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색 결과가 없습니다.

대북정책의 기본방향

1998년 국민의 정부가 들어설 당시 남북한관계는 거의 원점에서 적대적인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북한은 “통미봉남”의 기본틀 하에 미국과의 대화에

59) 북한은 2002년 12월 12일 IAEA에 대해 핵시설 봉인장치와 감시카메라를 제거해 줄 것을 요청하였고, 이를 IAEA가 수용하지 않자 북한은 12월 21일부터 영변 원자로 동결 감시장비 해제를 일방적으로 시작하였고, 27일에는 IAEA 사찰단의 추방과 방사화학실럼실의 재가동 방침을 IAEA에 통보하였다. 이는 2003년 1월 10일 NPT 탈퇴 선언으로 이어졌다.

제 4 장 차기 행정부의 통일 및 북한 정책

치중하면서 한국과의 대화는 중단한채 한국을 의도적으로 배제하는 정책을 펼쳤다. 국민의 정부는 이를 타개하고 “한반도 문제의 한반도화”의 목표 하 에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고 북한에 대한 접촉을 시작하였다. 한반도 분단의 고통을 극복하는 방안은 북한과 화해하여 적대감을 줄임으로써 물질적․정 신적 소모를 최소화하여야 한다는 것이 햇볕정책, 포용정책 또는 화해․협력 정책을 추진한 김대중 정부의 철학이었다. 더구나 IMF 구제금융 의존을 벗 어나기 위한 외자를 유치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있어서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이 절대 조건이었다. 이를 위해서도 북한과의 화해와 협력이 필요하였 다.

당시 한국정부는 화해․협력적인 대북정책을 추진하기 위하여 대북 3원칙 과 5대 과제, 6대기조를 제시하였다. 대북3원칙은 무력도발 불용, 흡수통일정 책 배제, 화해․협력 추진을 내용으로 하였고, 5대 과제는 ① 남북한간의 대 결적․불신적 관계를 화해와 협력의 관계로 전환, ② 북․미와 북․일간의 관계정상화 실현, ③ 북한이 국제사회의 책임있는 구성원으로 활동할 수 있 도록 환경과 조건 조성, ④ 한반도에서의 대량살상무기 제거와 군비통제 시 행, ⑤ 남북한간 정전체제의 평화체제로의 전환과 법적 통일(de jure unification)에 앞선 사실상의 통일(de facto unification)상황의 실현 등이었 다. 이를 바탕으로 하여 추진한 정책의 6대기조는 ① 안보와 협력의 병행 추 진, ② 평화공존과 평화교류의 우선실현, ③ 화해와 협력에 의한 북한의 변 화여건 조성, ④ 남북간 상호이익 도모, ⑤ 남북 당사자원칙의 국제적 지지 확보, ⑥ 국민적 합의에 기초한 대북정책 추진 등이었다.

김대중 정부는 포용정책을 단계적으로 추진하였다. 첫 단계에서는 정경분 리원칙에 의하여 교류․협력을 하는데 있어서 정치적 요소를 배제하고 경제 교류와 협력을 우선적으로 추진하였다. 당국자간의 협상은 배제한 채 민간에 의한 교류만을 추진하여 금강산 관광 등의 협력사업이 성사되었고, 물자 및 인적교류가 확대되었으며, 10여개의 기업들이 북한에 직접투자를 하였다. 이 러한 기능주의적 접근이 효과를 거두어 2000년 6월 남북한 정상회담이 개최 되었고 이후 국방부장관 회담, 장관급회담 등이 열려 정경분리가 아니라 정 경연계하에 보다 폭 넓은 관계를 증진시키는 신기능주의적 접근을 하게 되 었다.60)

60) 기능주의와 신기능주의는 유럽통합을 설명하는 통합이론의 하위이론으로써 기능주의는 통합 을 하기 위해서는 비정치분야의 교류․협력부터 시작하면 정치분야까지 자동적으로 확산된다 는 점진적이고 단계적인 이론이며, 신기능주의는 정치분야까지 자동적으로 확산되는 것을 기 다리는 소극성에서 벗어나 초기단계부터 관료가 중심이 되어 정치분야도 포함하여 교류․협 력을 하여야 통합까지 이룰 수 있다는 이론이다. 통합이론은 김계동, “지역통합이론 연구: 유

이러한 포용정책은 초기단계에서는 북한이 거부하여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하였으나, 2000년 정상회담 이후 획기적인 남북한 관계개선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또 다른 결실은 북한의 남한정부에 대한 의존도를 높인 것이다.

1999년 6월과 2002년 6월 서해교전이 발생하였음에도 금강산 관광사업이나 남북한 교류가 중단 또는 축소되지 않고 계속 유지되었다는 점은 남한으로 부터의 지원과 교류․협력에 의한 이득이 북한의 체제유지에 큰 부분을 차 지하기 시작하였다는 점을 나타내었다. 또한 북한주민들의 남한에 대한 인식 을 변화시켰다. 시드니 올림픽 동시입장, 올림픽 등 국제경기장에서 한국기 자나 선수들에게 보이는 북한선수들의 유연한 태도, 부산 아시안게임 참가 및 대규모 응원단 파견 등은 과거 적대적인 상황에서는 볼 수 없었던 획기 적인 변화라 할 수 있다. 북한 주민들이 이와 같이 적대감을 버렸다는 점은 한국의 포용정책에 의한 남북한의 인적교류 확대와 인도적 지원이 큰 영향 을 미친 것으로 판단된다.

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은 김대중 정부의 대북 화해․협력정책의 기본틀 을 유지하면서, 사안별로 새로운 상황변화에 따른 차별점을 보일 것으로 전 망된다. 노무현 당선자는 대통령 선거공약에서 대북정책 5대 원칙(평화-번영 의 5대원칙)으로 ① 신뢰우선, ② 국민합의, ③ 군사와 경제안보를 함께 하는 포괄적 안보, ④ 장기적 투자로서의 경제협력, ⑤ 당사자주도의 국제협력을 제시하였다. 또한 대북정책의 중점과제로 남북 화해․협력의 제도화,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해결, 북․미 및 북․일 관계정상화를 위한 외교적 협력, 북한 의 개혁․개방지원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동북아시아 경제 및 평화 협력 체 창설 등으로 설정하였다. 노무현 당선자가 대통령 취임 후에도 후보 당시 에 제시한 원칙과 과제를 그대로 이어나갈지는 불분명하지만, 민주당 정권이 그대로 계승한다는 점, 인수위 통일 외교 안보위원의 인적구성, 노무현 당선 자의 북한에 대한 기본 철학 등을 살펴 볼 때 국민의 정부가 추진하였던 포 용정책이 노무현 정부 대북정책의 근간이 될 것으로 보인다.

김대중 정부는 집권 당시 원점으로 돌아간 남북한 관계를 정상궤도로 진 입시키는데 치중하였기 때문에 정경분리 원칙 등을 활용하면서 비체계적이 고 비구조적인 대북정책을 추진하였지만, 앞으로 노무현 정부는 남북한관계 를 보다 제도화하는 방안을 강구할 것으로 보인다. 국정 10대 과제중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은 비제도적인 교류․협력을 보다 제도화하자는 의미로 해석 할 수 있다.

노무현 정부가 유연한 대북정책을 추진하는데 있어서 두 가지 큰 걸림돌

럽통합을 중심으로”, 『세계정치연구』, 제1권 제2호, 2002년 1월을 참조할 것.

제 4 장 차기 행정부의 통일 및 북한 정책

이 존재하고 있다. 첫째, 미국과의 정책조율 문제이다. 신정부가 추진할 유연 한 대북정책을 부시정권의 북한에 대한 강압정책과 조화시켜야 하는 문제이 다. 둘째, 국민의 지지를 확보하는 과제이다. 김대중 정부는 초기에 포용정책 을 추진할 때 70% 이상의 국민적 지지를 받으면서 시작하였지만 정권 말기 에는 국내정치의 부정적 요인이 영향을 미쳐 대북정책도 강한 비판을 받게 되었다. 노무현 정부는 이와 같이 비판적인 여론 속에서 포용정책을 실시해 야 하는 부담을 가지고 시작하게 되었다. 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 성공과 실 패는 이 두 가지 과제를 어떻게 해결하는가에 의하여 좌우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