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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식량지위 체계와 기근

의 식량가격 등에 대한 구체적인 데이터가 분석을 위해 반드시 필요 하게 된다. 그러나 불행히도 현재까지 이러한 데이터는 입수 가능하지 않다. 시장에서의 식량거래 가능성까지를 고려할 경우, 식량지위라는 개념을 통해 북한기근을 분석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의미이다.

소득 이외에 시장이라는 비공식부문에서 추가적으로 충분한 소득 을 얻는다면, 굶주림에서 벗어 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상당수 탈북자들은 기근이 진행될수록 일부 주민들의 경우 ‘장사’라는 시장 행위를 통해 시장에서 추가 소득을 얻고, 이를 토대로 굶주림에서 벗 어났다고 말한다. 그러나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데이터의 수준으 로는 기근 기간 동안 이러한 형태의 북한 주민들이 어느 정도의 비중 을 차지하고 있었는지를 확정하는 일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한편으로 이러한 문제점을 명시적으로 지적하기는 하지 만, 실제적인 분석에 있어서는 ‘북한주민의 식량지위 = 그의 배급량’

이라는 조금 강한 가정을 도입하여 논의를 전개하도록 한다.

북한의 식량배급제와 식량지위 체계

북한의 공식적인 곡물공급 및 분배 채널들을 간략히 설명하면 다 음과 같다. 우선 북한에서 식량으로서의 곡물생산은 협동농장이라는 단일의 경제조직에 의해서만 수행된다. 북한에 개인농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국영농장 또한 곡물을 생산하기는 하지만, 그 규모가 극히 미 미하고, 그 용도 역시 종자용이나 실험용 등 매우 제한적이라는 특징 을 갖는다. 협동농장에서 생산된 곡물은 크게 두 가지의 형태로 분배 된다. 우선 협동농장 조합원들이 국가가 정한 수량의 범위 안에서 그 곡물에 대한 일차적 청구권을 갖는다. 협동농장 조합원들의 청구권은 이들의 연간 개인소비에 국한되며, 그 양은 국가가 산업부문의 중노 동자 식량 배급량을 고려하여 결정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의 청구권 물량을 분배하고 난 이후의 모든 잔여 곡물은 국가가 그 통제 권을 행사한다. 물론 여기에는 협동농장이 종자용이나 사료용 등 자 체 생산활동에 필요하여 보관하는 곡물과 국가 수매기관에 판매하는 곡물 양자가 모두 포함된다. 그러나 협동농장 지도부가 국가의 직접 적 임명과 지시 하에 움직인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들 곡물 전체를 국가가 통제한다는 사실은 별로 달라지지 않는다. 국가는 이렇게 통 제된 곡물과 해외로부터 수입된 곡물을 합하여 자체 곡물 예비를 구 성하며, 이러한 예비를 토대로 협동농장원 이외의 모든 주민들에게 식량을 배급한다. 이들에 대한 식량 배급량은 국가가 정한 일일 배급 기준에 따라 매월 두 차례씩 각 도의 양정조직을 통해 공급된다 (표

Ⅴ-3참조).

이상의 곡물공급/분배채널에서 알 수 있듯이 북한 주민들의 식량 지위를 결정하는 배급제도 안에는 크게 두 가지의 서로 다른 하위배

급제도가 병존하고 있다. 하나는 협동농장 조합원들에 대한 배급제도 이며, 다른 하나는 이른바 공공분배제도(Public Distribution System, 이하 PDS)라고 알려진 이들 조합원 이외의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배 급제도이다. 양 배급제도는 국가가 그 배급량을 결정한다는 점에 있 어서는 동일하지만, 다음과 같은 뚜렷한 차이점 역시 보유하고 있다.

첫째, 협동농장 조합원들에 대한 식량배급 책임은 조합원들 스스로가 지지만, 여타의 주민들에 대한 배급 책임은 국가가 진다. 예를 들어, 어떤 협동농장의 곡물생산량이 조합원들의 식량배급 필요량에도 못 미칠 정도로 하락했다고 가정해 보자. 이 경우 국가는 그 차이를 보 전해 줄 책임이 없으며, 이에 따라 이들 조합원들은 원칙적으로 국가 가 정한 자신들의 식량 배급량에 미달하는 배급을 받아야만 한다. 따 라서 협동농장 조합원이 아닌 주민들이 국가의 식량 배급기준에 못 미치는 식량을 공급 받았다면, 이는 북한의 배급제가 실패했다는 사 실을 의미하지만, 협동농장 조합원에게 이러한 현상이 발생할 경우에 는 반드시 북한의 배급제가 실패했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둘째, 이미 언급했지만, 협동농장이 생산한 곡물에 대한 일차적 청구권은 협동농장 조합원들이 가지며, 국가는 나머지 곡물에 대한 청구권을 갖는다. 따라서 여타 주민들에 대한 국가의 식량배급 역시 이러한 잔 여 곡물에 대한 청구권을 토대로 이루어진다. 예를 들어, 협동농장의 곡물생산량이-조합원들에 대한 식량배급 필요량은 여전히 상회하지 만-평년에 비해 10%가 하락했다고 가정해 보자. 이 경우 협동농장 조합원들에 대한 국가의 식량배급 기준에 변화가 없다면, 생산량 감 소의 영향은 이들 조합원의 식량배급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곡물 수집/예비의 감소로 나타난다. 동 생산량 감소로 일차적 영향을 받는 것은 협동농장 조합원들이 아니라 여타 주민들의 식량

배급이라는 뜻이다. 셋째, 협동농장 조합원들은 가을 추수 직후 연간 식량 배급량을 한꺼번에 분배 받지만, 여타 주민들의 경우에는 한 달 에 두 번씩 보름치의 배급량을 주기적으로 지급 받는다.

한편 이상의 식량 배급제도를 유지하기 위해 북한은 모든 곡물 마 케팅을 국가가 독점하고 있다. 우선 북한에서는 국가 이외의 어떤 경 제주체도 곡물을 거래하는 것이 불법화되어 있다. 곡물을 생산하는 유일한 경제주체인 협동농장의 경우 잉여 곡물은 반드시 국가기관에 만 판매하도록 되어 있다. 더욱이 북한에서는 생산된 곡물 가운데 어 느 정도가 마케팅 되어야 하는지를 국가가 결정한다. 협동농장 조합 원들에 대한 식량 배급 기준을 국가가 결정하고, 국가에 대한 협동농 장의 곡물 판매량 결정을 국가가 임명한 협동농장 관리위원회에 일 임함으로써, 실제로 국가가 생산된 곡물 중 어느 정도가 협동농장에 서 소비되어야 하며, 또 어느 정도가 밖으로 판매되어야 하는가를 결 정하는 것이다.

농민과 非농민의 식량지위 그리고 기근

그런데 이러한 북한의 식량배급제도를 꼼꼼히 살펴보면,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식량위기나 기근과 같은 특수한 식 량상황 하에서는 북한의 협동조합 조합원(이하 농민)들의 식량지위 가 여타의 주민(이하 非농민)들의 식량지위 보다 더욱 우월하다는 것 이다. 이러한 사실은 크게 두 가지의 측면으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 는데, 그 한 가지 측면은 농민들의 식량지위가 상대적으로 식량생산 실패의 영향을 덜 받는다는 것이며, 다른 한 가지 측면은 이들의 식 량지위가 갑작스러운 식량배급의 중단이나 감소와 같은 배급상의 교

란요인으로부터도 상대적으로 자유롭다는 것이다.

먼저 첫 번째 측면에 대해 생각해 보자. 앞서 언급했듯이, 농민들은 자신들의 식량생산량에서 자신들의 식량배급 필요량을 우선적으로 공제한다. 따라서 북한의 경우 식량생산량이 감소할 경우 이의 영향 은 일차적으로 정부의 식량 수매/예비의 감소로 나타난다. 식량생산 실패의 일차적 피해자가 농민이 아니라 국가의 식량예비에 배급을 의존하는 非농민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이다. 물론 북한의 식량 생산량 감소폭이 너무 커서 非농민들에 대한 식량 배급에 문제가 생 길 경우, 북한당국은 농민들의 식량배급 기준을 낮추어 더 많은 식량 을 수집하고자 시도할 것이다. 실제로, 앞의 제Ⅱ장에서 언급했듯이,

1994년에는 이러한 현상이 사실로 확인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러

한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경우 농민들에 대한 식량 배급량이 非농민들의 배급량을 하회하게 될 가능성은 제도적으로 극히 적어 보인다. 우선 북한은 과잉 산업화된 국가이다. 1993년의 경우 농민과

非농민의 비율은 3:7로 非농민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이는 북한에서

식량부족사태가 벌어질 경우 농민들에 대한 배급량을 일정한 비율로

낮추어 非농민들에 대한 배급량을 그만큼 높인다는 것은 그 반대의

경우보다도 훨씬 더 어렵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더욱이 동일한 이유 에서 북한농업은 그간 끊임없는 노동력 부족현상에 시달려 왔다. 농 민들에 대한 식량배급량을 非농민에 비해 더욱 빠르게 감소시킬 경 우, 이는 농민들에 대한 육체적, 정신적 근로능력을 급격히 감소시킴 으로써 ‘식량생산 실패 확대 ⇒ 非농민 식량배급 감소 ⇒ 더욱 빠 른 속도의 농민 식량배급 감소 ⇒ 식량생산 실패 확대’라는 악순환이 초래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뜻이다. 마지막으로 북한당국은 지난

50여 년간 농민들의 잉여 곡물을 모두 흡수하는 대신, 농민들에 대한

식량 배급을 산업부문의 중노동자에 준 할 정도로 우대하는 일종의 사회적 계약을 농민들과 맺어 왔다. 만일 북한당국이 이러한 계약을 파기하고 농민들에 대한 식량 배급을 非농민들 보다 더욱 큰 폭으로 감소시킨다면, 이는 농민들로 하여금 협동농장이라는 공적인 식량생 산 채널로부터 일탈하여 불법적인 사적 곡물생산에 더욱 치중하도록 만드는 유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지난 50여 년간 유지되어온 ‘협동농 장에 의한 곡물생산 ⇒ 국가적 곡물 마케팅 제도 ⇒ 전 주민에 대한 식량배급제도’의 채널을 유지하기가 그만큼 힘들어질 것이라는 의미 이다.

그렇다면 앞의 두 번째 측면에 대해서는 어떤가? 북한의 경우 농민 들은 非농민과는 달리 그들의 연간 식량 배급량을 일시에 지급 받는 데, 이것은 세 가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우선 농민들은 식량배급과 관련된 예기치 못한 부정적 변수들로부터 자유롭다. 예를 들어, 북한 의 식량사정이 갑작스러운 해외의 곡물수입 실패로 인해 악화될 경 우 그 영향은 모두 非농민들에게 귀속될 뿐 농민들에게는 별다른 영 향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둘째, 농민들은 추수 이후의 계절적인 식 량상황 악화 가능성으로부터도 자유롭다. 뒤에서 살펴보듯이, 식량난 이 장기적으로 지속될 경우 계절적인 식량사정은 추수 직후에 가장 좋은 반면, 그 이후부터는 새로운 추수가 이루어지기까지 계속 악화 되는 경향이 있다. 추수 직후 연간 식량배급을 일시에 지급 받는 농 민들의 식량사정이 격주로 보름치의 식량을 배급 받는 非농민의 경 우와 비교해 볼 때 구조적으로 더욱 유리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셋째, 농민들은 기근 기간 동안 자신들의 식량소비 스케줄을 계획함 으로써 기근에 대항하는 것이 가능하다. 식량위기나 기근 기간 동안 개별 경제주체의 차원에서 가장 중요하고 효과적인 기근대응전략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