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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학의 세 가지 범주-환경생태, 사회생태, 정신생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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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지 생태학’은 ‘생태철학’의 작동 구도이다. ‘세 가지 생태학’은 종래의 생태 운동이 ‘환경문제’에 한정되어 논의되어 온 것을 가타리가 사회생태, 정신생태로 영 역으로까지 확장시켜 세 가지 접합의 작용을 통해 현재의 전지구적 규모의 위기를 바라봐야 한다는 실천개념이다. 여기서 가타리의 생태철학이 다른 생태주의 담론들 과 차별성을 갖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가타리는 지구는 과학 기술적 변혁의 시기를 겪고 있지만, 생명의 존속을 위협할 불균형 현상이 나타나고 있으며 이러한 격변과 함께 개인적이고 집단적인 인간 생 활양식도 점화 악화의 길을 걷고 있다고 판단하며 현대사회를 진단한다.110) 가타리 는 이러한 문제를 발생시키는 경향으로, 우리의 생활이 일종의 행동표준화(획일화) 에 의해서 ‘경화(硬化)’ 되고 타자성은 모든 거친 특성을 잃어가는 것에 대해 지적 한다.111) 이러한 문제에 대한 근본적 해결 방안으로서 가타리는 환경·사회관계·인 간 주체성이라는 세 가지 작용 영역의 윤리-정치적 접합을 통해서만 이 질문들에 적절하게 답할 수 있다고 말한다.112) 가타리는 우리 사회가 직면한 생태학적 위기 에 대한 답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108) 박민철, 최진아, 「펠릭스 가타리의 생태철학 : 카오스모제, 생태적 주체성 그리고 생태 민주주의」,

『철학연구』, 제127집, 2019, p. 239.

109) 가타리에게 생태철학의 핵심은 이질적이고 특이한 주체성 생산이며, 미적 경험은 주체성 생산에 있어 서 중요하다. 미적경험은 주체를 자신을 억압하는 모든 일상성으로부터 벗어나 언어 이전의 비기표적 이고 무의식적 영역을 개시하는 주체적 효과를 가진다. 그리고 주체는 이 예술적 체험을 통해 비로소 주체성 생산이 가능한 자기 준거적인 실존적 영토를 마련하게 된다. 또한 주체성 생산이 다양하고 이 질적인 가치들을 생산해낸다는 점에서 그것은 예술 활동이며, 동시에 예술 활동이 주체로 하여금 주체 성 생산의 계기를 마련해 준다는 점에서 그것은 생태학적 실천이기도 하다. 박민철, 최진아, 위의 논문 p. 241. 각주 참조.

110) 펠릭스 가타리, 『세 가지 생태학』, 윤수종(역), 동문선 현대신서(126), 2003, p. 7.

111) 펠릭스 가타리, 위의 책, pp. 7-8.

112) 펠릭스 가타리, 위의 책, p. 8.

생태학적 위기에 대한 답은 지구적인 규모에서, 물질적 비물질적인 재화의 생산이라는 목표 를 새롭게 설정해 나가는 진정한 정치·사회·문화혁명이 일어난다는 조건에서 나타날 수 있 다. 따라서 이 혁명은 거대한 규모의 가시적인 세력 관계와 연계될 뿐만 아니라 감수성·지 성·욕망의 분자적 영역과도 관계한다.113)

우리가 직면한 위기에 대한 답으로서 가타리가 제시한 정치·사회·문화 혁명은 자 본주의 메커니즘으로 작동하는 생활양식이 아니라 미시적, 분자적 혁명을 통해 비 물질적 욕망을 생산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혁명은 눈에 보이는 거시적 권력과도 연계 하지만 동시에 아주 미세한 미시적, 분자적 영역인 우리 일상의 변화와 연결 된다.

바로 적대들 및 특이화 과정들의 폭발, 탈중심화, 감속이라는 맥락에서 새로운 생태학적 문 제 설정이 떠오르고 있다. […] 계급투쟁이나 ‘사회주의 조국’의 방어를 금과옥조로 여기던 구시대처럼 하나의 이데올로기를 일의적으로 작동시키는 것이 더 이상 문제가 아니라면, 반 대로 새로운 생태철학적 준거가 매우 다양한 영역에서 인간의 실천을 재조성하는 선들을 나 타낸다고 생각할 수 있다. 도시계획, 예술창조, 스포츠 등의 영역에서 민주주의 재발명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 관해서는 개인적이고 집합적인 수준에서 언제나 문제는 비참함과 절망을 동의어로 만드는 대중매체의 가공의 방향으로가 아니라, 개인적 혹은 집단적인 재특이화의 방향으로 향하는 주체성 생산의 배열장치 기구의 조각이나 기관들이 배열되는 방식, 또는 그 메커니즘 자체는 어떠한 것인가를 검토하는 것이다. 114)

가타리의 생태학적 문제설정은 도처에서 솟아나는 특이성에 대한 요구로부터 감 지된다. 이러한 배경에서 가타리는 하나의 이데올로기로 작동되는 사회체제를 지적 하면서 여러 차원의 다양성 속에서 인간의 실천을 재조명하여 대안적 삶으로의 이 행이 가능한 사회적 배치를 모색한다. 자본주의가 대중매체를 통해 사람들에게 주 입하는 자본의 논리에 따라서가 아니라 고유한 특이성을 발화시킬 수 구조와 배치, 그리고 이것들의 작동방식은 어떠한 것인가에 대한 재검토가 요구되는 것이다.

따라서 생태계의 작동 양상에 대한 분석에서 비롯하여 세 가지 영역의 생태를 접합시킨 생태철학은 환경생태학의 ‘환경’에는 ‘자연’(오염)을, 사회생태학의 ‘사회’에 는 ‘사회관계’를, 정신생태학의 ‘정신’에는 ‘인간의 주체성’을 각각 대응시키고 있 113) 펠릭스 가타리, 『세 가지 생태학』, 윤수종(역), 동문선 현대신서(126), 2003, p. 9.

114) 펠릭스 가타리, 위의 책, p. 14.

다.115) 가타리는 세 가지 생태학에 대해 아래와 같이 말하고 있다.

오늘날 있는 그대로의 환경생태학은 즉 사회 투쟁이나 자신의 고유한 정신을 취하는 방식을 철저하게 탈중심화(분산)한다는 목적을 지닌 전반적인 생태학을 개시하고 예시할 뿐이다. 현 재의 생태운동은 물론 많은 공로가 있다. 그러나 실은 전지구적인 생태철학적 질문은 대규 모의 모든 정치 참여를 거부하기 위해 이따금 고의적으로 선택하는 의고적이고 민속적인 생 태학 운동 흐름의 몇몇에 맡겨지기에는 너무 중요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생태학의 함축적인 의미는 자연애호가나 자격이 있는 전문가의 한줌의 소수파의 이미지와 연결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생태학의 함축적 의미는 자본주의 권력 구성체와 주체성 전체에 대해 문제를 제기 하는 것이다.116)

위의 인용에서 가타리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자본주의가 초래하는 전지구적 규 모의 문제들이 환경생태학의 상투적인 운동 흐름에서만 논의되기에는 너무나 다양 한 것들이 복잡하게 얽혀져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생태학이 환경보호나 자연의 권 익 보호 등의 운동에 한정되어 사고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오히려 생태학은 자 본주의 권력 구성체 즉 사회생태와, 주체성 생산과 관련된 정신생태를 포괄한 전체 에 대해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가타리는 자연, 사회, 정신 생태 세 가지 삼위일체의 명제 위에서 해결방안을 모색한다.

가타리가 이러한 세 가지 영역의 접합을 제기하는 이유는, “생태학의 세 가지 근 본적인 작용 영역의 재접합이 없는 한 안타깝게도 인종주의(인종 차별), 종교적 광 신, 반동적인 재폐쇄 속에서 동요하는 소수 민족의 분열의 위협, 어린이 노동의 착 취, 여성의 억압 등과 같은 모든 위협이 늘어난다고 예측할 수밖에 없다”117)고 보 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태철학적 전망에서 가타리는 ‘주체성’에 대한 논제로 나아간 다.

사회생태학은 사회체의 모든 수준에서 인간관계의 재구축을 위해 일해야 한다. 사회생태학 은 자본주의 권력이 지역을 벗어나 탈영토화 되고, 바깥으로는 지구상의 사회·경제·문화 생 활 전체에 세력을 확대하고 동시에 ‘안으로’는 가장 무의식적인 주체적 지층들 내부에 침투 해 있다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그 경우 자본주의 권력에 대해서 단순히 외부로부터 조합 활동이나 전통적인 정치활동으로 대항하려는 것은 더 이상 불가능하다. 개인·가정·부부

115) 윤수종, 『욕망과 혁명』, 서강대학교 출판부, 2009, p. 61.

116) 펠릭스 가타리, 『세 가지 생태학』, 윤수종(역), 동문선 현대신서(126), 2003, p. 37.

117) 펠릭스 가타리, 위의 책, p. 16.

의 일상생활에 둘러싸이고, 이웃관계·창조·개인적 윤리에 둘러싸인 정신생태학의 영역에서 자본주의 권력의 효과들에 대결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필요하게 되었다. 바보스럽고 유치한 합의(일치)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는 불일치와 실존의 특이한 생산을 기르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118)

사회생태학은 인간관계 재구축이라는 과제를 안고 있다. 통합된 세계 자본주의에 서 자본은 국가를 넘어 지역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하며, 사람들의 무의식에 침투하 여 미시 파시즘을 가동하고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더 이상 자본이 밀고 들어오는 권력에 대항하여 조합 활동이나 정당 활동만으로는 거대한 통합된 세계 자본주의 권력에 대항할 수 없다. 따라서 사회생태학은 정신생태학과 근본적으로 연결 지어 실행되어야 한다. 사람들의 무의식에 변화가 일어나지 않으면 사회체의 변화 또한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가타리는 ‘정신생태’의 영역을 강조119)하는데 이는 인간 주체성 문제와 연관 되기 때문이다.

정신적 생태철학은 대중매체나 정보통신의 획일화에, 행동양식의 순응태도에, 광고와 각종 조사에 의한 여론 조작에 대해 해독제를 찾아야 할 것이다. 정신적 생태철학의 실행방식은 과학성이란 시대에 뒤진 이상에 집착하는 ‘정신분석’ 전문가들의 방식보다도 예술가의 방식 에 더 가까울 것이다.120)

가타리는 정신 생태학에 대해서는 자본주의가 매스미디어를 통해 대량으로 생산 하는 이미지, 기호들에 순응하지 말고 이에 대한 대안적 방식을 찾을 것을 요구한 다. 그리고 이 방식은 온갖 도식과 표상으로 점철된 틀 안에서 분석하는 과학성을 통해서가 아니라 예술가가 창조적 모색을 하는 과정과 같은 방식에 근접하다. 따라 서 정신생태학에서는 인간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생산성과 이윤의 논리가 아닌 다 른 것을 강조하는데 바로 이것이 ‘주체성 생산’이다.

인간의 주체성은 곧 인간 실존의 문제와 연결된다. 정신생태학은 창조적 표현이 우선시 되는 실존적 생산의 맥락에서 주체성 생산의 의미를 가진다. 그리고 주체성 생산은 개인의 특이화121)과정에서 만들어진다. 개인적이고 특이하고 이단적인 것은

118) 펠릭스 가타리, 『세 가지 생태학』, 윤수종(역), 동문선 현대신서(126), 2003, pp. 33-34.

119) 신승철, 『펠릭스 가타리의 생태철학』, 그물코, 2011, p. 64.

120) 펠릭스 가타리, 『세 가지 생태학』, 윤수종(역), 동문선 현대신서(126), 2003, p. 16.

121) singularité. 들뢰즈와 가타리는 특수성(particularité)이라는 개념 대신에 특이성이라는 개념을 사용한

차이를 생성하며 이러한 지속적 이질 발생122)의 과정을 통해 개개인은 똑같은 색을 벗어나 유일무이한 개성을 가진다. 이런 이유로 가타리는 특히 정신생태를 강조하 는 것이다. 주체성 생산은 자본주의가 주입하는 획일화된 생활양식에서 벗어나 색 다른 사고와 의식 무의식을 가능하게 한다. 따라서 사회생태학, 환경생태학에서의 실천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정신생태학에서의 주체성 생산이 선행되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세 가지 생태학은 각각을 특징짓는 실천의 관점에서는 서로 구별되지만, 말하자 면 하나의 공통적인 미적-윤리적인 영역에 속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세 가지 생태 학의 작용 영역은 내가 이질발생성이라고 부른 것, 즉 재특이화의 지속적인 과정에 속한다.

개인들은 연대함과 동시에 점점 더 다르게 되어야 한다. (학교, 시청, 도시 계획 등의 재특 이화에 관해서도 똑같이 말할 수 있다)123)

환경생태학은 환경문제에 관한 쟁점을 다루고, 사회생태학은 사회 구조적 문제 그리고 정신생태학은 개인의 특이성을 발현하면서 주체성 생산을 다룬다는 점에서 구별된다. 그러나 생태는 생태적 연결망을 조성하는 거대 계획, 제도, 프로그램, 사 회적 실천 등의 역할과 기능과 복합적으로 연결되어 있다.124) 따라서 자연, 사회, 정신이라는 세 가지 접합의 다층적 관점에서 현대사회의 문제점을 바라보고 미학 적-윤리적인 방향으로 풀어나가야 한다. 특히 이 과정에서 이 세 가지 생태학적 실 천은 자기 생산을 준거로 한 주체성 생산이 함께 이행될 때 가능하다. 그렇기 때문 에 개인은 집단적 운동의 흐름에 동참하면서도 자신의 특이성을 유지하려는 의지 가 필요하다. 특이성은 자신을 준거로 한 주체성 생산, 자본주의가 펼쳐놓은 동일

다. 특수성은 언제나 보편성과 개별성의 이항대립 속에 머물며 보편성과 개별성의 연결고리로서만 인 식되기 때문이다. 반면 특이성은 개체에 고유한 특성을 지니는 개별성으로도 동일자나 본질의 관념으 로 귀속되는 보편성으로도 환원될 수 없다. 특이성은 오히려 일반적 법칙 혹은 보편적인 구조의 관념 을 허물어뜨리고 특정한 시기와 특정한 장소에서 사회적 실천을 둘러싸고 구성되는 계열의 고유한 가 치만을 인정한다. 그러한 실천의 장 및 관계에 고유한 유일무이한 것을 특이성이라고 한다. 특이성에 기반을 둔 사회의 구성은 개별성들의 공통성에서 보편성을 도출하는 것이 아니라, 특이성들의 집합적 구성을 통한 새로운 사회의 구축을 의미한다. 그리고 개인과 관련된 특이화나 재특이화는 스스로 다른 것이 되어가면서도 고립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서로 소통해 나가는 과정을 의미한다. 펠릭스 가타 리, 『카오스모제』, 윤수종(역), 동문선, 2003, p. 12. 각주 참조.

122) 이질발생성. hétérogenése (<-> homogénéisé). 지속적으로 특이화해 나가는 과정을 말한다. 국가나 권 력이 동질성을 부과하면서 포획해 가려는 반면에, 각 운동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것으로 변화됨으로써 색다른 것을 만들어 간다. 펠릭스 가타리, 『세 가지 생태학』, 윤수종(역), 동문선 현대신서(126), 2003, p. 36. 각주 참조.

123) 펠릭스 가타리, 『세 가지 생태학』, 윤수종(역), 동문선 현대신서(126), 2003, p. 57.

124) 신승철, 『모두의 혁명법』, 알렙, 2019, p. 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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