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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화(分化, divi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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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절대와 상대의 사유에 따른 타이포그래피 구상

3) 분화(分化, division)

[작품 3] ‘분화’는 [작품 2]의 ‘생성‘으로 말미암은 분화이다. 즉 자아의 생성으로 인해 절대와 내가 둘로 분화가 된 후, 자아의 관점으로 보는 세상의 표현이다. 자 아가 사라지면 모든 상대적 개념은 사라진다. 상대를 만드는 주체가 사라지기 때 문이다. 그러므로 자아는 최초의 상대이며 또한 모든 다른 상대를 만드는 원인이다.

우리는 언어를 통한 생각과 지식으로 말미암은 상대세계에 살고 있다. 모든 대 상에 이름을 붙이고 이름을 통해 그 대상의 기능을 한정한다. 예를 들어 아이가 한 사람을 ‘아빠’라 부르면 그는 ‘아빠’가 되며 그의 기능은 ‘아빠’에 한정된다. 하 지만 아이에게 아빠라 불린 사람은 사실 아빠에 한정된 사람이 아니다. 회사에서 는 동료, 옆집 사람들에게는 이웃이며, 지나가는 사람에게는 낯선 사람이다. 또한 우리는 책을 책이라 부르며 그 기능을 문자를 통한 지식의 전달을 위한 사물로 한 정 짖는다. 하지만 책은 낮잠을 자며 베고 자면 베개가 되고, 얼굴위에 올려놓으면 빛 가리개가 되며, 여러 개를 겹쳐서 걸터앉으면 의자가 되고, 심지어 사람에게 던지면 무기가 된다. 이와 같이 이름은 자신이 바라보는 대상의 기능을 한정함으 로 그 대상을 다른 대상들과 분리시킨다. 또한 우리는 아름다운 꽃을 보면서 이름 을 기반으로 한 식물학적 지식을 통한 이해로 그 꽃을 바라볼 뿐 마음의 진정을 담아 꽃을 보지 않는다. 같은 해바라기를 보더라도 어제의 꽃과 오늘의 꽃은 같지 않으며, 우리집 해바라기와 옆집 해바라기는 같지 않다. 하지만 우리는 해바라기라 는 언어적 지식으로 말미암아 모든 해바라기를 해바라기라는 이름에 한정 짖는다. 이는 실질적 봄(見)이 아닌 언어적 봄이며 지식적 봄일 뿐이다. 그러므로 언어를 통한 지식의 분화는 마치 수박을 맛보지 못한 사람이 수박의 맛을 언어를 통해 이 해하고 또 다시 그 이해를 다른 사람에게 언어로 전달하는 것과 같다. 이처럼 언 어를 통한 이해는 실질적 앎이 아니므로 그 것을 설명하기 위해 과거에 비해 더욱 세분화되어간다.

[작품 3] ‘분화’는 이러한 언어의 분화를 통한 상대세계의 표현이다. 우리는 이러 한 상대세계를 살아가면서 자신이 진정 무엇인지에 대한 관심이 없다. 즉 자신은 절대와 상대의 경계에 서 있지만 이미 상대만을 바라보고 있음으로 인해 절대에 대한 아무런 관심을 갖지 않는다. 이러한 이유로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라

는 표현으로 우리의 이러한 관점에 문제제기를 하였다. 이는 언어를 통해 생성된 거짓 지식에서 벗어나 직관과 체험을 통한 진정한 앎으로 자신을 바라보라는 소크 라테스의 진리적 통찰이다.

[작품 3]에서는 앞의 [작품 1 ,2]에 나타났던 가운데에 위치한 알파벳 ‘A’는 앞으 로 돌출하다 못해 튀어 나올 것 같은 둥근 테두리의 흔적만 남겨 놓고 캔버스에 더 많은 알파벳으로 분화되어 버렸다. 이는 수많은 상대의 대상들이 존재하는 상 대세계에서 ‘절대’가 가지는 의미와 같다. 본 작품에서 A B C D E로 표현된 상대 적 언어를 통한 산물들의 생성으로 인해 우리는 절대의 가치를 망각하며 상대에 집중한다. 더 예쁜 외모, 더 좋은 옷, 더 좋은 집, 더 많은 돈 등의 상대적 개념을 충족하기 위해 살아갈 뿐 절대라는 말(작품에서 사라진 ‘A’)조차 떠올리지 않는다.

본 작품에서는 온갖 상대의 것들의 난무함을 언어의 분화, 즉 알파벳의 분화로 표 현하였다. 다시 말하면 상대는 언어로부터 기인하므로 이 작품의 알파벳은 각각의 상대의 것들이 가지고 있는 이름들의 상징적 표현이다. 그러므로 본 작품에서 커 다란 원형 가운데 위치했던 ‘A’는 사라진 것이 아닌 새로운 상대들로 그 숫자를 늘려 분화되어 표현되었다.

본 작품에서 절대의 표현 즉 모든 사물의 존재를 품고 있는 근원적 공간인 캔버 스의 의미는 앞장에서 본 바와 같으며, 또한 상대의 표현인 알파벳에 관한 의미 또한 앞의 작품의 설명과 같다. 하지만 본 작품에서는 알파벳 사이의 음영의 차이 를 통한 직각의 닫힘 구조 공간을 형성하고 있어 서로 합쳐지지 않은 상대적 관계 를 형성하고 있다. 이는 언어적 상대성으로 인해 서로 반목하며 합쳐지지 않은 사 물들의 관계를 뜻한다. 상대의 사물들은 언어라는 일정한 틀 안에 존재하며 또한 독립적으로 존재한다. 따라서 본 작품에서는 이러한 경계의 표현을 위해 상대를 만드는 주체, 즉 사람의 이분법적 사고로부터 말미암은 형태적 소산인 ‘직선’에서 발전한 ‘정사각형’의 기하학적 형태를 사용하였고, 뚜렷한 음영의 차이로 인한 면 의 분화를 통한 경계를 표현하였으며, 그 후 상대의 표현인 알파벳을 그 안에 가 두었다. 그러므로 본 작품에 사용된 경계의 모습은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에서 말 하는 절대의 표현, 즉 물방울이 만나면 서로 자연스럽게 합쳐지는 경계와는 사뭇

다르다. 이는 상대의 세계에 존재하는 경계 그리고 만나도 하나가 되지 못하며, 부딪 히면 부서지고 튕겨져 나갈 것 같은 반목의 경계에 관한 표현이다.

[그림 86] 작품 [분화]의 시각언어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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