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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어휘 유형별 지도방안

4.1. 고유어와 방언

고유어(固有語)란 한자어 등 외래의 어휘와는 전혀 무관한 순수한 우리말이다. 고유어는 여러 가지 면에서 한자어와 많이 비교되는데 그 양은 한자어보다 적지만 국어 학습에 있어서의 중요성은 결코 한자어에 뒤지지 않는다.

한자의 전래와 정착은 한사군(漢四郡) 설치의 시기와 엇비슷하다 고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우리 민족이 한자를 사용한 것은 2천년 정도이다. 비록 표기할 수는 없었지만 그 이전 우리는 우리만의 언

131) 다른 것들도 연구나 교육의 대상이 될 수 있으며 특히 관용어나 속담에 관한 연구는 많다. 은어, 속어 등에 대해서 유형에 대한 설명은 가능하나 직접 교 육할 대상은 아니라고 보며 전문어의 경우 본문과 연관된 것의 풀이는 국어과에 해당하지만 직접적인 교육은 말 그대로 전문분야에 종사하는 사람에게만 필요한 것이므로 국어 어휘 교육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다.

어를 사용했으며 그 시간은 한자어에 비할 수 없는 긴 시간이다. 알 려진바 대로 고유어는 우리 국어 어휘의 기본 바탕이며 국어순화 운동이라 하면 일본어 등은 물론 난해한 한자어까지도 고유어로 바 꾸는 것을 말한다. 고유어를 말하는 것에서만큼은 한자어도 하나의 외래어일 뿐이다. 이로 미루어 볼 때에 한자어가 아무리 우리에게 익숙해졌다 하더라도 고유어에게는 특별한 지위가 있다.

일제강점기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고유어를 위축시킨 것은 주로 한자어에 국한되었으며 그것은 표기의 문제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후 일어는 물론 영어를 비롯한 수많은 서구 외래어가 신 문물과 함께 유입되면서 고유어는 점점 쇠퇴하고 있다. 사어(死語) 란 원래 고유어들이 한자어로 인해 자리를 내주며 소멸된 것을 의 미하지만 현대 국어에서는 한자어에 의한 것보다는 서구 외래어에 의한 것이 다수라 할 수 있다. 한자어와 일어에 의해 위축되었던 고 유어는 현대에 들어서도 부흥하지 못하고 서구 외래어에 의해 위축 일로를 걷고 있다.

국어순화를 크게 보았을 때에는 한자어에 의한 방법도 있지만 그 핵심은 고유어를 살리는 것이다. 고유어에는 민중들의 참모습과 순 수한 우리의 전통이 반영되어 있다. 고유어에 대한 교육은 이런 점 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전략) 반평생을 같이 지내온 짐승이었다. 같은 주막에서 잠자고 같은 달빛에 젖으면서 장에서 장으로 걸어다니는 동안에 이십년의 세월이 사람과 짐승을 함께 늙게 하였다. 까스러진 목뒤 털은 주인의 머리털 과도 같이 바스러지고, 개진개진 젖은 눈은 주인의 눈과 같이 눈꼽을 흘렸다. 몽당비처럼 짧게 슬리운 꼬리는 파리를 쫓으려고 기껏 휘저어 보아야 벌써 다리까지는 닿지 않았다. 닳아 없어진 굽을 몇 번이나 도 려내고 새 철을 신겼는지 모른다. 굽은 벌써 더 자라나기는 틀렸고 닳

아버린 철 사이로는 피가 빼짓이 흘렀다. 냄새만 맡고도 주인을 분간 하였다. 호소하는 목소리로 야단스럽게 울며 반겨한다.

어린아이를 달래듯이 목덜미를 어루만져 주니 나귀는 코를 벌름거 리고 입을 투르르거렸다. 콧물이 튀었다. 허생원은 짐승 때문에 속도 무던히는 썩였다. 아이들의 장난이 심한 눈치여서, 땀밴 몸뚱어리가 부들부들 떨리고 좀체 흥분이 식지 않는 모양이었다. 굴레가 벗어지고 안장도 떨어졌다. 요 몹쓸 자식들, 하고 허생원은 호령을 하였으나, 패 들은 벌써 줄행랑을 논 뒤요 몇 남지 않은 아이들이 호령에 놀래 비 슬비슬 멀어졌다.(후략)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 중

-위의 부분은 겉으로 당나귀에 대한 묘사를 보이고 있는 부분이지 만 내적으로는 당나귀에 빗대어 허생원을 묘사하고 있는 소설의 발 단-전개 부분이다. 의성어와 의태어는 물론 상태를 나타내는 많은 어휘들이 거의 고유어이다. 이것은 의도된 것일 수도 있으나 사실 한자어가 담당하는 영역이 아닌 곳이 많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또한 이 부분에서 한자어보다 고유어가 많이 쓰이는 것은 자연스럽 게 향토적인 분위기를 드러낸다. 문자 언어에는 한자어가 많지만 실 생활(색채, 감상, 감정)을 나타내는 음성 언어에는 고유어가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위의 작품에 쓰인 고유어(까스러진, 개진개진, 몽 당비, 슬리운, 빼짓이, 투르르거렸다, 비슬비슬)를 한자어로 바꾸는 것 자체가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설사 바꾼다 하더라도 그 느낌 매 우 이질적이어서 원문의 느낌을 살릴 수 없다.

이와 같은 고유어의 사용은 위기-절정 부분에서도 드러난다.

(전략) 조선달 편을 바라는 보았으나 물론 미안해서가 아니라 달빛에 감동하여서였다. 이지러는 졌으나 보름을 갓 지난 달은 부드러운 빛을

흐뭇이 흘리고 있다. 대화까지는 팔십리의 밤길, 고개를 둘이나 넘고

겠나."(후략)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 중

-이 부분에서의 고유어는 애틋한 분위기의 배경을 독자에게 잘 제 시하며 정감을 드러나게 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한자어보다 고유어 를 사용하는 것이 더 친근하고 자세한 표현을 가능하게 한다.

이효석의 이 작품은 국어 교과서에 실린 작품은 아니지만 문학사 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데 문학에서 고유어가 담당하 는 기능을 가르치는 데에도 매우 유용한 면이 있다.

고유어 교육은 방언(方言)132)과 관계가 있다. 방언의 대상이 고유 어로 한정되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다수이고 방언을 접했을 때의 독특한 느낌 역시 고유어에서 더 많이, 더 쉽게 느낄 수 있다.

방언의 역사적인 가치는 표준어에 비해 언어의 변화가 늦게 반영 되기에 우리말의 옛 모습을 재구할 때 근거를 제공해 준다는 것인 데 특히 표준어 권역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의 방언은 역사적 가 치가 더 있다고 할 수 있다. 생활어의 가치는 표준어에 비해 비록 세련되지 못한 언어로 인식될지라도 그 지역민의 방언은 일상 생활 의 정감있는 감정 표현과 의사 전달에 큰 요소로 활용된다는 점이 다.

실제 언어 생활에서 국어 어휘 사용은 표준어를 지향해야 한다.

그러나 삶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문학작품은 표준어만으로 설 명하기 어렵다. 방언은 역사적·전통적인 면에서 접근하는 교육이 필요하다. 역사적으로 중심이 되었던 지역이 아닌 곳에서도 분명히

132) 여기서는 지리적 요인에 의한 방언을 말한다.

우리 언어에 영향을 준 어휘들이 존재한다. 이는 중앙 정부의 정책 적인 것이 아니라 자생적이라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각 지역의 방언은 그 지역만이 갖는 독특한 면을 보여주며 어감 등에서 미세 한 차이를 느끼게 한다.

방언은 특히 문학작품에서 많이 나타나며 반대로 표준어로 인정 되지 않는 대다수의 방언이 실용문에서 쓰이기는 어렵다. 국어과 교 과서에서 방언이 많이 드러나는 곳은 소설인데 물론 시나 수필 등 에서도 방언은 널리 사용된다. 시인들 중 김소월은 평안도, 김영랑 은 전라도 방언을 즐겨 사용하는데 이를 표준어로 대체했을 때에는 어색함이 있다.

백석의 경우 고유어에 평안도 방언을 더해 민족정서 면에서 김소 월을 능가한다고까지 평가받는다.

승냥이가 새끼를 치는 전에는 쇠메 든 도적이 났다는 가즈랑고개

가즈랑집은 고개 밑의

산 너머 마을서 도야지를 잃는 밤 짐승을 쫓는 깽제미 소리가 무서웁게 들려 오는 집

닭 개 짐승을 못 놓는

멧도야지와 이웃사촌을 지나는 집

예순이 넘은 아들 없는 가즈랑집 할머니는 중같이 정해서 할머니가 마 을을 가면 긴 담뱃대에 독하다는 막써레기를 몇 대라도 붙이라고 하며

간밤에 섬돌 아래 승냥이가 왔었다는 이야기 어느메 산골에선간 곰이 아이를 본다는 이야기

나는 돌나물김치에 백설기를 먹으며 옛말의 구신집에 있는 듯이

가즈랑집 할머니

내가 날 때 죽은 누이도 날 때

무명필에 이름을 써서 백지 달아서 구신간시렁의 당즈깨에 넣어 대감님 께 수영을 들였다는 가즈랑집 할머니

언제나 병을 앓을 때면

신장님 단련이라고 하는 가즈랑집 할머니 구신의 딸이라고 생각하면 슬퍼졌다

토끼도 살이 오른다는 때 아르대즘퍼리에서 제비꼬리 마타리 쇠조지 가 지취 고비 고사리 두릅순 회순

산나물을 하는 가즈랑집 할머니를 따르며

나는 벌써 달디단 물구지우림 둥굴레우림을 생각하고 아직 멀은 도토리묵 도토리범벅까지도 그리워한다

뒤울안 살구나무 아래서 광살구를 찾다가 살구벼락을 맞고 울다가 웃는 나를 보고

밑구멍에 털이 몇 자나 났나 보자고 한 것은 가즈랑집 할머니다

찰복숭아를 먹다가 씨를 삼키고는 죽는 것만 같아 하루종일 놀지도 못 하고 밥도 안 먹은 것도

가즈랑집에 마을을 가서

당세 먹은 강아지같이 좋아라고 집오래를 설레다가였다

백석의 ‘가즈랑 집’

-위의 시를 학생들이 수업 시간에 접했을 경우 당황하게 되는 것 은 당연한 일이다. 뭔가 도시적이지 않다는 느낌은 받을 수 있지만 각각의 시어가 어떤 사전적 의미를 갖는지는 알 수 없다. 백석의 경 우 평안북도 방언을 위주로 방언을 구사했기 때문에 분단의 현실에

-위의 시를 학생들이 수업 시간에 접했을 경우 당황하게 되는 것 은 당연한 일이다. 뭔가 도시적이지 않다는 느낌은 받을 수 있지만 각각의 시어가 어떤 사전적 의미를 갖는지는 알 수 없다. 백석의 경 우 평안북도 방언을 위주로 방언을 구사했기 때문에 분단의 현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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