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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파시즘의 극복으로서 분자혁명-소수자 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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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 장에서 언급하였듯이 자본주의의 기호의 예속화 양식에 사로잡힌 주체가 아 니라 특이성을 생산하며 정상성의 양식을 벗어날 수 있는 방식으로 가타리는 소수 자 운동의 중요성을 항상 강조하였다. 가타리 관점에서 소수자는 구조적인 지배의 87) 펠릭스 가타리, 펠릭스 가타리, 『분자혁명』, 윤수종(옮김), 푸른숲, 1988, p. 314.

88) 신승철, 「가타리의 분열분석과 미시정치」, 박사학위, 동국대학교 대학원, 2010, p. 132.

89) 신승철, 위의 논문 p. 132.

흐름에서 벗어나 색다른 목소리로 권력에 균열을 만들 수 있는 존재이다. 따라서 가타리는 소수자를 특이성을 생성할 수 있는 존재들로 보고 이들의 운동을 옹호하 고 함께 참여하면서 ‘소수자 되기’를 분자혁명을 촉발점으로 보았다.

분자혁명 실천은 우리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서 새로운 ‘되기(becoming)’의 과정 을 통해 가능하다. 내가 너가 되고 너가 내가 되는 ‘되기’는 상대방을 이해하여 기 존에 가졌던 통념에서 벗어나 다른 삶을 개방할 수 있도록 한다. 여기서 가타리는 다수자인 남성, 백인, 비장애인, 성인, 이성애자, 자국민, 정규직 노동자에서 벗어나 여성, 유색인, 장애인, 아이, 이방인, 비정규직이 소수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90)

‘소수자 되기’를 통해 내가 상대방의 입장에 설 때 우리의 삶은 미세한 변화들을 만들어내고 그 특이점들에 의해 전체의 배치91)를 바꿀 때 분자혁명은 일어난다. 따 라서 ‘소수자 되기’ 개념은 가타리의 분자혁명에서 주요하게 다뤄진다.

가타리와 들뢰즈에게 소수의 개념은 통상적으로 이해되는 양적에서의 소수가 아 니다. ‘소수’의 개념에 대해 가타리와 들뢰즈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생성들은 소수적이며, 모든 생성은 소수자-되기이다. […] 다수성은 상대적으로 더 큰 양이 아니라 어떤 상태나 표준, 즉 그와 관련해서 더 작은 양뿐만 아니라 더 큰 양도 소수라고 말할 수 있는 상태나 표준의 규정, 가령 남성-어른-백인-인간 등을 의미한다. […] 생성이나 과정으로서의 ‘소수’와 집합이나 상태로서의 ‘소수성’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가령 유대인, 집 시 등은 특정한 조건에서는 소수자를 형성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아직 소수자를 생성 하기에 충분치 않다. 상태로서의 소수성 위에서 우리는 재영토화되거나 재영토화되기 때문 이다. 하지만 생성 속에서는 탈영토화된다.92)

가타리와 들뢰즈에게 소수자는 양적인 차원에서 정의되는 것이 아니라, 특이성 생성 유무로 정의된다. 즉 그들에게 있어 소수자는 특이성을 만들어내는 주체이 90) 신승철, 『펠릭스 가타리의 생태철학』, 그물코, 2011, p. 14.

91) 다양한 기계장치가 결합되어 일체를 이룬 상태를 말한다. 이것은 구조, 체계, 형식, 과정 등보다 더 넓 은 개념이다. 배치는 생물학적, 사회학적, 기계적, 영적, 상상적인 구성요소뿐만 아니라 이질발생적인 구 성요소를 포함한다. 배치는 힘의 흐름 및 이 흐름에 부과된 코드 및 영토성과 관련되지만, 배치라는 개 념에서 이 흐름은 코드와 영토성에 의해 고정되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흐름을 생산한다는 점이 강조 된다. 모든 배치는 영토화 하는 성분을 갖지만, 동시에 이처럼 탈영토화의 첩점을 포함하고 있으며, 탈 영토화의 양상에 따라 배치는 하나의 고정된 기계이길 멈추고 분해되어 다른 기계로 변형된다. 그래서 배치는, 그것의 영토성 이전에 그것의 탈영토성에 의해, 탈주선에 의해 정의된다고 말한다. 무의식에 대 한 분열분석 이론에서 볼 때, 배치는 구조주의적인 프로이트 해석에서 라캉이 말하는, 모든 것을 설명 하는 준거가 되고 환원의 고정점인 ‘콤플렉스’를 대치하는 것이다. 신승철, 『모두의 혁명법』, 알렙, 2019, p. 454.

92) 질 들뢰즈, 펠릭스 가타리, 『천 개의 고원』, 김재인(옮김), 새물결, 2001, pp. 550-551.

다.93) 다수성은 어떤 상태나 표준으로 하나의 기준을 구성하는 집단이다. 세상은 남성의 권리나 권력을 이미 주어진 것으로 전제하므로 남성은 다수자이다. 반대로 이런 맥락에서 여성은 다수의 권력에서 벗어나 있으므로 소수자에 속한다. 즉 주류 에 속하고 지배적인 것은 다수이고, 그 다수의 권력 바깥에 있는 것이 소수이다.94) 유대인이나 집시의 위치는 역사적 맥락에서 보면 소수자로 볼 수 있지만, 재영토화 되어 집단을 구성하여 하나의 기준이 있는 상태를 유지한다는 점에서 특이점을 생 성하기에는 충분치 않으므로 소수자로 볼 수 없다. 하지만 이 기준을 벗어나 특이 성을 생성한다면 소수가 된다. 따라서 소수는 ‘소수자 되기’와 관련하며 변화, 생성, 창조를 소수자의 특성으로 갖는다.95)

그렇다면 ‘되기’는 무엇일까? 신체와 신체가 만나 변화를 일으키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스피노자96)의 변용(變容)97)의 개념에 토대를 둔 것이다. 그 사람의 입장에 서서 상대방을 이해하고 감각, 지각의 변화 등 신체적 변화를 겪으며 진정으로 상 대방을 이해하고 포용하는 것이 ‘되기’이다. 신체적 변화를 동반하는 ‘되기’는 단순 히 상대방을 모방해 외형을 닮아가는 것이 아니라 신체와 신체가 결합해 일어나는 질적 변화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가타리와 들뢰즈가 『천 개의 고원』(1980)에서 언급했던 동물-되기에서 ‘개’를 예로 들자면 개-되기는 스스로를 변용시켜 개의 특 질이나 감응을 만들어내는 분자를 생산하는 것이다. 이때의 개는 생물학적인 종으 로서의 개가 아니라, 개의 감응을 만들어내는 ‘분자적인 요소들의 구성물로서의 개’

이다.98) 따라서 ‘개-되기’는 개를 모방하는 것이 아니며 사람의 모습에서 탈영토화 되어 전혀 다른 종류의 것이 되는 것을 뜻한다.

‘되기’의 개념을 심화해서 보기 위해 들뢰즈의 ‘차이생성’ 개념을 가져와 보고자 93) 신승철, 『펠릭스 가타리의 생태철학』, 그물코, 2011, p, 14.

94) 한의정, 「소수예술_들뢰즈의 미학과 아르 브뤼」, 『한국미학예술학회』, 제42권, 2014, p. 216.

95) 한의정, 위의 논문, p. 216.

96) 스피노자는 17세기 철학자로 ‘욕망’과 ‘무의식’개념을 창안한 철학자이면서도 이와 평행을 이루는 ‘내재 적 이성’을 이야기 한다. 대표저서로 『에티카(Ehtica』(1677) 가 있다. 신승철, 「눈물 닦고 스피노자, 마음을 위로하는 에티카 새로 읽기」, 동녘, 2012, p. 5.

들뢰즈와 가타리는 스피노자의 영향을 받았다. 이진경, 『노마디즘1』, 휴머니스트, 2002, p. 37 참조.

97) 변용(變容)은 스피노자 철학의 근간을 이루는 개념으로 두 신체가 만났을 때 신체의 일부나 전체가 변 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신체의 변화가 촉발되는 것은 서로 사랑하기 때문이며, 상호 긍정되는 기쁨이라 는 정서 상태와 오르가즘 같은 신체 합성의 상태를 의미하기도 한다. 변용의 상대방의 입장에 서는 것, 상대방 되기, 격렬한 신체변화, 끊임없는 정서의 촉발 등으로 나타나며, 사랑이 만들어내는 세계의 재창 조 현상이다. 신승철, 『펠릭스 가타리의 생태철학』, 그물코, 2011, p, 14.

98) 이진경, 『노마디즘2』, 휴머니스트, 2002, p. 90.

한다.

되기는 어떤 형태에(또는 형상 forme)에 다다르는 것(동일화 identification, 모방 imitation, 미메시스 Minesis)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더 이상 여성과 동물과 분자와 구분될 수 없는 그런 이웃 영역, 분간할 수 없고(indiscernabilité) 분화되지 않은(indifférenciation)영역을 찾 는 것이다.99)

들뢰즈의 철학에서 ‘되기’는 ‘분간할 수 없고, 분화되지 않은 영역’으로 아직 어떤 특정한 개체 A, 특정한 개체 B 등의 모습이 드러나지 않은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동시에 ‘되기’는 그러한 발생이 가능한 지반으로서의 영역을 뜻한다.100) 그렇기 때 문에 ‘A’의 ‘B’되기는 A도 B도 아닌 ‘무엇이다~’라고 명명할 수 없고 명확하게 지각 이 불가능한 분자적이고 특개적인 것을 만드는 것이다.101) 따라서 ‘되기’는 개별적 인 것도 아니고 보편적인 것도 아닌 차이 그 자체를 생성한다. 이 점에서 이미 ‘되 기’의 사유는 지배적이고 다수적이고 통념적인 것에서 벗어나는 날 수 밖에 없다는 점을 전제하고 있다. 이것을 가타리와 들뢰즈는 “되기는 소수적이며, 모든 되기는 소수화(devenir-minoritaire)일 수밖에 없다.”102)라고 말하고 있다. ‘소수자-되기’는 변용을 통해 차별적 관계를 넘어서서 다양성과 특이성을 존중103)하는 행동인 것이 다.

따라서 ‘소수자 되기’는 분자혁명의 실천이다. 앞서 말한 이탈리아의 자유라디오 운동도 소수자 운동으로 소수언어를 확산시키며 주류사회에 균열을 만들었던 운동 이었다. 이와 관련해 가타리는 『분자혁명』(1977)에서 소수자 운동으로서 자유라 디오의 잠재력을 높게 평가했다.104) 그리고 이것을 통합된 세계 자본주의에 대항할 수 있는 역능이라고 보았다.

가타리는 통합된 세계 자본주의가 야기한 온갖 병폐적인 문제에 대해 사회구조 적 개혁을 통한 재건이 아닌 특이성, 주체성 생산을 촉진하는 혁신적인 실천에 의 99) Deleuze, “La Littérature et la vie”, Critique et clinique, Minuit, 1993, p. 11. 신지영, 「들뢰즈로 말

할 수 있는 7가지 문제들」, 그린비, 2008, p. 41 에서 재인용.

100) 신지영, 위의 책, p. 41.

101) Gilles Deleuze/Felix Guattari, Mille plateaux : capitalisme et schizophrenie 2. [Deleuze, Gilles/Felix Guattari, A Thousand Plateaus, tr. by Brian Massumi (Minneapolis,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1987]. 이진경, 『노마디즘2』, 휴머니스트, 2002, p. 117. 에서 재인용.

102) 이진경, 위의 책, p. 118.

103) 신승철,「들뢰즈/가타리의 욕망론과 신체론에 대한 고찰」, 석사학위, 동국대학교 대학원, 2003, p. 114.

104) 신승철, 『모두의 혁명법』, 알렙, 2019, p. 269.

해 자율성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사회를 재구축할 것을 제시한다. ‘소수자 되기’는 이런 특이성, 주체성을 생산을 촉진한다. ‘소수자 되기’를 통해 다수자의 입장을 대 변하는 자본주의의 물질적 도착, 기표적 통제에 대항하여 새로운 관계의 배치망을 만들어 갈 수 있다.

제4절 ‘생태철학’과 그 예술적 실천

1980년대 프랑스 생태운동에서 주도적 역할을 한 가타리는 자본주의가 야기한 문제에 대한 대안적 실천 이념으로 ‘생태철학’을 구상한다. 그 이론적 결실로서 팜 플렛 형태의 글로 정리한 것이 바로 『세 가지 생태학 The Three Ecologies』

(1989) 이다.105) 여기서 가타리는 기존의 생태주의 담론들이 자연과 인간의 관점에 서만 환경문제를 바라본 것을 환경, 사회, 정신이라는 세 가지의 총체적인 관점으 로 확장한다. 이를 통해 현대사회가 직면한 문제를 바라보고 생태학적 실천을 다루 는 이론이 바로 ‘생태철학(ecosophy)106)’이다.

3절에서 살펴본 것처럼, 가타리는 현대사회가 직면한 위기의 원인으로 자본주의 를 지적한다. 자본주의에서 자본의 권력에 사로잡힌 인간 주체를 해방시키는 것이 가타리의 생태철학에서의 주요 핵심 의제이다. 이를 위해 가타리는 기존 생태학 담 론에서의 자연과 인간의 이분법적 시각을 허물고 자연과 인간 그리고 사회관계까 지로 관점을 확장한다. 즉 자연, 사회, 인간 총제적인 구도에서 생태학의 문제를 탐 구하고 실천적 방안을 제언하는데, 이것이 바로 가타리가 제시하는 ‘생태철학’이다.

인간주체는 정신의 영역, 사회적 관계, 그리고 자연과의 환경적 관계를 토대로 서로 상호작용하고 관계망을 형성하는 문맥에서 읽혀져야 한다.107) 다시 말해 자연 이 시장경제의 관점에 의해 훼손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치적인 실천이 필요하며, 이를 실행하기 위해서는 대중매체가 주입하는 기호에서 벗어난 주체들을 가능케 하는 정신생태학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 따라서 가타리의 생태논리는 세계 자본주의와 대중매체가 부여하는 동질성과 획일화로부터 끊임없이 벗어나려는 특 이성, 예외성, 희소성을 발견하는 것이다.108) 이를 기반으로 가타리는 모든 종류의

105) 윤수종, 「가타리의 생태학적 문제제기」, 『진보평론』, 제35권 봄호, 2008, pp. 35-36.

106) écosophie, écosologie와 philosophie의 합성어이다. 펠릭스 가타리, 『세 가지 생태학』, 윤수종(역), 동 문선 현대신서(126), 2003, p. 61.

107) 박민철, 「진정한 생태학을 위한 세 가지 생태학」, 『통일인문학』, 제73집, 2018, p. 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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