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와 미군정을 경험하고 해방되는 과정에서 유입된 서구사상에 따라 여성해방의식이 일찍이 이식되었다. 따라서 서구에서 100여 년을 걸쳐 시민 혁명 및 여성운동의 결과 겨우 쟁취된 선거 참정권 등이 해방 후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정에서 서구적 헌법제정과 함께 도입되어 한국 여성의 법적 권 리는 서구에 못지 않을 만큼 이른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런 면에서 한국은 형식적이나마 여성의 사회참여의 기회가 일찍부터 열려있었다. 그러나 자체 적인 시민혁명과 기술혁명을 거치지 못하고 산업화 전략에 따라 이식된 서 구화 과정에서 자유, 평등 의식은 한국인의 정체성 속에 뿌리를 완전하게 내리지 못하였다. 근대화 과정에서 신분제적 사고는 극복되었다고 하지만 가부장적 남․여 관계를 극복할 수 있는 성 평등 의식은 현실적으로 고착화 되지 못하였다.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이한 아직까지도 호주제가 존재한다는 것은 남성 중심의 가족관계를 대변하는 것이다.
여성의 경제활동이 늘고 있지만 여성들의 고용을 보장하고 있는 법적 기 제는 취약한 실정이다. 물론 남녀고용평등법이 근로기준법에 제정되어 있다 지만 같은 자격을 가졌다면 ‘가장’으로 인식되는 남성을 우선으로 뽑는 여성 차별이 여전히 존재한다. 또한 여성에게 선거권은 일찍부터 주어져 있다지 만 여성이 정치행위의 주체나 피선거권자로서 여전히 인식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최근 들어 여성의 정치세력화를 위한 활동이 활성화되고 있
고 여성의 참여가 부진한 분야에서의 여성참여를 유도하기 위한 여성할당제 가 추진되고 있지만 이것이 광범위하게 실시되기까지는 아직까지 요원한 실 정이다.
(1) 선거제도 차원
1) 정당의 후보공천
일반적으로 후보들이 선거에 출마해 당선되기 위해서는 후보자의 좋은 이미지와 선거자금, 조직이 필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역 대 국회위원 선거를 분석해 볼 때, 당락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정당 차 원의 후보자 지원이다. 왜냐하면 정당은 공천제도를 통하여 국회의원 입후 보자를 일차적으로 여과시키고, 자당이 내세우는 후보에 대하여 조직과 자 금면에서 상당부분 지원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유권자들의 투표성 향이 점점 정당본위로 변하여 왔다는 사실은 선거에서의 정당의 역할을 더 욱 증대시켰다. 실제 역대 국회의원 선거를 돌이켜 볼 때 공천제도가 본격 화된 제3대 국회의원 선거 이후 정당공천후보자의 당선율이 증가하려 제10 대 선거에서는 60.1%에 이르렀고,74) 제14대 선거에서는 28.4%로 무소속 입 후보자의 당선율 9.2%와 비교하여 보면 3배가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75) 그 런데 문제는 그간 이들 정당들이 국회의원 선거에 있어 여성후보를 발굴, 육성 및 공천, 선거지원활동에 있어 상당히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왔다는 것 이다.
우리나라 여성후보들이 국회에 도전한 상황을 살펴보면, 지역구의 경우 74) 윤형섭, 「증보판 한국정치론」 (서울: 박영사, 1988), pp.305-307.
75)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총람」, 1992, p.129, p.143.
제16대에서 33명이 출마한 것이 가장 많았고 그 다음으로 제15대 총선에 21 명(보궐선거 포함, 22명), 제14대의 19명(보궐선거 포함 21명) 순이었고, 가 장 적은 시기는 제4, 6, 7, 9, 10대의 경우 여성후보가 5명 이하로 적었다.
보편적으로 부정부패나 독재의 성격이 강하였던 시기일수록 지역구 여성후 보수가 적었고, 민주화가 보다 진전된 시기일수록 여성후보자가 많아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특히 여성 정치인들이 지역구에서 공천을 받지 못하는 주요 원인을 살펴 보면, 무엇보다 정치는 남성영역이라는 깊은 성 역할 고정관념 일단 정치에 나서려는 여성의 수가 적은 상태에서 우리나라 정치구조가 정치지도자 중심 의 계파 정치를 띠는 양상에서 이해관계가 적은 여성에게 공천해 주는 경향 이 적으며 특히 당선가능성이 적다는 이유를 들어 여성들을 배제시켜 온 것 을 그 주요 원인으로 들 수 있다. 아울러 여성에게는 당선가능성이 높은 지 역구에 공천해 주지 않는다는 것도 여성의 정치참여가 낮은 이유중의 하나 로 들 수 있다.
2) 선거구제
2002년 현재 우리나라의 국회의원 선거구제는 소선거구 다수득표제이다.
선거제도와 여성 대표성간의 함수관계를 살펴보기 위해 1980년대에 23개 선 진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한 결과를 보면 한 표라도 더 얻은 후보 한사람만 이 당선되는 소선거구제를 채택하는 나라보다 1구 다수주의와 비례대표 및 정당명부식 선거구를 채택하는 나라에서 여성 후보의 당선율이 전반적으로 높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미국의 경우 소선거구제인 연방의회 선 거 보다 1구 2-3인 선거구제인 주의회 선거에서 더 많은 여성 후보가 당선
되고 있다는 사실에서도 증명된다. Election to Parliament in Twenty-Three Democracies”, Western Political Quarterly, Vol.40, No.3, (Sept. 1987), p.483.
대표성의 원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반면 정당명부제 하에서는 정당마다 여성 유권자의 지지를 의식하여 여성 후보를 명부에 포함시킬 수밖에 없고 정당명부 전체에 대한 선택이므로 유 권자나 남성정치 엘리트의 편견을 극복해 낼 수 있어 우리나라에서도 선거 구제 및 선거 방식 조정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 이다.
이러한 선거구제의 중요성은 유럽국가 중에서도 노르웨이와 독일 및 영국 의 사례를 비교해 볼 때 비례대표제를 적용하면서 대선거구제를 채택하는 노르웨이가 여성의 정치적 대표성이 가장 높고, 그 다음은 비례대표제를 도 입하면서 소선거구제를 채택하는 독일, 그리고 비례대표제도 도입하지 않고 소선거구제를 채택하는 영국 순으로 대표성이 점점 낮아진다는 사실에서도 반증된다. 이를 기초로 볼 때 대선거구†비례대표제가 여성의 진출에 가장 유리하며 비례대표제도 도입되지 않는 소선거구제가 가장 불리하다고 할 수 있겠다.
(2) 정치활동 차원
이러한 정치․제도적인 면에서 우리나라 현실에서 여성이 정당활동을 하 기 어려운 점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다.
첫째. 우리나라의 정당체제나 정당조직에서 나타나는 정치형태는 한 두 명의 지도자를 중심으로 하는 인물 본위의 사당적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기 때문에 매우 중앙집권적이고 권위주의적이다.77) 따라서 정당 본래의 기능을 수행하기보다는 정견을 같이하는 사람들의 모임으로 특정인 중심의 인맥과 77) 현종민, “한국여성정치참여의 당면과제: 여성정치참여를 위한 바람직한 지방선거 선
거법과 정치현실”, 사회과학논총 제8집, 경희대학교 사회과학대학, 1990, p.51.
파벌로 형성되었다. 더구나 정당체계가 남성위주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평소에 정당을 통한 조직활동에서 여성들은 열세에 설 수밖에 없다. 즉. 우 리나라 정당 정치인들의 형태는 남성본위 조직체의 전형과 같고 리더중심의 계파간의 동지애는 호형호제(呼兄呼弟)로 얽혀있어 여성들이 끼여들기 어렵 다.78)
둘째, 여성은 정치자금과 조직면에서 남성보다 열세의 위치에 있다.79) 여 성후보들은 남편이나 친척의 적극적인 지원이 없으면 선거자금조달에 어려 움이 있으며 조달하더라도 그 한계가 뚜렷하다. 사회적 지위나 힘이 상대적 으로 약한 여성은 정치헌금을 얻기 어려우며 자금이 없는 여성은 조직도 갖 지 못하고 결국 권력도 얻기 어렵다. 기초의회선거에서 여성후보들의 선거 자금은 법적 허용한도를 지킨 깨끗한 선거였다는 평을 듣고 있지만 자금 및 지원조직이 자기 자신, 가족, 친지, 동료, 이웃 등의 범주에서 제공되었다.
정책적인 지원 역시 부족한 상태로 여성정책을 다루는 정부기구가 설치․운 영되고 있지만 다양한 여성문제를 해결하는데 주력하고 있을 뿐 여성의 정 치참여는 소극적으로 다루어지고 있는 형편이다. 또한, 우리나라 정당조직과 정당활동 가운데 평당원으로서 여성이 차지하고 있는 비율은 높은 편이지 만,80) 여성들은 정당에서 주로 하위직급에서 봉사활동을 담당하고 있다. 이 때문에 자연선거에 출마하려면 기존의 조직이 없이 새로 출발해야 함은 물 론이고, 정당으로부터 적절한 정치자금을 지원 받지도 못한다.81)
셋째, 정당의 공천문제로, 우리나라의 정당은 정견을 같이 하는 사람이 모
78) 장성자․김원홍, 「95 연구보고서 200-5 정당의 여성정치참여 방안」 (서울 : 한국 여성개발원, 1995), p.10.
79) 김혜연, “여성의 정치참여”, 제주리뷰 Vol. No.1 (제주대학교 지역사회발전연구소, 1996), p.48.
80) 장정남, “한국여성의 정치참여 활성화를 위한 제도적 개선방안에 관한 연구”, 동국 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1996, p.56.
81) 장성자․김원홍, 전게서, p.10.
인 정치조직이 아니라 특정한 인물을 중심으로 형성된 파벌적인 성격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