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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부정과 탈시간성의 모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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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수의 초기시에서 존재 탐구의 노력과 더불어 주목해야 할 것은 역사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다. 이는 역사적 현재에 대한 시인의 반응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82) 자아와 존재의 관계가 공허한 계시에 불과하다는 점은 그의 대표작인 「꽃」에서도 확인할 수 있 다. 명명작업이란 사물에 생명을 불어넣는 일이며, 존재에 대한 명명자의 지배조건을 확립하는 행위 이다.(월터 J. 옹, 『구술문화와 문자문화』, 이기우·임명진 옮김, 문예출판사, 1995, 54~55쪽 참조) 따라서 ‘꽃’이라고 부르는 순간 꽃은 자아에게 생명을 지닌 존재, 즉 개념으로서의 존재가 아니라 생 명을 지닌 개개의 대상으로서 현시되어야 한다. 그런데 자아와 사물 간의 관계는 “눈짓”으로 표현되 고 있는데, 이때 “눈짓”은 이들의 관계가 구체적으로 명시되지 않으며 이름을 부여함으로써는 사물 의 실재를 드러낼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눈짓’이란 인간의 언어로는 구현될 수 없는 경지로, 이 는 본질적으로 신적인 관계에서만이 해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신적인 관계란, 김춘수의 다른 작품 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자아와 사물의 이원화된 관계에서는 도달할 수 없으며, 소망적인 환상일 따름 인 것이다. 고정희가 「꽃」에서는 감상적인 의미부여 외에는 꽃으로의 환원된 실체는 잡히지 않는 다고 말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정희, 「김춘수의 무의미론 소고」, 『김춘수 연구』, 학문사, 1982, 376쪽, 이승훈, 「존재의 기호학」, 『문학사상』, 1984. 8, 92~96쪽 참조)

간과하여서는 안 된다. 또한 시인의 역사체험은 존재에 대한 형이상학적 탐구를 구 체적인 현실체험으로 전환하는 계기로서, 이는 60년대에 이르러 ‘처용단장’이라는 자 족적 세계를 구축하게 되는 적극적인 원인이 되기도 한다.

1960년을 전후하여 나라 밖은 냉전체제에 따른 두 진영의 힘겨룸이 치열했으며, 나라 안에서도 전쟁이 남긴 이데올로기의 암투와 대립이 팽배하였다. 하지만 김춘수 는 이와 같은 안팎의 사정에 ‘무관심’과 ‘관조’의 태도를 보여주는데, 이는 시인이 역 사를 ‘폭력’으로 규정하면서 인간의 자존적 가치와 그것과의 충돌을 불가피한 것으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김춘수의 작품 중 전쟁을 소재로 한 시들에는 역사에 대한 그의 부정적 사유가 잘 나타나 있다. 하지만 이 작품들은 그 실상이나 비참함 등의 폭로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그저 전쟁의 포화가 휩쓸고 간 자리에 남겨진 이들의 균열된 의식의 편린들 만 관찰될 뿐이다. 이는 시인이 전쟁을 개인 대 전체의 관계 속에서 후자가 전자에 게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희생으로 파악했기 때문이다. 다음 작품은 김춘수의 전쟁을 소재로 한 작품들 가운데 예외적으로 현실적인 맥락에서 전쟁의 허구성에 접근해가 려는 태도가 엿보인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하지만 여기에서도 시인의 궁극적인 관심은 개별적 인간 대 전체의 관계이다.

인천에서 아가야,

웃음짓는 네 미간을 바라고

이국의 한 아저씨는 방아쇠를 당겼다.

어느 시인은

한 마리의 나비가 나는 데에도 전 우주가 필요하다고 하였지만, 아가야,

네가 저승으로 나는 데에는

이국 아저씨의 한 발의 총알만으로 충분하였다 가서

라케다이몬의 형제들에 전하여 다오.

천구백오십육년 가을,

부다페스트에서 죽어 간 그 소녀의 이야기를 전하여 다오.

불란서의 폭격기가

사키에·시디·유세프의 초등학교를 폭격한 이야기를 전하여 다오.

사과나무에 열린 사과알처럼 귀여운 어린이들이

일순의 화염과 함께 상공으로 튄 그 이야기를 전하여 다오.

가슴의 뜨거운 눈물 외에

무엇 하나 가진 것이 없는 우리는

죽어 가는 어린이들의 눈을 감겨 줄 꽃 한 송이 비둘기 한 마리를 날리지 못했다는

그 이야기를 전하여 다오.

가서

라케다이몬의 형제들에 전하여 다오.

그날 우리가 든 조기弔旗가 초연에 덮인 연회색의 하늘에서 다만 오열하더라는 이야기를 전하여 다오.

-「그 이야기를……」전문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을 연상시키기도 하는 위의 작품은, 극적인 대 비효과를 통하여 죄 없는 죽음의 억울함을 부각시키고 한다는 점에서 강한 인상을 준다. “나비”와 “아가”의 대비가 그러한데, “나비”의 탄생이 “전 우주”의 힘을 필요로 하는 데 반해 “아가”는 단지 “이국 아저씨의 한 발의 총알만으로”도 죽음으로 떨어진 다. ‘나비’가 생명의 신비와 존엄성을 의미한다면, ‘아가’는 한낱 미물보다도 못한 존

재에 불과하다. “어느 시인”은 보잘 것 없는 생물에게조차 생의 우주적 의의를 부여 하였지만, 현실을 살아가는 나약한 인간에게 그것은 허용되지 않는 것이다.

한편 나비의 ‘생’과 아가의 ‘죽음’의 대비는 비단 둘만의 대비에 그치지지 않고 ‘우 리 모두’에게로 확대된다. ‘아가’는 매우 가까운 대상을 사랑스럽게 부를 때 쓰는 호 칭으로, 이처럼 친숙하고 밀접한 대상인 “아가”의 죽음 앞에서 “우리”는 “꽃 한 송이/

비둘기 한 마리를 날리지 못”한 채 고작 “연회색의 하늘”에 “조기弔旗”만을 드리울 따 름이다. 생의 엄숙함을 얻지 못하기는 “우리” 역시 마찬가지인 셈이다. 즉 전쟁으로 삶의 극단으로 내몰린 것은 비단 죽어간 어린이들만이 아니라 ‘아가’의 죽음 앞에서 마음 놓고 슬퍼할 수도 없는 인간 모두인 것이다.

시인이 무고하게 죽어간 아이들에게 호소할 데 없는 ‘한 소녀의 죽음’과 그로 인해 비참해진 ‘우리 모두의 이야기’를 “라케다이몬의 형제들”에게 전해달라고 부탁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이다. ‘라케다이몬’은 고대 스파르타의 다른 이름으로, 스파르타 제국은 개인의 안일보다는 전체의 대의, 국가의 개인에 대한 엄격한 통제와 관리 등 을 표방했던 도시 국가이다. 그렇다면 ‘라케다이몬의 형제들’이란 고대 국가의 전체 주의 이념을 이어받은, 현대적 의미에서 ‘개인’의 행복과는 상관없이 ‘전체’만을 강조 하고 이성적 합리와 명분만을 중시하는 현대의 모든 전쟁 수행자들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죽어간 아이들이 그들에게 전해야 할 내용이란 전체가 내세우는 대의와 명분, 정의라는 핑계 아래 자행되는 전쟁의 허구성과 폭력성이다. 즉 시인은 전체와 국가의 이익이라는 목적으로 수행되는 전쟁이 과연 그 국가의 구성원인 개인 들에게 어떠한 일상의 안위와 평화를 가져다주었는지를 따져 묻고자 하는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전쟁의 발생 원인은 정의 실현이나 진리 구현과 같은 거창한 이념과 는 거리가 멀다. 전쟁은 정의와 진리로 위장한 이데올로기의 충돌에 다름 아니며, 그 들이 내세우는 다수와 전체의 공리 및 평화 실현이라는 명목은 개인의 일상적 안위 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오히려 희생을 정당화할 뿐이다. 그런데 김춘수가 전쟁 체험 을 이처럼 철저히 전체 대 개인의 문제로 국한시키는 데에는 일제 말 식민지 청년으 로서 그가 겪었던 경험이 자리 잡고 있다. 당시의 체험은 개인에게 가해오는 억압을 역사의 ‘폭력’으로 규정하게 되는 동인으로 작용한다.

헌병대와 경찰서 고등계의 지휘 하에서 몇 달의 영어 생활을 하게 되었지만 나 는 참으로 억울했다. (……) 누구에게 이 억울함을 호소할 수 있었던가? 동포들도 외면하고 면 안 되는 벗들도 그저 그러고만 있었다. 일제 말 이런 바람이 한 번 스쳐간 뒤로 한참 동안 나는 내 자신을 가누지 못하고 있었다. 20대의 말에 6·25 가 왔지만, 끝없이 쫓겨다닌 나는 왜 내가 그래야만 했는지 명분을 찾아낼 수가 없었다. 폭력은 나에게 그런 모양으로 왔다. 당한 사람은 실신할 정도로 억울하지 만, 폭력은 그 자체 어떤 명분을 세워 놓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 나는 이때 역사의 상대성과 역사가 쓰고 있는 탈이 이데올로기라는 것을 똑똑히 본 듯했다.

역사가 절대적이라고, 그리고 그것은 탈이 아니라 진짜 자기 자신의 얼굴인 것처 럼(자기의 진짜 얼굴이 있는 것처럼) 억지떼를 쓰는 그 꼴이 내 눈에는 바로 폭 력 그것으로 비쳤다. 그렇다. 한동안 나에게 있어 역사는 그대로 폭력이었다. 역 사의 이름으로 지금 짓밟히고 있는 것은 누구냐?83)

나는 역사의 의지라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역사는 선한 의지도 가지고 있을 는지는 모르나 나에게는 악한 의지만을 보여 주었다. 나는 역사를 악으로 보게 되 고 그 악이 어디서 나오게 되었는가를 생각하게 되자 이데올로기를 연상하게 되 고, 그 연상대(連想帶)는 마침내 폭력으로 이어져 갔다. 나는 폭력·이데올로기·역 사의 삼각관계를 도식화하게 되고, 차츰 역사 허무주의로, 드디어는 역사 그것을 부정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역사는 누군가가 그 자신의 필요에 의해서 만들 어내는 것이고, 그것은 또한 남을 겁주기 위한 수단으로 쓰인다는 외곬의 결론에 부닥치게 되었다.84)

인용한 글들은 20년에 가까운 시간적 거리를 두고 발표되었지만, 모두 시인의 역 사에 대한 강한 혐오감과 부정적 시각을 잘 드러내준다. 시인은 “역사의 이름”으로 가해지는 폭력과 압력은 어떠한 경우에도 정당성을 지니지 못하며, 역사는 이데올로 기의 탈을 쓴 채 “악한 의지”만을 보여준다고 판단한다. 역사는 언제나 확실한 명분 아래 폭력을 자행되지만, 당하는 입장에서 볼 때 그것은 그저 억울한 희생일 뿐이다.

83) 김춘수, 「처용, 그 끝없는 변용」, 『김춘수 시론전집Ⅱ』, 현대문학, 2004, 148~149쪽.

84) 김춘수, 「장편 연작시<處容斷章> 시말서」, 『처용단장』, 미학사, 1991, 136~137쪽.

더군다나 문제는 그러한 역사가 휘두르는 폭력에 의한 개인적 희생이 전혀 공유되 거나 보상받지 못한다는 점이다. “누구에게”도 그 “억울함을 호소할 수” 없었다 구절 은 자신이 “누군가가”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 낸 역사의 일방적인 피해자일 뿐이라 는 사실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역사는 언제나 그 “누군가”의 것이며, ‘상대적인 것’

인 셈이다. 그러므로 역사 안에서의 개인의 삶이란 무력할 수밖에 없으며, 참된 인간 가치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역사로부터 스스로를 제외시켜 나가야 한다. 김춘수가 이

‘우리’의 역사를 배제하고 철저히 ‘나’만의 세계를 고집하면서 “완전을 꿈꾸고 영원을 꿈꾸고, 불완전과 역사를 무시”85)하는 것만이 자신이 구원될 수 있는 길이라고 말하 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86)

따라서 시인은 개인의 삶을 억압하고 파괴함으로써 자신을 유지하고 완성시켜나가 는 역사와의 충돌과 대립은 불가피하다고 판단한다.87) 가장 기본적인 정신적 자유와 권리를 억압하는 역사는 부당한 것이며, 그 안에서는 자존적 의미 역시 확인할 수 없다. 자신의 절대 가치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역사로부터의 격리는 필연적이다. 역사 는 무(無)이며, 비존재이며, 허황된 위대성이어서 진정한 실존은 역사 속에서 실현될 수 없는 것이다.88) 이처럼 역사를 자기 존재의 본질적인 문제의식 안에 편입시키기 를 거부하는 태도는 역사에 대한 ‘무관심’만을 낳을 뿐이다. 이는 이후 시인이 역사 를 추상화시키면서 그것과 무관한 자신만의 세계를 모색해 나가는 이유가 된다. 다 음 작품은 김춘수의 전쟁을 소재로 한 작품들 가운데 시인의 전쟁에 대한 태도를 가 장 잘 드러내주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85) 김춘수, 「도피의 두 유형」, 『김춘수 시론전집Ⅰ』, 현대문학, 2004, 493쪽.

86) 시인의 이러한 판단은 어느 정도 현실에 적응하지 못한 채 자기 고통을 끌어안고 살아왔던 그의 행 적과도 관련이 깊다. 김춘수의 자전적 소설인 『꽃과 여우』에 따르면, 시인은 스스로를 소외당하는 국외자로 간주하는 측면이 강하다. 특히 시인은 자신이 오랫동안 지방대학에서 시간 강사 노릇을 해 온 것도 식민시절 체험이 외면당해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87) 김춘수의 역사에 대한 규정은 어느 정도 베르쟈예프의 영향 아래 성립된 것으로 보인다. 그는 동경 유학시절 베르쟈예프의 책을 읽고 그의 사상과 역사의식에 동감하였음을 술회한 바 있다.(『꽃과 여 우』) 베르쟈예프(N. Berdyaev)에 따르면, 역사는 인간을 유혹하고 노예화하며, 나아가 신격화되며, 신성시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므로 정신적 자유를 갈구하는 인간은 그것과 불가피하게 충돌할 수밖 에 없다.(N. 베르쟈예프『노예냐 자유냐』, 이신 역, 인간, 1979, 320~322쪽 참조)

88) N. 베르쟈예프, 위의 책, 3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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