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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생태를 통한 주체성 생산으로서 예술적 실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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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타리의 ‘주체성 생산’ 개념은 『세 가지 생태학』(1989) 이후 집필한 『카오스 모제』(1992)에서 확장되어 이론적으로 견고해진다. 가타리 철학이 심화될수록 ‘주 체성 생산’의 문제는 생태철학의 핵심적인 화두로 자리한다.

가타리가 주체성 생산에 대해 골몰하는 이유는 이것이 인간 실존의 문제와 직접 적으로 연관되어 있으며 이를 통해 자본주의의 폐쇄적이고 병폐적인 구조에서 벗 어나 대안적인 삶의 형태로 나아갈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가타리는 주체성 생 산을 정의를 “개인적 그리고 혹은 집단적인 층위들이 그 자체 준거적인 실존적 영 토(Territoire)로서 등장할 수 있는 조건들 전체”126)라고 말하며 자기 준거로 한 실 존을 언급한다. 즉 자신의 실존적 영토를 구축하도록 하는 모든 것은 주체성 생산 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주체성의 생산의 조건들은 언어에 의한 상호작용, 이질적인 제도들의 상호작용, 음악과 조형 예술 등의 무형적인 준거 세계들을 포함한다. “문 제는 정신의 능력, 인간 상호 관계나 가족 내적인 콤플렉스들 안에서 작용하지는 않는 주체화 기계들의 실존을 인식하는 것이다.”127)라고 말하는 가타리의 설명을 통해 어떤 제도적 틀에 묶이지 않는 주체화를 생산하는 것은 정신생태를 통해 이 루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정신 생태, 즉 마음생태의 변화는 필수적이며, 새로운 자기결정, 자율성, 자치행동 따위의 영역이 요구된다.128)

주체성 생산에 대한 문제는 가타리가 보르드 정신병원 근무 당시부터 당시 모든 정신분석을 지배하고 있던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을 비판하며 언급되었던 문제였다.

125) 윤수종, 『욕망과 혁명』, 서강대학교 출판부, 2009, p. 63.

126) 펠릭스 가타리, 『세 가지 생태학』, 윤수종(역), 동문선 현대신서(126), 2003, p. 19.

127) 펠릭스 가타리, 위의 책, p. 20.

128) 신승철, 『펠릭스 가타리의 생태철학』, 그물코, 2011, p. 65.

프로이트 정신분석의 경우, 정신병 환자를 국가, 아버지, 신이라는 초월적 자아에 모든 것을 귀속시키고 구조적 콤플렉스의 틀에 맞춰 증상을 설명하고 치료하는데 이는 이미 결정된 주체화를 국가, 아버지, 신으로 환원시켜버리는 결과를 낳는다.

가타리는 이러한 결과를 비판하고 대안적으로 시도한 제도요법에 관해 다음과 같 이 말한다.

나는 분명히 내가 오랫동안 일해오고 있는 보르드 정신병원을 염두에 두고 있다. 거기서는 모든 것이, 정신병자가 의사소통의 분위기를 발전시킬 목적으로 뿐만 아니라 집단적 주체화 를 위한 국지적 핵심 지대(foyer)들을 창조하기 위해서도 활동적인 분위기 속에서 살아가고 책임을 지도록 마련되어 있다. 그러므로 문제는 환자의 주체성을 –정신적인 위기 이전의 상태로 - 단순히 재모델화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독자적인(주체성) 생산이다.129)

가타리는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의 틀에서 벗어나 제도와의 관계에서 개인의 정 신분석을 시도하고자 했다. 그는 환자들에게 그 전에는 접하지 못했던 경험들을 접 할 수 있는 장들을 마련하는 방식을 통해 환자가 자신의 주체성을 생산할 수 있도 록 하였다. 이것은 환자들을 구조적인 사회에서 정상인의 범주에 속했던 상태로 되 돌리는 것이 아닌 자신의 특이성을 생성함으로써 실존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었 다. 여기서 주목해 볼 부분은 주체성의 ‘생산’이다. 가타리는 주체성을 ‘생산’이라는 각도에서 고찰하였는데, 이는 아래의 인용을 통해 드러난다.

구조적 콤플렉스들 속에 결정화된 주체성의 ‘이미 거기의’ 차원들에서가 아니라 하나의 창조 에서 진전하며, 그 자체가 일종의 미학적 패러다임과 관련되는 전이의 접목들은 바로 이처 럼 작동한다. 사람들은 어떤 예술가가 자신이 다루는 팔레트에서 새로운 형식들을 창조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새로운 주체화 양태들을 창조한다. […] 우리는 즉자적인 것으로서의 주 어진 주체성과 마주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율성의 실현 과정들’ 또는 ‘자기 생산 (autopoïèse)의 과정들’과 마주하고 있다.130)

주체성은 이미 존재하는 주체성을 발견하거나 끄집어내어 지는 개념이 아니라 하나의 창조에서 진전을 통해 ‘생성’ 되는 것이다. 생성된 주체성은 이미 존재하여 잠재되어 있는 것이 아닌 자기 생산하는 주체로서 스스로 선택하는 자율성을 지닌 다. 가타리는 이를 예술가의 작업에 비유하는데, 이것은 예술가가 작업을 할 때 이 129) 펠릭스 가타리, 『카오스 모제』, 동문선, 2003, p. 16.

130) 펠릭스 가타리, 위의 책, p. 17.

미 있던 것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창조적 욕망을 통해 새로움을 양태 하는 방식과 같다. 이런 점에서 주체성이 생성되는 방식은 미학적 패러다임을 통해 작동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예술적인 생성으로서의 새로운 주체성 생산’은 생태철학의 주 요 실천 방법이다.131) 주체성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생산’되어야 하는 것이라면, 주체성을 과연 어떻게 생산 할 것인가? 는 생태주의의 핵심 논제이다.

여기서 가타리는 “나의 관점은 인문과학과 사회과학을 과학적인 패러다임에서 미학적-윤리적 패러다임으로 바꾸는 것에 있다.”132) 라고 말하며 미학적-윤리적 패 러다임을 특히 강조한다. 이러한 배경은 현대 사회의 격변은 더욱 미래로 향한 모 델화와 사회적이고 미학적인 새로운 실천에 대한 요구로부터 비롯한다.133) 그렇다 면 미학적-윤리적 패러다임은 무엇일까? 이에 관해, 신승철은 “정신생태의 영역의 변화가 예술적이고 창조적인 삶을 사는 모습을 보이는 등의 윤리적이고 미학적인 주체성을 생산할 수 있다.”134)고 설명한다. 따라서 예술적이고 창조적인 삶을 사는 모습은 곧 윤리적이고 미학적 패러다임에 따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술은 관계 망과 배치의 변화를 이끄는 사유이다. 그리고 색다른 관계망을 만들고 색다른 움직 임으로 나아갈 때 주체성은 생산된다.

정리해보자면, 주체성 생산은 마음생태의 변화에서 시작한다. 가타리가 정신생태 를 중요시하며 미학적-윤리적 패러다임을 강조하는 이유는 이것이 자본주의가 양 산하는 광기, 분열의 욕망이 아니라 특이한 삶의 형태를 만들어낼 수 있는 주체성 을 생산해내기 때문이다.135) 대안적인 욕망을 추구함에 있어, 가타리는 “우리는 주 체성을 객관화하고 물상화하고 ‘과학화’하는가, 아니면 반대로 주체성을 그 과정적 인 창조성의 차원에서 파악하려 하는가라는 중요한 윤리적인 선택에 직면해 있다 .”136)라고 언급하며 딱딱하고 과학적 패러다임을 통한 주체성 방향이 아니라 부드 럽고 자유로운 미학적-윤리적 주체성 생산 방향으로 나아갈 것을 촉구한다.

가타리의 생태철학은 환경, 사회관계, 인간 주체성의 세 가지 작용 영역의 윤리-정치적 접합을 통해 ‘주체성 생산’을 강조한다. 그리고 이러한 ‘주체성 생산’의 실천 과정에서 가타리는 ‘예술’을 유용한 역할을 담당하는 것으로 간주한다.137) 가타리의 131) 김성하,「네스와 과타리의 생태철학에서 윤리-미적 실천에 관한 연구: 스피노자의 역량 개념에 준거한

두 해석」, 박사학위 논문, 홍익대학교 대학원, 2016, p. 171.

132) 펠릭스 가티리, 『카오스 모제』, 동문선, 2003, p. 21.

133) 펠릭스 가타리, 위의 책, p. 23.

134) 신승철,『펠릭스 가타리의 생태철학』, 그물코, 2011, p. 64.

135) 신승철, 위의 책, p. 80.

136) 펠릭스 가티리, 『카오스 모제』, 동문선, 2003, p. 24.

‘주체성 생산’의 생태철학적 논리는 과학자의 방식보다 예술가의 방식에 근접하다 는 점에서 예술은 주체성 생산을 작동시키는 원리이며 새로운 미학적 패러다임의 전환을 가능케 한다고 볼 수 있다.

137) 김성하, 「네스와 과타리의 생태철학에서 윤리-미적 실천에 관한 연구: 스피노자의 역량 개념에 준거 한 두 해석」, 박사학위 논문, 홍익대학교 대학원, 2016, p. 170.

제4장 이승택의 ‘비(非)조각’ 개념

이승택(李升澤, 1932-)은 한국 1960-70년대 한국 실험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로 기 존의 흐름을 거부하고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해왔다. 고정관념에 대한 거부와 저항적 기질의 예술가로 평가되었던 그는 최근에서야 그 작품세계가 재평가 되고 있다. 이는 이승택 작가의 작품의 초기부터 현재까지를 총체적으로 조망하여 미술 사적 위상을 규명한 국립현대미술관《이승택-거꾸로, 비미술》(2020년) 전시를 통 해서 분명히 나타난다.

이승택 작품세계는 가타리의 생태철학으로 그 특징을 분명히 설명할 수 있다.

1960-70년대의 세계는 프랑스 68혁명을 계기로 억압적인 기존 질서에 대한 저항과 해방을 추구한 운동의 정신138)이 지구 곳곳에 퍼지고 있던 시기였다. 가타리는 68 혁명을 겪고 이후 파생된 다양한 반권력 사회운동을 이끌어 나간 인물로, 이 과정 에서 자신의 생태학적 관점을 발전시켜 생태철학이라는 이념에 도달했다. 이 변혁 의 기류 속에서 서구예술도 새로운 국면을 맞으며 탈회화, 탈장르로 인해 표준화와 집중화가 무너지기 시작한다.139) 68혁명이후 미술 경향은 정신이 세계를 명료하게 볼 수 있다는 시각 중심의 형이상학이 거부되면서 보는 주체와 보이는 대상이라는 이분법의 붕괴로 나타났다. 보는 눈과 보이는 육체가 전복돼, 보이고 보는 지각 경 험의 주체로서 몸이 중심이 되는 경향을 보였다.140)

한편 이 시기의 한국 화단도 새로운 미술을 제시하고자 하는 전위적 움직임과 다양한 매체 사용을 통한 작업의 모색이 이루어지던 시기141)였다. 당시 주류 미술 로 위치하던 앵포르멜 비판을 통해 기성의 미술과 문화계에 반기를 들며 1960-70 년대의 실험미술은 반보수 성향을 띠었다. 이것은 평면 회화를 벗어나 헤프닝, 다 다 등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한국화단의 움직임은 서구의 변화 기류와 동시대적이 었다.142) 비록 한국미술이 실험미술을 시도한 것에 대해 다수의 논저에서 한국미술 138) 김지혜, 「프랑스 68혁명과 예술운동-예술의 대중화와 정치화」,『마르크스주의 연구』, 제5권 2호,

2008, p. 2.

139) 김미경, 「제4집단(1970)」, 『미술사논단』, 제11권, 2000, p. 253.

140) 강혜승, 「포스트 68, 이우환의 현상학적 몸과 사물」, 『미술이론과 현장』, 제30호, 2020, p. 174.

141) 오상길, 「또 하나의 국면-한국현대미술의 동시대성의 기획에 임하며」, 『한국현대미술 다시 읽기Ⅱ, 6,70년대 미술운동의 자료집 Vol. 2』, ICAS, 2011, p. 499.

142) 김복영, 「1970년대 한국의 실험미술-타자적 세계이해의 전구(前驅)」, 『한국현대미술 새로보기』, 오

의 정체성을 서구미술의 영향권에서 모색하였다고 하는 시도들이 있지만,143) 반대 로 이 당시의 한국의 실험적인 미술을 그 자체적으로 변화를 모색해나가는 과정으 로 평가한 시도144)들 또한 다수 보여 지고 있다. 당시 한국이 처한 상황들에 대한 변화의 과정으로서 1960-70년대 한국미술의 여러 시도들에 대한 연구가 다층적으 로 이루어지면서 한국미술이 서구미술의 흐름 안에서 읽히는 것에서 벗어나 서구 미술과 한국미술이 각자의 위치에서 일어난 변화에 반응하고 참여한 동시성의 관 점에서 가타리와 이승택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기존의 보수적 제도와 기득권에 저항하고자 하는 전세계적 기류 속에서 가타리 는 생태철학으로 정립하여 나아갔다면, 이승택은 예술을 통해 이를 실행하고자 하 였다. 따라서 가타리의 생태철학 이론은 이승택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 단초를 제 공한다고 할 수 있다.

당시 한국화단의 작가들 중에서도 이승택을 선정한 이유는, 이승택이 1960년대 말부터 70년대 초반까지 A.G(아방가르드협회)활동 이후 주류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소수에 위치 지으며 실험적 시도를 통해 자신의 독창성을 끊임없이 개척해 나갔기 때문이다. A.G그룹은 70년대 들어서면서 추진력을 잃고 다시 단색화로 이어지는 흐름을 띠는 반면, 이승택의 작품은 이 흐름에서 벗어나 있어 한국의 다른 작가들 과 차별성을 가진다. 이것은 작품세계에 대한 이승택의 인터뷰에서도 확인된다.

“수많은 작가들이 미술 사조에 편승해 작업하지만, 나는 그런 사조와는 상관없이 오로지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게 무엇인지 생각했다. 독자성을 지닌 작업을 해왔 다.”145) 이러한 이승택의 전위적이고, 고정관념을 뒤엎는 작업들은 가타리의 생태철 학에서 ‘주체성 생산’ 개념과 관련하여 생각할 수 있다.

광수 선생 고희기념논총 간행위원회, 미진사, 2007, p. 206.

김미정,「1960년대 후반 한국 기하추상미술의 도시적 상상력과 이후 소환된 자연」, 『미술사학연구 회』, 제43집, 2014.p. 8.

143) 이에 해당하는 관점으로는 김이순, 「1950-1970년대 한국의 추상조각」, 『한국현대미술 새로보기』, 오광수 선생 고희기념논총 간행위원회, 미진사, 2007. 우정아, 「한국 현대미술에 나타난 개념미술의 담론적 형성과 실천의 양상: S.T 조형미술학회를 중심으로」, 『미술사학』, 제41권, 2021 등이 있다.

144) 이의 관점에서 1970년대 한국현대미술을 본 연구로는 김복영, 「1970년대 한국의 실험미술-타자적 세 계이해의 전구(前驅)」, 『한국현대미술 새로보기』, 오광수 선생 고희기념논총 간행위원회, 미진사, 2007. 김미정,「1960년대 후반 한국 기하추상미술의 도시적 상상력과 이후 소환된 자연」, 『미술사학 연구회』, 제43집, 2014. 김미경,「제4집단」, 『미술사논단』, 제11권, 2000. 이혁발, 『행위미술이야기 -윤진섭과의 대화, 대담 이혁발』, 사문난적, 2012 등이 있다.

145) 도재기,「저항과 도전의 '거꾸로 미학'이 낳은 것은?…한국 실험미술 거장 이승택 회고전」, 『경향신 문』, 2020.11.25.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11251252001&code=96 0100#csidx45cc365165ea36da09e54b80245f7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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