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경험의 의미화를 통한 능동적 문화 향유
타문화라는 낯선 경험은 인식의 영역을 넓혀주며, 새로운 의미를 견인할 수 있는 매개체이다. 인간은 경험을 통해 의미의 영역을 형성하는데, 이 영역은 개인의 존재 내에만 고정된 것이 아니다. 우리의 개인적 사고와 경험을 다른 사람과 의사소통하는 과정에서, 그리고 우리의 사고와 경험에 대한 타인들의 표현을 듣고 바라보는 과정에서 의미는 개인으로서의 우리를 초월하기 때문이 다. 그렇기 때문에 의미는 고정되지 않고 자신에 대한 반성과 회상을 통해 재 형성될 뿐만 아니라, 새로운 경험에 의해서도 확장된다.48)
즉, 경험은 인간이 의미를 형성하는데 필요한 질료라고 볼 수 있다. 주체가 이미 가지고 있던 인지 도식을 통해 경험에서 의미를 만들고 또 그 경험으로 부터 새로운 인지 도식이 창출된다. 그러나 이러한 경험들이 모두 의미를 만 들어내는 것은 아니다. 어떤 경험들은 아예 인식되지 않을 수도 있고, 인식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무의식의 저변으로 가라앉게 되는 경우도 있다. 한국어 학 습자들의 한국 문화 경험 또한 마찬가지이다. 같은 문화 경험이라고 하더라도 주체에 따라 그 경험의 인식 유무뿐만 아니라, 의미화 유무도 다르다. 인간은 대부분 자기에게 낯선 경험, 일상적이지 않은 경험을 마주쳤을 때 그 경험을 인식한다. 그러나 인식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학습자들이 스스로 주의를 집중 하지 않는 한 경험은 의미를 창출하지 못하고 사라지게 된다.
듀이(J. Dewey)는 경험의 본질은 능동적인 요소와 수동적인 요소가 결합된 것이라고 보았다. 능동적인 요소는 경험을 시도하는 것(trying)이고, 수동적인 요소는 경험을 겪는 것(undergoing)이다. 듀이는 이 두 가지 요소가 유기적으 로 연관될 때 의미 있는 경험이 된다고 본다. 즉, 단순한 활동은 경험이 될 수 없으며, 시도하는 것으로서의 경험 또한 그것을 통해 수반되는 변화들이 이전 의 경험에 대한 자신의 반성적 의식과 관련되지 않는 한 의미 없는 변이 48) D. E. Polkinghorne, Narrative knowing and the human sciences, 강현석 외 옮 김,『내러티브, 인문과학을 만나다: 인문과학연구의 새 지평』, 학지사, 2009, pp.
49-51.
(transition)일 뿐이다.49)
따라서 중요한 것은 수동적 경험과 능동적 경험을 연결시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수동적으로 주어진 ‘차이’라는 경험에 대하여 자신은 왜 그것을 다르 다고 느끼는 지, 차이는 왜 발생하는지, 한국에는 왜 그러한 문화가 있는지, 그리고 자신은 어떠한 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지 스스로 설명, 분석, 비교, 해석하는 경험을 시도하는 것이다. 두 가지 요소의 경험이 맞닿아 새로운 의 미를 창출할 때 학습자는 문화를 향유하는 능동적 주체로 나아갈 수 있다.
(2) 문화 간 소통 의지 촉진
경험을 활용한 상호문화교육은 학습자가 자신의 삶을 교실로 가져와 상호작 용하도록 함으로써 타문화와의 소통 의지를 촉진시킬 수 있다. 적응 문제와 결부되어 외면했던 경험들을 인지적으로 분석해봄으로써 문화 학습의 가치를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오우크쇼트(M. Oakeshott)에 따르면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학습은 인간이 살아가며 만나는 세계와 그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인간의 다양한 모습 을 통해 인간의 삶에는 단순한 생존 이상의 의미가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그 의미를 탐구하도록 하는 활동이다. 그러나 이러한 의미를 가진 학습이 누구에 게나 가능한 것은 아니므로, 이를 가능하게 하는 교육이 필요한 것이다. 오우 크쇼트는 인간이 어렴풋하게나마 인간으로서의 자기 자신을 자각하게 되었을 때, 즉 개인이 본능적 필요에 따라 환경에 수월하게 적응하여 생존하는 방법 을 익히는 차원을 넘어선 무엇인가가 있음을 조금이라도 깨달았을 때 학습을 스스로 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 즉 ‘이해하려는 욕망’이 생긴다고 보았다.50)
자신의 경험을 스스로 분석하고 해석하는 과정을 통해 학습자들은 문화를
49) 임태평,『존 듀이: 철학적 탐구와 교육』, 교육출판사, 2005, pp.292-293.
50) M. Oakeshott, 차미란 역, 「학습의 장」 상·하, 『교육진흥』 가을·겨울호, 중앙 교육연구소, 1992, pp.170-171, 박현진, 「도덕과를 통한 다문화교육에 대한 두 관 점: 교육목적에 비추어본 다문화교육의 본질」, 『윤리철학교육』 Vol.16, 윤리철학 교육학회, 2011, p.13에서 재인용.
단순히 생존과 적응의 문제가 아닌 고차원적인 발달을 위해 필요한 학습 제재 로 인식할 수 있다. 학습자가 이해 불가능성을 겪고 있는 경험을 선택하고, 그 경험을 이해하기 위해 해석한다는 것은 의식이 향하고 있는 문화 현상이 학습 자에게 중요한 의미를 띠고 있다는 것이다.
학습자는 적응의 차원에서 바라볼 때 간과했던 문화 경험의 의미를 표면화 하고 인식함으로써 성장의 차원에서 문화에 접근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접근 은 학습자가 타문화를 갈등을 유발하는 불편한 대상이 아닌 가치를 새롭게 형 성해나갈 수 있는 학습의 대상으로 바라보게 해준다. 이러한 가치 지향적 태 도는 학습자가 소통 의지를 가질 수 있는 가능성 열어준다.
(3) 비판적 문화 인식 활성화
문화를 비판적으로 인식한다는 것은 주체가 문화에 대한 명백한 기준을 세 우고, 기준에 따라 타문화와 자문화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평가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학습자들은 외국어를 배우면서 자신의 국가적, 민족적, 개인적 정체성을 발견하고, 자신을 형성하고 있는 배경들이 단일한 것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님을 깨달아야 한다. 외국 문화를 통해 배우는 것은 자문화도 타문화 도 아닌 어떠한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태도이다. 학습자들은 다양한 문화들의 교차 속에서 스스로 자신의 문화나 언어도 아니며, 목표 문화나 언어도 아닌 제 3의 장소를 정의하고 찾아가도록 노력해야 한다.51)
학습자의 경험은 제 3의 장소를 찾아가는 유용한 학습 제재이다. 앞선 논의 에서도 살펴보았듯이, 학습자의 문화 경험은 ‘충격’이라는 강력한 감정을 기반 으로 물음을 유발하며, 이러한 물음은 모두 학습자 자신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점에서 기존의 정체성에 대한 재인식이 가능해진다. 제 3의 장소는 무 엇보다 자기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때 발견할 수 있다. 학습자는 자신의 경험을 대 상화하면서 ‘충격 감정에 대하여’, ‘특정 문화 현상에 대하여’ 성찰하게 되고, 이는
51) C. Kramsch, Context and Culture in language Teaching, Oxford University Press, 1993, pp.256-267.
대상을 지향하고 있는 학습자와 문화 사이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측면에서 타문화를 거울삼아 자신의 문화적 배경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또한 학습자가 문화 경험으로 유발되는 감정을 분석함을 통해 자기를 얽매고 있는 편견 (prejudice)과 고정관념(stereotype)을 직시할 수 있다.
바이럼은 ‘해석하고 연관짓는 기술(skills of interpreting and relating)’과
‘발견하고 상호작용하는 기술(skills of discovery and interaction)’을 통해서 상호문화적 지식(knowledge)과 태도(attitude)는 다시 재정립될 수 있다고 보 았다.52) 즉, 학습자는 문화 간 차이의 존재와 사실을 인정하는 것에서 더 나 아가 경험에 대해 직접 판단하고 해석하는 비판적 사고의 과정을 통해 이미 가지고 있는 가치와 신념을 새롭게 세워나갈 수 있다.
52) M. Byram, 앞의 책, 1997, p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