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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호문화적 읽기를 위한 다문화 소설의 해석소

상호문화교육의 기본적 속성은 타자에 대한 고정관념과 편견에 휩쓸리 지 않는 것이다. 이는 상호문화의 문제란 주체가 타자를 자신과 분리하는 방식이나 그를 인식하는 관점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제시한다. 다문화 소 설을 통한 상호문화교육에는 다문화 소설이 상호문화적 사유를 자극하는 요소들을 제시한다는 전제가 있다. 그러나 소설에 그러한 요소가 있다는 것이 그 자체로 독자의 상호문화적 역량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다문화 소설에 재현된 문화적 요소들을 민감하게 인식하고 사유의 대상으로 삼는 독자의 적극적인 행동이 필요한 것이다. 따라서 다문화 소설에 대한 문화 적 감각이 학습자의 ‘상호문화적 역량’으로 연결되기 위해서는, 교육 내용 이 학습자들이 주목해야 할 해석소들을 안내해서 학습자가 그 요소들에 대한 민감성을 형성해 나갈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

47) 들뢰즈(G. Deleuze)가 제시한 전조(前兆, précurseur)는 이와 관련된 개념으로.

“자신의 고유한 역량을 통해 차이들을 직접적이고 무매개적으로 서로 관계”짓는 것 을 뜻한다(김상환 역, 2004:216, 268~270). 그 중에서도 주의해야 할 것은 미약한 상태로 존재하지만 다른 경험들을 연결시키거나 계열화하는 힘이 있는 ‘어두운 전 조(précurseur obscur)’이다. 중요한 것은 전조란 항상 가능태로서 존재한다는 것 이다. 이는 주체가 어떤 경험으로부터 무슨 감정을 느끼게 되고, 그것을 전조로 삼 는지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이 항에서는 앞 절에서 제시한 다문화 소설을 통한 상호문화교육 의 성격을 바탕으로 다문화 소설을 통한 상호문화교육에서 다루어야 할 내용을 문화적 갈등의 발생 구조 분석, 문화적 헤게모니의 영향력 비판, 상호 공존과 협력 방법의 모색이라는 차원으로 제시한다. 이들 내용은 앞 항에서 제시한 상호문화적 읽기 과정의 각 단계에 공통적으로 적용되어야 하는 것이다.

(1) 문화적 갈등의 중층적인 토대 구조

현실 사회의 문화 문제를 해석하기 위한 개념을 체계적으로 구축한 스 튜어트 홀(S. Hall)은, 문화 문제란 사회화, 정치화, 경제화 과정을 통해 사회의 토대가 된 구조들과 중첩되며 형성되거나 심화된 것이라는 견해를 제시하였다(전효관 외 역, 2000:16). 또한 문화적 반응이나 비평은 현존 하는 문화적 헤게모니에 대한 반응으로서 진행된다는 분석을 예시하였다.

이를 뒷받침하는 개념적 토대는 알튀세르의 과잉 결정(중층 결정, surdétermination)과48) 라클라우의 접합(articulation)이다.49) 이 개념 들은 현실 사회의 문제는 우리가 “근본”적이라고 생각할 특정한 모순이

“순수하고 단순한” 형태로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여러 정황과 흐름이 중첩되고 “융합”되어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전제를 공유하고 있다(L.

Althusser, 서관모 역, 2017:180).

48) 홀(S, Hall, 임영호 편역, 1996: 166)이 문화성들이 중첩되고 상호 간섭 현상을 야기하는 부분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하는 과잉 결정(중층 결정, surdétermination) 은 알튀세르(L. Althusser)가 “융합을 달성하는 정황들과 흐름들”이 어떻게 해서

“근본 모순의 순수하고 단순한 현상 이상의 것”인지를 설명하기 위해서 프로이드 (S. Freud)에게서 빌려온 개념이다(L. Althusser, 서관모 역, 2017:180).

49) 이 개념은 서로 다르게 보이는 사건들도 특정 부분에서는 같은 토대 위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령 ‘결혼이주민’의 문제는 사실 이주민에게만 해당하는 사 건이 아닐 수 있으며, 따라서 기혼 여성들이 맞닥트리는 다른 문제와 함께 고찰되 어야 할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전제로 인하여 라클라우(E. Laclau, 박대진·

김미선 역, 2009:410)는 개별적인 사건들은 서로 다르게 보였던 사건들과 함께 다 루어질 가능성을 지닌다고 이야기했다. 물론, 각 사건 내부에는 다른 사건과 ‘공통 된 토대’ 이외에 다양한 토대를 내재하고 있고, 그래서 하나의 사건은 그 안에 잠재 된 토대들에 따라 다양한 논제에 관여될 수 있다는 점도 함께 고려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인식으로 미루어 볼 때, 한국 사회에서 다문화 문제가 ‘이주 노 동자’나 ‘결혼 이주민’ 등과 같이 인물 군상의 사회적 위치와 더불어 논의 되는 상황은 숙고할 만하다. 한국 사회가 지금까지는 경험해보지 못했던 문화성에 대한 이질감이나 경계심이, ‘노동’이나 ‘결혼’이라는 현상이 놓 인 구조 위에서 특별히 부각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 있게 보아야 하는 것 이다. 이에 이 연구에서는 다문화 문제의 대표적 인물형으로 거론되는

‘이주 노동자’와 ‘결혼 이주민’을 중심으로, 이들이 ‘이주’했기 때문에 의 식되는 문화 문제가 기존 사회의 정치, 경제, 사회 구조와 어떻게 연계되 어 있는지를 살펴본다. 그리고 이러한 연계에 대한 ‘전형’들과 ‘도식’들이 어떻게 상호문화적 사유를 방해하고 있는지도 함께 살피겠다.

① 문화적 소수자들의 사회적 위치

2000년대 다문화 소설은 문화성이 경제 구조와 결부되어 있는 모습을 주로 ‘이주 노동자’를 통해 재현한다. ‘이주 노동자’라는 위치에서 ‘이주’

는 주로 체류 자격의 문제와 관련이 있고, 그의 생존이 정치적으로 얼마 나 안정되어 있는가 하는 문제와 직결된다. 한국에서 노동권은 헌법이 보 장한 기본권 중 하나로서, 고용 증진·적정 임금 보장·해고 자유 제한 등의 제도적 장치를 아우르기 때문이다(헌법 제32조). ‘비국민’인 외국 인 노동자는 법의 대상이 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으로서 ‘노동권을 보 장받을 수 있는 합법적인 체류 자격’이 필요하다.50) 그런데 그 체류 자 격이 완성되기 위해서는 고용자의 승인이 있어야 한다. 자신의 노동권을 보장해 달라고 요구해야 하는 대상에게 노동권을 보장받는 사람이 될 수 있게 도와달라는 요청을 해야 하는 것이다.

만약 고용자가 이윤 추구에 급급하거나 노동자의 인권 보장에 대한 책 임의식이 적은 상황이라면, 그는 이주 노동자가 노동권을 보장받을 수 없 는 상태로 체류하게 하거나 노동권을 보장받지 못하게 만들겠다고 협박하

50) 노동권은 주로 노동자가 국가나 고용인에 대해서 요구할 수 있는 인권적 의미를 갖는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헌법은 ‘국민’을 대상으로 삼는다.

면서 고용 조건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만들 수 있다.51) 그래서 국내 이주 노동자들에 대한 서사는 계약 관계에서 우위에 있지 못한 노동자의 인권 과 처우에 대한 문제를 화두로 삼는 경향이 있다. 소설이 재현하는 현실 문제는 특정한 부분에 초점화 되어 있을 수 있고 허구 서사라는 장르적 특성에 의해 소설에 재현된 요소가 다소 굴절된 부분도 있을 수 있다. 하 지만 이주 노동자에 대한 소설이 주로 일용직 노동자나 육체노동자들의 미등록 상태를 문제 삼는 것을 다만 형식적인 의미의 장르적 특성으로 보 는 방식은 상호문화교육적으로 적합한 독법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보다는 좀 더 인문적인 관점에서, 그들이 존재하는 위치에 발생할 수 있는 비인 격적인 행위에 대한 경계 의식으로 대하고 사유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가령 <중국>에는 노동을 목적으로 한국에 왔지만 ‘학생 비자’로 장 기 체류의 자격을 취득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임금차를 목적으로 해외 이 주를 해온 학생들이 그 자리에 가게 된 배경에는, ‘기백만원의 어학원 등록금이며 기숙사비’를(중국, 96) 빌려준 브로커와, 학생들의 등록 목 적을 ‘모르지 않’으면서도 재정 충당을 위해 이를 방관하는 어학원,

‘싼값에 부릴 수 있는 중국인들을 선호’하는 회사가 있다. 그런 점에서 학생들이 놓인 자리는 경제적인 목적을 우선시하는 브로커와 회사, 그리 고 어학원이 만들어낸 과잉 결정의 공간이다.

학교는 인원 확보와 재정 충당에만 급급해 아무 학생이나 마구 유치한 후 관리 를 하지 않는다. (중략) 중국 학생들은 대개 브로커에게 돈을 빌려 한국으로 들 어온다. 기백만원의 어학원 등록금이며 기숙사비를 다 갚는 데 꼬박 일년이 걸린 다. (중략) 남학생은 주로 택배회사에서 일한다. 아침부터 밤까지 오토바이 시동 을 끌 틈도 없이 물건을 배달한다. 취업 비자도 없는 판에 원동기 면허 따위가 있을 리 만무하지만 회사에서는 싼값에 부릴 수 있는 중국인들을 선호한다. -

51) 그 대표적인 사례였던 것이 과거에 국내에서 운영되었던 ‘외국인 연수생 제도’이 다. 외국인 연수생 제도는 국내에 외국인들을 ‘산업 연수생’ 자격으로 입국시켜서 산업 현장에서 업무를 배우게 하겠다는 국내 기업에 요청에 의해서 만들어졌다. 그 러나 사실상 외국인 연수생은 노동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연수생’이라는 신분 아래 에서 저임금으로 고된 노동에 시달렸던 것으로 밝혀졌다. 80년대 인권 운동의 결과 에 따라 국내 노동자들의 인건비가 올라가자, 일부 산업체들이 외국인 연수생을 그 에 대안으로 활용하는 상황이 발생했던 것이다.

<중국>, 93~96.

브로커가 빚을 내주면서 학생들을 이끌어온 자리란 입국의 목적에 맞지 않는 신분으로 인하여 인간다운 삶을 보호받기 힘든 곳이다. 그러나 노동 권이 보장되지 않은 학생들의 위치는, 회사의 입장에서는 보장할 것이 적 어서 ‘비용’이 덜 든다는 점에서 선호 조건이 된다.52) 어학원은 공식적으 로는 학생들의 보호기관이지만, 그보다는 어학원 운영에 차질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데에 관심이 있기 때문에 ‘제적을 들먹이며 그들을 협박’한 다. 학생들은 ‘아침마다’ 어디에 갈 것인지를 갈등하지만, 브로커에게 진 빚으로 인해 ‘돈벌이를 택’한다(중국, 96). 어학원에 나가면 노동 시간이 줄어들고 그에 따라 빚을 갚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어학원에서는 ‘제적’

으로, 브로커에게는 ‘빚’으로, 회사에서는 ‘저임금과 벌금’으로 억압받는 학생들은 점점 ‘생기가 없’이 ‘시들어’간다(중국, 97).

물론, 이와 같은 결과가 발생하기까지에는 학생 자신의 욕망과 판단착 오가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이 소설에 등장하는 학생들처럼 한국어를 잘 모르는 어린 학생들이 브로커가 안내하는 자리의 적절성을 판단할 방법은 무엇인지도 함께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사회 초년생인 외국인들이 다른 나라의 장기 체류 자격이나 체류 비용, 노동 조건 등에 대해서 알아볼 길 은 있었는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이 학생들이 불안정하고 비합리적 인 위치에 처하게 되는 데에는, 나날이 발전하는 자본의 구조를 쫓지 못 하는 제도의 문제도 있다. 외국 태생이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취약성이 인권에 대한 위협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도 못했거나, 예상 하고 있으면서도 문제적인 위치에 빠지지 않도록 안내할 시스템을 체계적 으로 구축하지 못한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주 노동자들의 법적 지위 문제에 대해 논하며, 버틀러(J. Butler and G. Spivak, 주해연 역, 2008:24~25)는 아렌트(H. Arendt, 1958)가 ‘공식 적인 정치체는 경제적 부정의와 정치적 박탈에 의존하고 있으며 민족이

52) 이러한 상황은 조선족 노동자인 ‘진봉’을 초점자로 내세우고 있는 <죽은>에도 재 현되어 있다. 숯불 갈빗집 사장은 ‘진봉’이 조선족이라는 것을 확인하고는 특별한 통보도 없이 그의 임금을 삭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