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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예수를 아는 자는 예수의 사역에 동참하게 된다. 사마리아 여인 이 예수로 인해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마을로 들어가 예수를 증거하였듯이 (4:39), 예수로 인해 하나님의 영광을 본 제자들이 세상에 보내졌듯이(17:18) 예 수를 아는 자는 세상으로 보내져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해야 한다. 증거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은 전달되고 양우리 밖에 있던 하나님의 백성들은 모이게 된다. 그 럼으로써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는 것이다.

요한복음이 공간복음에서 즐겨 사용되던 ‘하나님 나라’ 대신에 ‘영생’을 사용한 것은 ‘하나님 나라’ 용어 자체가 본래 임박한 종말론적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에 구원의 현실성을 나타내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본 것이다.122)

요한복음이 영생을 통해 구원의 현실성을 강조한 이유는 영생이라는 체 험적 앎을 통해 구원받은 자들을 증거의 사역에 동참케 하고, 지속적으로 하나님 의 나라를 확장코자 하는 의도이다. 지속적인 확장을 위해 예수는 성령을 주시 며, 제자들을 파송한 것이다.

야기들이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반면에 성령의 사역이 생명과 구원에 연관되어서는 강조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속에서 예수는 하나님의 선물로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생수를 언급한다(4:14). 여인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이 생수이다. 이 생수 는 그녀가 얻을 영생이요, 구원이다.

그런데 요한복음 7장에서 예수는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7:38) 말함으로써 생수는 성령임을 밝힌다 (7:39). 즉 성령은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로, 생명을 주는 영이다(6:36). 이 영은 예수의 영이자, 하나님의 영이다.

하나님은 영이기에 예배하는 자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함을 요구한다 (4:24). 신령으로 예배한다는 것은 성령 안에서의 예배이다.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속에 예배에 대해 발견되는 것은 지정학적인 장소의 예배가 아닌 성령 안에 서의 예배이다.

이것이 요한복음의 성령론이 선교적으로 중요한 이유인데 사마리아 여인 과의 대화에서 예수는 구약의 선교 패러다임을 전환시키고 있다. 여인은 우리가 이 산(그리심산)에서 예배해야 할 지, 예루살렘에서 해야할 지를 묻는다. 예수는 예배는 지정학과는 관련이 없다고 답한다. 예배는 특정한 장소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영이기에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Truth and Spirit)으로 예배드리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서 ‘신령과 진정’은 헬라어 원문으로 ‘evn pneu,mati kai.

avlhqei,a’(in spirit and truth)인데 pneu,mati를 성령으로 보아도 무방하다.123) 하나님에 대한 예배는 이제 ‘성령과 진리인 예수 안에서’라면 어디서든지 가능해 지게 된다. 성령과 예수의 진리를 통한 거듭남과 계시로 하나님을 바르게 인식하 며 예배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123) G. E. Radd, New Testament Theology, 이창우 역,『신약신학』(서울:

성광문화사, 1983), 410. NAB 성경은 ‘성령’으로 번역하였다.

구약의 예루살렘 중심의 예배는 세상을 예루살렘으로 모이게 하는 선교 구조였다면 예수가 의미하는 ‘신령과 진정’을 통한 예배는 세상으로 보내는 선교 구조이다. 이것은 구심적 선교에서 원심적 선교로의 전환을 의미하는 것으로 성 령의 수여를 통해서만이 가능한 것이다.

원심적인 선교의 패러다임은 신약의 선교에서 중요한 변화로 요한복음의 성령론에서 그 사상적 토대를 찾을 수 있다. 이 때문에 하나님은 아들을 보내고, 아들은 제자들을 보내는 파송의 형식을 띈다.

예수는 부활 후 제자들을 파송할 때 제자들에게 성령을 수여하여 그들의 임무수행을 대비케 한다. 제자들의 임무는 예수의 보내심과 동일하게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함으로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다.

성령은 예수를 증거하는 증거자로(15:26) 제자들이 예수를 증거할 수 있 도록 그들을 돕는 역할을 한다. 성령의 도움없이 제자들의 증거는 있을 수 없으 며 제자들의 증거활동 없이 교회는 성장할 수 없다. 따라서 선교의 시대는 아버 지(그리고 예수)로부터 보냄을 받은 성령과 함께 시작되며 이런 의미에서 성령은 교회 선교의 시발(始發)자라 할 수 있다.

성령이 예수를 증거하고 제자들의 증거활동을 돕는 이유는 예수를 영화 롭게 하기 위함이다(17:10).124) 제자들은 성령의 도움으로 예수를 영화롭게 하 고 나아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 하나님에 대한 영광이 선교의 궁극적인 목적 임을 고려한다면, 성령의 증거케 하는 사역은 결국 선교 사역의 목적을 완성함에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가 된다.

그런데 성령의 증거 사역이 요한복음에서는 구두선포만을 의미하지 않는 다. 그것은 예수 안에서 하나됨을 통한 증거이다. 예수가 하나님 안에 하나님이 예수 안에 거함으로 예수와 하나님이 하나가 되듯(17:21), 이제 제자들은 예수 안에서 거함으로 수직적으로는 예수와 하나가 되며, 동시에 수평적으로는 제자들

124) Donald Guthrie, New Testament Theology, 정원태, 김근수 역『신약신 학』(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1999), 602.

끼리 하나됨을 이루게 된다. 이것이 세상에 대한 증거로 나타나 세상은 예수가 하나님으로부터 오셨음을 알게 된다(17:21, 23).

따라서 성령은 그리스도와 신자들을 연합시키고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게 하시며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신 사랑으로 아버지와 신자들을 연합시킨다.

예수가 제자들을 파송하면서 성령을 받으라는 성령 수여와 함께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뒤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 라”(20:23) 죄사함의 권세를 부여한다. 죄사함을 통해 새로운 존재로 생명을 얻 게 됨과 동시에 죄사함이 예수가 기원하였던 평화의 전제가 되기 때문이다.

죄사함이 없이는 수직적으로 하나님과 진정한 하나됨의 관계를 이룰 수 없으며 수평적으로도 인간 사이에 온전한 관계를 이루 수 없다. 죄용서와 화해가 있어야 평화가 가능하며 그 평화는 연합과 일치의 발판이 된다.

따라서 성령으로 새생명을 받은 구원받은 자들은 연합과 일치, 평화를 일구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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