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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자기결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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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자기결정권의 의의

(1) 자기결정권의 배경

우리 헌법은 제10조에서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 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 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으로 서 개인의 인격권과 행복추구권을 보장하고 있는 것이며, 이러한 개인의 인격권과 행복추구권에는 개인의 자기운명결정권이 전제되어 있다.73)

헌법상 명문의 규정은 없지만 이처럼 우리 헌법재판소는 헌법 제10조의 개인의 인격권과 행복추구권에서 그 근거를 도출하여 기본적 인권으로서 개인의 자기결정 권을 보장하고 있다. 여기에서 자기결정권이란 “개인이 자신의 사적영역에 관해서 사회나 국가로부터 간섭이나 침해를 받지 않고 사적인 사항은 스스로 결정하여 자 신의 생활영역을 자유롭게 형성할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한다.74)

오늘날 자기결정권은 개인의 사적영역에 대한 사회 및 국가적 통제의 부당성을 주장하는 데에 주요한 근거로 활용되고 있다. 특히 형법은 행위금지규범의 속성을 띠고 있어 개인의 행위를 직접적으로 제한하는 법률이자 인간 공동체생활의 필수 불가결한 가치를 법익이라는 개념으로 보호하고 있는 법률이므로, 형법에 우선적 으로 주어진 정당성을 반증하고 대적하기에 자기결정권은 유용한 개념이기 때문이 다. 이러한 점에서 자기결정권은 공익적 가치와 사적 자유가 충돌되는 사회 전반 의 다양한 영역에서 활발히 논의되고, 나아가 양자 간의 균형적 조정 수단으로서 기능하고 있다.

73) 헌법재판소 2012. 8. 23. 2010헌바402 결정.

74) 박진실, “대마사용의 비범죄화 주장에 대한 이론적 검토”, 법학논문집 제40집 제3호, 중앙 대학교 법학연구원, 2016, 69면.

그러나 한국 법제에서 자기결정권이란 용어가 본격적으로 통용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랜 일이 아니다. 법 영역에서 자기결정권이 중요한 의미로 자리 잡게 된 시발점 또한 지금과 같이 ‘사적’인 권리로서의 성질이 아니었다.

역사적으로 인간의 자율성이 부정되던 시대에서는 특권화된 집단의 결정이 그대 로 준수될 것을 요하는 타율성의 원리가 지배하였다. 이는 불평등한 사회구조에서 기인하여 노예적인 예속과 타율적인 지배가 절대적 원칙으로서 작용하게 하였고, 이에 반대하는 시민혁명이 17∼18세기 영국․미국․프랑스 등지에서 일어나며 모 든 인간의 이성능력의 동등성이 그 사상적 이념이 되었다.75)

이후 제1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식민지의 독립 또는 영토분쟁의 해결을 위하여

‘민족’ 또는 ‘단체’의 자기결정권, 즉 ‘민족자결권’이란 개념이 등장하였다. 민족자결 권은 여러 민족의 독립․자치를 위하여, 그리고 제3국과 강대국 간의 평등을 위하 여 등장한 이념이었기 때문에, 최초에는 법적 개념이라기보다 정치적 개념에 가까 운 것이었다.76)

근대사에서는 군사정부 등에 의한 집단적 획일주의에 반대하는 이념으로 변화되 었다가, 현대에 이르러 의료기술 및 정보통신기술의 비약적 발전과 복잡다단한 사 회상이 그 배경이 되어 1980년대 이후 비로소 법학에서 사적 권리로서의 자기결정 권이란 개념이 점차 주목을 받게 된 것이다. 특히 생명윤리, 정보통신, 페미니즘의 관련 영역에서 공적인 가치의 우월성을 타도하는 방법론으로서 각광받게 되었 다.77)

(2) 자기결정권의 요소

자기결정권은 문리적 형태에서 ‘자기’, ‘결정’, ‘권리’의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먼저 첫 번째 요소인 ‘자기’의 의미는 권리의 주체를 뜻한다.

자기결정권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권리의 주체인 자기, 즉 개인이 존재해야하며, 여 기에서 개인이란 존재의 독자성이 인정되려면 외부로부터 구별될 수 있는 어느 정

75) 신동일, “자기결정권과 객관적 규칙에 대하여”, 성신법학 제10호, 성신여자대학교 법학연 구소, 2011, 9면.

76) 이얼, “형법상 자기결정권에 관한 연구”, 성균관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3.2, 9면.

77) 예컨대 죽음에 대한 자기결정권, 생체정보의 기록․유통에 대한 개인정보자기결정권, 여성 의 재생산에 대한 자기결정권 등을 들 수 있다.

도의 독립성을 갖추고 있을 것을 요한다. 이 독립성이 부정될 경우에는 자기결정 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 예를 들어, 타인의 최면에 걸린 상태에서 한 결정이나 타인의 강압에 못 이겨 한 결정은 자기의 독립성이 부정되므로 자기결정이 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요구되는 독립성의 정도를 달리 이해한다면 자기결정에 대한 해당 여부 또한 달라질 수 있다. 드워킨은 이러한 독립성의 개념을 ‘실질적 독립성 (substantive independence)’과 ‘절차적 독립성(procedural independence)’으로 구분 하고, 독립성의 개념을 유연하게 해석함으로써 자기결정권의 개념을 보다 확장하 였다.78) 이에 따르면 실질적 독립성을 요구하는 입장은 독립성의 개념을 엄격하게 이해한다. 즉, 개인은 독립적인 판단을 유보(defer)하지 않고, 자신의 결정과 행위 에 대한 지배력을 유지하는 경우에만 독립성이 인정될 수 있다. 반면에 절차적 독 립성을 요구하는 입장에서는 독립성의 개념을 유연하게 해석하였다. 즉, 개인이 스 스로의 판단이나 행위에 대한 지배력이 없이 타인, 문화, 관습, 법규 등 외부로부 터 영향을 받고 이에 따르는 것일지라도 그 판단 과정이 적절하게 이루어졌다면 개인의 독립성을 인정한다. 만약 자기결정에 요구되는 독립성을 절차적 독립성의 개념으로 이해하게 된다면 자기결정권 행사에 따른 책임을 개인에게 완전히 귀속 시킬 수 없다는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더욱이 자기결정권의 행사로 인해 타인 혹 은 사회에 어떤 해악적인 영향을 끼치게 되었을 경우에는 그 결과에 대하여 개인 에게 전적으로 비난을 가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이는 책임원칙에 위배될 여지가 있으므로 독립성의 개념은 실질적 독립성을 바탕으로 이해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 된다.

다음으로 두 번째 요소인 ‘결정’의 의미는 권리의 대상을 뜻한다. 즉, 결정의 대 상이 되는 범주로서 ‘자기에 관한’ 사안의 선택이어야 한다. 여기에서 자기에 관한 사안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는 인격적 이익설79)과 일반적 자유 설80)로 나누어지고 있다. 인격적 이익설에 따르면 자기결정권을 생명, 재생산, 가 족의 형성, 성적 관계 등 인격적 이익의 핵심적 사안에 한정된 권리로 이해한다.

반면, 일반적 자유설은 인격적 이익의 핵심적 사안 또는 그 관련성의 여부와 상관

78) Dworkin, G., The Theory and Practice of Autonomy , Cambridge Univ. Press, 1988, pp.

16-33.

79) 佐藤幸治, 憲法 第3版, 青林書院, 1995, 444-465面.

80) 山田卓生, 私事と自己決定 , 日本評論社, 1999.

없이 일반적인 모든 행위가 자기결정권의 대상이 된다고 파악하는 견해이다. 그러 나 자기결정권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위한 자율성 실현의 보장에 그 의의 가 있다고 한다면, 결정의 대상을 인격적 이익의 핵심적 사안에만 국한해야할 이 유는 없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요소인 ‘권리’의 의미는 앞의 두 가지 요소에 대하여 법적으 로 승인되었음을 뜻한다. 다시 말해서 ‘자기결정’은 이념으로서, ‘자기결정권’은 이 이념에 대한 법적 승인인 헌법상의 권리라고 해석할 수 있다. 권리의 개념을 형성 하는 데에 큰 기여를 했던 제르송(Gerson, Jean de)에 따르면 “권리(ius)는 누군가 에게 고유하게 속하고 정당한 이성의 지시에 합치하는 권능(facultas), 즉 권한 (potestas)이다. 자유(Libertas)는 이성의 권능이다.”81) 이러한 점에서 자기결정권은 개인의 본질적인 자유권으로서 헌법상 보장되는 권리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3) 자기결정권의 주체

자기결정권은 인간의 자유를 최고의 가치로 삼고, 법질서의 목적 또한 개인의 자 유와 그 권리를 보장하는 데 있다고 보는 ‘자유주의’ 사상을 기반으로 하고 있 다.82) 이는 우리 헌법이 최고이념으로 삼고 있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에 부 합하는 권리이기도 하다.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실현하고 행복을 추구하기 위하여서는 누구나 자유로이 의사를 결정하고 그에 기하여 자율적인 생활을 형성 할 수 있어야하기 때문이다.83) 다만, 의사를 결정하는 데 있어서 충분한 판단능력 을 갖춘 개인을 전제로 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에 대하여 헌법상 자기결정권 의 주체를 충분한 판단능력을 갖춘 자에게만 한정할 수 없다는 지적도 있다.84) 헌 법 제10조는 모든 국민 개개인이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기본적인 인격권을 보장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견해 역시 미성년자, 심신장애인 등 판단능 력이 결여된 자에 대한 보호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으며, 이러한 자에 대한 자기 결정권이 충분한 판단능력을 갖춘 자와 동일하게 보장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81) Tuck, R., Natural Rights Theories , Cambridge Univ. Press, 1979, p.26.

82) 오석준, “인격주의 생명윤리 관점으로 본 ‘자기결정’에 대한 고찰”, 인격주의 생명윤리 제8 권 제1호, 가톨릭생명윤리연구소, 2018, 73면.

83) 헌법재판소 2005. 11. 24. 2005헌바46 전원재판부 결정.

84) 김강운, “헌법상 자기결정권의 의의”, 법학연구 제20집, 한국법학회, 2005, 172면.

따라서 충분한 판단능력을 갖추지 못한 개인에 대하여는 본인 보호를 위한 법적인 간섭이 정당화 될 수 있을 것이다.

자기결정권이 등장하게 된 이념의 토대가 자연권에서 기인했다는 점에 의미를 둔다면 위의 견해와 같이 모든 개개인은 인간이기 때문에 자연권으로서 자기결정 권의 주체가 된다. 그러나 자기결정권의 또 다른 면은 권리를 행사함으로써 발생 하는 불이익 또한 권리의 주체가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 내재되어 있다. 즉, 자기결 정권의 행사에는 그에 대한 스스로의 책임부담이 전제된다. 이러한 자기책임의 원 리는 자기결정권의 한계논리로서 책임부담의 근거로 기능하는 동시에 자기가 결정 하지 않은 것이나 결정할 수 없는 것에 대하여는 책임을 지지 않고 책임부담의 범 위도 스스로 결정한 결과 내지 그와 상관관계가 있는 부분에 국한됨을 의미하는 책임의 한정원리로 기능한다.85) 이 점에서 미성년자 등의 이성적 판단능력이 충분 히 성숙하지 않은 개인은 자기결정권의 주체가 될 수는 있어도, 자기결정권 행사 의 주체가 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4) 자기결정권의 성격

자기결정권을 “개인이 자신의 사적영역에 관해서 사회나 국가로부터 간섭이나 침해를 받지 않고 사적인 사항은 스스로 결정하여 자신의 생활영역을 자유롭게 형 성할 수 있는 권리”라고 정의한다면, 이와 같은 정의에서 자기결정권의 성격을 크 게 세 가지로 분류해볼 수 있다. 자기결정권은 ① 포괄적․일반적, ② 자유권적,

③ 청구권적 권리의 성격을 갖는다.

첫째, 자기결정권은 포괄적이고 일반적인 권리이다. 특정 영역에 국한되지 않고 개인의 사적영역에 관한 결정이라면 권리의 대상이 된다는 점에서 보장되는 내용 또한 광범위하고 다양한 영역이 될 수 있다. 또한 많은 개별적․구체적 권리들의 근저에 위치하면서 동시에 이 권리들의 근간을 제시하는 권리이기도 하다. 이처럼 포괄적․일반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 자기결정권은 사적영역 중에서도 어느 특정 영역에 대한 구체적 권리로 도출되기도 한다. 예컨대 성적 영역에 대한 성적 자기 결정권, 의료 영역에 대한 환자의 자기결정권, 재생산 영역에 대한 임부의 자기결 정권 등을 들 수 있다. 더불어 자기결정권이란 개념의 포괄적 특성상 일반적으로 85) 헌법재판소 2004. 6. 24. 2002헌가27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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