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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시 텍스트의 수용과정

1) 기의 검색

시적 개념이나 이미지 그리고 기표는 모두 기의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객관적 수용을 위해 독자가 해야 하는 첫 번째 단계는 기의의 검색이다. 그렇다고 사전적 기의나 그것을 검색하는 과정이 불필요하다는 것은 아니다.

사전적 기의는 기표가 갖는 명세사항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사전적 기의 없 이는 백과사전에 해당하는 명세사항이 없으며 백과사전적 명세사항이 없으면 시적 기의를 찾을 수 없다. 왜냐하면 백과사전적 명세사항은 사회적 용례에 의해 만들 어진 다양한 주변 의미로서 새로운 의미로 연결하는 meaning network이기 때 문이다. 이는 시적 기의를 찾을 수 있는 통로를 상실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러 므로 사전적 기의 역시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사전적 기의는 대부분의 독 자들이 학습을 통해 기억으로 저장하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많은 노력이 필 요하지 않을 뿐이다.

그러므로 사전적 기의가 독자에게 이미 저장되어 있다고 한다면 실제로 필요한 것은 백과사전적 명세사항과 시적 기의 체계의 검색이다. 이는 일반적으로 기표와 관련해서 독자가 갖고 있는 모든 기억구조90)와의 연결이며 이를 통한 새로운 시 적 체계로의 확장이기도 하다.91)

시적 기의를 검색해야 하는 텍스트는 대부분 정서가 사고보다 강하게 작용하는 경우라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정서가 강해지면 시 텍스트는 불합리한 진술을 드 러내게 되므로 독자는 불합리한 진술을 합리적 문장으로 전환하여야 하기 때문이 다. 따라서 합리적인 청자라면 전통적인 문법규칙이 파괴되어 있는 시의 기표 체

90) 한스마이어홉, 김준오 역 문학과 시간 (문예비평신서,1983). p. 73.

91) Umberto Eco, 서우석 역, 기호학 이론 , (문학과 지성사, 1985), Umberto Eco, 서우 석․전지호 역, 기호학과 언어철학 , (청하, 1992), 참조.

계를 사전적 기의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92)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시에 기술되어 있는 음운이나 어휘 그리고 통사의 사전적 개념이나 이미지를 저장되어 있는 생각의 틀에서 꺼내어 본다는 것이다. 이렇게 독자가 기표에서 사전적 기의 만을 환기하게 되면 시 텍스트는 일반 문법 규칙에 맞지 않음을 확인시켜 주는 것 외에는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사전적 기의 없이 시적 기의를 환기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사전적 기의는 백과사전적 명세사항을 거쳐 시적 기의를 창조하는 모티브로 작용한다. 그러므로 독자가 사전적 기의를 통해 시적 체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일반문법의 틀을 벗어나야 한다.

이를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와 김춘수의 <처용단장(處容斷章)> 3부를 통해 살 펴보면 다음과 같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 ∼해야 한다)

위의 내용은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의 일부분이다. 내용을 보면 “한 송이의 국 화꽃을 피우기 위해” 다음에 이어지는 내용은 쉽게 정보처리가 되지 않는다. 일반 적인 문법 규칙에 의거해 정보처리가 이루어지려면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 해’ 다음에는 ‘거름을 주어야 한다’거나 ‘우리는 ∼해야 한다’는 내용이 오거나, 사 회적 용례에 의거해 ‘비가 왔나보다’ 정도가 허용될 뿐이다. 따라서 사전적 체계에 서 있는 독자는 위의 내용을 그대로 의미화할 수 없게 된다. 이는 김춘수의 다음 시의 경우에도 확인할 수 있다.

92) 이 논의에서 사용되는 전통적인 문법 규칙, 또는 일반문법은 학교문법의 개념이 아니라 관 습화된 내재문법 즉 말과 글을 통해 정보처리를 가능하도록 하는 인지문법으로서의 개별문 법을 의미한다. 따라서 전통적인 문법 규칙은 기표/기의가 사전적이고 사회적 용례 속에서 작용하는 반면 시의 문법은 기표/기의가 전통적인 문법을 벗어난다는 점에서 서로 구별되는 개별문법이라 할 수 있다.

눈보다도 먼저/ 겨울에 비가 오고 있었다

바다는 가라앉고/ 바다가 있던 자리에/ 군함이 한척 닻을 내리고 있었다.

바다는 ( ① ) ( ② ) 군함이 한척 닻을 내리고 있었다.

- 「처용단장」 제3부 4에서

작품을 보면 ‘눈보다 먼저 겨울에 비가 오고 있었다.’라는 것은 순차적이고 단선 적인 시간의 사고를 무너뜨린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이는 일반문법이 파괴된 것으 로써 기의 체계가 사회적 용례를 벗어났다고 보는 경우라 할 수 있다.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겨울에도 비가 내리는 경우가 존재하기 때문에 이 표현은 일반문법을 파괴한 것으로 볼 수 없다.

눈보다 먼저라는 표현은 겨울이면 항상 눈이 먼저 와야 한다는 말을 전제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겨울에 항상 눈이 먼저 오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시인 자신이 겨울에는 항상 눈이 먼저 오는 것을 정상적인 것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상적인 상황인 눈이 오지 않고 비고 오고 있다는 표현은 세 상이 정상적인 상황으로 흘러가고 있지 않음을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다음으로 가면 일반문법의 파괴를 볼 수 있다. 왜냐하면 군함은 바다 에 비해 작고 보잘 것 없는 대상임에도 불구하고 바다 전체와 자리를 바꾸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인간이 세워놓은 인식의 공간인 바다를 해체한 것이며 원근을 파 괴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93)

그러나 이러한 의미 부여는 바다와 군함이라는 기표의 사전적 체계에서 바라본 결과일 뿐이다. 바다와 군함이라는 기표의 사전적 의미에 주목하게 되면 불가능한 상황에 대한 진술이 되어 버린다. 이는 원근의 파괴이며 공간의 해체일 수밖에 없 으며 개념과 이미지의 파괴일 수밖에 없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바다는’과 다음에 오는 ‘가라앉고’는 한국어의 일반 문법규 칙에 맞지 않음을 볼 수 있다. 일반 문법에 맞게 연결되려면 ‘바다는’ 다음으로 ‘잔

93) 남기혁, 「김춘수의 무의미시론 연구」, 한국 현대시의 비판적 연구 , (월인, 2001), p.200.

잔해지고’나 ‘조용해지고’ 등이 기술되어야 한다. 역으로 ‘가라앉고’에 주목한다면

‘바다는’ 대신에 ‘바다에 부유물은’, ‘파도는’ 정도가 허용될 것이다. ②의 경우에도 사회적 용례나 문법규칙에 비추어보면 적절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바다가 있던 자리에 군함이 한척 닻을 내리고 있었다.”는 진술은 바다와 군함이 차지할 수 있 는 범위나 크기를 비교해 볼 때 합법적 진술이라고 할 수 없다. 이는 바로 의미화 할 수 없는 진술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반 문법이나 사회적 용례에 맞 게 기술하려면 ‘항구에’ 군함이 한척 닻을 내리고 있었다‘로 하거나 ‘바다에 군함이 한 척 닻을 내리고 있었다.’로 진술되어야 한다.

진술된 시가 문법 규칙에 맞지 않아 객관적으로 수용하지 못하게 되면 독자는 시 텍스트의 음운, 어휘, 통사와 관련된 시적 기의를 검색하게 된다. 이때 검색되 는 기의는 사전적 정보만이 아니다. 이 정보는 어휘 항목이 갖는 핵심요소와 주변 요소로 구성되는 모든 정보인 백과사전적 정보와 시적 기의이어야 한다. 이는 사 전적 체계나 사회적 용례에 한정되어 있던 기의를 시적 체계로 확장하는 것이며 사전적 체계에 머물러 있던 독자를 시적 체계로 편입시키는 과정이기도 하다.

독자가 기의를 사전적 체계에서만 찾게 되면 이를 통사적으로 처리할 수 없다.

독자는 심리나 정신 속에 백과사전적 정보 또는 시적 정보를 갖고 있다. 이는 지 식의 총체 또는 기억의 총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기표와 관련하여 드러 난다는 점에서 기표의 사전적 체계만으로는 찾을 수 없다.

사전적 형식에 의거한 검색은 의미들의 분석적인 특성들만을 수록하고 현실 세 계의 지식을 함축하는 종합적인 특성들을 배제시킬 수 있다. 이는 시 텍스트의 은 유나 환유를 설명할 수 없도록 만든다. 왜냐하면 은유나 환유는 서로 이질적인 대 상을 하나의 의미망으로 연결하는 것인데 사전적 체계로는 쉽게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의 시학에 나타나는 유에서 종으로, 종에서 종으로 이전하는 경우도 흔쾌히 설명할 수 없다. 이러한 경우를 설명하려 면 사전의 형식만이 아니라 백과사전적인 또는 시적기의의 모든 관련 기억 구조를 검색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과정이 첫 번째 단계는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변환과정1 명세 및 시적 기의 체계 검색

명세 및 시적 기의 체계 검색

명세 및 시적 기의 체계 검색

명세 및 시적 기의 체계 검색 시텍스트 기표 체계 기표 체계 기표 체계 기표 체계

<그림 5> 시적 기의 체계를 검색하는 단계

그런데 시적 기의가 기표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이 아니므로 시적 기의를 검 색하려면 사전적 기의를 포함한 백과사전적 기의를 검색해야 한다. 다음은 ‘한 송 이 국화꽃’이나 ‘바다는 가라앉고’에서 시적 기의를 검색하기 위해 사전적 기의와 백과사전적 명세사항을 검색한 경우다.

국화꽃

․아름다운 꽃으로 관상용으로 씀

․국화는 동양에서 재배하는 관상식물 중 가장 역사가 오랜 꽃이며, 사군자 의 하나로 귀히 여겨왔다

․은일화(隱逸花)라 하여 속세를 떠나 숨어 사는 은자(隱者)에 비유됨

․여러해살이풀

․노란색, 흰색 등의 꽃이 있다.

․가을에 피는 꽃 해양(海洋)

수산물이 생산됨 지구표면적의 3/4

바다는 가라앉고 바다가 있던 자리에 군함이 한척 닻을 많은 종류의 어류가 산다

위에 제시된 내용은 국화꽃과 바다와 관련된 명세사항들이다. 제시된 내용 전체 가 백과사전적 정보들을 모두 나타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뿐만 아니라 시적 기의 의 정보들도 나타나지 않는다. 시적 기의는 이러한 명세사항에 의해 새롭게 만들 어지는 개념이나 이미지, 기표 체계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사군자의 하나’라는 정보에서 ‘선비정신’이나 ‘지조’ 또는 ‘절개’의 기의를 ‘은일화’라는 정보에서 ‘은둔자’ 또는 ‘잘 드러나지 않는 존재’의 기의를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