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색 결과가 없습니다.

인간중심론 주체사상 개발에서의 황장엽의 역할

양형섭의 이 연설 후 불과 몇 달 후인 1972년 9월에 황장엽의 인 간중심의 새로운 개념의 주체사상이 김일성의 이름으로 발표되었다.

또한 김일성이 1972년 1월에 일본 요미우리신문 기자들이 제기한 질문에 대한 대답 형식으로 발표한 글111)에서도 주체사상의 내용은

1972년 9월의 문건과 다르다. 여기서도 “주체를 세운다는 것은 자기

나라의 혁명과 건설에 대하여 주인다운 태도를 가진다는 것”으로 정의 하였다.

1972년 9월 이후의 주체사상은 이전의 주체사상과 확연히 구별된

다. 그런 점에서 인간중심론의 주체사상의 형성에 황장엽의 역할이 주도적이었다는 것이 입증될 수 있다.

북한의 황장엽 비판

김정일은 국내파2세 학자들을 주체사상 이론 개발에 동원하고 황장 엽은 배제하였다. 황장엽이 고집세게 주체사상을 보편적 진리로서 철 학화하는데 역점을 두어야 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1973 년 이후 황장엽은 점차 주체사상 개발의 본류에서 배제되었다. 황장 엽이 주체사상 이론개발에서 가장 활발히 했던 시기는 1972년 9월 문건이 발표되던 시기이후 불과 몇년까지이다. 주체사상 개발에 참여 한 시기는 이론서기로 임명된 1958년부터 1974년경까지이며 김일성 의 배려아래 인간중심의 주체사상 개발에 전념했던 것은 1960년대

말부터 1972년까지 3년 반이라고 한다.112)

대신에 그는 1979년 10월부터 주체사상연구소 소장직을 맡아 대 111) 김일성,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당면한 정치, 경제 정책들과 몇가 지 국제문제에 대하여,” (일본 요미우리신문 기자들이 제기한 질문에 대한 대답, 1972년 1월 10일), 「김일성저작집 27」, p. 25.

112) 황장엽, 「나는 역사의 진리를 보았다」, p. 375.

외적 선전과 중앙당간부들에 대한 주체사상 학습의 임무를 맡게 되었 고, 중앙당 과학교육담당비서직을 겸임하였다. 황장엽의 강의는 독자 적인 사상을 강의하는 것이 아니라 본부 당위원회에서 써주는 강의안 에 근거하여 학습회를 지도하도록 되어 있었다고 한다. 1984년부터 는 주체사상연구소장과 당국제비서를 겸임하였으며, 1993년 말부터 국제담담비서를 다시 맡기도 하였다.

김정일의 권력에의 전면 등장이후 황장엽이 주체사상 개발의 역할 에서 배제되었다는 것은 북한문건에 나온 황장엽의 기본입장에 대한 비판에서 알 수 있다. 황장엽 주체사상에 대한 비판이 이미 1973년 에 나왔다. 인간중심론의 주체사상을 발표한 문건인 「우리당의 주체 사상과 공화국정부의 대내외 정책의 몇가지 문제에 대하여」가 발표된

지 1년이 되는 때인 1973년 9월에 「근로자」가 낸 기념논문113)에서

계급이론을 왜곡하고자 하는 관점과 계몽주의적 관점을 정면비판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들은 모두 황장엽을 겨냥하는 비판이다.

로동계급의 해방사상인 주체사상의 계급적 성격을 모호하게 하거 나 그 혁명적 진수를 왜곡해서는 안된다. 주체사상은 근로하는 사람 에 대한 가장 과학적이며 혁명적인 학설로서 계급적 입장을 떠나 사 람일반에 대한 사랑을 설교하는 기회주의적 리론을 철저히 배격한 다. 그것은 또한 저들의 협소한 계급적 리익을 가리우기 위하여 사 람의 자유와 평등과 박애에 대하여 떠들어댄 부르죠아계몽사상과도 근본적으로 구별된다.114)

주체사상 연구는 한동안 황장엽의 주체사상 기초연구와 김정일팀의 113) “위대한 주체사상의 기치를 높이 추켜들자,” 「근로자」, 1973년 9호.

114) 위의 글, p. 4.

수령절대주의 연구로 이원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황장엽이 김정일 팀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김일성의 권유로 주체사상 연구를 계속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황장엽에 의하면 김정일이 노리는 것은 수령독재를 정당화하려는 것이지 주체사상 이론자체는 아니라고 생각 하고 황장엽 자신은 수령의 개인독재를 정당화하는 부분은 건드리지 않고 적당히 강조하면서 주된 초점은 마르크스‧레닌주의와 주체사상 의 차이점을 설명하는데 두었다고 한다.

결국 주체사상을 인간중심의 역사관과 보편적 진리에 기초한 독자 적 철학체계로 발전시키려는 황장엽의 주장과, 계급주의적 입장에서 수령 우상화와 수령개인독재를 더욱 강화할 것을 요구하는 김정일 세 력들의 주장 사이의 사상적 대립은 처음부터 예고된 것이었다.115)

김정일은 황장엽을 무시할 수는 없어도 끊임없이 견제하고 비판하 였다고 한다. 문제의 본질은 인간중심의 철학으로서의 주체사상과 수 령중심의 주체사상간의 차이인데 이 중요한 문제의 본질은 은폐하고 엉뚱한 논점을 끌어들여 황장엽을 비판했던 것으로 보인다. 황장엽에 대한 비판은 대체로 두가지 내용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는 황장엽의 인간중심의 사상을 인생철학으로 분류하는 것이 다. 이와 관련된 하나의 에피소드가 있다. 황장엽에 의하면, 1980년

에서 1981년경에 김정일 이름으로 나온 글을 1974년 4월 2일에 발

표한 것으로116) 날짜를 소급하여 발표한 한 글에서 황장엽 관련 부 분이 있다. 이 글에서 김정일은 한 사회과학자(황장엽을 칭함)가 주 체철학과 관련하여 의견을 적은 편지를 자신에게 주었는데 읽어보니 주체철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인간철학’으로 이해하고 있더라 고 비판했다고 한다. 황장엽의 주체사상을 자신의 것과 구별하고 비 115) 황장엽, 「나는 역사의 진리를 보았다」, p. 192.

116) 김정일, “주체철학 이해에서 제기되는 몇가지 문제에 대하여,” (김정 일이 1974년 4월 2일 조선로동당 이론‧선전일군들과 한 담화).

판하기 위하여 황장엽의 것을 “인간이란 무엇이며 인생이란 어떤 것인 가하는 문제를 논하는 하나의 인생철학”이라고 비판하였다. 주체사상 형성과정의 처음부터 황장엽은 엉뚱한 주장을 하였다는 것을 지적하 기 위하여 날짜를 소급하여 조작했다는 것이다.

둘째는, 물질-의식의 관계와 세계-사람의 관계라는 논점으로 황장 엽을 비판했다. 비판의 요점은 맑스‧레닌주의 관점에서 볼 때 존재론 적 실재 가운데 가장 높은 단계로 추상화된 실재를 표현하고 있는 “물 질”이라는 범주는 전체(totality)로서의 세계를 표현하는 철학적 범주 이며, 김일성의 주체철학은 유물변증법적 세계관을 전제로 하고 있다 는 것이다.

그런데 황장엽은 변증법적 유물론의 기본원리를 폐기한 조건에서 사람-세계의 관계문제를 해명하려고 하였다는데 문제의 핵심이 있다 는 것이다. 황장엽은 맑스‧레닌주의가 제기하고 해명한 철학의 근본 문제를 낡고 해묵은 관념론의 논제들과 결부시킴으로써 사실상 변증 법적 유물론의 기본원리를 폐기했다는 것이다. 황장엽의 관점은 김일 성주의가 맑스‧레닌주의의 변증법적 유물론의 기본원리를 폐기하지 않 고 그 역사적 공적을 인정할 뿐만 아니라 자기의 철학적 원리 안에 종 속적 계기로서 포괄하고 있는 것과 비교할 때 근본적인 차이를 보인다 는 것이다.117) 황장엽을 비판하기 위하여 김일성이 싫어하는 소련의 맑스‧레닌주의를 다시 끌어들여서 유물론을 부활시켜놓은 것이다.

황장엽은 이처럼 인본주의 사상을 주창하고 고집스럽게 고수했기 때문에 북한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남한으로 오게된 것으로 보인다.

117) 한호석, “황장엽류의 주체철학 해석에 대한 북(조선) 내부비판,”

(http://www.onekorea.org), p.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