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則不歌 35

문서에서 서 문 (페이지 81-84)

7 편

子於是日哭 34 則不歌 35

선생이 안연더러 말하기를 “써 주면 일할 것이요, 버리면 잠자코 있을 것이니 그 야 나나 너는 그럴 수 있겠지!” 자로가 말하기를 “선생님께서 삼군을 거느리신다 면 누구를 데리고 하시겠습니까?” 선생 “맨주먹으로 범을 두들기고 배 없이 강물 을 건너려 들며, 죽어도 좋다고 날뛰는 사람과는 나는 함께 일할 수가 없다. 하기 야 일을 당하면 실패할까 저허하며, 일이 성사되도록 잘 꾸며내는 사람이어야지.”

子謂顔淵曰 用

36

之則行

37

38

之則藏

39

惟我與爾 有是夫 子路曰 子行三軍 則誰與

40

子曰 暴

41

虎馮

42

河 死而無悔者 吾不與也 必也臨事而懼 好謀而成者也

43

선생 “돈벌이를 해야만 하는 것이면 나는 마부 같은 벼슬이라도 하겠지만, 할 수 없을 바에야 나 하고 싶은 대로나 해 보겠다.”

34 哭 : 弔哭.

35 歌 : 시를 외우며 길게 뽑는다.

[평설] 哀樂 간에 상제의 곁에서는 삼가야 한다. 이는 평상시와는 다르기 때문이다.

36 用 : 任用.

37 行 : 行道.

38 舍 : 登用하지 않는다.

39 藏 : 자신을 숨긴다.

40 與 : 함께 한다.

41 暴 : 범을 맨손으로 친다.

42 馮 : 배 없이 물을 건넌다.

43 [평설] 써주면 제 구실을 다할 줄 알아야 하고 버리더라도 祿을 구하려고 치근대지 않아야 제법 사람답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앞뒤를 가릴 줄 모르는 용기는 바람직한 것이 못된다. 말을 조심하며 성과를 거두는 슬기가 있어야 할 것이다.

子曰 富

44

而可求

45

也 雖執鞭之士

46

吾亦爲之 如不可求

47

從吾所好

48

선생이 조심하시는 것은 재계(齋戒)와 전쟁과 질병이다.

子之所愼 齊

49

戰疾

50

선생이 제나라에서 ‘韶의 곡’을 듣는 석 달 동안 고기 맛조차 잊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처럼 즐거움에 취하고 말았다.”

子在齊 聞韶

51

三月 不知肉味 曰 不圖

52

爲樂之至於斯也

53

염유 “선생님이 위나라 주군을 위하여 일해 주실까?” 자공 “글쎄, 내가 가서 여 쭈어 보지.” 안으로 들어가서 “백이 숙제는 어떤 사람인가요?” 선생 “옛날 잘난 사 람이지.” “불평객이었나요?” “사람 구실을 하려다가 사람 값을 하게 되었는데 불 평은 무슨 불평!” 나와서 말하기를 “선생님은 안 하실 거야.”

44 富 : 옛날에 富에는 貴가 따랐으므로 貴를 통한 富.

45 可求 : 求함직한 治世.

46 執鞭之士 : 賤職.

47 不可求 : 亂世.

48 [평설] 공자는 治世에는 벼슬살되 亂世에는 물러서는 것으로 行世하였다. 그러므로 治世에는 비록 賤職이라도 맡음직하지만 亂世에는 비록 高官의 職分이라도 이를 避하고 獨善獨行의 길을 걷기를 요구한 것이다. 이는 亂世에 있어서의 無分別한 富貴에의 耽溺을 경계해서인 것이다.

49 齊 : 齋와 같다. 제사에 앞서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한다.

50 [평설] 공자는 무조건 平和主義 또는 反戰論者는 아니다. 戰爭은 언제나 殺戮과 消耗가 따르므로 義戰이 아니면 이를 삼가야 하며 疾病 또한 버려두지 않고 제사나 전쟁처럼 세심한 주의에 따르는 그의 조심성을 엿볼 수 있다.

51 韶 : 舜의 樂.

52 不圖 : 不意.

53 [평설] 공자가 韶樂을 즐긴 것은 韶樂의 盡善 盡美한 데에도 있겠지만 공자가 스스로 음악에 대한 깊은 素養과 理解 때문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공자가 항상 禮와 더불어 樂을 강조하고 있는 것은 이 까닭인 것이다.

冉有曰 夫子爲衛君

54

乎 子貢曰 諾 吾將問之 入曰 伯夷叔齊 何人也 曰 古之賢人也 曰 怨乎 曰 求仁而得仁 又何怨 出曰 夫子不爲也

선생 “나물죽을 먹고 찬물을 마시며 팔을 베고 누웠을망정 즐거움이 또한 그 가 운데 있으니, 당찮은 재물이나 지위는 나 보기는 뜬구름 같애…”

子曰 飯

55

疏食 飮水 曲肱而枕之 樂亦在其中矣 不義而富且貴 於我如浮雲

56

선생 “몇 해를 더하여 쉰에라도 易學 공부하게 되면 큰 허물은 없게 되련만!”

子曰 加

57

我數年 五十以學易

58

可以無大過矣

59

선생이 늘 이야기하던 것은 시와 역사와 예법이었으니, 이것이 모두 늘 이야기하 던 것들이다.

54 衛君. 出公. 輒. 衛靈公이 죽은 후 손자 첩(輒)이 즉위하여 그의 父 형궤(蒯聵. 南子夫人의 아들로 그의 母의 淫奔을 탄하여 죽이려다가 宋나라로 쫓겨가 있던 자)의 入國을 거절하니, 이는 父子相怨의 경우로서, 백이 숙제의 父子兄弟相讓과는 相反되는 사실이므로 이 例를 들어 공자의 마음을 타진해 본 것이다. 冉有와 子貢이 스승 공자가 행여나 정치적 과오를 범하지나 않을까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는 師弟의 情誼가 엿보인다. 그 스승의 밑에 그 弟子가 있음을 알 수 있다.

55 飯 : 제기를 채우다.

56 浮雲 : 보이기는 하지만 쓸모가 없다.

[평설] 伯夷 叔齊처럼 부귀를 헌신짝 같이 버리는 행위는 가난과 고초 속에서도 不義에 따르지 않는 즐거움을 느꼈기 때문이리라. 공자의 이런 경지도 그와 비슷하지 않을까.

57 加 : 假.

58 易 : 順受天命의 道.

[참조] 五十을 卒로 易을 亦으로 보는 一說도 있다.

59 [평설] 易理란 易學 이전에 이미 東洋의 賢哲들은 이해하고 있었다 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므로 공자의 易理에 대한 이해는 韋編三絶한다는 易學的 입장과는 구별되어져야 할 것이다.

子所雅言 詩 書 執禮

60

皆雅

61

言也

62

섭공이 자로더러 공 선생의 일을 물은즉, 자로는 대꾸하지 않았다. 선생 “너는 왜 ‘그 사람된 품이 한 번 열이 나면 끼니도 잊고, 즐거움에 취하여 걱정도 잊고, 늙는 줄도 모른다’고 그렇게 말하지 않았더냐!”

葉公

63

問孔子於子路 子路不對

64

子曰 女 奚不曰 其爲人也 發憤

65

忘食 樂以忘憂 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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