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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연구의 배경

5. 소결

통합학자인 하스(Ernst Haas)는 통합이 이루어지기 위한 필요조건들로 첫째, 통합 당사국들 간의 정치엘리트 가치관이 본질적으로 같으면서도 다원적이어야 할 것, 둘째, 정치적인 안정이 이루어져 있어야 할 것, 셋째 경제수준이 비슷하 고 천연자원에 대해 상호보완적 관계이어야 할 것, 넷째 군사적 수준이 서로 비 슷해야 할 것, 다섯째, 지리적으로 가깝고, 통합 상대국이 비슷한 문화를 가지고 있을 것 등을 꼽았다. 여기에 통합 당사국의 정치집단 및 국민들이 우호적이면 통합이 더 잘 이루어지며 개별국가차원에서 복지·사회발전·체제안정의 수준이 높을수록, 강한 군사력 및 경제력이 높을수록, 관료의 능력이 높을수록 통합이 이루어지기 쉽다(Haas, 1958·1964: 허문영·이정우, 2010: 12 재인용)고 분석하였 다. 통합은 서로 다른 두 개 이상의 체제가 하나의 체제로 만들어지는 과정과 상태이고 이러한 통합이 잘 이루어질 수 있는 하스의 필요조건 등을 종합적으 로 고찰해 보면, 남북 통합을 대비하여 우리가 해야 할 과제가 선명해 진다.

우선, 통합이란 용어에는 점진적, 단계적이란 개념이 내포되어 있다. 하나의 체제 상태로 만들어가는 ‘과정’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통합이 잘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서로 다른 두 체제가 경제, 문화, 군사 등 모든 분야에서 비슷해야 한다는 점이다. 남북한은 동일한 언어와 역사, 한민족이란 공동체 의 식을 갖고 있으며 지리적으로도 이웃하고 있어서 통합에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따라서 두 체제가 제(諸) 분야에서 비슷한 수준을 맞추는 작업이 필요하 다. 이러한 차원에서 볼 때, 북한이 경제난을 겪을 때 대북지원을 실시한 것은 인도주의와 동포애적 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통일이란 관점에서도 적절하다. 그 리고 2003년 이후부터 대북지원사업을 긴급구호에서 개발지원사업으로 지원의 성격과 범위를 확대한 것도 통합차원에서 볼 때 타당하다. 남북격차를 줄여나가 는 것이 궁극적으로 남북 통합에 이르는 방향이기 때문이다.

통합이란 좀 더 거시적인 틀에서 대북지원사업의 의의를 평가하자면 첫째, 장기적인 차원에서 통일 비용의 감소이다. 남북한의 경제 격차가 심한 상황에서 북한의 급격한 붕괴로 인한 통일은 재정부담과 사회적 불안을 야기할 수 있기 때문에 북한의 경제회복을 도모하는 것은 미래에 대한 현재의 투자라는 것이다. 둘째, 대북지원이 남북한 간의 상시적인 접촉 창구 역할을 하고 있으며, 정치군 사적 긴장을 억제하는 지렛대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셋째, 북한 주민의 대남 적

대감 완화이다. 북한이 변하려면 북한 주민의 의식이 변해야 하는데, 남북 주민 들간 접촉과 폭을 확대할 수 있는 대북지원사업이 그 매개가 될 수 있다는 것 이다. 넷째, 인도적 지원사업은 평화운동이자 통일로 나아가는 과정이 될 수 있 다는 것이다(최대석, 2009: 383). 끝으로 지속적인 대북지원사업은 남한 주민들 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으로 나타났다. 남북관계가 악화일로를 걸었던 2011년에 실시했던 대국민 여론조사에서 대북정책의 유연성을 원하는 응답이 전년 대비 상승하였는데(26.2%→40.5%) 이로써 대북지원사업이 일반 국민들의 의식 속에 긍정적으로 자리 잡았다고 해석할 수 있겠다.

이러한 대북지원사업의 긍정적인 측면뿐 아니라 문제점에 대해서도 많이 지 적되어 왔다. 첫째, 분배의 투명성 문제이다. 북한 당국은 지원물품은 최대한 확 보하되 주민 접촉은 최소한으로 차단하려는 정책으로 대응하면서 분배와 모니 터링, 현장 접근의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어왔다. 1995년부터 실시한 대북지 원사업의 금액으로 정리하면 정부 2조 3천억원(차관 형태 지원 포함), 민간 부 문 지원 약 7,170억원 등을 합산하여 약 3조원을 상회한다(최대석, 2009: 381). 3 조원이 넘는 막대한 지원에도 불구하고 북한 주민들은 여전히 만성적인 식량부 족과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분배의 투명성 문제를 넘어 대북 지원사업이 북한에 악용될 수 있다는 목소리가 계속되어 왔다. 바로 두 번째, 군사전용의 문제이다. 군과 민의 관계를 엄격하게 분리하기 어려운 북한의 경우 일부 지원품의 전용은 충분히 예상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UNICEF는 인도지원 물품의 대규모 전용이 있었다면 북한의 아동과 산모의 영양실태에 획기적인 개 선이 이뤄지지 못했을 것이라며 지원물품의 전용을 사실상 일축하였다. 셋째, 국민적 공감대 확보의 문제이다. 대북지원에 대한 국민적 합의와 지지를 이끌어 내는 공론화 과정이 부족한 상황에서 정부가 추진함으로서 ‘퍼주기 논쟁’과 함 께 남남갈등을 야기하여 사회적 갈등을 낳았다(최대석, 2009: 383-384).

북한의 영유아는 가장 취약한 집단으로 분류되면서 대북지원사업의 핵심대상 으로 규정되었고, 이에 대한 남한에서 영유아지원사업은 활발히 실시해왔다. 그 결과 북한의 영아 사망률이 1995년-1996년 1,000명당 186.6명에서 2000년대 후반 에는 8.8명으로 눈에 띄게 감소하였으며, 모성사망률도 동 기간 100,000명당 105 명에서 90명으로 감소(이윤진, 2012: 221)하는 등 가시적인 성과를 낳았다.

이에 비해 남북한 영유아 분야의 교류협력은 다른 분야에 비해 아주 미비한 것으로 나타났다. 영유아 분야에서 남한이 북한에게 지원하는 일방향의 대북지

원사업은 그 어느 분야 못지않게 활발하게 이루어졌던 반면, 남한과 북한의 동 등한 입장에서 쌍방의 교류협력사업은 그 성과가 아주 미비하여 대조적인 모습 을 보인다. 2000년대 활발하게 진행되었던 남북 학술행사에서 영유아 분야는 2002년도에 중국 연길에서 1회 개최가 유일하다. 이후의 남북관계가 빠르게 진 척되었다는 점에서 일회성의 행사로 그친 것은 아쉬움이 크다. 주로 초등학생 중심의 남북 어린이 교류행사는 (사)어린이어깨동무가 주도적으로 실시했는데, 2008년까지 총 4차례 방북해서 만남을 가졌으나 남북관계의 특수성으로 인해 20명 이내의 소규모로 실시되었다.

사회통합관점에서도 대북지원사업은 남북통합지수를 높이는 데 많은 기여를 했다. 경제부문에서 대표적인 남북 경제협력사업인 ‘개성공단’이 본격적으로 가 동되는 2005년도를 기점으로 화해협력기의 초기단계인 3단계까지 진입하였다.

사회문화 부문도 1990년대 후반부터 북한과의 교류를 시작하면서 1단계, 2단계, 3단계로 점진적으로 통합수준을 높여나갔다. 그러나 2009년 이후 남북관계가 경 색되면서 후퇴하였다.

이러한 대북지원사업과 남북교류협력사업은 우리정부의 3단계 통일방안을 추 상적으로 논의하는 수준에서 탈피해 실질적으로 실천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둘 수 있으며 이러한 교류협력 과정을 통해 하스(Haas)가 주장한 통합의 필요조건 을 하나 둘씩 갖추어 나간다는 점에서 지속적으로 발전시켜야 하겠다.

한편, 독일의 사례를 고찰하면서 몇 가지 시사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정치적 으로 흡수통일을 하면서 동독은 서독의 제도를 받아들 수밖에 없었다. 이는 서 독은 통일 후 크게 달라진 점이 없으나, 동독은 정반대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통일 전에는 유아원 이용은 무상이었지만, 통일 후에는 높은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졌다. 동독의 유아원과 유치원은 통일 후 급격히 감소하였는 데, 국가 주도 하에서 운영되었던 기관들이 구서독의 ‘아동청소년복지법’에 근거 하여 운영하게 되면서 국가 책임이 각 주나 지자체로 이관되면서, 재정력이 약 한 주나 지자체는 이를 감당하지 못해, 결국 폐원하는 기관들이 양산되었다.

육아지원기관의 폐원은 구동독 교사들의 실업으로 이어졌고, 불안한 젊은 세 대들은 결혼을 기피하고 출산을 하지 않음으로서 출산율이 감소하고, 이는 다시 육아지원기관의 수요를 낮추는 기제로 작용하여 문을 닫는 기관이 속출하는 등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론 서독은 동독의 교육·보육제도를 일방 적으로 폐기하지 않고 서독보다 앞서 발달된 영아보육을 수용해 나갔다(이윤진

외, 2011: 151).

북한의 교육·보육제도는 구동독과 유사한 측면이 많다. 국가 주도로 육아지원 기관을 운영했으며 일찍이 영아 보육을 위한 기관이 발달된 점, 무엇보다도 사 회주의 교육학을 교육원리로 삼은 교육이념과 커리큘럼 구성이 공통점이다. 반 면, 남한은 통일전의 서독과는 달리, 2000년대 중반 이후부터 영아보육이 발달 했으며 무상보육·교육으로 확대되는 추세이어서 수요자의 육아지원기관 이용 부담이 감소하고 있다. 남한은 육아지원기관의 설립주체가 다양해서 어느 기관 을 이용하느냐에 따라 부담해야 할 비용의 차이는 있으나 부모의 선택권 측면 에서는 현 제도가 유용하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육아지원분야에서 통일 전의 동서독과 남북한은 유사점과 다른 점이 공존하고 있다. 통일이 어떠한 방식으로 되느냐에 따라 풀어가야 할 방법이 달 라질 수는 있겠지만, 통일 이전에 통일을 대비하여 육아지원정책을 어떻게 가져 갈 것인가에 대해 남북 상호 간에 지속적인 협의과정이 필요하다. 사전에 이러

이처럼 육아지원분야에서 통일 전의 동서독과 남북한은 유사점과 다른 점이 공존하고 있다. 통일이 어떠한 방식으로 되느냐에 따라 풀어가야 할 방법이 달 라질 수는 있겠지만, 통일 이전에 통일을 대비하여 육아지원정책을 어떻게 가져 갈 것인가에 대해 남북 상호 간에 지속적인 협의과정이 필요하다. 사전에 이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