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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을 통한 ‘세 가지 생태학’의 총체적 실천

문서에서 저작자표시 (페이지 69-72)

다른 주변적인 것들과 만나는 관계성 속에서 제시된 작품들이다.《정림건축 구사옥 해체이벤트》에서는 작가의 개념과 행위, 물감이 캔버스 위로 자연스럽게 떨어져 만들어지는 형태들, 그리고 그것을 지켜보는 관객들과의 관계 속에서 비로소 작품 이 만들어진다. <산정의 바다> 역시 작가가 본인이 그린 파도 이미지와 이를 들고 산으로 가는 행위, 그리고 이 행위에 담긴 파도이미지가 산이라는 공간에 연결 접 속되어야만 비로소 <산정의 바다> 라고 이름 지은 작품이 탄생한다는 점에서 그 의 작업은 언제나 타자성, 외부와의 관계 맺기의 가능성을 담지 한다. 이는 주변의 상황을 작품의 일부로 끌고 오면서 외부의 상황에 따라 작품의 본질이 달라지는 내재성을 가진 리좀적 사유방식이다.199) 따라서 이승택이 추구한 신체성과 수행성 에 대한 탐구는 가타리가 창안한 ‘리좀’의 개념에서 보면, 어디로든 접속될 수 있는 상황성을 바탕으로 하나로 귀결되지 않는 열려있는 관계성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연결, 접속의 원리를 가지고 있다.

제이 에멀링은 가타리와 들뢰즈의 철학에 대해 “들뢰즈와 가타리의 철학은 본질 보다는 정황circumstances과 상황situations-사건 events에 연관되어 있는 개념으로 만들어진 하나의 개방된 체계이다. 개념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창조되고 발명되 어야 한다.”200)라고 말한다. 개방된 체계라는 것은 고정된 관념, 기표, 중심, 모델화 를 떠나 탈기표화, 탈중심화, 메타 모델화의 지향이다. 하나의 개방된 체계라는 것 은 어떤 것과도 접속해 새로움을 생성하고 이 과정에서 변용역능이 발휘되어 전체 의 배치에 변형을 가할 수 있는 체계이다. 이승택이 제시하는 상황과 상태의 미술 은 언제나 여지를 가지고 바깥과의 접속, 즉 외부성이 결합되어 만들어지는 가능태 로 존재한다.

제2절 가타리 생태철학의 예술적 실천으로서 이승택

다.201)

자연은 스스로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우주 만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이 손을 대는 순간 아름답고 완벽한 조화를 이루던 자연의 이치는 깨지죠. 산업혁명 이래로 인간은 무자 비하게 자연을 훼손해 왔어요. 위대한 자연은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생명력으로 어느 정 도 스스로 복원하는 힘을 역사 속에서 보여주긴 했지만, 경제적 논리를 떠나 전지구적인 노 력이 절실한 시대에 직면했다고 봅니다.202)

이승택은 자본주의 논리에 따라 무분별하게 훼손되는 자연에 대해 관심을 가지 고 환경 생태주의적인 실천을 작업을 통해 전개해 나간다. 이는 <이끼 심는 예술 가>(1990년대 초반)(도14), <녹(綠)의 수난>(1996)(도15), <지구놀이>(1991)(도16) 등의 작품을 통해 나타난다. 특히 지구행위 연작은 지구에 대한 관심과 환경오염 문제의 경각심을 드러내는 퍼포먼스도 함께 진행하였다.

이러한 작업은 ‘포토-픽쳐’라는 작가 고유의 방법론을 통해 제작되었다. ‘포토-픽 쳐’는 물리적인 형체는 제작하지 않고 자연환경, 기물들을 사진으로 찍은 뒤, 인화 된 사진 위에 물감으로 덧그려 회화화한 기법이다. ‘포토-픽쳐’의 탄생은 한스울리 히 오브리스트와 이승택 작가의 인터뷰(2020년)에서 언급된다.

1980년대 말부터 특히 1990년대 이후에 들어서면서 당시의 전시 행태를 보면서 오히려 예술 이 환경을 더 오염시키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어요. 내 직업의 상당 부분은 버려 진 물건들을 재활용해서 새로운 의미를 구현하는 작업들이 많습니다. 이미 무분별한 개발과 인간의 편의주의로 충분히 오염된 세상에 한 번의 전시 후에 버려지는 엄청난 양의 폐기물 을 보면서 예술가마저 환경을 오염시키는 작업을 할 수 없다는 생각이 이런 작업들로 이어 진 게 아닌가 싶어요. 내가 선택한 주제를 사진으로 포착하고 나의 관점과 의도를 사진 위 회화로써 표현할 수 있다면, 굳이 현실 세계에 거대한 물질 덩어리를 남길 필요가 없겠다 싶었죠.203)

그는 전시 후에 생산되는 많은 양의 쓰레기를 보며 예술작품 생산을 환경문제와 연결시켜 고찰한다. 예술 행위 하에 예술이 쓰레기를 생산한다는 생각은 결국 작가 201) 박천남, 「굴(屈)하지 않는 아방가르디스트」,『이승택 1932-2012: Earth, Wind and Fire』, 성곡미술

관, 2012, p. 17.

202)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 이승택,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와 이승택 작가 인터뷰 2020년 8월」, 『이 승택-거꾸로, 비미술』, 국립현대미술관, 2021, p. 450.

203)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 이승택, 위의 책, p. 454.

가 무언가를 직접 만들지 않고도 작품을 만들어내는 ‘포토-픽쳐’로 이어졌다. 이러 한 작가의 환경생태적인 작업과 방법론은 <공해미술>(1990년대)(도17), <결국, 예 술은 쓰레기가 되었다>(1990년대)(도18) 작품들을 통해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이는 작품의 주제 면에서는 환경오염 내용을 다루고, 방법론적으로는 물질덩어리를 남기 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의 작업의 친환경적 성격을 읽어낼 수 있다. 예술가로서 작 업을 통해 환경 생태주의를 실천하는 것은 가타리가 환경생태학에 대해 “생태학의 함축적 의미는 자연애호가나 자격이 있는 전문가의 한줌의 소수파의 이미지와 연 결되어서야 안 될 것이다.”204) 말한 부분과 연결된다.

또한 그는 작업의 주제로서 환경뿐만 아니라 기존의 제도권에 저항하는 작업 즉, 사회제도에 대한 문제도 다루고 있다. 그 예로 1989년《이승택 분신행위예술전》에 서 작가는 자신의 작업물들과 그 공간에 설치되어 있던 구조물을 불태워 버린다.

자신의 작업을 불태우는 행위를 통해 작가는 미술관에서 작품의 존엄화, 미술 관습 과 예술 제도에 대해 문제제기를 한 것이다. 이 외에 그가 작품의 요소로 사용했던 성기오브제나 이를 종교적 도상과 결합시킨 <천사의 구두>(1980)(도19)이나 <무 제>(1990년대)(도20)는 역사적, 문화적 존엄성에 대한 작가의 저항이며 금기시 된 성에 대한 도발적 행위로 볼 수 있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사회적 제도와 관습 에 저항하는 행위는 자신의 작업을 이행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동시에 이를 대중에게 선보임으로써 관련된 주제에 대해 사회적 이슈를 만들어 낸다는 점이다.

작가의 작업을 접한 사람들은 자신들을 둘러싼 환경문제와 사회제도에 경각심과 인식을 다시 새로이 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예술가가 작품을 통해 사회적 인식 을 촉구하는 것은 정치적 실천의 한 범주로서 해석이 가능하다. 따라서 작가의 작 업은 사회 생태주의적인 실천 또한 포함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작가의 작 업들은 가타리가 사회생태학에 관해 아래와 같이 언급한 부분과 관련된다.

집단적 존재 양식 전체를 문자 그대로 재구축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그래도 그것은 단순 히 ‘소통적인’ 개입에 의해서가 아니라 주체성의 본질에 관련한 실존적인 돌연변이(변화)에 의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이 영역에서는 단순히 일반적인 지향에 머무르지 말고, 대규모 제 도적인 수준에서뿐만 아니라 미시 사회적 수준에서도 실효성 있는 실험적 실천을 실행에 옮 겨야 할 것이다. 205)

204) 펠릭스 가타리, 『세 가지 생태학』, 윤수종(역), 동문선 현대신서(126), 2003, p. 37.

205) 펠릭스 가타리, 위의 책, p. 15.

그의 작업은 사회 생태주의 문맥에서 대규모 제도적인 수준의 맥락에서라기보다 예술을 통한 미시적인 실천으로 볼 수 있다. 예술가로서 윤리적-미학적 패러다임을 통해 주체성 생산을 실현하고 있는 그는 사회의 관념에서 지속적인 탈주하여 주류 와 결을 달리 하는 일종의 돌연변이이다. 그는 자신을 변화 그 자체로 정의하고 사회생태주의에서 집단의 존재 양식의 재구축 문제를 예술가의 논리로서 집단의 배치에 균열을 가하면서 풀어나간다. 이는 2020년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와의 인 터뷰에서 환경과 관련된 작품을 이야기하며 예술의 역할에 대한 그의 생각을 이야 기하는 부분에서도 드러난다. “예술의 역할은 사회적 이슈를 성명서나 군중 시위와 같은 방법이 아니라 ‘감각’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시각적 언어의 공유와 전파를 이 끌어내는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206) 이는 가타리가 말한 자연애호가의 모습이 아 니라 예술가의 논리로서 자본주의에 대한 대항인 것이다. 또한 그는 일상의 ‘감각’

적 경험을 제공함으로서 일상의 변화를 이끄는 분자적 혁명을 실천한다.

결과적으로 이것은 이승택이라는 고유한 특이성을 생성시키는 결과로 이어진다.

이는 특이성을 기반으로 자율성을 가진 주체성 생산을 통한 정신 생태주의의 실천 인 것이다.

그는 환경문제에 대한 관심을 작품의 주제와 방법론을 통해 드러낸다. 이를 통해 그는 대중들에게 사회적 인식을 일깨우는 것으로서 사회 생태주의를 이행하고 있 다. 이러한 그의 의지와 행동은 정신생태주의에서 주체성 생산과 연결되면서 총체 적으로 그는 세 가지 영역의 생태학을 실천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그의 작업은 ‘생태철학’의 예술적 실천으로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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