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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하시 본 「춘향전」과 「흥부전」에 대한 개략적 검토

문서에서 근대 유학의 문화 지형과 조선학 (페이지 118-123)

- 다카하시 본 「춘향전」과 「흥부전」의 번역 사례를 중심으로

2. 다카하시 본 「춘향전」과 「흥부전」에 대한 개략적 검토

1) 수집 배경

위에서 언급했듯이 다카하시는 병합 직후인 1910년 9얼 5일에 『조선물어집』을 간행하 면서 ‘모노가타리’라는 제명을 통해 자신이 다루고 있는 작품들을 ‘이야기’(物語)라고 명 명한다. 그런데 이 책은 설화와 소설을 같은 이야기로 배치했다는 점에서9), 여러 논쟁을 낳았다. 이 책의 자서(自序)에서 그는 ‘이야기’(物語)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야기란 사회생활의 정수를 축소한 그림으로, 어떤 것은 지극히 상대(上代)의, 어떤 것은 시 대가 흘러 중세(中世)의, 혹은 가까운 과거의 사람들의 손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으로, 사회의 흥미를 자극하여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계승되어 오래도록 전해져 온 것이다.10)

이 자서에서 다카하시는 자신이 『조선물어집』을 편찬한 것은 조선의 사회정신과 사회이 상을 이해하기 위한 작업임을 밝히고 있다. 이와 함께 이야기에 관련된 조선인의 고차원

7) 정장순, 「다카하시 도루의 『조선의 모노가타리』의 편찬의도와 배경, 『고전과 해석』21, 고전문학한문학 연구학회, 2016; 권혁래, 「근대 초기 설화⸱고전소설집⸱『조선물어집』의 성격과 문학사적 의의」, 『한국 언어문학』64, 한국언어문학회, 2008; 박미경, 「다카하시 도루(高橋亨)의 조선속담연구 고찰」, 『일본문 화학보』28, 한국일본문화학회, 2006.

8) 이상현⸱이진숙⸱장정아, 「<경판본 흥부전>의 두 가지 번역지평 – 알렌, 쿠랑, 다카하시, 게일의 <흥부 전> 번역사례를 중심으로」, 『열상고전연구』47, 열상고전연구회, 2015; 권혁래, 「다카하시(高橋)본 <춘 향전>의 특징과 의의」, 『고소설 연구』24, 한국고소설학회, 2007. 정대성, 「『춘향전』 일본어 번안 텍 스트(1882~1945)의 계통학적 연구 -<원전>의 轉移양상과 多聲的 얽힘새-」, 『일본학보』43, 한국일본 학회, 1999.

9) 이 책에 수록된 작품 목록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목차

혹부리 영감, 성황당, 가난한 군수가 돈을 얻다, 거짓말 겨루기, 풍수선생, 사시에 관을 내려 오시에 발복하다, 대구를 지어 죽다 살아나다, 말하는 남생이, 도깨비가 금은 방망이를 잃어버리다, 가자 명인, 흥부전, 음란한 스님이 생두 네 되를 먹다, 반쪽이, 무법자, 눈뜬

자가 맹인을 속이다, 맹인이 요괴를 쫓아내다, 기생열녀, 버짐병 아이가 비를 맞추다, 쌍둥이가 열 번 나오다, 한국풍 마쓰산 거울, 선녀의 날개옷, 부귀유영 영달유운, 사람과

호랑이와의 싸움, 신호, 장화홍련전, 재생연, 춘향전, 독부 10) 다카하시 도루, 편용우 역, 『조선의 모노가타리』, 역락, 2016, 9-10면.

적인 감성을 파악할 수 있는 기대를 피력했다. 그는 이야기를 연구한 것에 대해 ‘사회생활 의 정수를 압축한 그림으로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오랫동안 전승되어 온 것’이 라 밝힌다. 이 책에서 나타나는 다카하시의 소설에 대한 인식은 설화·민담과 크게 차이가 없어, 이른 시기부터 조선의 문학을 재단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다카하시가 1927년에 발표한 논문 「조선문학연구 –조선의 소설」을 보면, 고소 설은 설화와 분리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조선물어집』에서 보여준 준거와는 분명히 다른 기준으로, 그가 적어도 이 시기에 이르러 소설과 이야기를 구분하여 인식하 게 됐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11) 하지만 『조선물어집』을 편찬할 당시의 다카하시는 소설 과 설화를 모두 이야기로 포괄하려 했다는 점에서 1927년과는 분명한 변별점을 지니고 있었다. 그렇다면 다카하시는 어떠한 의도에서 조선의 이야기를 번역하고자 했는가?

사회관찰자는 있는 그대로의 생활 속에서 움직이지 않는 풍속과 습관의 특색을 인식하지 않 으면 안 된다. 풍속과 습관을 연구하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더욱 그 풍속과 습관을 일관하 는 정신을 파악해서 그 사회를 통제하는 이상(理想)으로 귀납(歸納)시켜야만, 비로소 사회연구 를 마쳤다고 할 수 있다. 이 사회정신과 이상을 완전히 발견하는 것은 그들의 대강(大綱)을 내 리는 것과 같아, 위정자와 사회정책자의 경영 시설에도 큰 공헌을 할 것이다. 즉 민중의 마음 의 근원을 헤아려서 그 위에 인재를 육성하는 궁리를 할 수 있게 되었으면 한다. 나는 작년부 터 위와 같은 목적으로 조선의 이야기와 속담을 수집하고 모아서 이 책을 만들었다.12)

여기서는 다카하시가 자신의 정체성을 사회관찰자로 인식하고 있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사회관찰자는 생활 속의 풍속과 습관의 특색, 그리고 그 사회정신과 이상을 발견 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 조선에 전래되던 과거의 이야기와 속담을 수집했다는 것이다. 또 한 조선의 옛날이야기는 조선인의 이상적 생활이나 당시의 시대상을 엿볼 수 있는 도구로 보고, 조선과 조선 민중들을 살피는 도구로서 이야기 문학을 연구해야 한다고 하였다.

이는 조선의 이야기를 수집하는 가장 큰 동기가 궁극적으로 일본인 위정자나 사회정책 자들의 조선 경영에 공헌하기 위함이었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더불어 그 논 리 속에는 조선(문학)과 대비되는 일본(문학)의 우위를 점하는 식민사관이 작동하고 있었 다. 이러한 논리는 물론 과거 일본이 서구와의 차이 속에 자신을 대등한 존재로 규정하고 표상한 방식이기도 했다.13) 그리고 이러한 자기 인식은 다카하시가 『조선물어집』을 편찬 하면서 조선보다 일본의 시각에서 작품을 선별하였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각 이야기의 말 미에 다카하시의 비판적 주석이 달려 있는 것도 그러한 연장선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 다.

2) 수집 과정

다음으로 『조선물어집』에 수록된 작품의 수집 과정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11) 다카하시의 「조선문학연구」에 대해서는 이상현⸱류충희, 「다카하시 조선문학론의 근대학술사적 함의-타카하시 도루의 ‘조선문학연구-조선의 소설’을 중심으로」, 『일본문화연구』42, 2012, 353-379면 참 조.

12) 다카하시 도루, 편용우 역, 앞의 책, 10면.

13) 스테판 다나카, 박영재⸱함동우 역, 『일본 동양학의 구조』, 문학과 지성사, 2002, 102-109면 참조.

① 다카하시 군은 우리 도쿄제국대학 문학과 한학과 출신으로, 오랫동안 한국의 수도에 머무 르며, 그 지역의 고등학교 학감으로서 많은 한국인 제자를 교육하였기에, 한국어에 능통하고, 한국인의 정서에도 익숙하다. 다카하시 군의 고등학교에는 여러 지역에서 배우러 오는 학생들 이 모였기 때문에, 넒은 지역의 이야기와 속담을 연구하기에 편리하다. 이를 바탕으로 다년간 많은 이야기를 채록⸱조사하고 수집하여 이 책을 펴낼 수 있었다. (…중략…) 책 속에 수록된 상 중류 신사들의 가옥 삽화와 같은 것은 다카하시 군이 나의 부탁을 받아들여서 특별히 조사한 것이다. 무릇 그와 같은 조사는 다카하시 군과 같이 한어(韓語)에 능통하고 그 나라의 사정에 익숙해져야만 잘 할 수 있는 것이다.14)

② 춘향전은 이 나라의 가장 넓게 전해지는 이야기이다. 조루리, 연극, 혹은 초심자 가락으로 춘향전을 연주하지 않는 경우는 없다. 춘향전, 재생연, 장화홍련전 등의 이야기는 가나문(假名 文)으로 쓰였으며, 이삼 전의 책으로 서울과 시골 곳곳의 서점에서 판매되어 중류층 이상의 부 녀자는 서로 모여 이를 열람하고 그 주인공에게 동정하여 여자의 덕 연마에 일조하게 된다. 생 각해보면 이 이야기들이 주는 감화는 일본의 바칸(馬琴) 작품이 막부시대 가정에게 주었던 영 향과 비슷하다. 이들 이야기 역시 이 나라의 남녀관계 내지는 상류층 부인의 도덕을 관찰하는 좋은 자료로는 충분한 것이다.15)

인용문 ①은 일본의 역사학자이자 다카하시의 도쿄대 은사이었던 하기노 요시유키가

『조선물어집』의 수집 경위를 설명한 내용이다. 두 가지 점이 뚜렷하다. 다카하시가 자신이 가르치는 학교에 다니는 조선인 학생들을 통해 각 지역의 이야기를 수집하였다는 것이 그 하나고, 자신의 협력 안에서 다카하시의 책이 편찬된 사실이 다른 하나다. 이와 같은 하기 노의 서문을 통하여 우리는 다카하시가 참조했던 작품의 수집 과정에 관한 중요한 단초를 엿볼 수 있다.

그것은 다카하시가 학생에게 제보 받은 이야기를 그대로 수록한 것이 아닌, 자신의 의 견을 강조할 수 있는 작품만 선별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는 수록된 작품에 주석 을 달아 놓은 사실에서 쉽게 확인되지 않을까 한다. 한편 『조선물어집』의 서문을 쓴 하기 노는 단순히 은사 정도가 아닌, 조선의 민간 설화에 지대한 관심을 보인 실제적인 기획자 로 판단된다. 책 속에 하기노의 의견이 결부된 데에도 그런 영향이 작용하지 않았을까 생 각한다.

인용문 ②는 「춘향전」 주석의 일부분으로, 여기에서 다카하시는 「춘향전」, 「재생연」,

「장화홍련전」 등을 번역한 이유에 대해 간략히 언급하고 있다. 요약하면, 이 이야기들은 조선의 중상류층의 부녀자들이 열독하는 이야기인데, 일본 에도 시대 바킹의 이야기가 주 는 감화력과 비슷하다는 점에서, 조선의 남녀관계 및 상류 부인의 도덕을 관찰하는데 좋 은 자료가 된다는 것이 요지다.

한편 작품의 수집과 관련해서 생각해볼 지점은, 다카하시가 일본의 조루리(淨流璃)나 시 바이(芝居)와 「춘향전」의 연행을 함께 언급하고 있다는 점이다. 「춘향전」이 연극으로 연주 되었다는 것은 국극 형태의 판소리 공연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이 점에서 “이러한 언급은 그가 판소리 공연을 실제로 보았다는 유력한 증거가 된다”16)는 견해도 나름 일리 14) 다카하시 도루, 편용우 역, 앞의 책, 5-7면.

15) 다카하시 도루, 편용우 역, 위의 책, 213면.

있는 주장이라고 할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다카하시가 「춘향전」의 연행만 언급하 고 있을 뿐, 좀 더 구체적으로 「춘향전」 번역과정에서 보았을 판소리 공연이나 그 창본을 제시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것은 「춘향전」이 독자들에게 매우 인기 있는 공 연예술작품이라는 일반적인 사실을 강조한 것으로 이해하는 게 보다 타당한 결론이지 않 을까 한다. 결과적으로

이를 통해 보면, 『조선물어집』에 수록된 작품은 다카하시가 관립중학교의 교사로 근무 하면서 수집⸱채록한 학생들의 구술 자료와 문헌 자료가 주요한 자료로 쓰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3) 원본 문제

원본에 대한 검토는 다카하시 본 「춘향전」과 「흥부전」 연구에 있어 가장 핵심적인 문제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점에 중요한 문제가 있다. 이는 다카하시가 「춘향 전」과 「흥부전」 번역과정에서 사용한 판본을 제시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의 『춘향 전』과 『흥부전』에는 여러 종류의 판본이 전해져 오고 있다. 하지만 이 당시 다카하시가 수집하여 번역에 사용한 『춘향전』과 『흥부전』은 어떤 판본이었는지가 아직 분명하지 않 다.

다카하시 본 「춘향전」에 대해 가장 먼저 주목한 연구자는 정대성이다. 정대성은 10여 종의 일본어 번안 텍스트와 한국어 원전의 공통 화소를 계통학적으로 고증하는 방식으로 대조하였다. 그 결과 다카하시 본 「춘향전」은 1882년 나카라이 본 「계림정화 춘향전」을 참고한 가능성과 함께 완판 84장본 『춘향전』까지 원전으로 삼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하였 다.17) 이후 권혁래의 연구가 다카하시 본 「춘향전」의 저본을 중점적으로 검토하였다.

권혁래는 먼저 다카하시 본 「춘향전」의 구성적 특징을 파악하기 위하여, 다카하시 본의 구성을 여섯 대목으로 분류하여 경판 16⸱17⸱30⸱35장본, 완판 26⸱29⸱33⸱84장본 등의 텍스트 들과 대비하였다. 권혁래가 주목한 여섯 대목은 다음과 같다.

①만남-아몽룡 소개/단오날 이도령의 광한루 행차/춘향 발견과 전언/춘향과의 만남(3쪽)

②사랑-이도령의 책방 모습/춘향집 방문/사랑 확인(3쪽)

③이별-도령 부친의 내직 발령/오리정 이별(0.5쪽)

④시련-이도령 장원급제/춘향의 수절/신관의 남원 부임/신관의 춘향 부름/수청 분부와 거잘(1.5쪽)

⑤어사 남행-어사와 종의 만남/어사와 농부의 만남/어사, 천안군수에게 옥졸 부탁/어사 월매 집 방문/어사의 옥 방문(6쪽)

⑥재회-군수 생일잔치/어사 옥졸들 단속/어사 후문으로 입장/생일 잔치에서의 어사 행위/

어사 출도/춘향과의 재회/월매의 기뻐하는 모습/어사의 공사 행위/어사 상경(3.5쪽)

권혁래는 여섯 대목을 대비한 결과에 근거하여, 이별 및 시련 대목의 비중이 상대적으 로 줄고 어사 남행 및 재회 대목의 비중이 높아짐으로 인해 춘향의 서술 비중이 약화되 고, 이몽룡의 서술 비중이 강화되는 결과로 나타남을 지적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구성적

16) 권혁래, 「다카하시(高橋)본 <춘향전>의 특징과 의의」, 앞의 논문, 385면.

17) 정대성, 「『춘향전』 일본어 번안 텍스트(1882~1945)의 계통학적 연구 -<원전>의 轉移양상과 多聲的 얽힘새-」, 앞의 논문, 197-217면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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