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론
2. 기존 통일지향 교육 패러다임 검토
통일지향 교육 패러다임은 한반도가 분단된 1945년부터 지금까지 시대 별로 크게 3단계를 거치며 발달해왔다. 제1단계는 분단에서 80년대 중반까 지의 반공안보교육기, 제2단계는 80년대 중반에서 90년대 초반까지의 통 일안보교육기, 그리고 제3단계는 90년대 초 이후의 통일교육기라고 할 수 있다. 이들 각 단계의 통일지향 교육 패러다임은 국내외적 통일환경과 남 북간 역학관계, 그리고 국민의식의 변화에 기초하여 그 성격과 내용을 달 리해왔다.
가. 통일교육 패러다임의 변화
(1) 반공안보교육 패러다임 (1945~1987)
한반도가 남북으로 분단되고 첨예한 이데올로기 논쟁과 6․25를 경험하 면서, 국가의 안전보장과 통일을 달성하기 위한 국민의식 결집의 필요성이 절박하게 제기되었고, 이에 부응하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국민들을 대상으 로 통일교육을 실시하기 시작하였는바, 1980년대 중반까지는 반공안보를 핵심 내용으로 하였다.
제1차 교육과정기(1954~1963)에 도덕교육의 일환으로 반공교육을 추
진하면서 통일교육이 제도화되기 시작하였으며, 제2차 교육과정(1963~
1973)에서 ‘도의교육과’와 ‘반공교육’을 병합하여 ‘반공․도덕’이라는 독
립과목을 설치하면서 통일지향 교육이 하나의 독립된 주제로 부상하기
시작했다.2
통일교육이 보다 체계화되기 시작한 것은 국토통일원이 정부 부서의 하 나로 설치(1969)되고, 그 산하에 통일연수소(현 통일교육원)를 발족시키면 서라고 할 수 있다. 당시 국토통일원은 “통일열망을 배경으로 제기된 다양 한 의견을 수렴하고 이를 바탕으로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통일정책을 수
립․추진할 수 있는 제도적 틀”로서 설치되었으나, 점차 교육홍보 기능이
강화되면서 이를 전담할 통일연수소를 발족시켰다.3당시 정부는 평화통일
3대원칙에 대한 이해증진, 통일안보관 정립, 그리고 반공교육을 통한 국민
들의 사상무장에 교육 목표를 두면서, 「통일안보교육의 집중강화계획」
(1976)과 「국민정신교육 강화방안의 시행계획」(1976) 등 종합적인 통일교
육을 실시하였다.
반공안보 교육 중심의 통일교육은 목표와 내용이 조금씩 변하기는 하였 지만, 1980년대 중반까지 지속되었다. 1970년대 후반에는 대한민국의 민족 사적 정통성, 반공정신과 국가 안보의식 고취, 이념적 우월성 등 통일주도 세력의 기반 구축에 통일교육의 일차적 목표를 두었으며, 1980년대 초반에 는 통일정책 홍보, 평화통일에 대한 공감대 형성, 북한의 적화통일전략에 대한 이해, 체제 우월성에 대한 신념과 대북 자신감 등을 교육 목표로 설정 하였다.
정부 수립 이후 1980년대 중반까지 지속된 반공안보 교육은 다음과 같 은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먼저 교육 목표 및 내용 면에서 볼 때, 이데올로 기 중심의 교육을 중심으로 하였으며, 통일보다는 반공안보에 역점을 두었 다. 북한에 대해서도 객관적 인식보다 체제의 허구성과 호전성을 부각시킴 으로써, 대결의식과 대북 적개심을 키우는 일방적 비판에 치중하였다. 통 일의 당위성에 대한 교육적 관심은 시대별로 약간씩 차이를 보이고 있다.
2황병덕, 통일교육 개선방안 연구, 통일연구원 연구보고서 97-15 (1997); 이우 영 등, 통일교육의 새로운 방향과 실천과제 , 민족통일연구원․한국교육개발 원, KDI 주관 97년 국가정책개발사업 연구보고서 (1997).
3통일부, 통일부 30년사: 평화․화해․협력의 발자취, 1969~1999 (서울: 통일 부, 1999), p. 381.
구체적으로, 이승만 정부에서는 국권과 실지회복이라는 차원에서 접근하 는 ‘맹목적 통일관’을 주입시키는 것이 주된 관심이 된 반면, 박정희 정부 에서는 ‘선건설 후통일’ 전략에 따라 통일보다는 수세적 반공안보에 관한 내용이 주된 관심사로 부상하였다. 전두환 정부에서는 대북 자신감에 기반 하여 북한 실상에 대한 소개가 보다 구체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하였으며, 대한민국 주도의 통일정책에 대한 정당성 확보에 주력하는 등 보다 공세적 입장을 취하였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통일교육의 주된 관심은 여전히 반공안보를 기반으로 하는 이데올로기 교육의 한계를 보여주었다. 이런 면 에서 볼 때, 1980년대 중반까지의 통일교육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통일교육 이라기보다는 반공안보교육이며 체제수호교육이라고 할 수 있다.
(2) 통일안보교육 패러다임 (1987~1991)
1980년대 후반 소련이 개혁개방 정책을 추진하고 국제적 냉전이 완화되 는 등 국제정세가 급격히 변하였다. 북한도 누적된 체제 모순이 드러나면 서 경제성장이 둔화되고 남북간 경제력 차이가 뚜렷해졌다. 이런 통일환경 의 변화는 국민들에게 체제에 대한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었고, 이에 따라 기존의 반공 이데올로기 교육이 효과적인 통일교육이 될 수 없다는 공감대 가 형성되었다. 이에 따라 반공일변도의 통일교육이 지양되고, 통일과 화 해를 강조하면서 체제 안전에 대한 관심을 병행하는 통일안보교육으로 방 향을 전환하게 되었다.4 보다 구체적으로, 통일안보교육은 기존의 반공일 변도의 교육이 지양된 반면, 자유․민주․평화 통일관의 범국민적 확산, 자유사회 이념과 우리 체제의 우월성에 대한 신념 고취, 국론통합과 통일 주도 역량의 세력화, 남북대화의 진전에 대처할 수 있는 국민의 정신자세 확립, 우리 통일정책에 대한 국민적 합의기반 확충 등을 주요 교육목표로 설정하였다.
학교에서의 통일교육도 제5차교육과정(1987~1991)을 수립하면서, 반
4통일교육원, 통일교육원 30년사: 통일교육의 발자취, 1972~2002 (서울: 통일 교육원, 2002), p. 27.
공생활 영역의 내용에 공산체제 및 현실에 대한 합리적 비판과 자유민주주 의 체제의 우월성, 민주시민정신 고취 등의 내용을 보강하였다.5 이는 학생 들로 하여금 통일에 대한 열망과 긍정적 태도를 형성하도록 하는 한편, 우 리의 생존을 위협하는 요소에 대한 경계심을 갖추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결국 한편으로는 안보의 대상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통일의 대상이라는 균 형적 북한관을 배양하는데 어느 정도 이바지했을 것으로 보인다.
통일안보교육 시기는 ‘북한 바로알기’ 운동이 활발히 전개되었던 시기이 기도 하다. ‘북한 바로알기 운동’은 통일논의의 다양화를 가져오는데 기여 하기는 하였지만, 정규교육이라기보다는 일부 진보적 지식인과 학생들 사 이에서 사회운동적 차원에서 전개되었으며, 일부 편향된 시각을 배제하지 못함으로써 그 한계가 노출되었다.
통일․안보교육은 과거의 일방적 반공․안보 교육의 문제를 극복하는 데 기여했다는 점에서 진일보한 교육이며, 진정한 의미에서의 통일교육단 계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교육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대학의 필수교양 과목이었던 「국민윤리」 교과목이 폐지되고, 고등학교의 「윤리」 과목시간 도 시간이 축소되는 등 학교통일교육의 제도적 기반이 약화되었다.6 또한 통일교육이 수세적 입장에서 통일문제를 다루었다는 점 그리고 여전히 정 부 독점의 교육이었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었다.
(3) 통일교육 패러다임
1990년대에는 통일환경이 급격하게 변화하였다. 1991년 소련이 붕괴되 고, 동유럽 국가들의 체제전환이 도미노 현상처럼 퍼져나가면서 국제적 차 원의 냉전질서는 해체되었으며, 전후 분단되었던 독일이 통일을 성취하였 다. 한반도 상황도 비록 휴전체제에 종식을 가져오지는 못했으나, ‘지각변
동’을 겪게 되었다. 남한은 냉전질서 하에서 적대적 관계를 가져오던 중국
과 1991년, 소련과 1992년 각각 수교를 맺었으며, 1992년에는 북한과 더불
5위의 책, p. 27.
6황병덕, 통일교육 개선방안 연구 , p. 44.
어 UN에 가입하였다. 반면 북한은 그 동안 누적된 체제 모순과 사회주의 권의 해체로 말미암아 ‘총체적 위기’에 봉착하였으며, 체제 안전에 부심하 지 않을 수 없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남북간 체제의 우열과 관련된 논의는 더 이상 필요 없게 되었다. 남북한 당국자도 「남북기본합의서」를 체결하는 등 냉전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제 통일문제는 구호 차원의 문제라기보다는 실현의 문제로 다가왔으며, 여기에 그 동안 성장한 시민사 회의 역량은 통일논의의 다양화를 가져오는 계기가 되었다.
정부는 제6차 교육과정(1992~1996) 개정을 통해 소극적 분단극복의 차 원을 넘어 적극적으로 통일을 모색함과 더불어 통일 이후 민족공동체의 삶 에도 대비해야 한다는 시각에 토대를 두고, 통일과 화해, 북한에 대한 객관 적 이해 등을 지향하는 교육으로 대체되었다.7 사회통일교육에 있어서도
1992년 통일교육원에서 「통일교육 기본방향」을 개발하여, 통일논의의 기
본전제, 분단현실의 이해, 통일여건 인식, 통일정책, 그리고 통일준비 등 5 개의 중심 영역으로 구분 강의하였다. 1999년부터는 「통일교육 기본지침 서」를 발간하여, 통일의 필요성, 북한 사회의 변화 이해, 한반도 냉전구조 해체 노력, 대북포용정책과 남북관계 등을 그 중점 내용으로 가르치도록 지도하고 있다.
통일교육 시기는 이제까지 수세적․방어적 차원에서 이루어지던 교육이 보다 공세적․적극적 차원으로 전환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청소년층의 낮 은 통일문제 관심도를 극복하기 위해 통일의 당위성에 대한 내용도 강조되 었다. 북한에 대한 이해도 체제적․제도적 접근 못지않게 주민의 생활과 가치관, 북한의 역사인식 등 사회문화적 접근을 가미하였으며, 이해방법도
반공․안보보다는 ‘객관적 이해’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러한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의 통일교육은 시대별로 상이한 내용을 강의하였다. 김영삼 정부에서는 북한의 붕괴 및 급격한 통일에 대 비한 ‘통일대비교육’에 초점을 맞추었다. 체제통합, 과거청산방안 등 통일 이 가져올 문제점에 대한 대응력을 강화하는데 주안점을 두었으며, 교육의
7위의 책, pp. 44; 이우영 외, 통일교육의 새로운 방향과 실천과제, p.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