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정을 들어 국가가 손해의 전보책임을 부담하여야 할 실질적인 이유가 없다고 하는 대법원 판례 설시에는 문제가 있다고 보인다. 국가배상은 항고소송과 독립적인 제도이고, 처분의 취소판결로 인하여 회복되지 않 는 손해가 있을 때는 완전한 권리구제를 위하여 두 가지 유형의 소송이 서로 보완적으로 활용될 필요가 있다.187)
참고로 현행 행정소송법 제10조에 의하면 취소소송이 계속되고 있는 경우 당해 처분등과 관련되는 손해배상ㆍ부당이득반환ㆍ원상회복 등 청 구소송을 병합할 수 있는데, 실제로 많이 활용되지는 않고 있다. 그러나 행정소송법 개정안이 통과되어 국가배상소송도 당사자소송으로 이루어지 게 된다면, 항고소송과 국가배상청구소송을 병합하여 제기하는 경우가 현재보다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이 경우 공무원 자신의 책임은 면제되지 아니한 다.”라고 규정하고 있는데, 위 헌법규정은 국가배상책임이 국가의 자기책 임인지 대위책임인지에 관하여 열려있는 것으로 해석된다.188) 그런데, 국 가배상법 제2조는 공무원 또는 공무를 위탁받은 사인이 그 직무를 집행 하면서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을 위반하여 타인에게 가한 손해를 국가 등이 배상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위 조항의 문언은 대위책임설 을 취하는 입장의 논거가 되고 있다. 참고로 헌법재판소는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이 국가배상청구권의 성립요건으로서 공무원의 고의 또는 과 실을 규정한 것을 두고 입법형성의 범위를 벗어나 헌법 제29조에서 규정 한 국가배상청구권을 침해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시하기도 하였 다.189)
그러나 앞서 여러 번 강조한 바와 같이 우리의 민주주의도 19세기 말 프랑스에 비견할 정도로 발전하고 있으므로, 최소한 이제는 국가배상책 임도 국가의 자기책임으로 이해할 수 있을 만한 토양이 성립되었다고 보 아야 한다.190) 앞서 본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비추어보더라도 향후 국가 배상법 제2조도 자기책임설에 입각한 것으로 명확하게 개편되어야 할 필 요성이 더 커졌다고 할 것이다.
비록 입법적 개선이 있기 전이라 하더라도 프랑스의 꽁세이유ㆍ데따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판례를 통하여 국가배상책임을 자기책임적으로 구 성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우리 대법원은 아 직까지 확고하게 대위책임적 구조를 취하고 있다. 즉, 국가배상이 공무원 개인의 민법상 불법행위책임을 국가가 대위하는 것에 불과하므로, 국가
188) 박정훈, 국가배상법의 개혁, 사법적 대위책임에서 공법적 자기책임으로 -위법한 처 분에 관한 공무원의 과실 문제를 중심으로-, 2010. 6. 25. 한국공법학회ㆍ한국법제연 구원 공동학술대회 발표문(미공간), 21면 참조. 다만, 헌법재판소는 2015. 4. 30. 선고
2014헌바99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3조 제1항 위헌소원, 2014헌바
153(병합) 형법 제355조 제2항 등 위헌소원사건에서 헌법상 국가배상책임은 공무원의
책임을 일정 부분 전제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고 언급하고 있다.
189) 위 2015. 4. 30. 선고 2014헌바99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3조 제1
항 위헌소원, 2014헌바153(병합) 형법 제355조 제2항 등 위헌소원.
190) 박정훈, 앞의 글, 22면 참조.
배상의 성립은
(공무원의)
민법상 불법행위책임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게다가 심지어 일반 민법상 불법행위보다도 국가배상책임의 인정을 매우 협소하게 하고 있어 학계에서 많은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연구의 목적 부분에서 살펴보았던 대법원
2013. 4. 26.
선고2011다
14428
판결의 사안으로 돌아가 보자.사실관계를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대한민국 산하 특허청장은 변리 사 제1차 시험을 주관하는데, 종전에는 상대평가제를 채택하고 있었으나 변리사법시행령이
2000. 6. 27.
대통령령 제16867호로 개정되면서2002.
1. 1.부터 절대평가제로 전환되게 되었다.
이에 따라 특허청장은 2002. 1.10.
특허청 인터넷 홈페이지의 ‘공지사항’란에 위 시행령 규정에 따라 절 대평가제로 시행될 첫 변리사 제1차 시험을 같은 해 3. 31.에 시행하겠다 고 발표하였다. 그런데 그로부터 3일 만인 2002. 1. 12. 위 발표문이 삭제 되었고, 같은 해3. 25.
변리사 제1차 시험을 상대평가제로 환원하는 내 용의 변리사법시행령이 개정ㆍ공포되었으며, 위 개정 시행령은 부칙에서 공포한 날부터 시행하도록 규정하였다. 원고들은 바로 그 해에 변리사 제1차 시험에 응시하여 절대평가제에 의할 때 합격 기준에 해당하는 점 수를 얻었으나 상대평가제로 인하여 탈락하게 된 수험생들이다.이 사건에서 특허청장이 원고들에 한 불합격처분, 즉 이 원고들의 신 뢰이익을 침해하여 위법하다는 점에 대하여는 선행 항고소송에서 상고심 까지 거쳐 이미 확정되었다. 또한 위 대법원 판례 서두에서도 변리사 제
1차 시험을 상대평가제로 환원하는 내용의 변리사법시행령을 같은 해 시
행한 시험에 즉시 적용하는 것은 개정 전 시행령에 따라 시험이 치러지 리라는 원고들의 신뢰이익을 침해하므로 위 처분이 위법하다는 것을 재 차 인정하고 있다.결론적으로 대법원은 담당공무원의 과실을 인정할 수 없다고 하여 원 고들의 국가배상청구를 기각하는 취지로 원심을 파기환송하였다. 그런데 대법원이 과실이 없다고 한 주된 이유에 해당하는 부분, 즉 “수험생들에 게 개정 전 시행령에 따라 절대평가제로 2002년의 변리사 제1차 시험이
실시되고 시험난이도 수준도 종전의 수준으로 유지되리라는 기대 내지 신뢰가 형성되어 있었다고 하더라도 … 특허청장이 반드시 이를 보호하 여야 할 성질의 것은 아니라고 해석하는 견해도 충분히 상정할 수 있다 고 보이고,” 라는 부분과
“2002년의 변리사 제1차 시험이 개정 전 시행
령에 따라 절대평가제로 실시되리라는 수험생들의 기대와 신뢰는 상대적 이고 가변적인 것에 지나지 않으며, … 개정 시행령의 즉시 시행으로 인 한 수험생들의 신뢰이익의 침해가 … 과도하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견해 도 충분히 상정할 수 있었다고 보이는바”라고 설시한 부분은 동일한 판 결의 전반부에서 처분의 위법성을 명시적으로 인정한 것과 잘 맞지도 않 을 뿐더러, 행정소송에서 이루어진 당해 처분에 대한 위법성 심사결과를 무시하고 민사법원이 새롭게 위법성을 판단하려는 것은 아닌지 의심마저 들게 한다.191)위와 같은 설시에 뒤이어 판결은
“공무원들은 입법 당시의 상황에서
위와 같은 다양한 요소를 고려하여 나름대로 합리적인 근거에 기초하여 위와 같은 견해를 취하여 개정 시행령에 관하여 경과규정 등의 조치 없 이 당일부터 시행하였다고 할 것이므로, … 공무원의 과실이 있다고 단 정할 수는 없다고 할 것이다.”고 맺고 있다. 담당공무원의 직무상 과실 유무에 관한 객관적 사정에 대한 판단도 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신뢰에 보호가능성이 없다거나 신뢰이익의 침해가 과도하지 않다는 견해도 충분 히 가능하다는 등 처분의 위법성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듯한 설시를 한 이후에 곧바로 담당공무원의 과실이 없다는 결론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이 판결은 국가배상 사건에 있어서 대법원 판례의 문제점을 총체적으 로 보여준다. 먼저 앞서 본 것처럼 처분의 위법성이 항고소송에서 이미 확정되었음에도 항고소송보다 더 엄격한 기준으로 당해 처분의 위법성을
191) 동일한 취지로 대법원의 입장을 비판하는 주요 문헌으로 박정훈, 국가배상법의 개혁, 사법적 대위책임에서 공법적 자기책임으로 -위법한 처분에 관한 공무원의 과실 문 제를 중심으로-, 2010. 6. 25. 한국공법학회ㆍ한국법제연구원 공동학술대회 발표문
(미공간); 최계영, 처분의 취소판결과 국가배상책임, 행정판례연구 제18권 제1호,
2013, 261-300면 등 참조.
새로 판단하여 국가배상책임을 부정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는 국민 의 권리구제 폭을 협소하게 하는 것은 물론, 행정의 위법성을 통제하기 위한 항고소송의 취지마저 무색하게 하는 결과가 될 우려가 있다.192) 게 다가 대법원은 위와 같은 판단을 담당공무원의 과실에 대한 설시에서 한 다는 점에서, 국가배상책임에 있어서 과실과 위법성의 구별을 모호하게 하는 문제도 있다.
한편, 국가배상책임을 부정하는 일부 판례 중에는 법령해석이 복잡ㆍ 난해하고, 이에 대한 판례가 확립되어 있지 않았다는 객관적 사정을 기 초로 공무원의 과실을 부정하는 유형의 판례193)194)도 상당히 많다. 그러 나 위 사안의 경우 특별히 그와 같은 객관적 사정도 엿보이지 아니하고, 심지어 담당공무원의 주관적 사정에 대한 설시도 매우 부족한 것으로 보 인다. 이미 절대평가제로 시험을 시행하겠다고 관계 법령을 개정하고 공 고까지 하였다가 급작스럽게 법령을 개정하여 경과규정도 없이 곧바로 상대평가제로 시험을 시행한 것을 특별히 정당화할 만한 어떤 사정이 있 는지도 의문이다.
물론 판례의 가장 근원적인 문제는, 대법원이 국가배상책임을 공무원 개인의 주관적 과실에 기초한 대위책임으로 보고 있다는 점이라 할 것이 다. 이는 우리 대법원이 국가배상책임제도의 공법성에 대한 근본적 성찰 이 부족한 상태에 있음을 보여줌과 동시에 오류우가 이미 100년보다 더 이전에 극복한
1단계(과실책임주의)에 머물러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192) 한편, 프랑스 국가배상책임의 요건인 위법성과 과실의 관계에 관하여는 박현정, 프랑 스 국가배상책임제도에서 위법성과 과실의 관계, 한양대학교 법학논총 제29집 제2호, 2012, 5-28면 참조.
193) 이에 관하여는 박정훈, 국가배상법의 개혁, 사법적 대위책임에서 공법적 자기책임으 로 -위법한 처분에 관한 공무원의 과실 문제를 중심으로-, 2010. 6. 25. 한국공법학 회ㆍ한국법제연구원 공동학술대회 발표문(미공간), 3-15면 참조.
194) 판례는 법령의 잘못된 해석ㆍ적용으로 위법성이 인정되더라도 공무원에게 과실이 없 다고 판단하는 근거로 법령의 문언이 명백하지 않아 다르게 해석할 여지가 있을 것, 법령의 해석에 관한 학설이 통일되지 않고 대립하고 있거나 확립된 판례가 없을 것, 공무원이 법률전문가에게 자문을 구하거나 나름대로 신중을 기하여 대립되는 견해 중 합리적인 근거를 찾아 어느 한 설을 취하여 내린 해석일 것 등을 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