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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재의식과 새로운 시간의 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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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유년의 부재와 과거의 결핍

바슐라르는 “세계의 위대함의 뿌리는 유년 시절에 뻗쳐 있다. 세계는 흔히 유년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는 넋의 혁명으로부터 시작된다”110)고 유년으로서의 몽상이 갖

109) 그동안 기존의 논의들은 유년 혹은 과거 지향적인 태도를 김종삼 시의 시간의식의 주된 특징으로 지적해왔다. 물론 김종삼 시에서 유년이 한때의 행복한 기억으로 표현되기는 하지만, 그곳은 돌아갈 수 없는 즉 다시 오지 않는 시절이라는 점에서 ‘부재’이다. 다음의 분석을 통해서도 드러나겠지만, 이 런 점에서 기존 논의들은 시의 표면상 엿보이는 모습에만 집착했을 뿐, 시인의 말하고자 하는 의도 에는 다가가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는 의미를 밝힌 바 있다. 유년 시절은 대개 먼 과거의 개인적 유토피아로 기억된다.

특히 편안함과 평화로움은 유년 세계가 갖는 가장 보편적인 특성이다. 따라서 유년 시절로의 회상은 현존의 소외성을 일깨우면서 그것을 치유하는 의식의 처방으로 여 겨진다. 그리고 유년 세계에서만큼은 모든 ‘소외의 지양’이 가능하리라 기대된다. 요 컨대 순수한 동심이 유지되는 유년 시절을 회상하고 상상적으로 복원시키고자 하는 것은 일종의 회귀 본능으로, 잃어버린 자기 정체성과 동일성을 회복하기 위해 인간 이 취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 중 하나이다. 특히 동심은 고향에 머물고, 고향은 동심의 회상 속에 존재한다. 유년을 ‘근원적 고향’이나 ‘원초적 과거’로 간주하는 까 닭은 여기에 있다.

그런데 유년 시절이란 대개 회상을 통해 작품화되는 것으로, 그 유년은 그 시간에 속해 있는 자아의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현재 자아의 것이라 할 수 있다. 따 라서 유년의 세계를 상상적으로 회복하고자 할 때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시인 의 현재이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이 현재의 자아가 세계상실이라는 커다란 재난에 직면해 있다는 것이다. 현재 자아에 의해 재구성된 김종삼의 유년의 세계가 ‘쓸쓸한 동화’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은 이러한 상실의식과 관계가 깊다.

옛 이야기가 고리타분하게 엮어지는 어렸을 제 이야기이다. 그맘 때만 되며는 까닭이라곤 없이 재미롭지도 못했고 죽고 싶기만 하였다.

그 즈음에는 인간들에게는 염치라곤 없이 보이리만큼 너무 지나치게 아 름다움이 풍요하였던 자연을 가까이 하면 할수록 더욱 그러하였다.

고양이란 놈은 고양이대로 쥐새끼란 놈은 쥐새끼대로 웅크러져 있었고 강아지란 놈은 강아지대로 밤 늦게까지 나를 따라 뛰어 놀았다.

110) G. 바슐라르, 『몽상의 시학』, 김현 옮김, 기린원, 1989, 117쪽.

어렴풋이 어두워지면 달이 뜨는 수수대로 만든 바주 울타리 너머에는

달이 오르고 낯익은 기침과 침뱉는 소리도 울타리 사이를 그때면 간다.

풍식이란 놈의 하모니카는 귀에 못이 배기도록 매일같이 싫어지도록 들 리어 오곤 했다.

자라나서 알고 본즉 <스와니江의 노래>였다.

선율은 하늘 아래 저 편에 만들어지는 능선 쪽으로 날아 갔고.

내 할머니가 앉아 계시던 밭 이랑과 나와 다른 사람들과의 먼 거리를 만들어 주기도 하였다.

모기쑥 태우던 내음이 흩어지는 무렵 이면 용당패라고 하였던 해변가에서

들리어 오는 오래 묵었다는 돌미륵이 울면 더욱 그러하였다.

자라나서 알고 본즉 바닷가에서 가끔 들리어 오곤 하였던 고동소리를 착각하였던 것이었다.

―이때부터 세상을 가는 첫 출발이 되었음을 몰랐다.

-「쑥내음 속의 동화童話」전문

1연에서 시인은 이 작품이 유년 시절을 회상하면서 쓴 것임을 밝히고 있는데, 주 목할 만한 것은 시 속에 성숙한 현재 자아의 목소리가 섞여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1연과 2연, 그리고 마지막 연은 현재의 자아가 유년 시절을 회상하고 난 뒤의 감상 을 이야기한 것으로 보여진다. “죽고 싶기만 하였다”, “인간들에겐 염치라곤 없어 보 이리만큼”은 일반적으로 유년의 자아가 떠올리기 어려운 내용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연의 분위기 역시 새로운 곳으로 떠나는 소년들의 희망이나 활기찬 기운과는 거리가 멀다. 이렇게 볼 때, 깊은 상실감과 고독 속에 놓여 있는 시인의 현재가 과거에까지 짙은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 것으로 이해되어진다.

한편 이 시에서 가장 주목되는 부분은 3연에서 7연까지 형상화된 유년의 이미지

이다. 3연과 4연에는 고즈넉한 외부 풍경이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고, 풍경을 감싸고 도는 정적인 분위기는 ‘선율’에 의해 더욱 고조된다. 그런데 이 “스와니강의 노래”를 연주하는 하모니카 ‘선율’은 알 수 없는 애잔함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하늘 아래 저편 능선 쪽으로” 날아가면서 “할머니가 앉아 계시던 밭이랑과 나”, 그리고 다른 사 람들의 거리를 점점 멀리 떨어뜨리고 있다. 아스라이 사라지는 그 아득함은 공간적 인 거리감으로 전이되면서 사람과 사람사이, 자연과 사람 사이에 닿을 수 없는 깊이 를 만든다. 결국 선율의 흐름 속에 남는 것은 더 이상 가까워질 수 없음으로 인한 깊은 고립감과 공허의 심연이다.

특히 신비감마저 불러일으키는 ‘돌미륵의 울음소리’가 들리어 오는 곳이 “용당패”

라는 사실은 「쑥내음의 동화」가 한 편의 ‘쓸쓸한 동화’로 귀결될 수밖에 없음을 말 해준다. 시인은 돌미륵이 울던 “용당패”가 아이를 죽여야 부모가 살 수 있는 비정한

‘용당포’(「민간인」)로 바뀌는 곳이 이 세계이며, 비정한 “이 세상”으로의 출발이 이 때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김종삼의 시에는 유년 시절의 체험을 형상화한 작품들이 여러 편 있다.

예기치 않았던 실수로 동생을 잃을 뻔했던 일(「운동장」), 어딘지 모르고 들어가서 놀았던 곳이 ‘안치실’이었다는 기억(「아데라이데」), 혹은 보모를 따라 갔던 길에서 보았던 팽가지를 쓴 여수(女囚)들에 대한 깊은 인상(「여수」) 등 모두 어린 나이였 음에도 불구하고 막연하게 느꼈던 서글픔이 이 속에 깊이 배어 있다. 다른 많은 체 험 중에 삶의 비애가 느껴지는 것들을 기억하고 그것을 재구성한다는 것은 시인의 현재적 자아가 처해 있는 상황을 반추하게 한다.

그러나 시인이 유년 시절을 ‘쓸쓸하게’만 회상하고자 한 것은 아니다. 다음 시

「스와니강이랑 요단강이랑」에서는 하얀 ‘눈’을 통해 아름다운 동심을 구현하고자 했던 시인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이 또한 무위로 끝나고 있음이 드러난다.

그해엔 눈이 많이 나리었다. 나이 어린 소년은 초가집에서 살고 있었다.

스와니江이랑 요단江이랑 어디메 있다는

이야길 들은 적이 있었다.

눈이 많이 나려 쌓이었다.

바람이 일면 심심하여지면 먼 고장만을 생각하게 되었던 눈더미 눈더미 앞으로 한 사람이 그림처럼 앞질러 갔다.

-「스와니강이랑 요단강이랑」전문

인용된 시는 ‘눈’, ‘어린 소년’, ‘스와니강과 요단강’, ‘눈더미’의 이미지가 나열되면 서 동심의 순수함을 환기시키고 있다. 하얀 ‘눈’에 의해 환기된 순수의 이미지는 ‘눈 더미’에 의해 가장 고조되었다가 마지막 행에 등장하는 “한 사람”으로 인해 갑자기

‘낯설게’ 된다. 시의 전체적인 흐름과 상관없이 등장한 “한 사람”은 이내 “그림처럼 앞질러” 시를 마무리 해버린다. 그런 까닭에 이 시의 마지막 행은 그 의미 파악이 쉽지 않다. 하지만 전체적인 맥락에서 볼 때 “나이 어린/ 소년”이었던 시적 자아가 어느덧 어른이 되고 말았음을, 그리고 “스와니강이랑 요단강”을 상상하던 동심으로부 터 멀리 떠나오고 말았음을 시각적으로 이미지화 한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낯설게 하기’는 일반적으로 자동화된 일상을 탈자동화시킴으로써 시의 대상을 새 로운 인식 영역 속으로 이동시키는 것이다.111) 따라서 이 시의 마지막 행은 순수했 던 시절로 돌아갈 수 없다는 자각과 어른이 되고 말았다는 새삼스런 깨달음을 강하 게 환기시킨다. 특히 이 시에서 ‘눈’의 이미지는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데, 5행의

‘눈’은 “많이 나려 쌓이었다”는 사실로 인해 과거와 현재를 차단시키면서 어른이 된 자아로부터 동심의 시절을 유리시키고 있으며, 7행에서 두 번 반복되는 “눈더미”는 시간의 흐름을 시각화시킴과 동시에 차단된 이미지로서의 ‘눈’을 더욱 강조한다.

한편 이 ‘눈더미’는 유년의 자아로 하여금 “어디메 있다”는 “스와니강과 요단강”으 로 되돌아갈 수 없도록 차단하는 이미지이다. 현재적 자아는 이 ‘눈더미’의 이미지를 통해 유년 시절에조차 동경하는 곳에 갈 수 없었음을 말하고 있다. 이는 현재의 자 아가 과거조차 결핍의 공간으로 회상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시인은 유년의 회상을 통해 과거 또한 이미 결핍의 상태에 있었으며, 그러한 과거가 현재를 결정하였음을

111) V. 어얼리치, 『러시아 형식주의』, 박거용 옮김, 문학과지성사, 1983, 226쪽 참조.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미래까지 앞질러 보고만 자의 간접적인 자기 고백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순수함의 원천으로 재생된 동심의 세계는 ‘그림처럼’ 앞질러 온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음을 재차 깨닫게 할 뿐이다. 그리고 현재의 결핍은 이미 저 먼 과거의 유년부터 시작되었음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2) 인간의 부재와 현재의 결핍

이러한 시인의 부재의식은 ‘인간’은 총체적으로 부재할 수밖에 없다는 의식으로 심 화된다. 유년의 부재가 과거의 결핍 상태를 보여주는 것이라면, ‘인간’의 부재는 현 재의 결핍 상태를 보여준다. 김종삼의 시에서 세계상실의 상황에 직면한 인간 존재 의 모습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하나는 ‘비애’의 상태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가난한 이들의 형상이고, 다른 하나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채 존재의 자취만 을 남기고 있는 부재의 형상이다. 다음 시는 후자의 경우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 이다.

학교와 그 사이 새들의 나래와 깊은 숲속으로 스며 든 푸름의

호수와

학교와 그 사이에

石家 하나 鍾閣 하나

거기에 너는 있음직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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