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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불완전계약

모든 계약은 불완전계약일 수밖에 없다. 미래의 모든 발생가능한 상황 에 대하여 계약조건을 설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모든 발생가능한 상황 을 예측할 수 있다 하더라도 실제 상황발생시 계약당사자들이 적응하는 복잡한 메커니즘을 계약서에 모두 담는 것 역시 불가능하다. 급변하는 경제환경과 거래여건 하에서 제한된 합리성, 현실현상의 복잡성과 불확 실성이라는 제약 하에 어떠한 거래당사자들도 완전한 계약을 설계할 수 는 없는 것이다.

1996년 1월의 제3차 한전·가스공사간 발전용가스매매계약 변경 이후 지금까지 9년 가까운 기간동안 일반경제환경과 천연가스산업, 그리고 전 력산업을 포함한 에너지산업 전반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 천연가스 산업에서만도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시장참여자의 수가 증가하고 구매 자와 판매자간 협력이 증진되는 국제적인 추세를 보여왔으며, 장기도입

계약의 유연성이 증대하고 단기 및 현물거래도 확대되어 왔으며, 가스와 전력의 통합을 통한 효율성 향상노력이 점차 일반화되고 있다. 국내적으 로는 자가용 LNG 직도입을 시행하는 단계까지 발전함으로써 POSCO와 K-Power 이외에 LG 및 한전 발전자회사들도 LNG 직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도시가스 부문에서 천연가스가 기존의 LPG를 거의 대체했을 뿐만 아니라, 천연가스를 원료로 하는 도시가스 수요의 급증과 1996년을 기점 으로 한 발전 부문과 도시가스 부문의 비중 역전현상으로 발전 부문의 수요조절자로서의 역할과 능력도 감소해 왔다. 전력산업에서는 발전경쟁 이 도입되어 발전용 천연가스 수급의 신축성에 대한 요구가 강해지고 있으며, 수요조절자로서의 유인도 약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현행 발전용가스매매계약은 가스의 개발 및 생산 등 상류부문의 특성 에 기인하는 장기도입계약과 가스의 소비가 이루어지는 하류부문에서의 단기계약의 필요성을 적절히 조화시키기 어렵다는 태생적인 불완전성을 안고 있다. 그러나 상류부문에서의 장기계약의 필요성과 하류부문에서의 단기계약 또는 현물거래의 필요성을 동시에 충족시키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시장의 규모가 크고, 시장참여자가 다수인 경우, 그리고 이 를 뒷받침할 수 있는 가스의 공급․이용설비가 충분하면 상류부문에서 장기계약이 이루어지더라도 하류부문에서까지 반드시 장기계약의 형태 로 거래를 할 필요는 없으며, 실제로 국제천연가스시장은 이러한 형태로 발전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이와 같은 조건이 모두 충족되었다고 볼 수는 없으나, 1996년 1월 변경된 발전용가스매매계약이 2006년 11월 에 개정되도록 함으로써 급변하는 상·하류 부문의 여건과 시장참여자의 욕구를 반영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할 수 있다.

계약일반적인 관점에서 볼 때,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계약당사자들을 강제할 수 있는 의무를 손쉽게 정의하기 어렵다. 이런 이유 때문에 계약 이 일반적으로 경직적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또 한, 계약조건의 변경을 용이하게 함으로써 발생할 수 있는 계약당사자들 의 기회주의적 행동의 여지를 제한하기 위해 어느 정도 계약조건과 계 약기간을 경직적으로 운용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18) 하지만 현행 발전용 가스매매계약은 지난 10년 가까운 기간동안 변화해 온 국내 전력 및 천 연가스산업의 여건을 계약기간 준수라는 이유로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 게 함으로써 발전연료 부문과 발전부문을 효율적으로 연계시키지 못하 는 한계를 노정해왔다고 할 것이다.

발전 부문의 여건변화에 대한 가스매매계약의 적응능력부족의 예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나, 한 가지를 들어보기로 하자. 이미 1994년부터 1996년 기간 동안 전력산업구조개편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 었으나, 1996년 초에 개정된 발전용가스매매계약에서는 이에 대한 언급 이 일체 없음을 발견할 수 있다.19) 정책적인 의도 혹은 가스공사와 한전 등 계약당사자들의 사업전략적인 이유가 개재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지만, 10년 이상 유효한 가스매매계약을 설계하면서 이러한 고려 를 계약서에 삽입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현행 가스매매계약서가 얼마나

18) 거래형태로서의 계약이 갖는 장단점은 <부록>을 참조하라.

19) 1994년 7월부터 1996년 6월까지 한국산업경제연구원, 안진회계법인 및 삼일회계법 인 등 3개 기관 공동으로 한전에 대한 경영진단을 실시하고, 경영진단 결과 한전 의 민영화는 단계적으로 추진하되, 민영화 추진의 기본전제로서 전력산업구조개편 의 필요성을 인정하였다. 이후 1999년 초에 전력산업구조개편의 기본방향으로서 발전부문을 수 개의 회사로 분할하여 경쟁을 도입하기로 방침을 정하였다. 산업자 원부(1999) 참조.

변화하는 시장여건 하에서 불완전한 것인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하 겠다.

아래에서도 논의되겠지만, 이러한 산업여건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계 약의 설계를 소홀히 한 사실은, 전력산업구조개편계획이 발표되고 동 계 획의 1차적인 시행단계에서 발전경쟁이 도입되고 기존 한전의 계약상 권리·의무 및 여타 매매조건이 일체의 변화 없이 발전자회사들에게 승 계된 데에서도 나타난다. 즉, 연료구입권을 개별 한전 발전자회사에 이 관함으로써 실질적인 발전경쟁을 유도하고자 하였으나, 기존의 한전과 가스공사간 발전용가스매매계약을 개별 발전자회사와 가스공사간 계약 으로만 변경시켰을 뿐, 발전경쟁과 관련된 어떠한 조항도 가감된 것이 없었던 것이다.20)

나. 비상업적 또는 모호한 계약조건

현행 발전용가스매매계약에는, 천연가스사업 초기에 정부가 동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독점사업권을 인정하고, 경직적인 장기도입계약에 효과적 으로 대응하며, 빈약한 공급설비를 최대한 활용한다는 취지에서 계약서 곳곳에 정부의 이러한 정책의지가 반영되어 있다. 계약서 제4조(물량)의 제2호의 다에서는 기본계획의 변경시 발전회사(한전)가 전력수급상 손실 이 발생된다거나 가스공사의 저장능력 초과 또는 재고부족 사태 초래가 예상되는 등의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양사는 기본수급계획의 변

20) 계약서 제28조(계약의 양도승인)에 따라 한전의 계약상 권리·의무가 한전 발전자회 사에게로 이전되었으나, 제26조(계약변경)의 규정에도 불구하고 계약승계시 발전경 쟁을 위한 계약조건의 변경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경에 협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계약내용의 이행을 통한 거래편익을 실현하고 증진시키기 위해서는 계약당사자간의 협조가 매우 중요하며, 협조의무를 계약조건에 삽입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전력수급상 손실 또는 가스수급의 지장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어 막대한 금액이 개재된 상업계약에 대하여 계약당사 자 혹은 정부의 자의적인 해석으로 분쟁이 발생할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는 문제점이 있다. 특히, 계약 당시 상황에서는 가스공사의 저장능력 초 과 또는 재고부족 사태가 어느 정도 기본수급계획의 변경을 위한 불가 피한 사유가 되었다고 볼 수 있으나, 전력수급상 손실을 가스공사의 저 장능력 초과 또는 재고부족 사태와 같은 수준에서의 불가피한 사태로 볼 수 있는가라는 점에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즉, 대체발전소를 보유하 고 있는 발전회사(한전)의 입장에서는 기본수급계획 변경으로 인한 손실 을 적절하게 보장받을 수만 있다면, 이는 우리나라 에너지수급상 불가피 한 상황이라기보다는 상업적인 계약 하에 이루어지는 계약당사자간 손 실보전의 문제로 이해할 수 있다. 반면, 가스공사의 저장능력 초과 또는 재고부족 사태는 상업계약 이상의 국가적인 에너지수급의 문제이므로 두 가지 개념을 기본수급계획 변경을 위한 동일수준의 불가피한 사유로 규정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있다.21)

이와 관련하여 전력수급상 손실이라는 것이 발전회사(한전)가 대체발 전소 운전 또는 가스발전소의 추가운전에 따라 실제 발생한 연료비 부 문의 가변비용 손실만을 의미하는 것인지, 아니면 잠재적인 정전 또는 제한송전으로 인한 전력소비자의 손실에 대한 보상까지를 포함하는 것

21) 아래의 다. 소절에서도 이와 관련된 계약운영 방식에 대하여 논의하였다.

인지, 혹은 발전소의 운전계획 변경에 따른 발전설비자산의 기회비용 (예: 비용기준 풀 시장에 입찰하지 못하는 데에 따른 용량요금 수익의 감소)도 포함하는 것인지 분명하지 않다.22) 이러한 비용들은 경쟁시장 에서 가격기능이 작동하지 않을 경우 적절하게 수요자와 공급자간 지 급․수수(收受)되기 어렵다. 그러나 독점적 공익사업 운영방식이 경쟁시 장의 작동원리를 최대한 반영할 수 있도록 규제체제를 개발․운용해야 한다는 관점에서 볼 때 상업적인 거래를 뒷받침하는 계약으로서는 매 우 미흡하다고 하겠다.

계약서 제6조 1항에서는 가스공사가 추가인수 또는 공급제한을 요청 할 경우 발전회사는 “전력수급에 지장이 없는 범위 내에서 이에 응하여 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전력수급에 지장이 없는 범위 내에 서”라는 단서는 대체발전소 및 연료를 보유한 발전회사의 입장에서는 거의 모든 경우에 전력수급균형을 유지할 수 있으므로 단서로 보기 어 려우며, 따라서 가스수급에 지장이 발생할 경우 발전부문이 수급균형을 위한 지원에 나서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도록 하는 조항이라 고 볼 수 있다. 이에 따라 상업적 계약 내에서 상품메뉴와 이들의 가격 을 통한 사전적(事前的) 물량조정보다는 물량조정 이후 사후적(事後的)으 로 정산금액을 산출하는 관행을 고착화시킴으로써 손실보상 내역에 대 한 분쟁을 반복적으로 유발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는 것이다.

계약서 제6조 3항에서는 가스공사는 수급에 지장이 없는 범위 내에서 월간약정물량을 초과한 공급요청을 정규요금으로 공급하도록 하고 있는 데, 역시 수급에 지장이 없는 범위에 대한 해석에서 자의성이 개입될 개

22) 전력공급의 정지․부족비용에 관해서는 아래의 라. 소절을 참조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