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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투스적 문화 감각에 대한 각성

문화적 헤게모니 개념은 사회 구성원들이 공유하고 있는 세계관이나 계 급관 등이 만들어내는 추상적이지만 집단적인 힘을 가지고 있는 힘을 의 미한다. 특정 지역에서 탄생하여 성장한 개인들은 사회화와 더불어서 이 힘을 내면화하게 되며, 이는 곧 그 개인의 아비투스적인 문화 감각이 된 다. 집단적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그 사회에 암묵적으로 공유되고 있는 사상과 이념들을 내면화하거나 그 사회에서 향유하고는 하는 문화에 대한 미감을 발달시키는 것이다. 이 연구에 참여한 독자들도 특정한 사회에서 태어나서 성장하면서 그 사회에 공유되는 문화적 헤게모니를 자신의 아비 투스적 감각으로 내면화한 사람들이다.

문화적 헤게모니는 지역마다 조금씩 다를 수 있으며, 이로 인하여 개인 들의 아비투스적 감각 또한 그가 사회화한 곳의 정치, 사회, 문화적 지형 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그래서인지 이 실험에 참여한 독자들도, 비록 같은 소설을 읽었을 지라도, 자신이 문화적 위치에 따라 다른 생각을 하 고 다른 감각을 자극받는 모습을 보였다. 다문화 소설 담론이 겨냥한 문

화적 헤게모니가 자신을 비추는 모습을 의식하고, 그에 맞서는 모습을 보 습도 관찰할 수 있었다. 이 항에서는 다문화 소설에 대한 한국인 독자와 외국인 독자의 인식이 소설의 감상에 반영된 양상을 검토하고, 소설이 자 신을 겨냥했다는 의식이 다문화 소설 감상에 끼친 영향력을 살핀다.

(1) 독자의 자아 인식 투영

‘세속적 비평’에서는 소설의 해석이 그것을 해석하는 사람의 문화적 헤게모니와 문화관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전제한다. 자신의 문화적 위 치에 대한 독자의 자의식이 소설을 다르게 읽도록 만들 수 있다는 것이 다. 이 연구에서 수집한 감상문들의 경우에도 감상자가 자신의 문화적 위 치를 확연하게 드러낸 경우가 있었다. 그리고 그 방식은 감상자가 자각하 고 있는 문화적 위치에 따라 서로 다른 형태를 보였다. 민족적 구분에 따 라 살펴보자면 다음과 같은 점이 관찰되었다. 먼저, 한국인 감상자의 경 우에는 소설이 문제 삼는 문화적 헤게모니가 자기의 생활 권역에서는 당 위적으로 여겨지는 것일 때, 소설이 자신의 아비투스적 감각을 공격하고 있다고 판단하여 반발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반면, 외국인 감상자의 경 우에는 소설 속 인물과 자신이 매우 유사하다고 생각하며, 소설이 특정한 아비투스적 감각에 따라 자신과 같은 정체성을 지닌 사람을 함부로 단정 짓고 있다고 생각할 때, 그에 대한 저항감을 드러내었다.

한국인 감상자가 자신을 현격하게 반영하고 있는 감상문의 구체적인 사 례로는 [개별-한-타인3]을 들 수 있으며, 이는 다른 감상문과 비교해 보 았을 때 더욱 뚜렷하게 관찰된다. 가령 자신에 대한 반영이 두드러지지 않은 [개별-한-타인12]은 <타인>의 서사가 ‘쉽지 않은 현실을 비추는 소 설’이었다며 문화적 갈등의 구조를 담백하게 분석했다. 그러나 [개별-한- 타인3]은 이 소설이 ‘지루하고 기분 나쁘’다고 이야기했다. 결혼이민을 온 친척을 두고 있는 자신의 입장에 대한 인식이 과도하여, 이 소설이 자신 을 비난하고 있는 것처럼 느낀 것이다(㉠). 그 결과 이 독자는 소설 감상 의 일환으로서, 자신에 대한 옹호 발언을 하게 되었다.

[개별-한-타인12] 아내의 마음은 이해가 가지만 아내가 노력하지 않은 부분도 있다는 사실도 부정할 수는 없다. 만일 아내가 정말로 자신의 생각을 표출하기 위해 대화 상대를 찾고 싶었다면 (중략) 하지만 아내는 그런 노력을 가하지 않았 고, 오직 자신이 평소에 대화하던 개와의 행동만을 통해 남편과의 갈등을 더 심 화시킨 감도 있다. 하지만 주인공인 남편도 이런 해결방법을 제시해 주지 않았 다. (중략) 한국인 남자, 가족, 그리고 사회에 이르기까지 베트남 여자가 적응하 기는 쉽지 않은 현실을 비추는 소설이었다.

[개별-한-타인3] ㉠이런 글들은 항상 내가 문제가 있고 그들은 피해자라는 결론 을 가진다. 나 또한 친척 중에 ‘쑤안’ 같은 결혼이민자가 있다. 하지만 평소 그 사람을 보면서 어떠한 편견이나 차별은 생각해 본 적도 없다. 이런 나에게 이러 한 글들은 공감되지 않고 그저 지루하고 기분 나쁘게 다가올 뿐이다.

외국인 감상자의 자기의식이 강렬하게 반영된 감상문의 사례로는 [집단 B-그곳-사전-바]를 들 수 있다. 외국인 감상자들의 경우에는 자신의 경험 을 투영하여 소설의 서사를 이해하는 경우가 한국인 감상자보다 많아서 이 감상문의 경우에도 경험이 반영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개별 -외-그곳9]와 비교해 보면 그 반영 양상이 약간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 다. [개별-외-그곳9]의 감상문은 자신의 경험을 비계로 삼아서 인물이

‘자리’를 찾는 모습에 초점을 맞추어 소설을 감상한다. 하지만 [집단B-그 곳-사전-바]는 자신이 소설 속의 ‘조선족 여성’과 ‘대등하게 쓰인 것’이라 고 보며, 소설인 조선족 여성을 그렇게 재현한 것을 문제로 삼는다. 전자 의 감상문은 자신의 경험을 반영하되 다시 소설로 돌아와서 자신의 감상 을 전개하고 있는 반면, 후자의 감상문은 ‘명화’를 ‘나’로 치환하며 이야 기를 이어 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집단B-그곳-사전-바]는 소설에 대해서 자신의 ‘마음속에 방어기제가 작동’하게 되었다(㉢).

[개별-외-그곳9] 소설에 나오는 “제 자리는 어디입니까?” 이 말이 나한테 조금 은 이해가 가는 것 같았다. 나도 한국에서 유학생활을 하면서 특히 초반에 한국 에서 ‘그 자리’를 찾은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소설에서 말하는 “그 자리”라는 것이 인간관계에서의 ‘한국인 대 외국인’이 아닌 ‘사람 대 사람’으로

대하는 것이었고, 외국인이 아닌 한 사람으로서 인정을 받는 것으로 느껴진다.

[집단B-그곳-사전-바] 소설 읽는 내내 마음속에 방어기재가 작동을 한다. 왜냐하 면 나는 조선족이기 때문이다. ‘명화’와 같은 조선족 여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극의 대상이 되는 것도 싫고, 한국어도 아닌 그렇다고 북한말도 아닌 조선어라 는 것을 사용하는 말투가 타지 사람이 쓰는 ‘노동자의 언어’라는 것도, 힐끔거리 는 시선들이 싫다. ㉢ 한 번도 내가 생활한 곳에 가본 적이 없는데 마치 나의 모 든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나를 평가하는 것, 나를 쓰고 있는 것이 그다지 반가 운 일은 아니었다. (여기에서 나는 조선족 여자로 대등하게 쓰인 것이다.)

하지만 이는 [집단B-그곳-사전-바]가 같은 ‘조선족 여성’이라는 이유로 소설 속에 인물에 자신을 과도하게 도입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곳>

의 서사에 서술되어 있는 것과 같이(㉣), ‘명화’와 한국 유학생인 감상자 와 동일한 문화적 위치에 놓여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자신이 조 선족여성이라는 점을 가장 강렬하게 인식한 ‘바’는 그것을 충분히 감안하 지 못한 상태에서 소설을 읽었다. 그런 점에서 이 감상문은 민족 정체성 에 대한 독자의 과잉의식이 민족성과 국적에 대한 문화적 헤게모니에 대 한 그의 불편한 감정을 이끌어 오게 만들고, 결과적으로 그가 다문화 소 설의 서사를 편향되게 받아들이게 만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곳은 한국어와 북한의 조선어 그리고 조선족의 조선어가 뒤섞인 도시였다. ‘명 화’는 중국어와 조선어, 한국어를 다 할 줄 알았다. (중략) 훗날 한국에 왔을 때, 명화는 자신이 발음하는 게 조상들의 말이 아닌, 단순히 타지 사람들이 쓰는 노 동자의 언어일 뿐이라는 걸 점점 깨우쳐갔다. (중략) ㉣ 조선족이라 해서 다 가 난한 건 아니었다. 그중에도 유학을 가고 사업을 하고 명품을 사는 이들이 있었 다. 아울러 밀항을 하고 장기를 팔고 결혼시장에 나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건 한국도 마찬가지였다. 명화는 후자에 속했다. - <그곳>, 137-138.

위와 같은 감상은 올바른 독서 결과물로 볼 수 있냐는 문제제기를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상호문화교육의 목적 하에 시도된 다문화 소설의 감상 상황이라면, 위와 같은 감상문은 독자가 자신을 지배하고 있는 아비투스 적 감각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로서 다루어질 필요가 있다. 자신의 문화

적 위치를 드러내고 작성한 다문화 소설의 감상문은 소설 감상을 비계로 자신의 경험을 회고한 글이자 자신의 문화적 위치를 자각하는 방식에 대 한 기술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다문화 소설을 통한 상호문화교육의 학 습자가 위와 같은 감상문을 작성한다면, 교육자는 그가 독자 자신이 서사 의 특정 부분을 간과하게 된 이유나 자신이 특정한 문화적 위치를 다른 정체성적 특성보다 앞세우게 된 이유를 돌아볼 계기로서 다루도록 이끌어 야 한다. 그것은 독자가 스스로 자신의 문화적 위치와 그에 따른 아비투 스적 감각을 상호문화적인 관점에서 성찰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으로써, 다문화 소설을 통한 상호문화교육의 의미를 높일 것이다.

(2) 자기 합리화가 반영된 탐구

자기 인식이 반영된 다문화 소설의 감상 결과를 반성과 성찰의 계기로 다루지 않는 감상자는 다문화 소설를 통해서 자신의 아비투스적 감각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자문화중심주의적 태도를 보일 수 있다. 이를 드러내 는 감상문들은 자신의 문화적 인식과 이해 방법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회 의 문화적 각성과 통찰을 촉구하면서, 자신은 상호문화적 비판의 대상에 서 제외시키는 모습을 보였다. 자신의 문화적 위치에서 다른 입장을 헤아 리거나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노력에 대해서는 논의하지 않은 것이다.

가령 무슬림인 [개별-외-모두6]은 자신이 ‘다른 나라 문화와 종교를 존 중’해야 하고 ‘요즘 자주 일어나는 테러’가 무슬림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 과 관련이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으면서도, 한국 사람들의 반응 때문에 터 번 쓰기를 조심스럽게 생각하는 ‘싱’을 ‘한심’해 한다. ‘다른 나라의 문화 와 종교를 존중’해야 한다는 견해가, 최근의 사태로 인하여 무슬림에 대 한 두려움을 가지게 된 다른 나라 사람들의 감상과 인식을 이해하는 방식 보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자신의 종교와 문화를 이해하고 수용해야 한다 는 논리에 먼저 적용되어 버린 것이다. 그 결과 이 감상문은 ‘개인적으로 매일 터번을 써도 괜찮다’는 자문화중심주의적인 결론으로 귀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