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량생산량의 감소와 사망률의 증가를 지적 할 만큼 변화하는 식량사 정을 예의 주시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상의 두 가지 사실을 근 거로 볼 때, 북한정부가 1994~2000년 기근을 그 발생에서부터 정확히 인식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결론짓는 것은 별로 무리가 없어 보인다.
국가적 기근대응전략 – 국제적 식량원조 극대화
1994~2000년 북한기근의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는 기근 기간 동안 식량 수입량이 계속 증가했으며, 정부의 정책 우선순위 또한 해 외의 인도주의적 식량원조를 극대화하는데 두어졌다는 것이다. 물론
<표 Ⅵ-3> 북한의 국별 곡물수입 내역, 1985~1996
(USDA 추정치, MT)
1985 1990 1991 1992 1993 1994 1995 1996
쌀
(중국) 16 12,503 28,549 2,396 34,000
(홍콩) 800
(한국) 5,000 150,000
(태국) 51,594 10,000 100,000 177,000 75,000
(베트남) 103,606 67,000
(기타) 38,950
옥수수 (유고)
(중국) 264,609 216,790 586,577 876,218 209,478 9,000 139,474 (태국) 5,000
(미국) 85,500
보리 (호주)
(중국) 200 276 100 976
(홍콩) 515
(시리아) 20,000
밀
(호주) 12,600 188,201 203,963 63,000 83,000
(캐나다) 454,988 293,315
(중국) 1,230 60,314 37,374 8,966 239,655
(홍콩) 198 102 147 69
(인도) 145,668 14,000
(터키) 180,235
(EU) 71,781 33,000
(러시아)
(유고) 75,012
(기타) 100,000 120,000
총계 19,958 524,640 1,259,893 923,650 1,349,610 401,299 893,707 968,723 출처) Kim, Lee and Sumner, “Assessing the Food Situation in North Korea,”
Economic Development and Cultural Change. Vol. 46. No. 3, 1998.
이러한 주장에 대해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이유에서 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 첫째, 앞의 <표 Ⅵ-2>에서 보듯이, 기근 기간 동안의 식량수입 은 1991~93년 수준에 못 미쳤다. 둘째, 1994년 기근이 처음 발생할 당시 해외 식량수입은 급격히 줄어들었다. 1980년대 중후반 이후 북 한이 순수한 식량수입국으로 전락했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이러한 수 치들은 기근 기간 동안 북한정부가 해외로부터의 효과적인 식량수입 에 실패했거나 또는 이를 중요시 여기지 않았다는 사실을 시사하는 것으로 이해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1990년대 북한의 곡물무역 패턴 을 조금만 더 세심하게 관찰해 보면, 이와는 전혀 다른 결론에 도달 하게 된다.
우선 <표 Ⅵ-3>을 살펴보자. 이미 언급했듯이, 1993년까지 북한
은 해외로부터의 식량수입 대부분을 중국에 의존했다. 국제금융시장 에서 사실상 파산선언을 한 북한으로서는 이러한 선택이 불가피했을 것으로 보이는데, 그 이유는 세계에서 중국만이 유일하게 북한에 경 화결제를 강요하지 않고, 또 국제가격의 1/3정도인 사회주의 우호가 격을 적용하는 나라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1994년 중국은 갑작스럽 게 북한에 대한 곡물수출을 중단했다. 이는 북한의 기존 곡물수입 기 반자체가 무너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북한정 부는 1995년 초 오랜 적국이었던 한국과 일본에 긴급 식량지원을 요 청했으며, 이 해 말에는 사상 처음으로 국제 사회 모두를 대상으로 한 인도적인 식량원조를 요청하게 된다. 국제사회의 인도적 식량지원 을 획득하기 위해 북한정부는 1997년까지 동북지역 등 기근의 피해 가 상대적으로 심각했던 내부의 상당 지역을 외부에 공개했다. 20001 년까지는 EU와 호주 등 상대적으로 인도주의적 지원에 흥미를 보인 서방국가들을 대상으로 정상적 외교관계 수립에 총력을 기울였다.
1999~2000년에는 한국으로부터의 지원을 기대하며 최초의 남북정 상회담에 나섰고, 미국 등 군사적 대치관계를 형성하고 있던 나라들 을 대상으로 해서는 ‘식량 또는 경화와 자신들의 군사적 정치적 이해 를 교환’할 의사가 있음을 수차에 걸쳐 표명하기도 하였다.82
<표 Ⅵ-4>는 이상과 같은 북한정부의 정치적 외교적 시도의 결과 를 보여준다. 우선 북한의 식량수입은 절대량이라는 측면에서는
1991년(정상 년도)에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였다. 그러나 총곡물공급
에서 수입이 차지하는 비중은 1997년(기근 년도)에 최고치를 기록했
<표 Ⅵ-4> 북한의 곡물수입과 국제적 식량원조, 1989~97
총곡물공급 순곡물수입 국제적 식량지원
(백만 MT) (백만 MT)
총곡물공급
에서의 % (백만 MT)
순곡물수입 에서의 %
총곡물공급 에서의 %
1989 0.38
1990 0.55
1991 1.56
1992 8.61 1.15 13
1993 8.73 1.54 18
1994 8.10 0.56 7
1995 7.17 1.01 14 0.32 32 4
1996 4.22 1.11 26 0.30 27 7
1997 3.57 1.45 41 0.84 58 24
1998 3.86 1.50 39 0.75 50 19
출처) Lee, Suk, Food Shortages and Economic Institutions in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p. 268.
82이와 관련해 가장 전형적인 사례는 아마도 1999년 북한의 미사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평양을 방문한 미국의 대북문제 특사 윌리엄 페리(William Perry)에게 북한 당국이 제의한 내용이 될 것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산업과 농업이 모두 침체한 현재의 상황 속에서 북한은 때때로 핵과 미사일에 관련된 미국의 관심과 경화(hard currency)를 맞교환 할 의사가 있음을 내비쳤다. 예를 들어, 북한은 미국이 미사일 수출로 벌어들이는 돈을 보상해주는데 합의한다면, 이의 수출을 중지하겠다는 제의를 해 왔다. (Dr. William Perry, “Review of United States Policy Toward North Korea: Findings and Recommendations,” Washington DC, 12 October 1999)
으며, 무엇보다 이 비율은 기근 이전 시기인 1991~94년 사이에는 감 소했던 반면, 기근 시기인 1994~98년 사이에는 빠르게 늘어나는 모 습을 보여주었다. 더욱이 1995년 이전에는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국 제적 식량원조가 기근 기간 동안 크게 늘어나 1997년 이후에는 전체 곡물 수입의 50%를 상회하고 있다.
요컨대, 북한은 기근의 발생을 전후하여 1) 금융적 파산상태와 2) 우호적 해외 곡물공급원의 상실이라는 근본적 제약요건을 맞이 하였으며, 이를 만회하기 위해 1) 국제사회를 대상으로 한 인도적 식 량지원 요청, 2) 주변국과의 관계 개선을 통한 식량지원 확보, 3) 정 치적 군사적 양보를 통한 경화 및 식량 지원 확보라는 사용 가능한 모든 정책을 실시한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적어도 기근 기간 동안 에 관한한 북한당국이 해외의 곡물수입 극대화와 국제적 식량원조 획득에 총력을 기울였다고 주장하는 것은 별로 무리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국가적 기근대응전략 – PDS 대응전략
기근을 맞이하여 북한당국이 해외의 곡물수입과 인도적 식량지원 확보에 총력을 기울였다는 사실은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매우 인상적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정책의 추진 배경 자체가 과연 인도 주의적이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크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서는 이 章의 마지막 절에서 보다 명시적으로 논의하기로 하고, 여기 에서는 우선 왜 그렇게 북한당국이 기근 기간 동안 국제적 식량지원 에 매달렸는지를 생각해 보자.
<그림 Ⅵ-1> 월간 PDS 식량배급 (전국 평균, 일인당 일일 그램)
0 50 100 150 200 250 300 350 400
Nov Dec Jan Feb Mar Aril May June July Aug Sep Oct Month
gram
1998/99
1997/98
출처) FAO/WFP(12 Nov. 1998; 8 Nov. 1999) and DPRK/UNDP(1998)
<그림 Ⅵ-1>은 1998~99농업연도의 PDS 식량배급 패턴을 나타
낸다. 주목할 점은 1998 농업연도의 경우 국제적 식량원조분이 포함 되어 있지 않은 반면, 1999농업연도의 경우에는 이것이 포함되어 있 다는 사실이다. 1998농업연도와 1999농업연도의 PDS 식량분배 패 턴은 한 가지 차이점과 두 가지 유사점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
우선 차이점에 대해 살펴보자. 1998농업연도의 경우에는 PDS 식 량배급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기간이 존재했었다. 그러나 1999농 업연도의 경우에는 이런 기간이 존재하지 않았다. 물론 여기에는 여 러 요인이 개입했을 것이다. 두 해의 식량사정이 달랐을 것이며, 배급 스케줄 또한 달랐을 것이고, ‘추수전 (곡물)분배’ 또한 달랐을 것이다.
그러나 그 근본원인은 국제적 식량원조분이 위 그림들에 포함되어 있는가 아닌가의 여부에 달려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실제로 기근 기 간 동안 WFP와 FAO 현지실사 팀은 북한의 식량재고가 3-4월이면
모두 소진되어, 그 후부터 새로운 추수가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모든 배급이 국제적 식량지원분에 의해 충당된다고 보고한 바 있다. 이는 1998농업연도처럼 국제적 식량지원분이 고려되지 않았을 경우 PDS 배급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 기간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놀라운 점은 이처럼 국내식량 재고만으로는 식량배급을 전혀 줄 수 없는 기간이 매우 길었다는 사실이다. 1998농업연도의 경우 이러 한 기간은 4~8월까지 5개월간이나 지속되었다. 따라서 만일 국제적 식량지원이 없었을 경우 이 기간 동안 북한주민들의 사망률은 폭등 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앞의 Ⅱ장의 <표 Ⅱ-5>에서 보듯이
1998~99년의 사망률은 폭등했다고 표현하기는 매우 힘들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는 국제적 식량원조가 이 기간 동안의 사망률 폭등현상 을 억제하는데 커다란 역할을 수행했다는 사실을 의미하며, 이것이 바로 북한정부가 국제적 식량원조 확보를 위해 그렇게 노력한 이유 를 설명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물론 이러한 논의는 기근 기간 동안 북한정부가 주민들의 사망률 억제에 커다란 관심을 쏟았다는, 다시 말해 그간 북한정부의 비인도주의적(?) 태도를 감안할 때 직관적으 로는 조금 납득하기 어려운, 그런 결론으로 우리를 이끌고 간다. 그런 데 매우 흥미롭게도 이처럼 직관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결론은 <그 림 Ⅵ-1>의 1998농업연도와 1999농업연도의 PDS 배급패턴의 공통 점을 살펴보면 더욱 확고해 진다.
<그림 Ⅵ-1>의 두 선분 사이에는 두 가지 유사점이 관찰된다. 첫
째, 우선 두 선분 모두는 PDS 배급량의 절대치가 극도로 낮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실제로 1998~99년 전 기간에 거쳐 PDS 배급량은
WFP와 FAO가 설정한 북한인구의 일인당 최소 식량 필요량(일일
492그램)을 훨씬 밑돌았다. 둘째, 두 선분 모두는 식량배급 패턴과 관
련하여 일 년이 두 가지 서로 다른 기간으로 구분된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한 기간은 7/8월에서 12/1월 사이로, 이 기간 중에는 새로운 추 수 물량이 유입되어 PDS 배급량에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었다. 반면, 다른 한 기간은 1/2월에서 6/7월 사이로, 이 기간 중 PDS 배급량은 극도로 위축되었다. 이상의 두 가지 사실을 혼합하면, 북한당국이 절 대적인 PDS 식량부족을 맞이하여 주민들에게 연중 매우 낮은 분량 의 배급을 골고루 나누어주기 보다는 일정기간 동안 집중적으로 배 급을 몰아줌으로써 상대적으로 그간의 굶주림을 단기간이나마 해소 하는데 주력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배급패턴은 절대적 식 량부족상황에서 불가피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패턴의 문제는 배급량이 극도로 위축되는 1/2월에서 7/8월 사이의 곤궁기
(lean season)에 주민들의 사망률이 폭등할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물
론 이 기간 중 국제적 식량지원이 사망률의 상승을 억제하는데 결정 적인 역할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북한당국이 이 기간 중의 사망률 억제를 위해 국제적 식량지원 이외에 또 다른 방안을 강 구한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이다.
그 대표적인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PDS가 주축이 되는 ‘대체 식 량(alternative food)’의 제조(법) 개발 및 확산이다. 대체 식량이란 극히 소량의 곡물에 풀이나 나무뿌리 등을 섞어 그 양을 부풀린 것을 말한다.
현재까지 확실한 것은 정부가 사람들로 하여금 주곡이외의 곡물 이나 대체 식품, 즉 과일이나 나무뿌리, 나무 껍질, 버섯, 잎사귀, 풀 등을 소비하도록 유도하는데 커다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어떤 추정치에 따르면, 1995/96년의 경우 (식량) 공급 이 극도로 위축되는 곤궁기의 칼로리 섭취량 가운데 약 30퍼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