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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문화 전체를 단 기간에 가르치고 배우는 일은 불가능하다. 이는 문화가 언어로 학습되는 부분도 있으나 그보다 많은 부분이 실제의 경험과 오랜 시간 체류를 통하여 습득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문화를 깊이 있게 가르치기보다는 문화의 여러 유형과 요소를 들어 학생들에게 문화다양성을 가르 칠 수 있는 교육요소를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여기서 언급하는 문화 요소는 제주 설화 <문전본풀이>에서 찾아 설명할 수 있는 문화 요소로 한정한 다. 앞서 논의에서 설화 속 문화 분류를 가치문화, 언어문화, 일상문화로 제안을 했다. 이 가운데에서도 특별히 선정 설화를 활용하여 학생들에게 인지시키고 문 화다양성을 보여줄 수 있는 요소를 들자면 다음과 같다.

문화 분류 문화 요소

Ÿ 주거문화

Ÿ 민간신앙

(1) 강인한 제주 여성과 성 평등적 가치

제주도는 예로부터 여성의 역할이 비교적 큰 지방이었다. 김혜숙(1999)46)은 문 전본풀이에서 남선비의 무능함이 곧 상대적으로 제주 남성의 위치가 열세에 있 었다는 점을 나타낸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본부인은 영악하거나 간교하지 않은 제주 여성 전형을 그려냈다면서 특별히 멋은 없으나 우직하고 순수하면서 직선 적인 유형이라고 하였다. 귀향하지 않은 남편을 앉아서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배 를 타고 찾아 갈 정도로 활동적인 모습도 보여 준다.

제주 설화는 여신 중심 무속 신앙이 그 특성이라고 하였다.47) 그는 유독 제주 신화에 여성신의 출생담이 많다는 특징을 예로 들어 초공, 이공, 세경, 칠성본풀 이에 늙도록 자식이 없어 근심하다가 기자치성을 드리고 자식을 얻는 장면이 나 오는데 여기서의 자식은 대체로 딸이라고 하였다. 또한 여성신의 적극적이며 현 실적인 혜안이 여러 본풀이에서 나타나는데 <송당계 본풀이>에서는 아내 백주 또가 남편 소로소천국에게 수렵을 접고 농경을 해야 한다고 권해 농경생활을 시 작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소천국이 밭을 갈다 싸간 점심을 이웃에게 줘버리 고 소까지 다 잡아먹자 화가 나 이혼을 요구하는데 여성 측에서 먼저 이혼을 요 구하고 잘못을 저지른 남편이 집을 나간다. 김혜숙(1999)은 이 장면을 아래와 같 이 설명한다.

이때 외지에서 혼입한 부인이 집을 나가는 것이 아니라 남편이 대책 없이 내 쫓긴다. 남편은 첩을 얻어 딴 살림을 차리고 있다. 한국의 전통가족에서는 부인 이 이혼을 당하여 쫓겨나는 게 통상적이다. 혼인 거주규칙의 관점에서 볼 때 초 혼에서 분명히 父處制의 성격을 띠었던 이들 부부가 이혼하게 되어서는 남편이 집을 나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남성 없이도 살아갈 수 있는 노

46) 김혜숙(1999), 『제주도 가족과 궨당』, 제주대학교 출판부

47) 김정숙(2000), 「제주도 신화 속의 여성 원형 연구」, 제주대학교 석사학위논문

동경제력을 지닌 제주 여성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출계가 명백한 부계 이고 도처에 가부장제적 성격이 농후한데도, 이혼제도에 있어서는 여성의 독자 적 결정권과 독립성의 측면 또한 만만치 않게 나타난다. 여기서 제주도 가족의 특성을 가리켜 ‘기혼여성 중심’이라는 지적도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48)

일상에서 여성의 권리는 신화적으로도 설명되는데 이는 제주 설화 가운데는 여성 영웅을 주인공으로 삼는 일화에서 찾을 수도 있다. <세경본풀이>의 자청비 를 살펴보면 자청비 이야기는 영웅의 일생을 닮았다. 조동일(1971)이 제시한 영 웅의 일생은 다음과 같다.

A. 고귀한 혈통을 지닌 인물이다.

B. 잉태나 출생이 비정상적이다.

C. 범인과는 다른 탁월한 능력을 타고났다.

D. 어려서 기아가 되어 죽을 고비에 이르렀다.

E. 구출 · 양육자를 만나 죽을 고비에서 벗어났다.

F. 자라서 다시 위기에 부딪쳤다.

G. 위기를 투쟁적으로 극복하고 승리자가 되었다.49)50)

여성 영웅이 등장해 위기를 극복하고 신으로 좌정한다는 이야기는 설화 중에 서도 특이하며, 주체적 여성상을 보여줌으로써 제주 신화를 대표하는 가치가 높 은 이야기다.

고민에 빠진 남성에게 여성이 적절한 해답을 주는 이야기는 <차사본풀이>에도 등장한다. 차사본풀이에서 악행의 결과로 세 아들이 죽고 이에 원통함을 느낀 과 양생이는 마을 원님인 김치원님에게 민원을 올리는데 김치원님은 사람이 왜 죽 었는가를 어떻게 산 사람이 답을 찾을 수 있겠냐며 속수무책 아무 일도 하지 못 한다. 그러던 중 그의 아내가 관원 중 가장 유능한 강림이에게 이 일을 해결하도 록 시키라며 꾀를 내어 준다. 여기서도 해답을 주는 것은 김치원님의 아내다. 그

48) 김혜숙(1999), 앞의 책, 157-158.

49) 조동일(1971), 「英雄의 一生, 그 文學史的 展開」, 『동아문화』 10, 서울대학교 동아문화연구 소, 165-214. 재인용

50) 조리라(2020), 「세경본풀이의 현대적 활용 양상 연구」, 경희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5-16.

런데 강림이도 마찬가지로 이 문제에 답을 찾지 못한다. 강림이는 문제를 안고 그의 본처에게 가서 하소연하는데, 본처가 다시 해답을 준다. 바로 저승으로 가 는 방법을 제시해 준 것이다. 두 남성인 김치원님과 강림이의 문제를 김치원님 아내와 강림이 아내가 해결해 주는 장면이다.

이러한 여성의 주요한 역할을 황인순(2020)51)은 <차사본풀이>에서 강림 부인 의 조력적 행위로 보아 설명하였다. 이는 이 서사에서 변형을 준 주체적 인물로 서 강림이 아내가 역할을 한다고 하였다. 특이한 점은 강림이 부인이 어떤 사람 인지 전후 어떤 묘사도 되어 있지 않으나 그녀는 이미 저승으로 가는 방법과 길 을 알고 있는 신적인 인물로 등장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제주 설화에 따르면 세계를 창조한 것은 창조신 ‘천지왕’이지만 제주를 창조한 것은 천지왕의 셋째 딸 ‘설문대할망’이다. 김창현(2018)52)은 설문대할망이 그리스 신화의 가이아와 비교해 거인이라는 공통점이 있으나 일반적인 여신의 모습과 달리 설문대할망은 노동을 통해 섬을 창조해 내는 장면이 나타난다고 하 였다. 설문대할망은 제주 섬에서 빨래를 하고 바느질을 한다. 그리고 흙을 날라 한라산을 만든다. 그의 노동 결과가 제주 곳곳에 전설로 남아 있는 것이다. 또한 치마가 찢어지고 헤질 정도로 가난해서 그 치마 틈사이로 흘러 떨어진 돌이 오 름이 되었다는 장면도 있다. 이런 설문대할망의 모습은 노동하는 민중과 제주 여 성을 대표하는 모습이라는 것이다. 즉, 설문대할망 설화에서 제주 여성의 노동력, 생산성, 창조력, 검소함, 강인함 등을 찾을 수 있다.

‘서귀본향당 본풀이’에서는 강인하다 못해 남자 신을 압도하는 여자신이 등장한 다. 한라산에서 태어난 산신 바람운53)이 고산국과 결혼을 하는데 고산국의 동생 인 지산국이 더욱 예쁜 것을 알게 돼 바람을 핀다. 바람운과 지산국은 한라산으 로 도피하는데 이를 알게 된 고산국이 활을 들고 따라와 둘을 죽이려 한다. 바람 운과 지산국은 고산국에게 잡혀 살려달라고 빌고 고산국은 차마 동생과 남편을

51) 황인순(2020), 「신화적 공간의 생성과 여성 주체 —〈차사본풀이〉의 강림 부인을 중심으로」,

『여성문학연구』49, 118-141.

52) 김창현(2018), 「제주 여성신화에 나타난 글로컬리티와 세계화 전략- ‘설문대할망’과 ‘자청비’를 중심으로」, 『인문학연구』 30. 347-372.

53) 바람운은 전승에 따라 ‘바람웃도’로 나타나기도 하는데 한라산에서 솟아났다고 한다. 그러나 바 람운의 출신에 대해 ‘홍토나라 비오나라’라는 설정은 그가 토착신이 아닌 유입신일 가능성도 보 여 준다고 할 수 있다.(권태효, 2011)

죽이지 못하고 갈라선다. 이 설화에서 고산국은 도술에 능하고 활을 잘 쏘는 장 부의 모습을 보여 준다. 이는 곧 권력자의 모습이며 이런 이야기의 전승은 제주 도에서 여성 권력이 어떤 방식으로 존재해 왔는가를 간접적으로 보여 주는 모습 이 될 수 있다.

(2) 지역 공동체 ‘궨당’문화

‘궨당’54)은 제주 방언으로 좁은 의미로는 친인척을 포함한 혈연으로 맺어진 가 족을 뜻하며, 넓은 의미로는 지역에서 가족과 같은 인간관계를 맺는 이웃들을 말 한다. 엄밀한 의미에서 실제 궨당과 궨당 문화에서 쓰이는 궨당과는 그 뜻이 조 금 다르다. 실제로 궨당이라고 쓰이는 어휘는 친인척의 의미로 더 자주 쓰이고 궨당 문화에서의 궨당은 제주도 전체 가운데 일정 지역 내에서 교류하는 사람들 을 뜻하는 단어로 쓰인다.

김혜숙(1999)은 통혼권(通婚圈)의 개념으로 궨당 문화의 형성을 이야기하였다.

통혼권이란 남녀 간 혼인이 이루어질 수 있는 일반적인 범위와 집중도를 말한다.

이 통혼권은 생존 전략이 반영된 것인데 인력의 혼입(婚入)과 혼출(婚出)이 이 범위 안에서 발생하며, 또한 혼인으로 맺어진 친가, 외가, 처가가 외적으로 커질 수 있음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이 연구에 기반을 두고 추론해 보자면 섬 외부와 교류가 활발하지 않던 시대는 통혼권이 육지 본토보다 좁아질 수밖에 없는 환경 이었으며, 이것이 자연히 폐쇄적인 집단의식 형성으로 발전할 수밖에 없다는 말 이 된다. 궨당 문화는 이런 환경에서 자연스레 형성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궨당 문화는 현대의 가치문화로서 어떤 긍정적인 의미가 있을까. 이 문화는 ‘협 력’과 ‘협동’을 기반으로 한다. 궨당 문화는 여전히 유효한 문화로서 특히 지방 선거 및 국회의원 선거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55)

앞서 언급했듯 가치문화라는 것은 그 문화권에서 오랜 시간 형성된 것이기 때 문에 그것이 어떤 시대나 관점으로 부정하고 없앨 수는 없는 것이다. 오히려 이

54) 궨당은 ‘권당(眷黨)’에서 온 말이라는 유래가 있다.

55) 김도원, 김우현, 김도훈, 김인균(2020). 「제주 궨당정치의 지속과 변화-2020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를 중심으로-」. 『濟州島硏究 54』. 79-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