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색 결과가 없습니다.

김정일 주도의 주체사상 개발

Ⅴ. 70~80년대 수령중심론의 주체사상의

형성과정과 김정일의 역할

1969년 3월에 당 조직지도부 부부장, 1970년 10월 선전선동부 문 화예술 부문 담당 부부장, 1972년 1월에 당선전선동부 부장에 올랐

다. 드디어 1973년 9월에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5기 7차전원회

의가 비밀리에 개최되어 김정일은 조직과 선전선동을 담당하는 당중 앙위원회 비서 및 당 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 후보위원으로 선출되었

고 1974년 2월에는 만 32세의 나이로 당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 위

원으로 선출됨으로써126) 당의 수뇌부에 올랐다. 김정일이 정치위원 이 된 것은 김일 등의 추대발언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후계자로서 공 식 등장한 것을 의미한다. 이때부터 김정일은 당중앙으로 지칭되면서 명실상부한 후계자의 위치를 장악하게 되었다.

후계자로 공식지위에 오른 것은 1974년이지만 김정일은 오래 전부 터 후계자로서 역할을 해왔고 북한지도부에서 그렇게 인식하고 있었 던 것이다. 오래 전부터 김일성의 측근에서 김정일을 후계자로 추대 하자고 종용했으나 김일성이 만류하여 시간이 지연되었다고 한다.

김일성에 의하여 처음으로 공개적으로 후계문제가 거론된 것은

1971년 6월에 개최된 사로청 6차대회에서 “청년들은 대를 이어 혁명

을 계속해야 한다”는 강령적 연설을 한 것이며, 이어서 「근로자」가 같 은해 6월호에 관련 논문을 실었던 점을 중시할 필요가 있다.127)

1971년 10월에는 김정일 자신의 이름으로 대를 이어 혁명하자는 연

설문을 내놓을 정도로 후계자로서의 입지가 확보되어 있었던 셈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얼마전에 있은 사로청 제6차대회에서 청년들 을 대를 이어 혁명을 계속 하도록 튼튼히 준비시킬데 대한 강령적과

126) 조선로동당출판사 편, 「조선로동당력사」 (평양: 조선로동당출판사, 1991), p. 473.

127) “모든 청년들을 우리 혁명의 참된 계승자로 튼튼히 키우자,” 「근로 자」, 1971년 6호, p. 15.

업을 제시하시였습니다. 청년들을 대를 이어 혁명을 계속 하도록 준 비시키는 것은 오늘 우리 혁명발전의 절실한 요구입니다.128)

김정일은 1974년 2월 당전원회의에서 김영주를 사실상의 2인자 자리였던 당조직부장에서 부총리로 강등시켰고 다시 양강도 산골로 보내 연금시킴으로서 완전히 실권을 장악하게 되었다. 1974년 4월

25일자 노동신문은 사설에서 처음으로 “대를 이어 충성하자”라는 표

어를 내걸었다.

이때부터 김정일은 자신의 권력장악의 한 수단으로서 김일성에 대 한 우상화작업에 들어갔다. 1974년에 유일사상확립10대원칙을 발표 했으며 구호나무 발굴을 발표하는 등 여러 가지 수단을 사용하여 김 일성 우상화작업을 추진하였다.

주체사상은 이러한 맥락에서 김정일 자신의 후계구도의 이념적 도 구로서 활용되었던 것이다. 황장엽이 인간중심주의적 사상에 관한 자 신의 연구결과를 설명하면서 마르크스의 유물론과 변증법을 근본적으 로 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을 때 김일성은 자신이 마르크스나 레닌보 다 낫다고 할 수 있겠느냐고 하면서 자기이름으로 발표를 못하게 했 지만, 김정일은 마르크스 철학과는 달리 인간중심의 새로운 철학원리 에 기초하여 주체사상을 이론적으로 체계화해야 한다는 황장엽의 사 상에 흥미를 갖고 이 사상에 근거하여 자신의 목적에 맞게 활용하고 자 했다.

이때부터 김정일은 주체사상을 자신의 후계구도의 핵심적 도구로 인식하고 김일성의 우상화 사상으로 활용하기 위한 이론적 작업을 주 128) 김정일, “청년들을 계속혁명의 정신으로 무장시키자,”(조선로동당 중 앙위원회 청년사업부, 사로청중앙위원회 책임일군들과 한 담화, 1971 년 10월 1일), 「김정일선집」 제2권, p. 305.

도하였다. 김정일이 주도한 주체사상의 개발은 국내파 제2세대 이론 가들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미주평화통일연구소장 한호석은 2세대이 론가들은 만경대혁명학원출신들로서 항일무장투쟁참가자들의 후손들, 한국전쟁 희생자들의 후손들로서 당‧정‧군 주요부서에서 활동하고 있 는 핵심인사들이라고 주장하였다.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