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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카린으로 만드는 농약

문서에서 R&D 성공실패사례 에세이 (페이지 78-83)

사카린으로 만드는 농약

ReSEAT 전문연구위원

이재현

리나라는 해마다 장마철이 끝나면 도열병이 전국적으로 퍼 지면서 쌀농사를 짓는 농민들에게 큰 시름을 안겨주고 있 었다. 또한 이 피해로 인해 쌀의 수확량도 매년 감소되고 있어 경제 적인 손실까지 뒤따르고 있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벼를 경작하는 모든 나라에서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병균에 의한 ‘벼 도열병’과 ‘흰빛 잎마름병’이 대표적이다. 도열 병에 걸린 벼는 잎이 붉은 빛을 띠며 더 이상 자라지 않고, 이삭은 쭉정이가 된다. 흰빛 잎마름병은 잎의 광합성을 방해해 씨알이 여물지 않아 품질이 떨어진다. 또한 발병 시기에 따라 쌀 수량이 20∼50%까지 감소한다. 도열병을 방지하고자 수많은 유기농약들이 사용되고 있지만 이들은 독성이 강하여 1980년대에는 마땅한 약제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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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벼 도열병

▶▶ 흰빛 입마름병

‘오리자메이트’라는 농약은 도열병과 흰빛 잎마름병의 병원균들을 선택적으로 저해시킨다. 1970년대 중반에 일본의 메이지제약에서 처음 으로 개발되어 판매되고 있었다. 우리나라에는 1978년도에 처음으로 수입되기 시작하여 1981년에는 230만불을 상회하는 양이 수입되어 국내에서 일약 대형품목으로 성장하였다.

이 농약의 작용기작은 생체 외에서는 병균들에 강한 항균작용을 나타 내지는 않지만 벼에 살포하면 뿌리를 통해 잎과 줄기로 흡수되어 벼 도열병과 흰빛 잎마름병의 병원균에 강력한 항균작용을 나타낸다. 다른

벼 항균제들에 비해서도 더 많은 장점이 있었다. 도열병과 흰빛 잎마름 병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고, 살포하는 경우 잔류량의 농도가 지속성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화합물 자체가 인이나 염소를 함유하지 않아 인체에 거의 무해한 저독성 제품이고, 잔류독성이 적다는 점 등이다.

이 농약의 주원료는 인공감미료인 사카린으로, 일본 메이지제약이 한국의 ㈜ 금양으로부터 사카린을 kg당 3.5불에 수입하여 제조하였다.

그리고 이 농약을 kg당 15불로 국내에 역수출하였다. 당시 이런 일들은 국내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다. 선진국들이 우리나라에서 원료를 싸게 수입한 뒤, 몇 단계 기술적 가공을 거쳐 원료의 몇 배나 되는 비싼 가격으로 우리나라에 되파는 품목들이 많았다.

이처럼 사카린을 수입한 일본회사가 저독성 농약을 만든 것을 보고, 사카린과 농약의 구조를 비교분석해보았다. 그 결과, 사카린으로도 충분히 농약을 만들 수 있다는 결론을 얻고 제조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당시 우리나라는 물질특허를 도입하지 않아 외국 제품을 모방하여 제작할 수 있었다. 물질특허란 물질자체를 특허로 인정하여 특허기간이 끝날 때까지 아무도 그 물질을 만들지 못하게 하는 제도 이다. 그러나 국내에서 제법특허는 허용되었기 때문에, 기존의 특허 받은 방법과 다른 방법으로 농약을 만들어야 했다.

연구를 위하여 기존 방법들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여러 방법들이 특허에 등록되어 있었으나, 반응에 사용한 용매들이 고가일 뿐만 아니라 공업적으로 취급상 어려움이 있었다. 또한 포스겐이라는 독성이 매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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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였다는 신문기사를 보여주며 왜 아무런 언질도 주지 않았냐고 언짢아 했다고 한다. 당시 이런 일은 제약업계에서 허다했다. 국내의 기술 능력이 점점 향상되어 수입 제품들을 하나씩 국산화해나가기 때문에, 외국 제약회사들은 국내로 수출을 못 하게 된다. 대신 우리나라의 기술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문이 열리는 것이다. 당시는 이러한 이유 때문에 선진국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물질특허 도입을 연기하자는 주장이 압도적이었다.

그리고 우리 연구실이 제법특허를 신청한 이후, 국내 여러 농약회사 에서 자기들도 제조하게끔 특허를 철회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우리 연구실은 공익 기관인 정부출연 연구기관이었기 때문에 이를 받아들여 특허를 철회하였다. 그 결과, 현재 국내의 여러 농약회사에서 우리 연구실에서 개발한 방법으로 농약을 생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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