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색 결과가 없습니다.

북한 복지체제의 성격 변화에 관한 연구: 김일성, 김정일,

3) 비스마르키언 사회주의

사회주의 시대의 사회정책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비스마르키언 특징 을 갖는 사회주의 원리(Soviet principle of Bismarckian character-istics)라고 할 수 있다. 본 연구에서는 ‘비스마르키언 사회주의 (Bismarckian Socialist)’라고 명명하고자 한다. 즉 비스마르키언 특징 과 사회주의의 특징이 혼합된 제도성격을 의미한다. 위에서 언급한 비스

마르키언 특징과 사회주의의 제도적 유산을 종합해서 고려할 때, 비스마 르키언 사회정책과 사회주의 사회정책이 제도적 친화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완전한 비스마르키언 제도도 아니고 완전한 사회주의 제도도 아니 지만 양 제도의 높은 친화성이 하이브리드적 특징을 구현할 수 있게 한 것이다. 다만 비스마르키언 사회주의는 비스마르키언보다는 사회주의 특 징이 보다 강하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사회주의는 비스마르키언 특징과 다른 고유의 특성을 내재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노동은 의무였기 때문에 누구나 일을 해야 한다. 노동 을 하지 않아도 되는 비스마르키언 제도와 달리 사회주의 시대의 노동은 법으로 규정된 의무였다. 둘째, 노동자의 부의 창출은 사회주의경리수입 이라는 명목으로 ‘세금’의 형태로 국가에 귀속된다. 노동자 개개인이 사 회보험의 형태로 내는 명목상의 기여금보다, 사회주의 사회정책은 단일 한 국가예산으로부터 배분된다는 의미이다. 셋째, 노동자가 창출하여 국 가에 귀속된 부의 배분의 결정과 집행은 사회주의 원리인 당-국가 체제와 함께 민주집중제 방식을 통해 이루어진다. 비스마르키언 사회보험은 제 도가 성숙되면서 의회 민주주의의 결정을 바탕으로 각 행정 분야의 전달 체계를 통해 급여를 시행했다면, 사회주의 사회정책의 배분은 민주집중 제의 원리에 의해 각 노동조합이 주된 전달체계의 역할을 하였다. 오늘날 의 사회지출을 포함하는 인민적시책비와 그 외 경제건설비, 군비, 행정비 등의 배분은 중앙당 및 국가행정기관, 지방당 및 지방행정기관, 공장 및 협동농장에서 결정하며, 이러한 결정과정에 노동자와 농민은 자신의 소 조 및 작업반을 통해 참여하는 방식이다. 만약 ‘아래에서부터 위로의’ 방 식이 구현되지 않을 경우에는 ‘중앙당의 단일한 명령’을 통해 시행되었 다. 넷째, 현금중심의 비스마르키언 제도와 대비되는 서비스중심의 사회 주의 사회정책이다. 먼저 모든 인민은 노동에 대한 대가로 가격이 통제된

국영상점을 이용할 최소한의 ‘현금(임금)’을 받으며, 은퇴 후 현금급여인 노령연금을 받는다. 다음으로 모든 인민에 대하여 무상 서비스급여인 의 료서비스, 교육서비스, 주거서비스, 돌봄서비스를 제공받는다. 이러한 사 회주의적 사회서비스는 ‘노동여부’와 관계없이 보장하였으며 ‘소득비례’

에 따른 차등적 제도가 아니라는 점이다. 즉 국가는 인민에게 필요한 식 량, 보육, 교육, 의료 주택, 도서관․박물관․국립공원․휴양림 등과 같은 공공 시설 이용 등의 무상 ‘서비스(현물 포함)’를 제공한다. 그런데 사회주의의 평등주의 원칙에 따라 임금 및 사회보장에서 차이가 미미하다는 점을 주 목해야 한다. 즉 전체 사회보장에서 불평등한 요소가 있는 현금에 해당하 는 임금과 연금은 매우 작고, 평등한 요소가 있는 서비스는 매우 비대하 므로 평등주의가 강하게 내재되어 있다. 결국 사회주의 복지체제의 가장 큰 특징인 ‘평등주의는 서비스에서 기인’하며 현금중심의 비스마르키언 특징과 가장 차별되는 특징이다.

이러한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비스마르키언 사회주의’라고 부를 수 있 는 강력한 근거는 비스마르키언 특징이 사회주의 혁명 이후에도 사회주 의 체제 내에서 구현되었다는 점이다. 즉 비스마르키언 전통은 독특하게 도 사회주의 시대에도 경로의존적 성격을 유지하여 왔던 것이다. 그 배경 은 크게 2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먼저, 사회주의 혁명 이전에 근대화를 일찍부터 시작한 대부분의 체제전환국들은 비스마르키언 사회보험 제도 를 도입하였는데 그 특징은 사회주의 시대에도 지속되었다는 것이다(민 기채, 2014a, 2014b).

두 번째 배경은 아이러니하게도 ‘자본주의’ 체제를 강화하기 위한 비스 마르키언 모델과 ‘사회주의’ 사회정책 모델 간의 ‘제도적 친화성’이 높았 기 때문이다. 그 제도적 친화성은 다음의 3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 수급자격은 고용에 기초하여 부여되었다. 즉 노동을 하지 않는 자에게는

급여가 지급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회보장의 수급자격과 노동의 연계 는 두 특징 간 제도적 친화성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다. 쉽게 말해 일하지 않는 자는 사회보장혜택에서 박탈된다는 점이다. 노동을 할 때만이 사회 보장제도를 이용할 수 있으며 노동을 하지 않으면 인간다운 생활을 유지 하기 어려워진다. 비스마르키언 제도가 노동을 하지 않는 자에 대하여 철 저한 심사에 기초한 최저생계만을 보장하는 반면, 사회주의 사회정책은 노동을 거부하는 자에 대하여 노동교화소를 통한 의식화 사업을 펼치기 때문에 처벌적 성격이 보다 강하다고 할 수 있다. 둘 다 억압적이며 통제 적이라는 특징을 공통점으로 갖는다. 결국 비스마르키언 특징과 사회주 의 특징에서 강조하는 노동에 따른 분배는 사회민주주의 복지국가에서 추구하는 시민권에 기반한 권리가 아니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사회주 의자들의 시민권에 대한 이해는 ‘모든 시민은 개인 및 가족의 생계와 국 가의 경제발전을 위해서 일할 권리와 의무를 가질 때’에만 주어지는 것이 었다(Cerami, 2010: 237). 따라서 노동시장에 참여하지 않는 이들에게 는 인민으로서의 자격뿐만 아니라 사회보장수급권까지 박탈되게 된다.

둘째, 사회주의 이전시기보다 사회복지 재원의 국가비중이 높아졌으 나, 개인의 보험료는 그대로 존속되었다. 높은 단계의 공산주의 사회는 세금이 없는 사회라고 하지만 낮은 단계의 공산주의 사회인 현실 사회주 의에서 사회보험료는 그대로 존재해 온 것이다. 예를 들어, 노동자 : 고용 주 : 국가의 기여비중을 1980년 기준으로 보면, 폴란드가 2 : 52 : 46, 헝 가리가 14 : 40 : 46, 체코슬로바키아가 0: 4 : 96이었다(Cerami, 2010:

239). 사회주의 시대에도 체코슬로바키아를 제외하고 다른 두 나라는 보 험료는 그대로 유지되는 특성을 지닌 것이다. 기여금이 명목적으로는 존 재하지 않는 국가라고 하더라도 실질적으로는 노동을 통해 창출된 부가 기업소를 통해 국가에서 일괄 관리․통제되고 다시 국가로부터 급여가 일

괄 제공되므로, 노동자가 창출된 부에 기여금에 해당하는 몫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셋째, 급여가 노동자의 기존 임금에 비례하여 차등적으로 지급되는 소 득비례의 원리를 반영한다는 것이다. 평등주의라는 사회주의의 본질적 특성보다는 기여금, 고용기간 등의 고용기록에 의해 복지급여는 차등적 이었다. 노동자의 임금수준에 따라 연금액에 있어서 소득비례적 특징을 갖는 차등적 적용이 존속되어 온 것이다. 특히 국가기여도에 비례하여 사 회보장혜택은 차등적이다. 충성계층을 의도적으로 육성하고 이들에게는 더 높은 물질적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이다. 급여가 높은 자는 그만큼 국가에 높은 충성을 하였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3가지의 공 통된 특징은 비스마르키언 제도와 사회주의 사회정책의 특징 간 높은 친 화성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사회주의 시대에도 비스마르키언 특징을 계승한 것처럼, 체제전환 이 후에도 비스마르키언 사회정책의 전통은 유지되어 오고 있다. 사회정책 에 미치는 체제전환의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한 일시적 복지 확대로는 사 회모델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없게 되자 체제전환국들은 개혁을 단 행하기에 이르렀는데, 그 해답은 비스마르키언 전통의 회복이었다.

Cerami(2010: 244-245)는 “비스마르키언 전통의 회복으로 계획경제의 과도한 표준화를 직업의 다양성에 기초해 분화시켰고, 연금제도개혁에서 는 부과방식에서 적립방식으로의 전환 시도, 보험원리를 강화하여 기여 율을 인상하였고, 건강보험의 재도입으로 세금이 아닌 보험료로 재원을 마련하는 변화를 단행하였으며, 경제적 이행의 비용부담을 빈곤층에게 지우지 않는 온정주의적 특징도 동시에 나타났다”고 주장한다. 이상과 같 이 비스마르키언 전통은 사회주의 시대뿐만 아니라 체제전환 이후에도 강력하게 배태되어 있다.

〈표 2-2〉 비스마르키언 사회정책과 사회주의 사회정책의 공통점과 차이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