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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의 통시적 인식을 통한 유민 의식의 표현

실의한 ‘유민’으로서의 작자는 직접적인 방식으로 비애를 토로하지는 않는다. 대신 공간에 대한 주관적 인식을 통해 유민으로서의 작자의 역사의식을 간접적으 로 확인할 수 있다. 작자는 그가 도달한 특정 공간을 오로지 ‘현재의 시간’에서 인 식하여 현 시점의 객관적인 풍경만을 바라보기 보다는, 보이지 않는 저 너머의 과 거의 시간부터 현재의 시간까지 통시적으로 인식하여 공간을 둘러싼 역사적 사건 들을 되돌아보고 그것에 대한 평가 혹은 감개를 드러냈다. 이 때문에 작품 속 공간 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유민의 입장에서 바라본 결과물로서 작자의 주관적 인식에 따라 새로이 구현된 것이라 할 수 있다.

滿江紅⋅吳大帝廟341) 오나라 대제의 사당

玉座苔衣, 옥좌의 이끼 옷 입은 拜遺像, 조각상에 절하는데

紫髯如乍.342) 자줏빛수염은 삐죽이 솟은 듯.

想當日、 그때를 생각하니

周郎陸弟, 주유와 육손이

一時聲價. 한때 이름값이 드높았지.

乞食肯從張子布,343) 빌어먹으려면 장자포를 따랐을 것인데

341) ≪曝書亭集≫ 卷24 詞(1)에 수록.(朱彝尊 撰, ≪曝書亭集≫, p.290.)

342) 紫髯如乍: 자줏빛 수염이 삐죽 솟은 것 같다. 여기서 ‘乍’는 ‘일어서다’, ‘쭈뼛 서다’의 의 미다. 元代 高文秀의 ≪澠池會≫에 “화가 나 내 머리가 쭈뼛 서서 관을 찌를 정도다.(惱 的我髮乍衝冠.)”라고 하였는데, 이때의 ‘乍’와 같은 의미다.

343) 乞食 구: 張子布는 곧 張昭이다. 자가 자포이며 彭城 출신이다. 孫策 때 長史, 撫軍中郞

舉杯但屬甘興霸.344) 술잔 들어 그저 감흥패에게 술 권하였다네.

看尋常、 별 일 아닌 것이라 보고

談笑敵曹劉, 담소하며 조조, 유비와 대적하여 分區夏. 중원 땅을 나누었지.

南北限, 남북의 경계인 長江跨. 장강을 넘고, 樓櫓動, 배의 망루 움직여 降旗詐. 거짓으로 투항하였네.

嘆六朝割據, 육조의 할거를 탄식하니 後來誰亞. 후에 누가 필적하였던가?

原廟尚存龍虎地,345) 원묘는 여전히 용이 서리고 호랑이가 웅크린 땅에 있고

春秋未輟雞豚社. 봄가을에는 아직 닭과 돼지 바치는 제사를 그치지 않건만,

剩山圍、 산 둘레에는

衰草女牆空, 시든 풀 자란 성가퀴 텅 비었는데 寒潮打. 차가운 조수가 때리는구나.

이 작품은 손권의 사당에서 그 조각상을 본 뒤 옛 오나라의 역사를 회고한 것으 로, ‘吳大帝廟’라는 특정 공간에 대한 작자의 통시적 인식이 드러난다. 상편은 작

將을 지냈고 손책이 죽은 뒤에는 孫權을 도와 옹립시켰다. 손권이 군주의 자리에 오른 뒤 공을 周瑜에게 돌리자 이에 불복하였는데, 손권이 그에게 말하기를 “만약 장공의 계 책을 들었다면 지금 걸식했을 것이네.(如張公之計, 今已乞食矣.)”라고 하였다. 적벽 전쟁 전에 장소가 주유가 전쟁할 것을 주장한 것에 반대하고 조조와 화의할 것을 주장했던 것을 말한 것이다. ≪吳志⋅張昭傳注≫에 기록되어 있다.

344) 舉杯 구: 甘興霸는 곧 甘寧이다. 자가 흥패이며 巴郡 臨江 사람이다. 처음에는 유표에게 의탁하였으나 후에 손권에게 귀의하였다. 일찍이 손권에게 계책을 바쳤는데, 黃祖를 먼 저 공격하여 서쪽으로 楚關을 점거한 뒤 점차 파촉을 차지해나갈 것을 주장하였다. 손권 이 이에 찬성하여 그에게 술을 권하여 자신의 결정을 드러내었다고 한다. ≪吳志⋅甘寕 傳≫에 기록되어 있다.

345) 原廟: 正廟 이외에 별도로 세운 사당. 여기서는 손권묘를 가리킨다.

龍虎地: 남경을 가리킨다. ≪丹陽記≫에 의하면 제갈량이 建業에 이르러 그 지세를 보고

“종산에 용이 서리고 석성에 호랑이가 웅크리고 있구나.(鍾山龍盤, 石城虎踞.)”라고 찬탄

하였다고 한다.

자가 손권의 사당에서 이끼 덮인 조각상을 보고 옛 역사를 떠올리게 되는 과정을 그렸다. 이끼가 끼어 초라하게 변해버린 손권의 형상에서 유독 꼿꼿이 솟은 강렬 한 수염의 형태는 오나라의 군주로서 천하를 호령하던 손권의 과거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이에 따라 작품의 시상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주유와 육손이 이름을 날 리고, 손권이 신하들의 정책을 적절하게 채택하여 유비, 조조와 三雄으로 활약하던 오나라의 화려한 시절에 대한 묘사로 이어진다.

하편에서는 배를 타고 전쟁으로 나가는 모습으로 화면을 전환시킨 뒤, 손권이 조조에게 黃蓋를 거짓 투항시켜 적벽대전의 승리를 이끌었던 공을 추앙하고 그에 필적할 수 있는 자가 없다고 평가하였다. 마지막 4구에서는 다시 시선이 현재로 이동하는데, 2구와 2구가 서로 대비되고 있다. 사당은 여전히 ‘제왕의 땅’이라는 남경에 자리 잡아 떠들썩한 제사도 계속되고 있지만 영웅은 자리에 없으니 그 화 려함은 더욱 무상하게 느껴진다. 이때, “시든 풀[衰草]”, “차가운 조수[寒潮]”와 같 이 손권의 사당을 둘러싼 ‘殘山剩水’의 이미지는 객관적 이미지가 아니라 작자의 부정적 감정을 반영한 것이다.

이 작품은 현재-과거-현재 순으로 짜임새 있게 구성되어 있는데, 작자는 이끼 끼 고 낡게 변해버린 초라한 형상에서 출발하여 영웅 손권의 화려한 활약상을 묘사하 고 마지막에 다시 그가 사라지고 텅 비어있는 女牆을 언급함으로써 현재와 과거를 번갈아가며 대비시켰다. 손권의 영웅적인 면모가 대단하게 묘사될수록 현재의 상 황과의 차이는 더욱 커지고, 이 극단적인 대비는 인간사에 대한 무상감을 극대화 시키게 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張昭를 따르지 않고 甘寧의 의견을 받아들여 거짓 투항 의 전략으로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었던 손권의 활약을 묘사하고 “후에 누가 그에 게 필적하겠느냐”고 평한 데서 혼란스러운 정국을 해결할 손권과 같은 뛰어난 영 웅이 현재의 시점에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드러나니, 작자가 유민 으로서 갖고 있는 역사의식을 읽어낼 수 있다. 이 작품은 역사적 공간의 寫景과 역 사적 사건의 敍事, 그에 대한 議論과 작자의 抒情이 긴밀하게 결합되어 주이준 회 고사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346)

346) 陳士彪는 古跡이나 山川景色에 대한 묘사,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에 대한 평술, 작자 내

<滿江紅⋅吳大帝廟>가 역사에 영웅으로 기록된 인물을 회고한 것이라면 다음 작품은 실패한 역사에 대한 회고이다.

風蝶令⋅石城懷古347) 석두성에서 회고하다

青蓋三杯酒, 푸른 덮개 수레에서의 세 잔 술, 黃旗一片帆. 노란 깃발의 한 조각 돛.

空餘神讖斷碑鑱. 신령스러운 예언 새겨진 깨진 비석 공연히 남았구나. 借問橫江鐵鎖是誰監.348) 강을 가로지르는 쇠사슬은 누가 지켰던가?

花雨高臺冷, 꽃비 내린 높은 누대는 싸늘하고

臙脂辱井緘. 연지 흔적 남은 치욕스러운 우물 봉해졌네.

夕陽留與蔣山銜.349) 석양은 머물러 장산에 숨었는데

猶戀風香閣畔舊松杉. 여전히 풍향각 가의 오래된 소나무와 삼나무를 아 끼는구나.

이 작품은 주이준이 石城에 들렀을 때, 삼국시대 오나라의 마지막 황제인 孫皓 에 관한 역사적 사실을 회고하며 쓴 것이다. 상편에서는 첫 2구에서 ‘青蓋’와 ‘黃 旗’와 같은 옛 오나라 황실의 의장을 통해 손호가 투항하는 과정을 간략하게 언급 하고, 바로 다음 구절에서 손호가 전쟁의 결과를 알고자 예언을 받고 그것을 기록 했던 비석이 이제는 깨어져버린 상황을 묘사하여 과거와 현재를 대비시켰다. 상편 의 마지막 2구에서 작자는 공격을 막기 위해 설치했던 쇠사슬이 끝내 부수어졌던

심의 감개, 이 세 가지를 긴밀하게 결합하여 자연과 역사와 현실을 하나로 녹여 작품 속 에 표현할 수 있었던 것이 주이준 회고사에 보이는 특징이라고 설명하였다. 陳士彪,

<≪曝書亭詞≫略論>, ≪杭州師範大學學報(社會科學版)≫, 1986(3) 참조.

347) ≪曝書亭集≫ 卷24 詞(1)에 수록.(朱彝尊 撰, ≪曝書亭集≫, p.290.)

石城: 석두성. 석수성이라고도 한다. 옛 터가 지금의 江苏省 南京市 清凉山에 있다. 본래 초나라 때는 金陵城이었는데 汉나라 建安 17년(212)에 孙权이 중축하고 이름을 바꾸었 다. 六朝때 建康의 군사적 요충지였는데 당대 이후 성이 황폐해졌다.

348) 鐵鎖: 쇠사슬. 오나라는 晉나라의 공격을 막기 위해 긴 쇠사슬로 강을 가로막아 배의 통 행을 막았는데 王濬이 화력으로 이 쇠사슬을 부수었다.

349) 蔣山: 즉 鍾山. 강소성 남경시 북동쪽에 있다. 孫皓가 바로 이곳에 묻혔으니, 이것이 蔣 陵이다.

사실을 지적하여 역사적 결과의 책임을 물었다.

하편 첫 구에서는 梁武帝 때의 雨花臺의 상서로운 이미지를 등장시키면서도 그 것이 서늘해졌음을 이야기하고, 다음 구에서 陳後主가 胭脂井에 숨었던 고사를 끌 어와 망국의 이미지를 조성하였다. 마지막 3구는 황폐해진 석성에 유일하게 그대 로인 자연의 풍경을 묘사하고 있지만 이 또한 석양과 蔣山으로 인하여 쇠락과 죽 음의 이미지를 띠게 되었다. 특히 ‘석양’은 주이준의 회고사에서 유독 자주 등장하 는데,350) 석양이 지는 풍경은 유민으로서의 작자에게 인식된 ‘쇠락’과 ‘망국’의 공 간적 이미지라 할 수 있다.

350)

燕子斜陽來又去, 제비는 석양 속에 왔다 또 가니 如此江山. 강산은 이러하구나!

<賣花聲⋅우화대(雨花臺)>

(≪曝書亭集≫ 卷24 詞(1)에 수록. 朱彝尊 撰, ≪曝書亭集≫, p.290.) 斜陽瘦馬, 석양 지는데 야윈 말이

又穿入離亭樹. 또 이별하는 정자의 나무로 들어가네.

<消息⋅안문관을 지나다(度雁門關)>

(≪曝書亭集≫ 卷24 詞(1)에 수록. 朱彝尊 撰, ≪曝書亭集≫, p.295.) 西林外、 서쪽 숲 너머에는

哀湍斜照, 애달픈 여울에 석양 비치는데 法鼓影堂中. 절 안에 법고 소리 울려 퍼지네.

<滿庭芳⋅이진왕의 묘 아래에서 짓다(李晉王墓下作)>

(≪曝書亭集≫ 卷24 詞(1)에 수록. 朱彝尊 撰, ≪曝書亭集≫, p.295.) 孤鳥外、 외로운 섬 너머

生煙夕照, 석양 속에 안개 피어나는데 對千里萬里積雪. 천 리, 만 리에 쌓인 눈을 대하네.

<金明池⋅燕臺에서 옛일을 생각하며 한림원검토 신수숙

에게 화답하다(燕臺懷古和申隨叔翰林)>

(≪曝書亭集≫ 卷24 詞(1)에 수록. 朱彝尊 撰, ≪曝書亭集≫, p.300.) 悵蕭蕭白髮, 드문드문한 백발을 서글퍼하며

經過擥涕, 지나가면서 눈물을 훔치네, 向斜陽裏. 석양 속에서.

<水龍吟⋅장자방의 사당을 참배하다(謁張子房祠)>

(≪曝書亭集≫ 卷26 詞(3)에 수록. 朱彝尊 撰, ≪曝書亭集≫, p.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