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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법상 책임으로서 독자성 확립

국가배상책임은 형식적으로는 담당공무원의 위법한 행위(또는 부작위) 로 인하여 발생한 손해를 배상하게 하는 것으로, 과실, 손해, 인과관계 등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민법상 불법행위책임과 구조가 동일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민법상 불법행위책임의 가해자가 피해자와 마찬 가지로 일반 사인인 것과 달리, 국가배상책임의 귀속주체는 국가 등 행 정주체이다. 국가 등은 공동체를 위한 일을 수행할 책임을 부담할 뿐만 아니라 그 직무집행의 적법성까지 보장할 의무를 지며, 공권력을 그 수 단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그리고 공무원은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개인 으로서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공무집행자로서 활동하는 것이다. 국가배 상책임을 인정하는 것은 단순히 손해전보의 차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공ㆍ사익의 조정의 결과, 다시 말해, 행정주체의 활동이 야기한 손해에 대하여 어느 범위까지 공동체가 책임을 져야 하는지 그 한계를 결정한 결과이며, 그 효과는 위법한 행정작용에 대한 통제에까지 미친다. 이러한 특성들은 국가배상책임을 민사책임으로 환원할 수 없는 독자적인 책임으 로서 자리매김하게 한다. 그러므로 행정의 책임에 대한 법을 私法에서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179)

판례가 국가배상책임의 인정에 소극적인 이유 중 하나는 국가배상소송 을 항고소송에 대하여 보충적인 것으로 보면서, 항고소송으로 인한 권리 구제로 충분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국가시험 내 지 전문분야시험 출제 오류와 관련한 국가배상소송에서 국가의 배상책임

179) Gabriel Eckert, Droit de la responsabilité administrative et modèle civiliste, in La responsabilité administrative, 2012, 21면.

을 부정하면서 당해 불합격 처분이 취소되어 재응시 기회가 부여되었는 지 여부를 책임 인정 여부에 있어 고려하여야 할 제반 사정으로 언급하 고 있는 점에서 엿볼 수 있다.180)

그러나 국가배상책임제도의 독자성 확립과 관련하여서는 이와 같이 종 래 국가배상소송을 부차적인 제도로 취급하는 경향으로부터도 벗어날 필 요가 있다고 보인다. 물론 현행 행정소송법상 위법한 처분으로 인하여 피해를 입은 국민은 一次的으로 제소기간 내에 취소소송을 제기하여 처 분의 효력을 배제 받고, 二次的으로 손해전보를 위한 국가배상소송을 제 기하는 것이 일반적인 모습일 것이다.181)182) 그러나 이차적인 권리구제제 도라는 것은 단지 선후관계의 문제일 뿐이지, 국가배상소송 자체가 항고 소송에 비하여 덜 중요하다는 의미는 물론 아니다. 오류우는 그의 개요 서 제2판에서 행정행위에 의하여 초래된 손해가 당해 행위의 취소에 의

180) 관련 판례의 문언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 대법원 2003. 11. 27. 선고 2001다33789, 33796, 33802, 33819 판결 (사법시험 1차 시험 출제 오류 관련)

“이 사건 원고들은 불합격처분에 대한 제소기간을 도과함으로써 이에 대하여 다툴 수 없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행정자치부장관의 적극적인 구제조치에 의하여 제2차 시험에 응시할 기회를 부여받는 혜택을 받게 됨으로써 불합격처분에 따른 정신적 고 통을 상당 정도 해소한 것으로 볼 수 있는 점 등 제반 사정을 종합하면, 이 사건의 경우 손해의 전보책임을 시험을 관리한 국가에게 부담시켜야 할 실질적인 이유가 있 다고 할 수는 없으므로”

② 대법원 2003. 12. 11. 선고 2001다65236 판결 (공인회계사 1차 시험의 출제 오류 관련)

“법령에 의하여 국가가 그 시행 및 관리를 담당하는 시험에 있어 시험문항의 출제 및 정답 결정에 오류가 있어 이로 인하여 합격자 결정이 위법하게 되었다는 것을 이 유로 공무원 내지 시험출제에 관여한 시험위원의 고의ㆍ과실로 인한 국가배상책임이 인정되기 위하여는, (중략) 제1차 시험의 오류를 주장하는 응시자 본인에게 사후에 국가가 제1차 시험의 합격을 전제로 제2차 시험의 응시자격을 부여하였는지 여부 등 제반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중략) 이로 인하여 손해의 전보책임을 국가에게 부담시켜야 할 실질적인 이유가 있다고 판단되어야 할 것이다.”

181) 박정훈, 취소소송의 소송물, [행정법연구 2] 행정소송의 구조와 기능, 2006, 388면 참 조.

182) 이와 같이 취소소송을 1차적 권리구제수단으로, 국가배상을 포함한 손해전보를 2차 적 권리구제수단으로 지칭하는 것은 독일 행정법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최계영, 분의 취소판결과 국가배상책임, 행정판례연구 제18권 제1호, 2013, 261-300면 (282면) 참조.

해서 보상될 수 없는 경우가 있으며, 그 경우 취소소송은 허구적 만족만 줄 뿐이라고 하였고,183) 개요서 제6판에서는 공공관리에 관한 분쟁이 본 질적으로 금전적 보상에 관한 분쟁이라고 하여184) 국가배상소송의 위상 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 국가배상소송의 대상은 반드시 처분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광범위한 행정작용이 포함되므로, 국가배상소송은 처분성이 인정되지 않는 행정청의 행위185)에 대한 대표적인 司法的 통제방식이 된 다. 그리고 행정주체에 대하여 직접적인 금전배상책임을 지운다는 점에 서 때로는 항고소송보다 더 강력한 행정통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을 것 으로 생각된다.186) 그러므로 항고소송으로 인하여 처분이 취소되었다는

183) Maurice Hauriou, Précis de droit administratif et de droit public, 2e éd, 1893, 89면.

184) Maurice Hauriou, Précis de droit administratif et de droit public, 6e éd, 1907, 483면.

185) 일례로, 대법원 2014. 10. 15. 선고 2012다100395 판결은 토지 사정명의인이 엄연히 존재하는 토지에 관하여 대한민국이 임의로 자신의 명의로 소유권보존등기를 마친 사안으로서, 그 후 대한민국으로부터 위 토지를 매수한 제3자가 등기부취득시효를 완 성하게 되어 사정명의인의 후손이 결국 토지 소유권을 상실하게 되자 대한민국을 상 대로 국가배상소송을 제기하였다. 이와 같이 등기공무원의 잘못으로 인하여 손해가 발생한 경우에는 (공무원 개인에 대한 민사소송은 별론으로 하고) 국가배상소송이 실 질적으로 유일한 권리구제 수단이라 할 것이다.

참고로, 위 사안에서 원심(서울고등법원 2012. 10. 18. 선고 2012나41306 판결)은 대한민국이 보존등기에 앞서 정당한 소유자의 존재 여부를 밝혀 보았어야 하는 주의 의무를 위반하였다고 인정하여 원고의 청구를 일부 인용하였다. 그러나 대법원은 대 한민국이 자신의 소유가 아닌 토지에 대하여 법령의 근거 없이 보존등기를 마친 것 은 위법하다고 인정하면서도, "동일한 업무를 담당하는 평균적 공무원이 갖추어야 할 통상의 주의만 기울였으면 이 사건 토지에 국유화 사유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음에도 이를 간과한 채 이 사건 보존등기를 마친 경우에 해당한다는 점이 증명되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하여 청구기각의 취지로 원심판결을 파기하였다. 이러 한 대법원의 결론은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186) 예컨대, 서울행정법원에 빈번히 접수되는 사건 유형 중 하나인 출국금지처분 취소소 송을 들 수 있다. 출입국관리법 제4조 제1항 제4호, 같은 법 시행령 제1조의3 제2항 에 의하면 법무부장관은 5천만 원 이상의 국세⋅관세 또는 지방세를 정당한 사유 없 이 그 납부기한까지 내지 아니한 사람에 대하여는 6개월 이내의 기간을 정하여 출국 을 금지할 수 있다. 이에 관하여 대법원은 조세체납을 이유로 한 출국금지는 체납자 가 출국을 이용하여 재산을 해외에 도피시키는 등으로 강제집행을 곤란하게 하는 것 을 방지함에 주된 목적이 있는 것이기 때문에 단순히 일정 금액 이상의 조세를 정당 한 사유 없이 체납하였다는 사유만으로 바로 출국금지 처분을 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취하고 있다(대법원 2013. 12. 26. 선고 2012두18363 판결,

대법원 2014. 1. 29. 선고 2013두16647 판결 등).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순한 조세 체

납을 이유로 한 출국금지처분이 반복하여 이루어지는 경향이 있는데, 심지어 동일인

사정을 들어 국가가 손해의 전보책임을 부담하여야 할 실질적인 이유가 없다고 하는 대법원 판례 설시에는 문제가 있다고 보인다. 국가배상은 항고소송과 독립적인 제도이고, 처분의 취소판결로 인하여 회복되지 않 는 손해가 있을 때는 완전한 권리구제를 위하여 두 가지 유형의 소송이 서로 보완적으로 활용될 필요가 있다.187)

참고로 현행 행정소송법 제10조에 의하면 취소소송이 계속되고 있는 경우 당해 처분등과 관련되는 손해배상ㆍ부당이득반환ㆍ원상회복 등 청 구소송을 병합할 수 있는데, 실제로 많이 활용되지는 않고 있다. 그러나 행정소송법 개정안이 통과되어 국가배상소송도 당사자소송으로 이루어지 게 된다면, 항고소송과 국가배상청구소송을 병합하여 제기하는 경우가 현재보다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