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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윤리적 한계로 인한 비애 표현의 양상

고대 중국 사회에서 사회 통념상 허용되는 애정 관계는 사회적 공인을 받은 부 부 관계를 제외하면 첩, 혹은 기녀와의 관계가 유일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고 대 중국에서 합법적인 부부 관계는 열정적인 애정을 추구한 결과라 보기 어려우

1993, p.1.) 여기서 풍몽룡이 말하는 ‘情’은 반드시 남녀 간의 애정이나 욕정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지만, 그는 민가집이나 ≪三言≫ 등에서 전통 예법을 초월한 남녀 간의 정을

‘眞情’으로 보고 그것을 긍정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리하여 ‘眞詩’로서의 민가를 파악할

때 남녀의 私情을 그 본색을 반영한 대표적인 예로 든 것이다. ‘眞詩’로서의 민가와 私情 의 관계에 대해서는 서연주, <馮夢龍 민가집 연구>,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7, 제4 장을 참조.

며, 여성에게 요구되는 수절 역시 남녀 간의 애정에 기초한 것이라기보다는 유가 정통 사상에 기초한 ‘忠’의 추구의 결과라 할 수 있다.295) 오히려 진정한 의미의

‘情’은 합법적 부부관계가 아닌 ‘私情’, 즉 부모의 허락이나 매파의 도움을 거치지

않은 사사로운 애정 추구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296)

그러나 합법적 부부관계나 기녀와의 애정이 아닌 사회적으로 허용되지 않는 ‘私 情’은 사대부의 전통적인 글쓰기의 영역인 詩詞에서는 노래하기 어려운 주제다.

비록 명청대에 들어 애정 의식이 발달하고 眞情을 긍정하는 사상이 발전하면서 진 실한 감정으로서의 ‘私情’을 노래하는 조류가 있었지만 이는 주로 대중이 소비하 는 민가나 소설의 영역에서 가능한 것이었다.297) 게다가 명대의 俗詞를 부정하고 雅詞를 추구하는 명청 교체기 사단의 흐름과는 더욱 어긋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하여 浙西六家 중 한 사람인 李符는 ≪절서육가사⋅강호재주집≫의 서문에 서 주이준의 사집에 艶詞298)가 많이 포함된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였다.

295) 다만 Paolo Santangelo는 고대 중국의 혼인과 우리가 현재 이해하는 애정 간의 대립 관계 를 과장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며, 명청대에 유가의 ‘서로 손님과 같이 공경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는 부부 관계’에 변화가 생겨 도덕적 원칙의 기초에 새로운 애정의 함의가 더해졌음을 지적하였다. 그러나 중국 사회에 애정 사상이 발전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 러한 사상이 아직까지 서양의 문아한 궁정식 사랑이나 낭만파의 “애정에 기반한 혼인”

의 반조류적 관념의 방향으로 발전하지는 못하였음 또한 지적하였다.(意)史華羅, 앞의 책, pp.99∼103 참조.

296) ‘私情’이란 기본적으로 남녀가 부모의 명령과 매파의 말을 듣지 않고, ‘자신의 의지대로’

애정과 행복을 추구한 것을 뜻한다. 劉達臨 저, 강영매 외 역, ≪중국의 성문화≫, 서울:

범우사, 2000, p.259 참조.

297) 풍몽룡이 대표적인 예이다. 그는 ≪산가≫의 서문을 통하여 그의 민가집은 남녀의 사랑 을 노래한 ‘私情譜’이며, 이것이 곧 ≪시경≫의 鄭⋅衛風을 직접적으로 계승한 것임을 명시하고 있다.(서연주, 앞의 논문, p.109.) 또한 ≪醒世恒言≫에서 <錢秀才錯占鳳凰儔>

등과 같은 작품들은 한 남성과 이미 혼약한 여성 간의 사건을 다루었다. 혼약한 여성과 의 애정 관계는 通奸과 같은 것으로 취급됨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들은 희극적 색채를 띠고 있으며 행복한 결말을 맺는다. 史華羅, 앞의 책, pp.219∼220 참조.

298) ‘艶詞’란 반드시 ‘애정사’와 일치되는 개념은 아니다. 文航生의 <晩唐詩體槪述>에서는

‘艶詩’에 두 가지 큰 특징이 있는데, “하나는 소재가 豔情적이어 전문적으로 여성의 아

름다움[艶麗]과 禮敎에 어긋나는 남녀의 情愛를 담고 있다. 둘째는 풍격이 염정적이어서 이런 시들은 수사가 화려하고 정교하다.”라 하였다.(리 펑, <청대(淸代)시론의 염정시관

(艶情詩觀)과 시조의 염정관>, ≪수행인문학≫제40집, 2010, p.1, 주석 1번.) ‘염사’라는

단어 역시 그것이 담고 있는 주제와 풍격의 특징을 모두 가리킨다. 다만 중국사사에서 애정사는 대체로 화려하고 염정적인 풍격으로 창작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애정사와 염사 가 일치하는 개념은 아니지만 염사에 애정사가 포함된다고는 볼 수 있을 것이다. 주이준

≪강호재주집≫에 비록 염사가 많지만 모두 ‘雅正’으로 돌아가니 유영의 악장이 향기롭고 윤택한 것으로 공교했던 것과 다르다. 예로부터 뜻을 기탁하 여 심원한 것은 규방의 것을 빌리지 않으면 자신의 뜻을 풀어내기 부족하였 다. <고당부>와 <낙신부>는 고우면서도 풍자의 뜻이 많았으니 어찌 문인의 글을 상하게 하였는가. 하물며 사에 있어서는 어떻겠는가. 염사라 하여도 죽 타 선생과 같으면 가능하다. 나는 죽타 선생을 모르는 자들이 법수가 음란한 것을 본다고 지적한 말에 얽매일까 두렵다.299)

강희 18년(1679)에 간행된 절서육가사본 ≪강호재주집≫에는 주이준이 만년에

정리한 폭서정집본에 ≪강호재주집≫과 ≪정지거금취≫로 분리되어 수록된 작품 들이 함께 수록되어 다량의 애정사가 포함되어 있다. 이부는 주이준의 사집에 애 정사가 많이 포함되어 있지만, 그것이 “아정으로 귀속[歸雅正]”되고 “심원한 뜻을

기탁[托旨遙深]”하고 있으며, “아름답지만 풍자의 뜻이 많음[婉而多風]”을 주장하

여 그것이 단순히 애정을 다룬 것이 아니라 고상한 뜻을 기탁한 것이며, 그것의 수 록이 절서사파의 雅詞에 대한 지향과 어긋나지 않는다고 하였다.

<고당부>와 <낙신부>의 예를 들어, 주이준의 사가 문인의 고상한 뜻을 훼손시 키지 않는다는 이부의 주장은 역으로 주이준의 애정사가 속되고 음란한 내용을 담 고 있다고 비판받을 가능성을 안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물론 “법수가 음란한 것을 보는 것이라고 한 말[法秀勸淫之語]”300)이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염사의 창 작은 이전 시대부터 줄곧 비판받아 온 것이다. 그러나 주이준의 경우 단순히 애정 사를 많이 창작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이 담고 있는 내용, 즉 인척간의 婚外戀을 담고 있다는 데서 비판의 가능성이 더욱 컸다.

의 염사의 경우, 화려한 연회 장면을 묘사하는 등 애정을 주제로 한 것은 아니지만 염사 로 분류할 수 있는 작품이 일부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그의 염사 중 대다수가 애정을 주제로 하고 있으며, 당시 문인들이 ‘염사’와 ‘남녀 간의 사랑을 주제로 한 사’를 굳이 구분하지 않았으므로 여기서는 편의상 ‘염사’라는 표현을 그대로 사용하였다.

299) 李符, <浙西六家詞⋅江湖載酒集序>: “集中雖多艷曲, 然皆一歸雅正, 不若屯田樂章徒以香 澤爲工者. 從來託旨遙深, 非假閨閣裙裾, 不足以寫我情, 高唐洛神婉而多風, 亦何傷於文人 之筆, 而況於詞乎. 詞而艶能如竹垞斯可矣. 予恐不知竹垞者, 狃於法秀勸淫之語.”

300) 법수 도인이 황정견에게 염사를 짓는 것을 “필묵으로 음란한 것을 보는 것[以筆墨勸淫]”

이라고 지적한 것을 가리킨다.

이부는 주이준의 염사에 ‘기탁’이 있다고 주장하였고, 주이준 역시 사는 규방의 언어에 정을 기탁하는 것이라고 하여301) 그의 애정사가 겉으로 드러나는 것 이상 의 의미를 담고 있음을 이야기하였지만, 이는 실제 그의 애정사에 기탁이 있기 때 문이라기보다는 俗詞를 지었다는 비판을 피하기 위한 방어의 말이라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주이준의 애정사는 유형화된 자아의 보편적 서정이 아니라 개체화된 자아로서 의 작자 개인의 서정이며, 처제로 추정되는 인물과의 ‘婚外戀’이라는 사회적 금기 파괴를 다루고 있다. 실제로 이와 같은 주제를 다룬 <풍회> 시가 ≪사고전서≫본 에는 수록되지 않았고, 주이준 역시도 <풍회>를 문집에서 삭제할까 고민하였으니 이는 작품의 주제가 논란이 될 가능성이 있었던 것이다.302) 자칫하면 이부가 <강 호재주집서>에서 걱정한 것과 같이 그들이 지향하는 ‘雅正’함과 거리가 먼 음란한 노래로 비춰질 가능성이 있으므로 조심스럽게, 전략적으로 주제를 구현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하여 주이준은 사회 윤리적 한계에 부딪힌 자신의 애정경험을 전략적 인 방법으로 표현하였는데, 그 양상은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는 사회 적으로 금기시된 관계를 직접적으로 드러내기 보다는 모호하고 암시적이며, 함축 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며, 둘째는 애정 경험에서 느낀 환희보다는 그것의 비극성을 강조함으로써 공감과 동정을 유발하는 것이다. 그 구체적인 양상은 다음과 같다.

1) 표현의 모호성과 함축성

(1) 현실의 배제와 암시적 공간의 설정

주이준이 노래한 비극적인 애정 경험은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없는 것이었기 때 문에 주로 은근하며 암시적인 방식으로 표현되었다. 그리하여 묘사되는 사건은 실

301) ≪曝書亭集≫ 卷40 <陳緯雲紅鹽詞序>: “사를 잘 말하는 사람은 규방의 아녀자의 말을 빌려 <이소>와 변아의 뜻에 통하니, 이는 특히 당시에 뜻을 얻지 못한 자가 그것에 정을 기탁하기에 마땅할 따름이다.(善言詞者, 假閨房兒女子之言, 通之於離騷變雅之義, 此尤不 得志於時者所宜寄情焉耳.)”(朱彝尊 撰, ≪曝書亭集≫, p.488.)

302) 丁紹儀, ≪聽秋聲館詞話≫ 卷2: “태사는 (<풍회>를) 삭제하고자 했으나 차마 그러지 못 하고 책상을 맴돌며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太史欲刪未忍, 至繞几回旋, 終夜不寐)”

(唐圭璋 編, 앞의 책, p.25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