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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적 이미지 체계로 변환

II. 시 텍스트의 창작과정

2) 시적 이미지 체계로 변환

시적 이미지 체계는 기표와 관련을 맺고 있는 백과사전적 명세사항에 의해 새 롭게 만들어진 이미지다. 이는 정서의 작용으로 사회적이고 사전적인 <기표/기의>

의 관계를 파괴하고 새로운 <기표/기의>의 시적 체계로서 통사적으로 유의미한 새 로운 이미지와 그 체계를 말한다.

일상적으로 정보의 소통에는 개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거기에는 대상이 갖는 이미지 즉 영상도 들어 있다. 영상은 기본적으로 심리과정에서 표상되는 이미지라 고 할 수 있다. 이 이미지는 기호의 속성이기도 하다.

이미지도 개념과 마찬가지로 기표에 들어 있는 것이 아니며 기표를 매개로 화 자와 청자가 각각 부여하는 것이다. 사전적 체계에서 기표를 매개로 이미지 정보 를 공유할 수 있는 것은 이 이미지 정보가 사회적 용례 수준에서 화자(話者)와 청 자 둘 다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호론적 입장에서 보면 언어는 개념, 이미지, 기표 사이의 상관성을 지닌 것이 라 할 수 있다. 텍스트를 읽는 독자가 만나는 것은 기표의 나열이다. 이 기표의 나열을 통해 개념과 이미지 사이의 관계를 설정하게 되는 것이다.

일반 텍스트의 경우 이 관계는 매우 관습적이고 통합적인 성격이 강해서 독자 가 수용하는 데 별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왜냐하면 기표에 따른 이미지를 독자 가 머리 속에 저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이미지 정보가 사전적 체계의 범주 내에 있음을 말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시가 사전적 체계를 벗어나 시적 체계로 확장된다는 것은 개념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이미지도 사전적 체계를 벗어나 시적 체계로 확장될 수 있다. 이미 지 정보도 크게는 하나의 의미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에 이미지 정보를 따로 말하 는 것이다. 언어를 사용하는 데 개념을 드러내기 위해 언어를 사용하는 경우도 존 재하지만 형태나 이미지를 나타내기 위해서도 언어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이미지나 형태를 나타내기 위해 언어를 사용하는 경우에도 그것이 단일한 기표 하나를 나타내기 위해 사용되는 경우를 제외하고 그 속에는 언어의 특징으로서 일 정한 체계를 유지해야 한다. 그러므로 시적 이미지 체계에 들어 있는 이미지도 일 반적 언어로 변환이 가능하다.

따라서 백과사전적 이미지 체계에서 이미지란 시 텍스트 상에 진술된 기표의 이미지와 관련을 맺고 있는 사전적이며 사회적 용례에 따른 모든 이미지정보를 말 하는 것이며 시적 이미지 체계는 백과사전적 이미지에 의해 새롭게 함의되는 이미 지 중 시의 통사구조와 관련을 맺고 있는 유의미한 이미지 정보들을 가리킨다. 이 는 다음 작품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다음은 이상의 시 <꽃나무>이다.

벌판한복판에꽃나무하나가있소.近處에는꽃나무가하나도없소.꽃나무 는제가생각하는꽃나무를熱心으로생각하는것처럼熱心으로꽃을피워가지 고섰소.꽃나무는제가생각하는꽃나무에게갈수없소.나는막달아났소.한꽃 나무를爲하여그러는것처럼나는참그런이상스러운흉내를내었소.

― 이상의 <꾳나무> 전문

이 작품은 띄어쓰기가 무시되어 있어 우선 독자들이 읽기에 불편한 작품이다.

그뿐만 아니라 시적 개념 체계를 통해서도 작품의 의미파악이 되지 않는 작품이 다. 그러나 이 작품을 시적 이미지 체계로 연결한다면 그 의미를 매우 쉽게 파악 할 수 있게 된다.

이를 시에 진술된 나무에 적용시키면 수많은 형태의 그림을 보게 될 것이다.

“벌판 한복판에 꽃나무가 하나 있소”라는 표현은 풀이 무성하게 자란 벌판 또는

누렇게 시든 벌판, 흰 눈으로 뒤덮인 벌판 등 여러 이미지 정보를 검색할 수 있게 한다. 또한 ‘꽃나무’라는 기표를 통해 나무와 관련된 수많은 이미지 정보를 검색하 게 될 것이다. ‘벌판 한복판에 꽃나무가 하나 있소’라는 표현에서 ‘나무’에 해당하 는 이미지정보를 나열해 보면 다음과 같다.

① ② ③ ④ ⑤ ⑥

위 그림에서 ①은 시 텍스트에 나타난 기표인 나무를 사전적 이미지 정보로 바 꾸어 놓은 것이다. ②∼⑤는 나무와 관련된 이미지의 명세정보라 할 수 있다. 명 세정보는 개념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개념에 포함되어 있는 의미들 도 그에 따른 이미지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미지에도 명세정보가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⑥은 ②∼⑤의 명세정보를 바탕으로 새롭게 구성된 시적 이미지 정보다.

‘꽃나무’라는 표현은 시적 정보 체계의 입장에서 보면 남근의 이미지 정보임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 나타나는 꽃나무는 한 그루가 아니라 두 그 루이다. 그리고 꽃나무의 다양한 명세사항에서 새로운 시적 정보를 찾아보면 거기 에는 여성의 성기도 드러난다. 따라서 이 작품에 나타난 꽃나무는 남녀의 성기를 형태적으로 변용시킨 것85)이다.

이상의 시 오감도 <시제 3호>에서도 이러한 시적 이미지 체계로 나아가고 있음

85) 송문석, 거리에 따른 화자와 대상 연구 , (제주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2000), p.53.

을 보여준다.

싸흠하는사람은즉싸흠하지아니하든사람이고또싸흠하는사람은싸흠 하지아니하는사람이엇기도하니까싸흠하는사람이싸흠하는구경을하고 십거든싸흠하지아니하든사람이싸흠하는것을구경하든지싸흠하지아니 하는사람이싸흠하는구경을하든지싸흠하지아니하든사람이나싸흠하지 아니하는사람이싸흠하지아니하는것을구경하든지하얏으면그만이다.

― 이상의 오감도 <시제3호> 전문

독자가 이 작품의 의미를 수용하기 위해서는 시적 이미지 체계를 검색해야 한 다. 왜냐하면 백과사전적 기의 체계로는 일관된 의미의 흐름을 발견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시적 개념이나 기표에서도 일관된 계열성을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 다. 그러므로 싸움하는 사람과 관련된 시적 이미지 정보를 검색해보면 다음과 같 이 나타난다.

① ② ③

④ ⑤

그림 ①은 ‘싸흠하는 사람’의 이미지다. 이 ‘싸흠하는 사람’의 명세정보를 검색해 보면 ②∼④ 이미지들이 나타난다. 물론 이 검색의 결과는 두 명 또는 다수의 사 람이 있는 서로 마주 보고 있거나 또는 엉켜 있거나 하는 이미지일 수 있다. 두

명은 남․남일 수도 있고 여․여일 수도 있으며 남․녀의 이미지일 수 도 있다.

남․남이거나 여․여인 경우는 싸움의 의미는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경우 가 대부분이지만 남․녀의 싸움은 이해관계의 의미를 벗어나면서 성행위의 이미지 로 드러나게 된다.86) ⑤는 바로 이런 성행위의 이미지를 나타내고 있다. 즉 ⑤는 백과사전적 명세사항에 의해 새롭게 만들어진 시적 이미지 정보인 것이다. 따라서

‘싸흠하는 사람’의 의미를 성행위로 놓고 보면 이 작품의 진술하고 있는 내용은 일 반적 텍스트의 모습으로 그대로 드러남을 볼 수 있다.

이는 김광림의 「丘陵」에서도 나타난다.

봄.

여름.

가을.

이제 겨울도 참아 살아야 할 눈 오는 領地.

포근한 不毛.

잠들고 잠들고 싶은 SILK HAT.

-김광림의 「구릉」에서

여기서 SILK HAT은 영국 신사들이 쓰는 모자라는 개념을 지니고 있다. 하지 만 이는 사전적 개념으로 시의 전체적인 흐름에 전혀 맞지 않는다. 왜냐하면 SILK HAT라는 기표는 시적 개념으로 연결된 것이 아니라 시적 이미지로 연결 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SILK HAT의 시적 이미지정보를 파악해 보면 이는

‘묘비’ 또는 ‘무덤’이라는 정보가 나타난다.

그렇다고 모든 텍스트들이 시적 이미지 체계를 활용하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많은 시들은 사전적 이미지 체계를 사용한다. 특히 이미지가 중시되는 이미지즘 계열의 시들에서 이런 점이 뚜렷이 드러난다.

86) 송문석, 앞의 책, p.55.

향료를 뿌린 듯 곱다란 노을 위에 전신주 하나하나 기울어지고 머언 고가선 위에 밤이 켜진다 구름은

보랏빛 색지 위에 마구칠한 한 다발 장미 목장의 깃발도 능금나무도 부을면 꺼질 듯이 외로운 들길

― 김광균의 「뎃상」 전문

이 작품은 이미지가 중심을 이루고 있다. 그렇지만 작품에 등장하는 이미지는 백과사전적 체계를 거쳐 시적 체계로 나아가기 보다는 사전적 체계에 머물러 있는 이미지들이다. 왜냐하면 곱다란 노을의 이미지, 전신주가 하나하나 어둠에 묻히는 이미지, 머언 고가선 위에 불이 켜지는 이미지, 빨갛게 물든 저녁 구름의 이미지, 목장의 깃발과 능금나무의 이미지 등은 사전적 체계에서 확인될 수 있기 때문이 다.

3) 시적 기표 체계로의 변환

일반적으로 텍스트는 약속된 기표 체계 즉 사전적 체계를 이용한다. 그렇다고 해서 기표 체계가 하나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일상적으로 하나의 기표로 인식 되더라도 문자기표와 음성기표가 따로 존재한다.87)

시적 기표 체계로의 변환은 시 텍스트에 진술되어 있는 기표를 사전적으로 그

87) 기표를 기의의 하나로 다룰 수 있는 것은 학습의 과정을 거쳐 음성이나 문자의 특징이나 형태를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동일하게 인식하는 음성일지라도 소리의 크기나 파장 의 세기가 무수히 다르다는 점에서 확인된다. 이는 글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는 음성이 나 문자의 특성이 기억되어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