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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당 조선학’의 본심감통론이 지닌 시대적 의미

5. 나오는 말

정인보는 일제강점기에 통해 조선 유학, 국학, 조선학을 탐구했다. 그가 조선 양명학과 실학에 관심을 기울여 연구하고, 오천년간 조선의 얼에서 ‘조선의 얼’을 바탕으로 조선 역사를 서술한 것은 민족주의자로서 국권회복이라는 시대적 과업을 해결하려는 고심의 발 로다. 정인보는 조선 후기에 새롭게 나타한 학문 경향을 제시하고, 그 학문 정신의 핵심인 실심·본심을 불러일으켜 발양하는 방식으로 조선의 각 개인, 나아가 민족의 본심을 일깨우 고자 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민족 정체성인 ‘조선의 얼’을 되살려 국권회복이라는 민 족 과제를 해결하고자 했다고 볼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정인보가 제시한 학문의 핵심은 ‘본심의 감통’이다. 본심은 실심, 양지와 동일한 내포를 지닌 용어로서 우리 내면의 마음의 본체, 본밑 마음이다. 정인보는 ‘본심의 환기’를 주창하는 동시에, 본심 양지를 밝히는 일이 민중과 ‘감통’하는 것과 하나라고 역 설한다. 그는 양명학의 치양지설, 친민설, 발본색원론 등을 통해 ‘본심 감통’의 의미를 상 세히 제시한다. 여기서 정인보의 시선은 항상 민중과 민족으로 향해있다. 본심의 환기는

61) 이혜경, 「양명학과 근대일본의 권위주의-이노우에 데츠지로와 다카세 다케지로를 중심으로」, 철학 사상 30, 철학사상연구소, 2008, 10쪽.

62) 상동, 19쪽.

63) 상동, 28쪽.

민중과 감통하는 일과 하나다. 이는 민족주의자로서의 입장이 강하게 반영된 것이다. 한정 길의 말처럼,64) ‘본심감통’ 네 글자는 정인보 학문의 종지로서 ‘본심에 의한 민중과의 감 통’은 바로 당시 도탄에 빠져 있던 조선의 민중을 구제하려는 강력한 구세정신의 표현이 라 할 수 있다.

정인보의 본심감통론은 강화양명학의 전통을 계승, 발전시킨 것이다. 일제강점기라는 시 대적 상황 속에서 그의 본심감통론은 유학망국론, 조선인 무주체성론, 일본의 충효군국주 의 등에 대한 대응의 논리를 지닌다.

일제강점기에 유학은 다카하시로 대표되는 일제 관학에 의해 조선 망국의 원인으로 지 목되어 부정되어야 할 대상으로 치부되었다. 상당수 지식인 역시 유교망국론에 동조했다.

당대 지식인의 한 사람으로서 정인보 역시 조선 유학을 비판한다. 하지만 그는 조선 유학 전체를 부정하지 않는다. 비판의 대상은 ‘자사념’을 가지고 ‘가’와 ‘허’로 학문을 행한 이 들이다. 조선 후기에 실심·본심을 바탕으로 한 실학의 계파가 있다는 시각은 조선 유학이 고착성, 종속성, 정체성을 지닌다는 주장이 잘못된 것임을 보여준다. 정인보의 조선 유학 비판과 변론은 식민지배 정당성을 위해 이루어진 일본 관학의 논리를 타파하는 성격을 지 닌다.

다카하시의 조선 유학과 조선 민족에 대한 부정적 시각은 이광수로 대표되는 당대 지식 인에게 수용되어 내면화되었다. 이광수는 유학은 버려야 할 전근대적 유산이었다. 그는 서 구와 일본의 근대 문명은 수용해야 할 보편으로 여기고 근대 주체로서 개인을 발견하고 추구했다. 조선은 천년 이상 정신이 정지된 무주체적 상태로서 조선인의 주체적 행위를 가능케 하는 것은 일본을 통해 유입된 신문명을 통해서였다. 정인보는 본심론을 통해 유 학 자체 내에 개개인의 도덕 주체로서 양지, 즉 본심이 내재해 있음을 지적하고, 주체성을 잃고 무비판적으로 서구 문명과 일본의 식민담론을 받아들이는 이들에게 ‘본심의 환기’를 주문했다. 그의 본심론은 조선 유학과 조선인의 무주체성을 논한 이들에 대한 비판과 대 응의 성격을 지닌다.

근대 서구의 무력으로 국가 존망의 위기를 겪은 동아시아는 전통적 사유체계의 완고함 을 탈피하는 동시에 우등한 서구 문명의 거친 파고 속에서 민족주체성을 확립하고자 했 다. 그 과정에서 근대 동아시아 유가문화권은 공통적으로 국가주의와 도덕주의가 결합되 는 현상을 보인다. 특히 양명학은 서구화 근대 문명의 야만성에 대해 도덕을 제시하는 역 할을 한다.65) 일본의 경우, 다카하시의 스승이었던 이노우에에 의해 양명학은 일본 신도 의 국가 정신과 결합하여, 체제 비판성을 지닌 특징은 사라지고 국가 정신을 근본으로 하 는 일본양명학이 탄생한다.

정인보 역시 민족주의자로서 유가의 ‘친친지애’의 차등애 논리를 통해 조선 민족을 중시 하는 시각을 제시한다. 하지만 천지만물일체설을 바탕으로 한 그의 감통론은 본심의 애틋 함[仁]을 타자에게로 확장하는 것을 중시한다. 이는 일제강점기에 타자를 식민 대상으로 삼는 제국주의의 배타적 민족주의, 혹은 양명학을 이용하여 국가에 충효를 강요하는 충효 군국주의와는 큰 차이를 지닌다. 감통론에 바탕한 정인보의 사유는 타자에게 배타적인 폐 쇄적 국가주의 혹은 민족주의가 아닌, 타자와 전 인류에게로 열려있는 개방적 민족주의로

64) 한정길, 「한국 근대 양명학의 시대 인식과 대응 논리」, 동도서기의 의미지평, 동과서, 2019, 260쪽.

65) 박정심, 한국 근대사상사, 천년의상상, 2016, 278~280쪽, 이혜경, 앞의 논문(2008), 6쪽 참조.

서 의미를 지닌다.

정인보의 본심감통론은 내 안에 도덕 주체를 인식하고 불러일으켜 이를 타자에게로 감 통해야 함을 역설한다. 전통적 전근대 사유체계인 유학을 바탕으로 한 정인보의 본심감통 론은 근대와 탈근대가 혼효한 현대에도 주체와 타자의 관계성에 대한 대안적 시각을 던져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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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

【토론문】

「‘위당 조선학’의 본심감통론이 지닌 시대적 의미」에 대한 논평문

양선진(경찰대)

본 논문은 정인보의 <조선학>을 규정하면서 양명학적 갈래를 설명하고 있다. 조선은 유 교주의 사회였다. 고려말의 사회적, 경제적 폐단을 극복하는 가운데 도입한 유학은 조선 사회를 이끈 이데올로기였다. 당시 송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발전된 문명국가였기 때문이 다. 하지만 조선 시대의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청나라가 영국에게 패한 문명사 적 대전환기의 조선 유학의 문제점이 지적되었지만, 사회를 유지하는 사상적 토대는 변화 되지 않고 있었으며 유학을 통해서 사익만을 추구하는 정치적 파벌 싸움과 당쟁만이 강화 되었을 뿐이었다. 이러한 결과 조선은 일본에 나라를 빼앗기는 참혹한 운명을 맞이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식인들은 원인과 처방을 내리고 국가의 정신적 문제를 치료하기 위한 다양한 움직임이 있었다.

정인보는 조선 유학의 정주(程朱)만을 신봉하고 내세우면서 자신의 이익(自私念)만을 내 세우는 허학(虛學)적 병폐를 지적하면서 양명학연론에서 양명학의 심학(心學)을 바탕으 로 사욕이 아닌 본심(本心), 즉 양지(良知)를 회복하고 실현하는 것, 즉 치양지(致良知)가 바로 실심實心을 되찾는 길(實心喚醒)’을 강조하였으며 대학」 제1장(“大學之道, 在明明德, 在親民, 在止於至善.”)을 해석하면서 마음의 본체인 양지가 발현되는 것이 바로 실심이라 고 주장하면서 일본에 압제 하에 있는 조선인을 불쌍히(애틋하게, 仁) 여기는 감통의 정신 으로 민족의 얼을 되찾기를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정인보의 양명학 사상은 일본의 근대 화 과정에서 도입되고 해석된 군국주의적 양명학, 즉 자신의 국가를 위해서 타국을 배제 하고 억압하는 정당성을 강화는 논리로 전개되지 않았다는 점을 논자는 강조한다.

논평자적 관점에서 논자의 논의를 명백히 이해하기 위해서 몇 가지 질문을 하겠습니다.

1. 논자는 이광수의 조선 유학의 병폐를 비판하고 근대화를 위해서 일본적 근대 문명을 수용하자는 주장에 대해서 박정자 선생님의 논문을 인용하시면서 근대의 핵심 개념인 개 인을 일본식 서구 문명 속에서 찾고 있다는 점에서 주체성이 없는 주체의식(무주체적 주 체)이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논평자는 논자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만약 논자가 보시기에 근대화에 가장 중요한 요소인 근대적 주체를 양명학적 안에서 찾고 싶다면, 왕 양명의 심즉리(心卽理) 사상이나 정제두의 심즉리의 근대적 주체로 해석할 수 있을 것입 니다. 이러한 논의가 논자의 입장을 강화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근대 주체를 외부의 사상이 아닌 우리 내부의 사상 안에서 찾고 싶다면, 조선 양명학의 선두인 정제두의 사상 속에서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정제두의 양명학 안에도 심즉리 사상, 인간 평등성을 강 조하는 부분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참고: 졸고, 「정제두의 사상과 근 대화」, 『한국학논집』, 계명대한국학연구원, 74집,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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