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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시 텍스트의 수용과정

2) 계열성의 확인

하나의 어휘 즉 기표에 관련된 백과사전적 명세사항과 시적 기의는 매우 많다.

이 정보를 모두 일일이 기술하기는 힘든 일이며 그럴 필요도 없다. 왜냐하면 백과 사전적 명세사항이나 시적 기의 체계의 다양한 정보 가운데 시 텍스트에 필요한 정보는 몇 개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몇 개의 주요 정보로 걸러내 는 과정도 신속하게 이루어진다. 이는 사전적 의미 체계를 버리고 시적 체계 속에 들어서는 순간 문장의 통사적 성질이 우선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이렇게 몇 개의 중요한 정보를 중심으로 텍스트의 정보 체계를 하나의 문장에 서 검토하는 단계를 계열성의 확인이라 할 수 있다. 이는 독자가 시를 수용하는 과정에서만이 아니라 시인이 시를 생산하는 과정에 적용된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원리는 일상 언어의 사용 과정에도 적용된다. 왜냐하면 일상 언어에서도 하나의 기표에 수많은 사회적 용례와 그에 따른 사전적 의미가 환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원리가 같다고 해서 시와 일상 언어가 동일하다는 것은 아니다. 시와 일상 언어는 기의의 범주 면에서 차이를 지니므로 의미의 차이는 분명하다.

이 계열성의 확인 과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변환과정2 주요정보↔ 주요정보↔ 주요정보↔ 주요 정보 변환과정1 명세 및 시적

기의 체계 검색

명세 및 시적 기의 체계 검색

명세 및 시적 기의 체계 검색

명세 및 시적 기의 체계 검색 시 텍스트 기표 체계 기표 체계 기표 체계 기표 체계

<그림6>텍스트의 시적 정보 체계를 검토하는 단계

시를 창작하는 과정을 살펴보면 시인이 시어를 선택한다는 것은 계열의 축에 해당하는 어떤 음운이나 어휘 그리고 통사를 선택하는 것이며 이 선택은 시인의 자의적 판단에 따른 것이다.94) 이 자의적 판단은 시인 자신의 정서를 가장 잘 반 영하는 음운, 어휘, 통사를 선택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이 음운이나 어휘 통사 는 사전적 체계의 범주에만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니며 그렇다고 선택된 기의가 기 표와 아무런 관련을 맺지 않는 것도 아니다. 시인이 부여하는 기의는 시인이 선택 한 기표와 어떤 방식으로든 관련을 맺게 된다.

이는 객관적 수용의 과정에서도 마찬가지라 할 수 있다. 하나의 어휘에 관련된 사전적 의미나 사회적 용례는 다양하다. 또한 드러내고자 하는 동일한 정보가 다 양한 어휘에도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다양함 속에서도 정보를 생 산하거나 수용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중요 정보로 압축하여 선택 발화하거나 수용 한다.

이 과정은 모든 기호 작용에서 동일하게 나타나는 소통의 기본적 특성이다. 이 는 시 텍스트에서도 예외일 수 없으며 백과사전적 명세사항에서 시적 기의를 산출 하는 과정도 마찬가지다. 시적 정보 체계에서 주요 정보로 압축하는 방식을 구체 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94) 윤석산 현대시학 , (새미출판사, 1996), p. 346.

평범한 진리 아름다움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지조,절개

가을에 피는 꽃

국화꽃을 계열성의 단계에서 보면 시인이 국화꽃이라는 어휘를 선택하는 과정 은 국화꽃과 선택의 축을 이루는 여러 어휘를 두고 퇴고(推敲)를 하는 과정으로 나타난다. 예를 들어 국화꽃 대신에 장미꽃이라는 어휘를 선택하게 된다면 작가가 부여하고자 하는 의미도 변하게 되고 당연히 작품의 의미도 변하게 된다. 장미꽃 을 선택하게 되면 ‘화려한’ 아름다움이라는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그러나 국화꽃 이라는 어휘는 화려하지도 않고 빼어나지도 않은 보통의 아름다움이라는 의미를 지니게 함으로써 아름다운 것을 모두 포괄할 수 있게 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계열성이 시인의 입장에서 사고와 정서를 부여하기 위해 어휘를 선택 조정하는 과정이라면 독자의 수용과정에서는 시 텍스트가 함의하고 있는 사고와 정서를 처 리하기 위해 기의를 선택 조정하는 과정이다. 독자는 시 텍스트에 나타난 음운, 어휘, 통사를 계열의 축에서 발생한 다양한 정보를 통해 주요 정보로 걸러내고 재 조직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러한 독자의 수용과정은 다음에 이어지는 문장구 조 즉 통사구조와의 관련성에서 기표와 가장 잘 어울리는 의미를 찾는 과정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국화꽃을↔피우기 위해’에서 국화꽃 대신에 지조나 평범한 진리를 선 택해보면 ‘지조를↔피우기 위해’는 정보처리가 되지 않음으로 계열성을 이루도록 하려면 ‘지조를↔지키기 위해’로 기의가 조정되어야 한다. 또 국화꽃 대신에 평범 한 진리에 주목하게 된다면 ‘평범한 진리를↔얻기 위해’로 조정되게 된다. 그렇게 되면 계열성의 확인 과정을 거쳐 ‘피우기 위해’는 지키기 위해, 얻기 위해 등의 정 보를 쉽게 획득할 수 있다.

이는 김춘수의 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김춘수의 시에서도 바다와 관련된 시적

기의를 검색하고 이 중 몇 가지 중요한 정보로 압축하여 정리할 수 있다. 바다와 관련된 백과사전적 정보 중에서 소통될 수 있는 몇 개의 정보로 압축하면 ‘수산물 이 생산됨’에서 ‘정신적 양식’의 기의로 ‘ 넓고 푸르며 깊은 세계’에서 ‘하늘’, ‘희망’

또는 ‘진리의 세계’ 등의 기의로 압축할 수 있다.

이러한 시적 언어의 조직 과정은 역으로 이러한 단계를 거치는 대부분의 독자 들이 시적 언어의 의미 공유과정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대부분의 독자들이 이러한 공유된 의미의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어휘의 주변 요소 중에서 두세 개의 특성을 살리고 나머지의 특성들을 잠재워 버려야 한다95) 는 것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결국 몇몇 시적 기의의 관여된 특징들은 의미처리 가능여부를 토대로 독자에 의해 선별된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독자는 부대적 소재의 관찰 대상들을 주된 소재에서 끌어내리면서 그것의 여러 요소들을 선택, 강조, 삭제하면서 의미처리를 시도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해양의 의미, 수산물이 생산되는, 지구 표면의 4 분의 3, 넓고 푸르며 깊은 세계의 의미는 삭제되고 희망 또는 진리의 세계라는 의 미만이 남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