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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장경과 강화도

문서에서 2011년도 자원봉사 교육생 일정 (페이지 89-93)

(2) 대장경이란?

대장경은 경, 율, 논의 삼장으로 구성되며, 불교 경전을 집대성한 것이 다. 교리 체계에 대한 정리가 선행되어야만 이루어질 수 있는 문화적 의 의가 높은 유산이다. 삼장(三藏)의 경(經)은 부처가 설한 근본 교리이고, 율(律)은 교단에서 지켜야할 윤리 조항과 생활규범이며, 논(論)은 경과 율에 대한 승려나 학자들의 의론과 해석을 일컫는다.

고려시대에는 대장경을 두 차례 판각하였다. 첫번째의 것을 초조대장경 (初雕大藏經)이라 하고 두번째의 것을 재조대장경(再雕大藏經)이라고 한다.

(3) 대장도감이 주관

고려시대 재조대장경의 판각업무를 관장하던 관서는 ‘대장도감’이다. 초 조대장경의 판각업무를 맡아보았던 관서의 명칭은 전하지 않으며, 고려의 초조대장경판이 몽고군의 침입으로 소실되자 1236년에 대장도감을 설치하 여 판각업무를 시작하였다. 도감의 본사(本司)는 대몽항쟁기의 도읍인 강 화에 두어 판각사업을 주관하게 하고, 분사(分司)를 지방에 두어 그 일을 분담하게 하였다.

# 분사대장도감

대장도감의 분사는 경남 남해에 있었다. ≪종경록≫ 권27에 ‘고려국 분사 남해대장도감(高麗國 分司南海大藏都監)’이라는 표시가 있다. 분사대장도 감의 소재지는 남해도였으나, 남해도의 행정관할이 진주목에 속해 있었으 므로 진주분사대장도감으로 일컫기도 한다. 분사대장도감의 명칭은 ≪선 문염송집≫, ≪조당집≫ 등 몇몇 곳에 표시되어 있다. 분사를 남해도에 둔 것은 남해안 지방 일대가 당시의 최고집권자 최씨 일족의 경제권역인 데다 교통수단이 육지보다 편리하여 경판용 목재의 조달 등이 용이하였기 때문이다.

(4) 판각사업기간

1236년에 대장도감을 설치하고 판각하기 시작하였고, 16년 걸려 1251년

(고종 38) 9월에 완료되자 고종은 강화성의 서문(西門) 밖에 있는 대장경 판당(大藏經板堂)에서 여러 신하들과 함께 그 완성을 경축하는 행사를 가 졌다.

(5) 경판 제작과정

① 여러 대장경을 수집· 대조하여 목록을 만들고 오류를 정정한다.

우리나라의 초조대장경, 북송본(北宋本)대장경, 거란본(契丹本)대장경 등을 수집, 일일이 대조하여 목록을 결정하고 여러 차례에 걸쳐 오 류를 정정한다. 이 일은 개태사(開泰寺)의 수기(守其) 승통의 책임 하에 이루어졌으며, 많은 학식 있는 스님들이 참여하였다.

② 종이에 필사한다.

대장경의 교정본에 의거하여 경전의 내용을 한 글자 한 글자 정성을 다하여 종이에 먹으로 쓴다. 고려시대에는 전문적으로 불경을 베껴 쓰는 사경승(寫經僧)이 많이 있었으며, 목판에 새기기 위해 종이에 필사된 것을 판하본(板下本)이라 한다.

③ 판재를 마련한다.

산벗나무 등의 나무를 베어 바닷물에 담가 부식과 해충을 방지하고, 판재로 만들어 소금물에 삶아서 그늘에 말린 다음, 일정한 크기로 자르고 판각할 수 있도록 다듬는다.

④ 판재에 글자를 새긴다.

종이에 쓴 판하본을 판재에 뒤집어 붙인 후 초벌새김, 재벌새김, 마 무리새김의 과정을 거쳐 글자를 새긴다. 각수(刻手)가 판각을 완료 하면 판을 보호하기 위해 각목으로 마무리하고, 옻칠을 한 뒤 네 귀퉁이를 동판으로 고정하고 장식한다.

(6) 의의

국보 32호인 해인사의 고려 재조대장경판은 그 규모가 방대할 뿐아니라 세계의 어느 대장경보다도 정확하게 만들어져 세계 불교 문화 유산 중에 단연 으뜸가는 보배이다. 또한 이를 낳은 당시 고려의 불교문화도 세계적 수준이었던 것도 잘 말해주고 있다. 이 대장경판은 고려의 대몽고 항쟁기

간 동안 강화(江華)에서 이루어진 사실은 큰 의미가 있다. 30년간의 전쟁 와중에 16년이라는 긴 세월과 무수한 인력 재력을 들여 이 거대한 대장경 조성 불사를 이루어낸 것이다.

이 대장경의 간행 사업은 대몽항쟁 전쟁 중에 왕성한 민족의식과 문화의 식, 그리고 일반 민중의 불교 신앙심에 힘입어 완수될 수 있었다. 몽고의 침입에 대처함에 있어서 대내적인 결속을 민족의식 속에서 찾고, 특히 우 리는 대장경을 조성할 수 있는 민족이라는 문화적 긍지를 의식하게 하고 몽고를 야만시함으로써 대몽고 항쟁의 지표를 명백히 할 수 있었다.

또한 대장경의 조성이 성공적으로 이룩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고려 불교 의 높은 수준과 그 전통적 저력 때문이었다. 대장경을 조성하는 일은 워 낙 거대한 사업이었기 때문에 불교계가 쏟은 정력도 대단한 일이었다. 고 려 재래의 대장경본을 위시해서 북송본(北宋本), 거란본(契丹本) 등의 여 러 경전을 수집하고, 편집, 교정하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이 다. 이때 교정의 총책임을 맡았던 분은 수기(守其)스님인데, 그는 개태 사의 승통으로 학식이 뛰어난 화엄종 승려였다.

고려대장경은 동아시아의 불교문화유산을 응축시킨 세계적 보물이고, 이 를 어려운 여건에서 조성하고 보존시켜 왔다는 점에서 고려 문화의 축척 을 가늠할 수 있게 한다.

(7) 총량과 연인원, 기간, 소요자재의 추정

# 총 경판수 : 81,258장(문화재청 국보설명, 민족문화대백과사전)

# 경판 1장 크기 : 가로 70㎝내외, 세로 24㎝내외, 두께 2.6㎝~4㎝

# 책 페이지 수 : 약 32만 페이지 (목판1장 4페이지× 약8만장)

# 총 글자수 : 약 5,000만자 (목판1면 약300자)

# 통독 가능 기일 : 약 30년 (하루 4~5천자 독서 기준)

# 쌓았을 때의 높이 : 약 3200m (목판1장 두께 약4cm× 약8만장) 백두산보다 높음

# 총 무게 : 약 250t (목판1장 약3kg× 약8만장 ) 1t 트럭 250대 분량

# 소요 목재 : 지름 40cm 나무 약 15,000그루

# 소요 한지 : 약 50만장 (필사본 16만면의 3배 추정)

# 한지 제작인원 : 연인원 약 1만명 (1인 1일 50장 제작 기준)

# 필사 인원 : 연인원 약 5만명 (1인 1일 1000자 필사 기준)

# 판각 인원 : 연인원 약 125만명 (1인 1일 30~40자 판각 기준)

금속활자발상중흥기념비(강화군)

[<KBS역사스페셜2(효형출판, 2001)>282~298쪽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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