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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에는 제자들(성도 혹은 교회)을 세상에 보내심으로 이어진다. 이 네 가지 보내 심은 같은 특징을 지니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위하여 그들을 보내셨다 는 것이다.118)

보내심의 궁극적 이유는 증거를 통한 추수이다. 증거를 통해 추수가 이 루어진다. 세상은 하나님과 아들을 알게 됨으로 영생을 얻게 되고(요 17:3), 생 명을 얻으며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선교는 그렇게 흩어진 하나님의 백성을 모으고(11:52), 다른 양들을 한 우리로 불러모으는(10:16) 것이다. 이를 위해 제자들도 보냄을 받은 것이다. “내 가 너희로... 거두러 보내었노니”(요 4:38)

보내심과 추수, 이것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으로, 요한복음이 예수를 육신이 된 ‘로고스’, ‘아버지-아들’ 혹은 ‘보내심을 받은 자’로 소개할 때 이는 예 수가 추수하는 자임을 밝히는 것으로 요한의 기독론이 이미 선교적 의미를 지니 고 있다는 의미이다.

수이다. 추수는 생명을 주어 하나님의 자녀로 불러모으는 것을 의미한다.

로고스가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로고스 안에는 생명이 있었으며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1:4)이었다. 이 빛을 받아들이는 자는 누구든지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로고스가 만물을 창조하고 만물의 주재권 을 가지고 있기에 로고스 안에 있는 생명은 모든 자들을 위한 것이다. 따라서 로 고스 안에 생명의 빛은 모든 사람에게 편애나 차별없이 비췬다는 데에 그 특성 이 있다(1:9). 이것은 로고스를 보낸 하나님이 편애가 없으신 우주의 하나님이며 사랑의 하나님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로고스가 육신이 된 예수는 바로 하나님의 이 사랑을 드러내야 한다. 이 사랑이야말로 어둠속에 있는 자들에게 찾아오는 하나님의 손길이며 아들을 십자 가에 내어주는 구속의 은총이다. 십자가는 하나님 사랑이 완성되는 곳이다. 예수 는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였다고 고백한다(17:2).

이 죽음을 통해 사랑의 하나님이 완전히 계시되며 구속의 죽음을 통해 예수는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들을 모은다. 십자가의 사랑이 하나님이 자기 백성 을 불러모으시는 방법이기 때문이다(12:24). 이 구속적 십자가의 사랑 때문에 하 나님은 아들을 주신 것이고(3:16), 성령을 주셨으며(20:22), 생수를 준 것이다 (4:11).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에서 예수는 자신이 생수를 주는 자라고 밝힌다 (4:10). 예수가 주는 생수를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게 된다. 생수는 그 안에서 영생토록 솟아나는 샘물이기 때문이다(4:14). 이 생수는 성령을 의미하기 도 하다(7:38-39). 따라서 아들은 아버지와 함께 성령, 생수를 주는 주체자이다.

아들과 성령과 생수는 하나님의 선물로써 받아들이고자 하는 누구에게나 값없이 주어진다.

이처럼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여 세상에 아들을 주시고, 그 아들은 목 숨과 생수와 성령을 주어 세상을 구원코자 한다. 이를 위해 예수는 자신의 생명

을 부여한다. 자신의 생명을 부여함으로 세상에 생명을 주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요한복음에는 전체에 걸쳐 생명의 수여라는 주제가 나타난다(3:16; 5:24-25;

6:57; 10:10; 11:25-26; 17:2; 20:31). 이를 두고 맥포린은 다음과 같이 말한 다.

이처럼 예수 선교의 목표는 다양한 방식, 즉 생명을 주는 것, 그의 아버지를 빛 과 진리로 나타내는 것, 그의 사역을 성취하는 것,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것 등으로 묘사 되어 있다. 그러나 다양한 본문들에서 그것은 다른 모든 것들이 종속되어 있는 제일 목 적이 생명을 주는 것으로 등장한다.119)

‘생명’(zwh,)이란 용어는 요한복음 구원론의 중요한 주제어이다.120) 생명 은 ‘영원한 생명’으로 특징지어지는데,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 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으로 정의되어진다(17:3). 여기서 ‘안다’는 것은 지식적인 앎이 아니라, 체험적 앎, 관계적인 친밀성을 의미한다.121) 이것은 하나 님의 사랑을 체험하는 것이요, 예수가 생명의 부여자임을 아는 것이다. 또한 예 수가 하나님의 보내신 자로서 그의 사역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모으는 것임을 알 아 그의 사역에 동참하는 사역의 동참을 의미하는 앎이다.

119) James McPolin, “Mission in the Fourth Gospel,” ITQ 36: 118.

William J. Larkin Jr. and Joel F. Williams, editors,『성경의 선교신학』, 448에서 재 인용.

120) 김득중,『요한의 신학』, 320. 밴더립(D. G. Vanderlip)은 생명이란 단어 가 요한복음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라고 말하며, 다드(C. H. Dodd)는 생명이 요한복음의 주요 주제이고, 슈나켄버그(R. Schnakenburg)는 생명이 요한 신학과 요한복음의 핵심에 속한다고 하였다; 사용빈도 면에서도 신약성경에 등장하는 총 135번 중에 36회가 요한 복음에 집중되어 있다. 성종현,『요한복음 요한서신 사도행전 해설대조연구』(서울: 장로 회신학대학교 출판부, 2002), 49.

121) 박수암,『신약성서신학』, 240. ‘앎’은 히브리어 ‘야다’([d;y')에 해당되는 것으로 그것은 주체와 객체 사이의 아는 것이 아니라 주체와 주체 사이의 인격적인 관계 에서 오는 근본적인 앎을 의미한다. 그것은 예수와 내적인 관계맺음(involvement)이며 예수에게로의 인격적인 충성(complete commitment)을 바치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를 아는 자는 예수의 사역에 동참하게 된다. 사마리아 여인 이 예수로 인해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마을로 들어가 예수를 증거하였듯이 (4:39), 예수로 인해 하나님의 영광을 본 제자들이 세상에 보내졌듯이(17:18) 예 수를 아는 자는 세상으로 보내져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해야 한다. 증거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은 전달되고 양우리 밖에 있던 하나님의 백성들은 모이게 된다. 그 럼으로써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는 것이다.

요한복음이 공간복음에서 즐겨 사용되던 ‘하나님 나라’ 대신에 ‘영생’을 사용한 것은 ‘하나님 나라’ 용어 자체가 본래 임박한 종말론적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에 구원의 현실성을 나타내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본 것이다.122)

요한복음이 영생을 통해 구원의 현실성을 강조한 이유는 영생이라는 체 험적 앎을 통해 구원받은 자들을 증거의 사역에 동참케 하고, 지속적으로 하나님 의 나라를 확장코자 하는 의도이다. 지속적인 확장을 위해 예수는 성령을 주시 며, 제자들을 파송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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