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냉전의 전개라는 국제정치적인 상황에 의해 제약받았으 며 근대국가를 건설하는 핵심 국가기구를 만들어내는데 필요한 인적 자원 과 물적, 경제자원이 부족하였기 때문에 취약국가로 출발하게 되었다. 즉, 자생적으로 자본주의가 발전한 서구 국가들은 이에 적합한 정치, 사회구조 가 함께 수반되고 부르주아 계급과 시민사회가 성장하여 근대국가건설 과 정을 이끌었지만 대한민국의 경우에는 그러한 정치, 사회구조와 헤게모니 를 지닐 수 있는 지배계급의 존재를 바탕으로 한 사회 메커니즘이 준비되 어 있지 않았다. 이렇게, 취약국가는 근대국가를 건설할 수 있는 사회, 경 제의 조건이 매우 미비하고 피폐하여 주도적인 지배계급이 부재한 원시적 인 상황에서 나타나기 때문에 특정한 계급구조나 경제조건과는 큰 관련이 없는 국가의 유형이다.
또,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취약국가로 출발하게 된 대한민국이 국가 건설을 진행시키는 단계에서 민족주의를 제대로 흡수하지 못하고 각 시기 마다 각기 다른 자원이 부족한 현상이 반복되었기 때문에 취약국가가 지속 적으로 유지되었다. 즉, 국가는 각 시기마다 가장 시급한 자원 부족의 문제 를 어떻게든 해결하려는 노력을 내재적으로도 기울였고 이를 통해 국가가 붕괴되지 않고 유지될 수 있었지만 매번 새롭게 부족한 다른 자원의 문제 가 출현함으로써 전체적인 국가자원의 상태는 취약성을 면치 못하였다. 이 러한 자원 취약성의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될 수 있는 최소한의 가능성이 발견된 것은 1950년 5-6월 경 이었지만 바로 그 시점에서 한국전쟁이 발 생하였다.
한편, 전술한 것처럼 국가건설과정을 자원들 간의 상호작용의 결과 로 파악하고 있는 취약국가론은 국가를 주권의 독립 하에서 일정한 영토와 주민을 통제하는 행정과 법률의 강제조직체로 보는 막스 베버(Marx Weber)112)의 관점을 이어받은 연구자들을 말하는 네오 베버리안의 국가
112)Max Weber, Guenther Roth and Claus Wittich (eds), Economy and Society : an Outline of
형성이론을 이론적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 따라서, 전혀 새로운 국가론인 취약국가론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서 이론적 함의를 제공한 네오 베버리 안의 국가론을 잠시 소개하고 뒤이어 미군정기-제1공화국 초기 자원들의 조건이 어떻게 구체적으로 취약국가형성에 작용하게 되었는지를 기술하고 자 한다.
네오 베버리안들은 국가기구 형성의 기반이 되는 관료제도와 조세 제도 등의 인적, 물적, 경제자원을 중시하는 베버의 국가론을 바탕으로 근 대국가의 개념과 능력에 대해 정의하고 시민사회의 동의를 바탕으로 국가 기구를 통해서 발휘되는 국가의 자율성에 관한 논의들을 발전시켰다. 이들 이 서로 다른 용어와 설명방식으로 제시하고 있는 근대국가의 형성과정을 자원들과 국제관계, 국내정치를 주도하는 집정관 사이의 상호작용으로 풀 어서 요약하여 보면 다음과 같다. 제3세계 신생 국가의 형성= 인적, 물적, 경제, 이념자원+ 국제정치관계+ 국내정치 속에서 각종 자원들과 국제정치 적 자원 간의 상호 관계를 중재하는 조정자적인 집정관의 결합을 통해 이 루어진다. 즉, 제3세계 근대국가의 형성과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제도와 국가의 통합된 정체성을 이루어내는 이념의 형성과정113)과 국제정 치적인 요소의 개입114), 그리고 국내정치를 조정하는 조정자적 집정관 (moderator praetorian)115)이라는 세 가지 요소들 간의 상호작용을 동시 Interpretive Sociology (Berkeley :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78).
113)Charles Tilly, “Reflections on the history of European State-Making,” in Charles Tilly(eds), The Formation of National States in Western Europe (N.J: Princeton :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78),
114)잔 프랑코 폿지 지음 ; 박상섭 옮김.『근대국가의 발전』(서울: 민음사, 1995), pp.105.
115)에릭 노르딩어(Eric Nordinger)는 사무엘 헌팅턴(Samuel Hungtington)이 지적한 집정관 체제의 개념을 적용하여 제3세계의 신생국가들의 근대국가건설과정에서는 중재자(Moderator), 후견인(Guardian), 통치 자(Ruler)의 3단계로 진행되는 권위주의적 통치체제가 나타난다고 설명하고 있다. 즉, 1.권위주의적 성격 이 가장 낮고 민간주도 정부의 형태를 지니고 있으나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헌법을 근거로 시민들에게 경제적 보상, 정치질서와 안정된 정부의 보장 등을 통해 권력을 나누어 주고 경쟁 집단들 간의 세력균형 을 유도하는 '중재자'→2. 군인과 민간 연립정부로 중간정도의 권위주의적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군인들 이 공공연하게 민간인들을 대신하려고 하는 '후견인'→3. 군부 주도의 정권이 직접 지배하는 가장 권위주 의적 정부의 단계인 '통치자'의 권위주의적 통치단계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Eric Nordinger, Soldiers in Politics : Military Coups and Governments, Englewood Cliffs, (N. J. : Prentice-Hall, 1977).
에 살펴보아야 한다.
한편, 근대국가의 제도와 통합된 정체성은 다시 인적, 물적 자원과 경제, 이념자원으로 분류해볼 수 있다. 여기서 인적 자원은 합법적인 폭력 을 독점하고 징세 등의 행정을 펼쳐 합리적인 지배를 실현시키는 억압적이 고 하부구조적인 권력기구들의 근간이 되는 관료 등을 말한다. 다음으로 물적 자원과 경제자원은 관료제를 통해 국가가 발휘하는 군사 통제력과 안 정적인 행정, 전제적 권력, 그리고 징세를 통해 확보되는 세입(稅入)등의 재정(財政)을 말한다.116)국가는 물적 자원과 경제자원을 확보하여 이를 인 적 자원인 관료들에게 지불하여 충성을 획득함으로써 합리적 지배를 지속 시킨다.117) 또, 이념자원은 근대국가의 합리적 지배를 가능케 하는 구성원 들 간의 통합된 정체성을 말하며 이는 정치적인 정당성의 근원이 되기도 한다. 근대국가는 구성원인 부르주아와 시민사회와의 협상을 통하여 자원 동원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고 이들의 동의를 이끌어 냄으로써 정치적인 정 당성을 확보하여 물적, 경제자원의 동원을 지속시킨다.118)
아울러, 이들 자원과 함께 국제정치적인 요소라는 국제관계의 자원 이 상호작용함으로써 근대 국가가 형성된다. 물론, 서구 근대국가의 경우 에도 전쟁 등의 국제정치적 요소가 개입되어 국가가 대외적인 전쟁 수행을 위해 부르주아, 시민사회와 협상하게 되어 이들의 역할과 권리가 신장됨으 로써 근대국가의 형성이 촉진되었지만 각종 인적, 물적 자원과 경제, 이념 자원이 서구 근대국가에 비해 부족한 제3세계 신생국가들의 경우에는 서 구보다 국제정치적인 요소가 크게 작용하게 된다.119)
마지막으로, 인적, 물적 자원과 경제, 이념 자원이 취약하고 국제정
pp.21-27.
116)Theda Skocpol, “Bringing the State Back in: Strategies of Analysis in Current Research,” in Peter Evans and Theda Skocpol,1985. pp. 5, pp. 16.
117)Bertrand Badie and Pierre Birnbaum, The Sociology of the State (Chicago :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83), pp. 11-21.
118)Charles. Tilly, Coercion, Capital, and European States, AD 990-1992 (Cambridge, Mass., USA : B. Blackwell, 1992), pp.12-225.
119)Moore, 1966. pp. 13.
치 요소의 영향력이 큰 제3세계 신생국가의 경우 국내정치 속에서 이들 요소들을 조정하는 중재자(Moderator)적인 집정관(Praetorian)이 등장하게 된다. 이는 집정관의 세 단계 중 첫 단계로 권위주의적 성격이 가장 낮고 민간주도 정부의 형태를 지니고 있으며 거부권(Veto Power)을 행사하면 서 헌법(Constitution)을 근거로 시민들에게 경제적인 보상과 정치질서, 그 리고 안정된 정부를 보장해주면서 권력을 나누어 주고 경쟁 집단들 간의 세력균형 상태를 보존(Preserve Status-Quo)한다. 집정관 체제는 중재자 (Moderator)→후견인(Guardian)→통치자(Ruler)의 세 단계로 전개되는 권 위주의 통치로 발전하게 되고 정치적인 정당성과 헤게모니를 지니는 부르 주아 계급이 형성되어 정치, 사회메커니즘이 정착되기 전 까지 지속되게 된다. 본 연구에서는 제1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이었던 이승만을 중재자적인 집정관으로 간주하고자 한다.
그렇다면, 과연 이들 자원들은 한국에서의 취약국가 형성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을까?
첫째, 국제정치의 영향은 취약국가 형성의 요인 중 하나로 작용했 다. 1947년 7월에 제2차 미, 소 공동위원회가 완전히 결렬되기 전 까지 소련과의 협상을 통한 철수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았던 미국이 뒤늦게 자유 민주주의 국가를 건설하려고 하였기 때문에120) 대한민국은 국가건설을 위 한 충분한 시간과 여유를 가지지 못했다. 이에 비해, 남한 내부의 공산주의 자들은 해방직후부터 사실상의 내전(內戰)을 전개하고 있었다. 이들은 일본 의 식민통치가 남긴 심각한 정치, 경제, 사회적인 휴유증으로 인해 초래된 혼란상황을 공산혁명의 호기로 삼으려고 하면서 소련과 북한의 지원 속에 서 미군정시기부터 대한민국 출범 당시까지 대구 폭동, 여수, 순천 반란, 제주 4.3 사건 등의 무장봉기를 끊임없이 일으켰다.
미국 역시 공산주의자들의 침공 가능성을 인정하고 지원을 증가시
120)하영선은 미국의 한반도에서의 사실상의 봉쇄정책이 1947년 이후부터 적극적으로 수행된 것으로 보고 있다. 하영선, “냉전과 한국,”, 하영선 편, 『한국전쟁의 새로운 접근: 전통주의와 수정주의를 넘어서』(서 울: 나남, 1999), pp. 21-26.
키고 국제연합의 결의에 따라 소련군의 북한 철수보다 한 달이나 앞선 1948년 9월 15일부터 미군을 철수시키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정부 인 수 과정 속에서 미국정부와 한국 정부 사이에 발생한 마찰로 인해 행정이 양에도 크나큰 차질이 발생하였다.121) 이러한 긴박한 상황 속에서 지나치 게 짧은 기간 동안에 정부를 수립하게 됨으로써 정상적인 국가라면 국민을 국가의 제도 속으로 통합시키기 어려웠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신속하게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서 취약국가라는 독특하고 변형된 형태의 국가건설의 형성과정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둘째, 자원들 중에서는 특히 베버가 지적한 근대국가의 두 가지 핵 심기능인 국가의 합법적 폭력 독점과 관료제 행정을 담당할 인적 자원 부 족의 문제가 가장 심각했다.
근대국가건설과정에서는 사회질서를 확보하고 외적으로부터의 침략 을 막아내기 위한 억압적인 국가기구들인 군대와 경찰, 그리고 국가의 재 원조달을 위한 조세징수와 같은 기초적인 행정업무를 수행하는 하부구조적 인 권력기구인 관료제(官僚制的)조직을 만드는 일이 가장 중요했었다. 실제 로, 일제 식민지 시기의 국가기구는 일본 본국에서 공급되는 물적, 강제력 적인 권력자원을 기반으로 식민지 사회의 수탈과 치안유지라는 제한된 목 적을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훈련된 인원을 충분히 공급받을 수 있었 다. 심지어, 일본은 경영과 전문 분야는 물론 기술가 계층에까지도 인력을 공급하였다.122)
이에 비해, 해방 직후 한국은 국가기구를 위해 일할 수 있도록 훈련 받은 인원이 턱없이 부족했다. 먼저, 병력자체가 적었던 미군정은 현지사 정과 행정 업무에 미숙한 미군 장교들만을 거느리고 있었고 능력 있는 군 정 요원이나 장교들은 거의 없었다.123)그나마 훈련을 받은 미국인 요원들
121)FRUS 1948, VI, 1948년 8월 18일「Jacobs to Marshall」. pp.1282-1283. 와 FRUS 1948, VI, 1948 년 8월 24일「Jacobs to Marshall」. pp.1287. 참조.
122)Albert Wedemeyer, Report to the President Submitted by Lt. Gen, A. C. Wedemeyer: Korea, September 1947, (USGPO, Washington, D.C., 1951).; 신복룡. 1992. pp. 290.
123)FRUS 1945 VI, 1945년 9월 15일「Polit Adviser in Korea to Secretary of State」 pp. 10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