보러 영국 으로 건너갔다. 나는 하루를 함께 보내고는 New Castle Upon-tyne으로 가서 Richard

Stephenson교수를 방문했다. 그 댁에서 하루 밤을 자면서 지난 해(1993년)에 공동으로 주관 한 《International Conference, Oriental Astronomy from Guo Shoujing to King Sejong》의 Proceedings를 어떻게 출판할 것인가를 의논했다. 그는 세상에 잘 알려진 천문학 사의 대가이며, IAU Commission 41(History of Astronomy)의 President를 역임한 사람이 다. 나와는 이번에 Hague에서 만나기로 했으면서 약속을 어기고 오지 않았다. 그의 말이 걸 작이라고 받아줘야 할까. “겨우 15분 발표를 위해서 내가 Dover해협을 건너가야 하는가?”

나는 하루 동안 그의 안내를 받아 New Castle Upon-tyne시내의 명소를 구경했다. 이 도 시는 한때 조선업의 중심지로 대단히 번창한 곳이다. 새로 건조한 배를 진수시키면서 하루가 멀다고 샴페인을 터트렸던 곳이다. 지금은 그 영광을 한국의 울산에 넘기고, 조용한 곳이 되 어 버렸지만, 다른 산업을 일으키고 있는 모양이다. 이들의 주택이 특이했다. 2층집이 연이어 붙어 있는데, 가구마다 1층과 2층을 쓰는 구조이다. Stephenson이 살고 있는 집도 이 중에 하나인데, 현관에 들어가서 응접실을 거친 다음 부엌 쪽으로 가서 문을 열어 보니 제법 넓은 정원이 있다. 그러니 정원이 있는 2층 집인 셈이다. 그의 말에 깊은 뜻이 묻어 있는 듯하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 헌데 이와는 아주 대조적으로 한국의 아파트에 는 많은 사람들이 위층에 살고 있고, 많은 사람들이 아래층에도 살고 있어서 소위 “층 간 분 쟁”의 고통을 안고 산다.

사진 6-8. F. R. Stephenson과 그의 대표 저서 『Historical Eclipses and Earth’s Rotation』의 표지.

다음날 Milton Keynes로 돌아와서는 손자가 다니는 학교를 둘러보았다. 초1년생인 손자가 자기 학교 자랑을 의젓하게 하는 모습에 감개무량했다. 그리고는 딸의 안내를 받아 벼룩시장 으로 갔다. 영국의 노년층이 연금만으로는 살기가 어려워지니까 젊었을 때 아껴 쓰던 물건을 내다 파는 곳이다. 바로 3년 전 Buenos Aires 총회 때 가 보았던 벼룩시장을 생각하고 신통 한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가졌다.

내가 보잘 것 없이 보이는 물건 하나를 만지작하는 모습을 보고 딸은 한심하다는 눈치다.

하지만 나는 한 건 했다고 확신했다. James Cook(1728-1779)이 태평양을 항해하던 중 지루 하다고 느낄 때 거북등에 그림을 칼로 파서 남긴 것을 어느 책에서인가 본 적이 있었는데, 바 로 그가 남태평양의 어느 섬 사람들을 새긴 딱딱한 거북 껍질을 여기서 찾은 것이다. James Cook은 영국함대를 이끌고 아메리카 남단을 거쳐 남태평양에서 1769년의 “금성의 일면통과 (Transit of Venus)”를 관측하여 지구와 태양간의 거리를 확실하게 도출하는데 도움되는 자

료를 만든 함대 사령관이다.

(주: James Cook을 기념하는 곳은 영국을 비롯해서 Australia에도 있는데, 나는 ICOA-6가 열린 2008년에 Australia의 Townsville에 있는 James Cook University에 가 본 적이 있 다.)

사진 6-9. Captain James Cook의 초상화와 그가 거북 등에 새긴 풍속화.

=《여덟째 묶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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