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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통론에 바탕한 개방적 민족주의

문서에서 근대 유학의 문화 지형과 조선학 (페이지 54-58)

‘위당 조선학’의 본심감통론이 지닌 시대적 의미

4. 감통론에 바탕한 개방적 민족주의

이광수에 따르면, 조선은 경제적, 도덕적, 정신적 파산상태에 있었다. 가장 심각한 것은 정신적 파산으로 조선 유학은 파산의 근본 원인이었다. 따라서 주체적 자각과 행위는 유 학의 무정신적인 상태와 구습에서 벗어나는 것에서 시작된다. 기실 조선 유학은 이미 개 항기 때부터 시대정신으로서 제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는 비판적 성찰이 제기되었다. 하지 만 이는 자기 비하와 부정으로 직결되지는 않았다. 반면 이광수는 주체적 자기의식을 갖 지 못했던 유학자들 때문에 조선이 정신적 능력을 상실했다고 여겼다. 조선 유학은 공상 과 공론으로서 정신의 기능을 소모시키고 마비시킨 망국의 이념으로서 결코 민족의 자산 이 될 수 없었다. 사대주의와 소중화 의식은 조선 유학의 무정신성과 무주체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었다. 조선민족은 타자에 동화되어 주체성을 상실한 파산한 주체이기에 ‘조 선인은 죽었다’고 선언했다.41)

조선 유학은 이광수에게 버려야 할 전근대적 유산에 지나지 않았다. 민족 재생의 길은 민족 개조를 통한 문명화로 공상과 공론이었던 유학과 단절을 통해 가능하며, 조선인의 주체적 자각과 행위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일본을 통해 유입된 신문명을 통해서라고 주장 했다.42)

이광수는 서구 선진국과 그들을 모방한 일본을 수용해야 할 문명으로 여기고 그 속에서 근대 주체로서 개인을 발견하고 추구했다. 하지만 박정심의 지적처럼, 그가 추구한 조선인 은 “서구 혹은 일본에 동화된 주체였다는 점에서 비주체적 주체”이다. 이처럼 “타자화된 정체성은 비주체적 정체성을 생성하고 비주체적 정체성을 자신의 삶에 대한 바른 판단과 대응을 불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참된 주체의식이라고 할 수 없다”43)

정인보의 본심론은 서구 선진국의 논의만을 중시하며 이를 수용하는 당대 지식인들에 대한 비판이지만, 동시에 이광수처럼 주체적 자기의식으로서 주체성을 잃고 무비판적으로 서구 문명과 일본의 식민담론을 받아들이는 것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다. 서구의 사유가 아닌 유학 자체의 사유를 통해 도덕 주체를 논한 정인보의 본심론은 조선 유학과 조선인 의 무주체성에 대한 대응 논리로서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큰 일임을 역설한다.44) 직접적으로 ‘감통’이란 용어는 나오지 않지만, 자신의 본심으로서 대중, 민중과 함께 서자는 주장은 감통론의 핵심이다. 이는 양명학연론에서 양명학을 통 해 상세히 논해진다.

양명학은 주자학과 함께 유학에 속하지만 여러 차이를 지닌다. 그 중 하나는 「대학」 제 1장45)에 대한 해석의 차이다. 주희는 백성을 가르쳐 새롭게 한다는 뜻으로 보고 제1장의

‘친(親)’을 ‘신(新)’자로 고쳐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왕양명은 명덕을 밝히는 일과 백성을 친하게 여기는 일은 하나라고 보고 「대학」 고본의 ‘친’이 옳다고 주장했다.46) 정인 보는 양명의 설을 부연하면서 “민중을 친하는 이것은 심내(心內)의 일”임을 지적한다. 백 성과 친함이 지극하지 못하면 ‘명덕(明德)’의 존재마저 의심하게 되므로 “민중과 나와의 관계가 조그마한 간격을 용납할 수 없도록 감통(感通)”해야 한다고 지적한다.47)

정인보는 「대학」 제1장의 ‘명덕을 밝히는 일’과 ‘백성을 친하게 여기는 일’ 양자가 마음 속 일로서 하나라는 주장은 조선 민중의 복리를 강조하는 민족주의자로서의 입장이 반영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에게 진실한 학문은 실심·본심을 바탕으로 조선 민중들과 감통하 여 그들의 복리에까지 나아가는 것으로 이 외의 것은 “실심 밖에서의 탐구”일 뿐이다. 이 처럼 “우리 민중의 복리를 도모하는 데서 우리 실심의 진상(眞相)을 볼 수 있음”48)을 역 설하는 정인보의 주장은, 내면의 본심을 살피는 ‘마음 속의 일[心內事]’을 국가 민중과 감 통하는 일로 연결하여 지식인의 조선 민중에 대한 도덕적 책임감을 촉구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정인보의 감통에 대한 논의는 ‘천지만물일체설’을 해설하는 과정에서 상세히 진행된다.

천지만물을 한 몸으로 여긴다는 ‘천지만물일체설’은 양명학의 핵심 이론이다. 이를 가능하 게 하는 근거는 ‘인(仁)’으로, ‘인’은 타자에 감통하여 그들의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여긴 다.

정인보는 ‘인’을 ‘애틋함[아틋]’으로 표현한다. 우리의 본심은 천지만물을 한 몸으로 여 기는 애틋함을 지니는데, 만일 본심의 애틋함이 드러나지 않는다면 이는 ‘사의(私意)’에 의한 것이다. 그는 이 애틋함이 드러나는 데는 “선후와 경중과 후박(厚薄)과 근소(近疏)”

의 “천연(天然)의 절도”가 있음을 지적한다. 분명 ‘애틋함’에는 “간격(間隔)이 없는지라”

천지만물이 한 몸이지만, ‘애틋함’이 드러날 때는 “내 부모에 비롯하여 남의 부모에 미치 고 내 친족[族類]에 비롯하여 멀리 다른 지역[遐域]에까지 미치는 것”이다. 후박이 아니고 는 ‘애틋함’의 “참핏줄을 찾아낼 수 없”다. 그는 “우주안의 일[宇宙內事]을 자기 안의 일 [己分內事]”로 생각하려는 이들은 천지만물을 하나의 몸으로 여기는 ‘애틋함’이 “천연한 후박으로 좇아 사모침을 깊이 생각[深念]”하라고 역설한다.49)

천지만물일체의 ‘인’이 선후·후박의 ‘차등애’에 따라 이루어진다는 정인보의 시각은 민족

44) 정인보 저, 담원 정인보전집 2, 연세대학교 출판사, 1983, 284쪽.

45) 「大學」, 제1장, “大學之道, 在明明德, 在親民, 在止於至善.”

46) 傳習錄, 「徐愛錄」, 제1조. 왕양명 지음, 정인재‧한정길 역주, 傳習錄: 실천적 삶을 위한 지침 1, 청계, 2007, 75~77쪽.

47) 더불어 정인보는 양명이 “늘 사람으로서 고유한 ‘알음’ 즉 ‘양지’를 제창한지라, 책에만 구하지 말라, 네 ‘양지’에 구하라 하여 심외(心外) 일보를 내딛지 못하게 함으로 국가 민중을 심내사(心內事)로 통 감(痛感)”하였음을 지적하고 있다. 전집본 121쪽, 역해본 74쪽.

48) 전집본 123쪽, 역해본 84쪽.

49) 전집본 130~131쪽, 역해본 111~113쪽.

주의자로서 입장이 반영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후박이 없고서는 애틋함의 참된 핏줄을 찾을 수 없다는 논리를 조선에 적용하면, 조선인이라면 마땅히 조선 민족에 감통하여 이 들의 아픔을 알고 이들의 복리를 도모하며 조선의 국권을 회복해야 한다. 본심의 감통을 말하는 정인보의 시각은 민족을 향해있다. 한정길의 말처럼, 정인보가 천지만물일체설을 통해 “천지만물을 한 몸으로 여기는 ‘애틋함’에 후박이 있음을 특별히 강조한 것은 조선 민중의 복리를 도모하고 잃어버린 국권을 회복하고자 한 때문”이다.50)

정인보의 감통론은 양명의 ‘발본색원론(拔本塞源論)’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또 상세히 제 시된다. 발본색원론에서 양명은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금수와 같은 지경에 떨어 지게 하는 근원처인 유아지사(有我之私)와 물욕지폐(物欲之蔽)의 ‘뿌리를 뽑고 그 근원을 막아야 함’을 강조하며, 인간 내면에 품부된 천리로서의 양지를 밝히기만 하면 만물일체의 대동 사회에 도달할 수 있다고 했다.51)

정인보에 따르면, 양명의 발본색원론은 “간단히 말하면 ‘친민’에 대한 설명이요, 좀더 자세히 말하면 ‘동체(同體)의 인(仁)’을 이에서 감발(感發)케 하도록 한 것”이다. 「대학」에 서 백성을 친애하는 ‘친(親)’과 자신의 명덕을 밝히는 ‘명(明)’은 하나로, 내 마음이 타고나 면서 지닌 ‘밝음’을 밝히는 것과 집안, 나라, 천하에 대한 ‘애틋함’이 둘이 아니다. “이 밝 음이 아니면 이 아틋이 없고, 이 아틋이 없으면 이 밝음이 아니다. 학문의 골자가 이 한 곳에 있는 것이니” 한순간이라도 “백성‧사물[民物]과 나와의 일체적 감통(感通)이 없을진 대 내 마음의 본체(本體)가 없어짐”이다. 백성의 아픔과 괴로움이 곧 나의 아픔과 괴로움 으로 “감통됨에 있어 피차의 간격이 없는 것”이 바로 “본심의 체(體)”이다. “간격만 없으 면 감통이 있다.”52)

정인보는 본심 양지를 밝히는 일과 백성과 감통하여 친애하는 일이 하나임을 강조한다.

백성과 감통하지 못하고 간격을 두는 것은 본심 양지의 발현을 막는 일이다. 본심 양지의 발현은 백성을 친애하는 감통에서 드러난다. 그래서 정인보는 계속해서 본심의 감통을 강 조한다. “본심이란 감통에서 살고 간격에서 죽는다.” 감통은 “곧 천지만물 일체의 인(仁) 의 원천인 동시에 ‘우주’와 ‘기분(己分: 나)’이 하나요 둘이 아닌 대원리”가 “증명되는 것”

이다. “감통을 따로 말하랴, 양지는 곧 감통이요, 간격을 따로 말하랴, 기사(己私)는 곧 간 격이다.”53)

정인보가 양명학연론을 저술하게 된 계기는 실심 환기, 본심 환성을 말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본심 양지는 민중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느끼는 감통 능력을 지니며, 어떠한 ‘간 격’ 없이 민중과 감통하는 데서 발현된다. 이 때문에 그는 양명학연론에서 내면의 본심 을 불러일으켜 민중과의 감통해야 함을 지속적으로 강조한다. 그는 양명학연론, 「후기」

에서도 민중의 아픔과 가려움이 곧 나의 아픔과 가려움임은 “실로 내 마음의 본체”가 그 러한 것임을 지적한다. 그리고 말한다. “누구나 ‘내 본밑마음의 천생으로 가진 앎’을 찾으 려거든, 스스로 속일 수 없는 곳을 묵성(黙省)하여 보라. 스스로 속일 수 없는 그곳의 참 된 체[眞體]를 찾으려거든 민중과의 감통, 간격에 있어 어느 것인가를 이를 자증(自證)하

50) 역해본, 한정길 해석, 114쪽.

51) 발본색원론은 傳習錄, 「答顧東橋書」, 제142조, 왕양명 지음, 앞의 책(2007), 420~427쪽, 이에 대 한 해설은 같은 책(2007), 한정길 해설, 425~426쪽 참조.

52) 전집본 175~176쪽, 역해본 281~283쪽.

53) 전집본 177~178쪽, 역해본 284~285쪽.

여 보라.”54)

양명학연론에서 보인 민중과의 감통 중시는 민족주의자로서 정인보의 입장이 반영된 것이다. 감통에는 후박이 있어 내 가족에서 민족, 국가로 나아간다. 하지만 자연스러운 선 후·후박에 따라 내 가족과 민족을 우선시하는 것일 뿐 이는 타자를 배타적으로 대하는 것 은 아니다. 감통은 최후에는 천지만물로까지 나아간다. 정인보의 민족주의는 근본적으로 타자와 타민족, 나아가 인류에게 열려있다.

민족주의자로서 정인보의 조선학 연구는 양명학연론 이후에 조선사연구로 이어진 다. 일제강점기 하에서 민족주의자들은 조선의 정신을 일깨우기 위해 조선인의 혼, 백, 얼 등을 역설했는데,55) 정인보는 ‘저는 저로서’로 표현되는 ‘얼’이라는 개념을 제시하고, ‘조 선의 얼’을 바탕으로 조선 역사를 서술했다. ‘얼’은 “‘어떤 사람이 그 사람으로 존재할 수 있는 참된 근거’, ‘남과 구분되는 자기 정체성’으로서의 정신”을 뜻하며, ‘조선의 얼’은

“조선민족이 고유하게 지니고 있는 민족정신”을 뜻한다.56) 여기서 정인보는 몸과 얼을 대 비시키며 감통론에 바탕으로 자신의 사욕을 극복하고 겨레와 한 몸을 이루어야 함을 역설 한다.57) 이러한 얼 사상은 “주체적 자아로서의 ‘얼’의 범주를 사회와 민족의 차원으로까지 확장시킨” 것으로서,58) “양명학의 양지론을 비롯한 유교 철학의 정수를 조선학의 실심 개 념으로 종합하여 민족사와 민족 사상의 실체를 해석하는 틀로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얻은 결과”로 평가된다.59)

정인보는 민족주의 계열로서 조선 민족의 부흥을 부르짖은 민족주의자이다. 그는 얼 사 상에 바탕하여 조선의 역사를 서술함으로써 조선 민족의 정신을 드러내려 했다. 하지만 감통론에 바탕한 그의 민족주의는 배타적이지 않고 개방적이다. 이는 양명학을 충효군국 주의에 봉사케 한 일본 양명학과는 큰 차이를 지닌다.

앞서 보았듯 다카하시는 조선 유학과 조선 민족의 특성을 고착성, 종속성 등으로 특징 지우며 일제의 식민지배의 정당화하고자 했다. 그가 식민지배의 정당화를 위해 조선 유학 을 이해한 틀은 그의 스승이었던 도쿄제국대학에서 동양철학을 강의했던 문과대학 학장 이노우에 데쓰지로(井上哲次郞, 1855~1944, 이하 ‘이노우에’로 약칭)로 영향으로 알려진 다.60)

일본 메이지 시기에 양명학은 정부의 지원 속에서 서구 근대화에 제동 역할을 하며 일

54) 전집본 238쪽, 역해본 570~571쪽.

55) 조선의 정신 혹은 정체성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는 개념으로 신채호는 ‘아(我)’, 박은식은 ‘국혼(國 魂)’, 문일평은 ‘조선심(朝鮮心)’ 등을 제창했다. 전종윤, 「리쾨르의 ‘이야기 정체성’ 이론을 통해 본 정인보의 ‘단군조선’과 ‘얼’ 사상」, 동서철학연구 98, 한국동서철학회, 2020, 608쪽.

56) 정인보 저, 한정길 역해, 양명학연론: 본심이 감통하는 따뜻한 세상, 아카넷, 2020, 21~23쪽.

57) 정인보에 따르면, 사람은 7척밖에 되지 않는 왜소한 몸을 가졌지만 7척에 국한되지 않는 ‘얼’을 지 녔다. “‘저는 저로서’의 그 ‘얼’은 가깝게 일민족으로부터 크게 전인류 내지 천지 만물에 이르러 일체 (一體)인 것”이다. 그래서 남을 위해서라면 그들의 슬픔과 고통을 자신의 슬픔과 고통으로 느끼고 기 꺼이 위험을 무릅쓴다. 하지만 7척밖에 되지 않는 테를 벗어나지 못한다면 편협하고 하찮게 변해버린 다. 이렇게 자신을 국한하는 왜소한 테는 바로 ‘이기심[己]’, ‘욕심[欲]’, ‘사심[私]’으로, 이는 반드시

“‘저로서’라야 스스로 극복하고 제어[自克 自制]할” 수 있다. “저는 저로서”의 그 ‘자신’이 겨레와 틈 새가 없이 혼연 일체로 한 몸을 이루게 되면 자신은 광대해질 수 있다. 정인보 저, 담원 정인보전집

 3, 연세대학교 출판사, 1983, 12~13쪽. 정인보 지음, 앞의 책(조선사연구, 2012), 70~72쪽.

58) 정인보 지음, 문성재 역주, 조선사연구: 오천년간 조선의 얼 上, 우리역사연구재단, 2012, 23쪽.

59) 이황직, 앞의 논문(2010), 31쪽.

60) 이혜경, 앞의 논문(2019), 224~2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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