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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현의 의미와 성격

II. 이론적 배경

3. 재현의 의미와 성격

재현(representation)20)의 어원인 라틴어 'repraesentatio'는 '다시(re)+현존케 하는 것(praesentatio)' 즉 '묘사 한다'를 의미한다. 독일어 'Vorstellung'는 '앞에 (vor)+세우는 것(stellung)' 즉, '대표 혹은 대변 한다'라는 의미를 갖는다(한국문학 평론가협회, 2006). 서명수(1997)는 재현의 의미를 "부재

absence

하는 어떤 대상

objet

이나 추상적인 것을 그에 상응하는 다른 대상(기호)의 수단으로 머릿속에 제시

presenter

(떠오르게) 하는 것" 또는 "(부재하는 대상 혹은 개념을) 영상· 형상·

기호의 수단으로 감각 가능하게 함"으로 정의하고 있다(서명수, 1997, 408-409).

이처럼 재현은 어떤 것을 다시 드러내어 묘사하거나 표현하는 것을 말한다.

재현의 의미가 어떤 것을 묘사하거나 표현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재현은 실재나 현실을 그대로 모방하거나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재현에 의해 "현실이나 실 재"가 만들어지며(류현종, 2005, 98), 새로운 의미나 대상을 만들어 내거나(Silva, 1999, 15: 류현종, 2005, 98에서 재인용), 자기 정체성과 다른 사회집단의 정체성 을 만들어내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한다(Silva, 1999, 17-18: 류현종, 2005, 98에서 재인용).

통상적으로 사람들은 영화·TV·신문과 잡지 그리고 교과서를 매개로 재현되는 타자의 이미지는 사실적이라고 간주하거나 사실을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Said는 동양의 재현에 관한 분석에서 재현은 완전하게 사실적일 수 없다는 점을 강 조하고 있다. Said는 서양의 동양에 대한 지식체계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으며 서양 이 동양 세계를 서양과는 다른 열등한 '타자'로 재현하고 있음을 문제로 지적하고 있 다(고부응, 2004, 363).

재현을 통해 소수 민족이나 특정 집단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이 확대 생산되기도 한다. 미국이나 영국 언론은 소수 인종이나 민족을 뉴스에서 배제하거나 부정적 사건 을 강조하여 부각시킴으로써 이들에 대한 편견을 강화함은 물론 집단 전체를 부정적 이미지로 왜곡하는 경우가 있었다(반현, 2000; Hall, Critcher, Jefferson, Clarke,

& Roberts, 1978; Mitra, 2004; 정의철, 2013b, 69에서 재인용).

20) 재현은 정치학에서는 '대의'나 '대표'로, 예술에서는 '연출', '표현' 또는 '재현' 등으로 사법적 영 역에서는 '변호' 혹은 '대변'으로, 철학에서는 '표상'으로 나타난다(강내희, 2000, 17).

미국에서는 다수의 언론들이 이민에 대한 이미지를 부정적으로 재현함으로써 반 이민 정서를 자극하기도 했다(김연진, 2007, 175-183). 이런 현상은 독일과 캐나 다에서도 나타난다. 독일 미디어는 이주민을 "침해자"와 같은 부정적 용어로 묘사함 으로써 이주민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형성하였다(Luchtenberg & McLelland, 1998; 정의철, 2013b, 69에서 재인용).

캐나다에서는 "인종주의적 상상력과 이주민에 대한 집단적 문제화"를 통해 이주민 을 캐나다의 경제와 정체성을 위협하는 부정적인 존재로 재현함으로써, '이민'의 위기 를 재생산하기도 했다(Mahtani, 2008; 정의철, 2013b, 69에서 재인용). 이처럼 재 현은 결코 한 사회나 공동체의 구성원 누구에게나 동일하고 중립적이지 않고 그 사 회 내의 권력 관계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며 특정 목적을 위해 의도적으로 왜곡이 행 해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교육과정과 교과서에서 이루어지는 재현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가?

이에 대해 Roberts(2003)는 교육과정과 교과서가 다른 나라나 지역을 왜곡 없이 재 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평평한 종이 위에 세상을 재현하는 것이 불가능하듯 왜곡 없이 세상을 재현할 수 있는 지리교육과정도 존재할 수 없다. 지리가 다루는 범위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방 대하기 때문에 학교 지리교육에서 모든 것을 다룰 수는 없으며, 세계의 모든 국가 들, 모든 주제와 이슈들을 의미 있는 방식으로 학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이종원 옮김, 2016, 111).

그는 지리 교육과정과 교과서가 모든 지역과 내용을 포함하여 서술한다는 것은 있 을 수 없으며, 결국 지역과 내용에 대한 선택과 배제에 의해 지역이나 나라의 이미지 가 왜곡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그는 영국의 중학교 교과서에서 배우는 국가에 대해 분석한 2005년의 연구와 영국의 중학교 세계지리 교과서와 이탈리아 초등학교에서 사용되는 지리부도 를 비교 분석한 2006년의 연구를 통해 증명하고 있다. 영국에서 중학교 수준의 학생 들이 배우는 국가들에 대해 조사한 2005년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영국 학생들이 학 교에서 학습하는 세계에 대한 내용이 "극단적으로 왜곡"되어 있다는 것이다(이종원 옮김, 2016, 112). 또한, 영국 교과서를 이탈리아 지리부도와 비교한 2006년 연구

에서도 재현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영국 교과서들은 "단순화, 과장, 생략을 통해 이탈리아 남부지역에 대한 고정관념"을 형성하거나 이탈리아 남부 지역을 "하나의 등 질 지역으로 일반화함으로써 단순화"시키고 있으며, 이탈리아의 정주 환경과 자연 환 경, 농업, 산업을 서술하면서 부정적인 면이나 문제점을 강조하고 과장하여 서술하고 있다. 그러나 이탈리아 초등학교 지리부도는 정주 환경과, 자연 환경, 농업, 산업의 장점이나 긍정적인 측면을 주로 언급하고 있으며 문제점을 언급하더라도 긍정적인 측면과 함께 균형을 이루어 서술하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다고 보고하고 있다 (이종원 옮김, 2016, 121). 즉, 영국 교과서가 남부 이탈리아에 대한 긍정적인 자료 는 무시하고 생략하고, 그 지역의 문제점을 부각할 수 있는 부정적인 자료는 강조하 여 사용함으로써 이 지역을 "단일하고 부정적인" 지역으로 재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종원 옮김, 2016, 123). 이는 우리가 정전이라고 생각하는 교과서가 다른 지역을 왜곡하고 부정적으로 재현하거나 상대 지역을 타자화하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는 사 실을 말해준다.

이와 관련하여 Roberts(2003)는 "지리학자들은 '다른' 지역과 '다른' 사람들을 기 술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에 다름에 대해 기술할 때 특별한 주의가 필요"

하며, "타자화"는 다른 지역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방해하므로 "타자를 판단하기보다 는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이해할 책임이 있다"고 주장한다(이종원 옮김, 2016, 125-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