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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로 존 대 한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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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ademic year: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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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석 사 학 위 작 품

고 로 존 대 한 다 ?

T h e re f o re , I am ?

국 민 대 학 교 대 학 원

문 예 창 작 학 과

20 0 1

(2)

< 고 로 존 재 한 다 ? > / < 고 분 을 찾 아 서 >

T w o W o rk s o f < T h e re f o re , I am > an d

< L o o k in g f o r an A c c ie n t T om b >

지 도 교 수 손 필 영

이 작 품 을 석 사 학 위 청 구 작 품 으 로 제 출 함

200 1년 4월 26일

국 민 대 학 교 대 학 원

문 예 창 작 학 과

이 종 관

20 0 1

(3)

이 종 관 의

석 사 학 위 청 구 작 품 을 인 준 함

2 0 0 1년 5 월

심 사 위 원 장 (인 )

심 사 위 원 (인 )

심 사 위 원 (인 )

국 민 대 학 교 대 학 원

(4)

작 품 요 약

이 작품집에는 두 편의 희곡이 수록되어 있다. 처음 수록되어 있는 < 고로 존재한 다?> 는 존재의 원형성에 관한 이야기이고, 두 번째 수록되어 있는 < 고분을 찾아서>

는 흐르는 시간 속에서 진실 찾기에 관한 이야기이다.

< 고로 존재한다?> 는 가까운 미래에 사내1이 기계적 생활 속에서 자신의 존재성 을 인식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그가 자신의 존재성을 깨닫는 장치로서 하나는 자유의지이고 또 하나는 거울 속의 자신을 보는 객관화이다. 사내1은 기계부속 같은 생활에 염증을 내다 우발적으로 시스템을 다운시키게 되고 그 순간 사내1의 복제인 사내2가 등장한다. 사내1은 사내2를 자신의 복제로 생각하지만, 사내2와의 대화를 통 해 자신 역시 또 하나의 복제일 뿐이라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사내1은 자신이 존재 의 원형이기를 바라고 사내2를 살해한다. 사내1은 시스템을 속이고 존재의 원형성을 가지고자 한다.

< 고분을 찾아서> 는 현재의 경주에서 가상의 신라시대 마지막 고분인 156호 고분 을 찾아가는 사내1의 등장으로 출발한다. 사내1은 역사적 유물을 조작해서 사회적으 로 매장당한 아버지의 마지막 숙원인 신라시대 고분을 찾으러 나섰다. 사내1은 자신 의 무덤을 파고 있는 사내2를 만나게 되고 둘은 함께 156호 고분을 찾으러 간다. 두 사람 모두 왜곡된 시간 속에서 진실을 찾고자 한다.

(5)

Ⅰ . 고 로 존 재 한 다 ?・ ・ ・ ・ ・ ・ ・ ・ ・ ・ ・ ・ ・ ・ ・ ・ ・ ・ ・ ・ ・ ・ 1

Ⅱ . 고 분 을 찾 아 서 ・ ・ ・ ・ ・ ・ ・ ・ ・ ・ ・ ・ ・ ・ ・ ・ ・ ・ ・ ・ ・ ・ 19 A b s t ra c t ・ ・ ・ ・ ・ ・ ・ ・ ・ ・ ・ ・ ・ ・ ・ ・ ・ ・ ・ ・ ・ ・ ・ ・ ・ ・ 3 8

(6)

Ⅰ . 고 로 존 재 한 다 ?

등 장 인 물 사내1 사내2 사내3

가까운 미래

무 대

무대의 벽면은 금속 느낌의 거울로 이루어져 있다. 거울의 한쪽 면은 마주보고 있 는 다른 쪽 거울을 비추고, 비춰진 면은 자기 안에 비춰진 쪽을 포함하여 마주보고 있는 쪽을 반사한다. 결국 무대 위의 모든 것들은 반사를 거듭할수록 거울 내부로 깊숙이 빨려 들어가 갇히게 된다.

전체 공간은 금속성의 날카롭고 싸늘한 냉기가 충만하다. 하지만 살짝 얼어버린 얼음 위처럼 무대는 불안한 느낌이다. 무대는 3칸 형태로 분할되어 있고, 두 개의 벽 을 통해 나뉘어져 있다. 사내의 작업공간은 3칸의 공간 중 가운데이다. 모든 사건이 사내의 공간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3칸으로 나뉘어져 있는 공간이 균등할 필요는 없다. 사내의 공간 뒷편 벽에는 영사막이 걸려있고, 푸른색 화면위로 0과 1로 이루어 진 이진수의 숫자들이 규칙적인 배열을 가지고 움직이고 있다. 사내의 공간 앞쪽으 로 천장에서부터 길게 내려온 막대가 있다. 그 끝에는 진초록의, 확성기 형태를 띤 크지 않은 스피커가 달려있다. - 이 스피커를 통해 사내에게 경고 메시지가 전달된다.

세 공간 중앙에는 대칭이 이루어지지 않는 형태로 모서리가 뾰죽하고 끝이 날카로운 작업대가 있다. 작업대 옆에 컴퓨터라고 생각하기에는 덩치가 큰 기계가 서있고, 기

(7)

계로부터 뻗어 나온 선에 연결된 모니터와 키보드가 작업대 위에 있다. 의자는 없다.

따라서 사내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허리를 숙이고 모니터 속을 뚫어지게 쳐다봐야만 한다. 사내는 자루 형태의 헐렁한 작업복을 입고 있다. 사내를 중심으로 양쪽에 사내 의 공간과 같은 공간이 있고, 그 속에는 기계 앞에 허리를 숙인 채 화면을 보고 있 는 두 인물이 있다. 두 인물은 마네킹으로 한다. 마네킹들도 사내와 같은 작업복을 입고 있다.

사 내 1 (허리를 숙인 채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마치 모니터 속 인물에게 말을 걸

듯) 이봐, 내 말 들려?

(기다린다. 아무런 반응 없다)

사 내 1 (목소리 커진다) 이것 봐, 내 말이 들리냐구?

(기다린다. 아무런 반응 없다)

사 내 1 (조급하게, 큰 목소리로) 정말, 내 말이 안 들리는 거야?

(아무런 반응 없다, 사내1 의기소침해서 두 어깨가 쳐진다. 사이)

사 내 1 (의식적으로 쾌활하게) 오라, 내가 자네 이름을 안 불러준다고 또 삐진 게

로구만.

(아무런 반응 없다)

사 내 1 그래, 알았어. 알았다구. 내 불러 주지. (조심스럽게) 이봐, 정말 안 들리는 건 아니지?

(아무런 반응 없다)

사 내 1 (힐끗, 객석을 기준으로 무대 왼편을 본다. 그제서야 사내1이 말을 건 사람

이 옆 공간의 사람임을 알 수 있다) 좋아, 그럼 내가 자네 이름을 불러줄 테니 똑똑히 들어. (큰 목소리로, 장난치듯) 음, 그러니까... 내가 83B섹터니 까, 그래, 자넨 83A섹터야 ! 그렇지? 어이, 83A섹터 양반 !!

(8)

(기다린다. 아무런 반응 없다)

사 내 1 자네, 정말 삐진 거야?

(기다린다. 아무런 반응 없다)

사 내 1 이봐 ! 내 목소리가 들리면 대답을 해줘 ! 애들 숨바꼭질 같은 장난은 집어

치우라구. 이봐, 정말 재미없어. 기원이 내 말이 안 들리는 거야?

(아무런 반응 없다. 초조해진다)

사 내 1 자네, 혹시 날 잊어버렸나? 나라구! 83B섹터의 이수인이야.

(아무런 반응 없다)

(사내1, 못 참겠다는 듯, 작업대를 벗어나 객석을 중심으로 왼편 벽 쪽으로 간다)

사 내 1 (벽을 두드린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벽이 두꺼워 졌나? 이봐, 안 들려?

(좀더 세게 벽을 두드린다) 내 말이 정말 안 들리는 거야? (반응을 기다 린다. 그러다 거울에 비춰진 자신의 형체를 손가락으로 따라가 본다. 잠시 물끄러미 본다) ...젠장 !

(사내 뒤에 있는 푸른색의 화면이 적색으로 변하고 깜박거린다. 소리는 나 지 않는다)

사 내 1 이봐, 내 말이 들리면 아무, 아무 소리라도 좋으니까 소리를 내봐... 아니, 그냥 나처럼 벽을 두드려봐. 벽을 사정없이 차도 좋네. 어서... 제발 부탁 이야. (아무 반응 없다. 사내, 다시 벽을 두드리려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그만둔다) 꼭 나한테 주먹질을 해대는 거 같군.

기 계 소 리 작업 이탈 시간 30초, 속히 작업대로 돌아가십시오.

사 내 1 (표정 바뀌며, 쾌활하게) 그래, 자네 생각나나? 자넨 이 소리를 들으면 마

누라가 생각난다고 했잖나. (기계의 말투를 흉내내서 과장되게) 작업 지속 시간 30초, 속히 이탈하신 침대로 돌아가십시오. 핫하하... 자네 마누란 늘

(9)

이렇게 말한다면서. (반응 없다. 사내 의기소침해 진다) 미안하네. 자네 마 누라를 흉볼 생각은 아니었어. 그래, 그저 난 자네에게 말을 걸어보고 싶었 던 거야. 자네, 듣고 있나?

기 계 소 리 작업 이탈시간 60초, 지금까지 총 이탈시간 45분 30초. 작업 효율 94%

사 내 1 그래, 그래 알았다고. 내참 10년을 넘도록 똑같은 일을 하는데, 단 일분도

여유를 주지 않는군. 내가 졌어. 작업대로 돌아가지요. (사내, 습관처럼 작 업복의 주머니에 손을 넣으려 한다. 하지만 작업복에는 주머니가 없다. 사 내 어색하게 팔짱을 낀다) 하여간... (뭔 작업복을 이따위로 만드는 거야.)

(사내1 의기소침해진 몸짓으로 작업대로 돌아간다. 허리를 숙이며 모니터 를 쳐다본다. 사내 뒷편의 영사막 다시 파란색으로 변한다)

사 내 1 (키보드를 두드린다) 34A , 101B , 1003D - 1 구역에서 치명적 오류발견. (키 보드의 자판을 두드린다) 수정! (사내 잠시 생각에 빠진다) ...그런데 뭐가 오류라는 거지. 참 이상해. 10년 넘게 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는데 뭐가 오 류인지도 모르는 오류를 수정한다는 게. 물론 구별은 되지. 모니터 속 숫자 들을 쫘악 훑어보다 보면 똑같이 생긴 놈들 중에서 무언가 느낌이 다른 놈 들이 있으니까. (사이) 그런데 난 이 일을 누구에게 배운 걸까? ...처음부 터? (의혹에 잠긴 얼굴. 그러나 곧 명쾌한 얼굴표정으로) 모르겠군. 복잡하 게 생각할 필요 없어. 지금까지 하던 대로 그냥 하면 되는 거지.

사 내 1 (금방 생각났다는 듯이) 이봐, 이건 기억나나? 자네가 발견해낸 장난 말야.

자넨 그걸 자유라고 불렀지.

(사내1, 모니터에서 고개를 빼고 있다. 사내1, 속으로 뭔가를 세는 듯 하다.

사내1, 황급히 다시 모니터를 쳐다본다)

사 내 1 자네가 내게 가르쳐 준 0.9의 자유 말일세. 난 그 이후로 답답해지면 혼자 이 장난을 해본다네. 이렇게 몇 번을 놀고 나면 이상하게도 가슴이 시원해 지더군. (사내1, 다시 한번 모니터 밖으로 고개를 빼고 좀 전에 한 행동을 반복한다) 기억 안나나? (침울해진다) 기억이 안 나는 모양이군. (사이) 그 렇다면 내가 그 날의 일을 소상하게 말해 보겠네.

(사내1의 대사와 몸짓이 지금까지보다 조금 빠르게 진행된다)

(10)

사 내 1 어느 날이었네. 뭐 그리 오래된 일도 아니지. 겨우 한 주일이나 됐을까?

아무튼 그날도 난 이렇게 모니터를 쳐다보고 있었네. 그리곤 혼자 중얼거 렸지. (조금 과장된 느낌으로) 이런 젠장, 아무리 미개했던 종족들도 손가 락 열개쯤은 셋다고 하던데, 허구헌날 0과 1밖에 모르는 멍청한 놈의 기 계를 쳐다보고 있으려니 아주 돌아버리겠군. 자네 기억나나? 답답하군.

이봐, 기원이 기억 안나나? (반응 없다) 좋네. 다시 그날 이야길 하지. 자 넨 벽 너머에서 내게 말을 걸었네. 이봐, 그럼 속여봐! (83A섹터 쪽을 쳐 다보며) 난 자네의 목소리를 듣고 기절하는 줄 알았네. 10년 넘게 여기서 작업을 했지만 살아있는 목소리를 들은 건 그때가 처음이었거든. 난 놀라 잠시 침묵하고 있었네. 그때 자네 목소리가 다시 들렸지. 이봐, 자네가 말 한대로 그 고철깡통은 0과1밖에는 모른다네. 내가 놀라서 물었지. 당신은 누구요? 그랬더니 자네가 대답했네. 83A 섹터의 한기원이야 그래서 내가 자네 이름을 알게됐네. 자네, 여기까지는 기억나나? (반응 없다. 사내 다 시 모니터를 쳐다본다) 자네가 그렇게 내게 0.9의 자유를 가르쳐줬네. 그 러고 보면 자넨 머리가 무척 좋은 거 같더군.

사 내 1 (모니터 바깥으로 고개를 뺀다) 이렇게 고개를 빼고 있다가 (고개를 모니

터 안으로 집어넣으며) 다시 고개를 집어넣으면 이 멍청한 깡통은 1이라고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경고를 하지 않더군. 우린 0.9만큼 자유로와진 거 지.

사 내 1 자네, 정말 아무 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 건가? 어떻게 하루만에 모든 걸

잊어버릴 수가 있지? 무슨 일이 있었나? (반응 없다) ...자네가 나를 자꾸 무시한다면 나도 생각이 있네.

(사내1 작업에 열중하는 척 한다)

사 내 1 (사내1, 83A 섹터의 사람을 무시하려는 의도가 보인다. 하지만 또 그가 자 신에게 말을 시켜주길 바라는 복합적인 느낌이다) 야간근무는 언제쯤에나 끝나는 거지? 벌써 몇주째야. 이러다간 마누라 얼굴도 잊어버리겠군. 도대 체 왜 이렇게 사는 거야? 이번 삼사분기보고 때에는 건의라도 해봐야겠어.

이렇게 살수는 없는 문제니까. 이번엔 세게 나갈 거야. 필요하다면 탁자를 치고 벌떡 일어나기까지 해야지. 암 그 정도는 해야 한다구. (사내1, 계속해 서 모니터를 본다. 그러다가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사 내 1 불길한 생각이 자꾸 드는군. 혹시, 자네 그 곳에 없는 건가?

(사내1, 다시 작업대를 벗어나서 83A 섹터 쪽 벽으로 간다)

(11)

사 내 1 (사방을 두리번거린다) 보이는 건 온통 내 얼굴뿐이니, 마치 내가 날 감시 하고 있는 기분이 드는군. 자네도 그런가? (벽을 두드리며) 이봐, 자네 거 기 있나? 정말 불안해 미치겠네.

(영사막 붉은 색으로 변한다)

사 내 1 그래, 자넨 거기 없는 지도 몰라. 그러니까 지금까지 난 빈 섹터를 향해

주절주절 이야기를 떠들어댄 거지. (사내, 주머니에 손을 넣으려고 한다.

헛손질이다) 이런 빌어먹을... (사내, 작업대의 뾰족한 모서리로 작업복을 찢어 구멍 두개를 만든다. 그리고 구멍에 손을 집어넣는다) 한결 낫군. 왜 이재서야 이걸 생각해 냈지. 10년 동안 내내 불편해 했었는데...

기 계 소 리 작업 이탈 시간 30초, 속히 작업대로 돌아가십시오.

사 내 1 이봐, 자네 작업복엔 주머니가 있나? ...놀라지 말게. 방금 내가 작업복주머 니를 발명했다네. (아무런 반응 없다. 사내 실망한다) ...웃지 않는군. 자넨 어디로 간 건가? 불안하군. 자네가 대답을 하지 않으면, 자네와 보낸 시간 은? ...0과1사이에서 찾아낸 0.9의 자유는?

(초조한 듯 서성거린다)

(사내1, 83C의 섹터 쪽으로 가서 발작하듯 벽을 두드린다)

사 내 1 이봐요, 누가 됐건 간에 대답을 해줘요. 제발요. 말을 할 수 없으면 나처럼

사정없이 벽을 두드려요. 제발 부탁이에요. 아무, 아무 소리라도 좋으니까 소리를 내 줘요.

기 계 소 리 작업 이탈시간 60초, 지금까지 총 이탈시간 46분 30초. 작업 효율 93%

사 내 1 (신경질적으로) 나한테 명령하지마 ! 30초 아니라, 1분이라도 난 움직일 수 있어. 난 작업대로 돌아가지 않아 !

기 계 소 리 작업 이탈 시간 60초, 속히 작업대로 돌아가십시오.

사 내 1 (감정에 북받쳐서) 나한테 명령하지 말라니까 !!

(사내1, 거칠게 작업대로 가서 모니터를 밀쳐 바닥에 내동댕이친다. 그리고 자판을 마구잡이로 두드린다. 0과 1의 규칙적인 배열을 보이던 영사막에 여러 가지 기호들이 입력되기 시작한다. 뒤의 화면 적색으로 바뀌면서 일 그러진다)

(12)

기 계 소 리 본 시스템은 잘못된 연산을 수행하여 종료됩니다.

(일그러지던 화면 꺼지면서 무대 암전) (긴 사이)

(희미한 어둠 속에 돌처럼 앉아있던 사내에게서 한 숨 같은 말들이 흘러 나온다)

사 내 1 누구라도 좋으니까, 대답을 해줘. (사이) 나도 지쳤어... 지쳤다고... (사이) 내 잘못이 아니야... 다 저놈의 기계 때문이라구... 그래, 난 이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어. 그야말로 우발적인 거야... 난 어떻게 되는 거지?

(긴 사이)

사 내 1 (사내1 두려운 듯 노래를 부른다. 음정, 박자가 무시된 낯선 노래다) 나,

나의 아버지는 목수였어요... 큰 연장가방을 가지고 있죠...

(혼돈 같은 어둠 속에서 사내2 등장한다. 83B섹터가 희미하게 밝아진다.

사내2의 모습은 확연하게 보이지는 않는다. 밝은 조명이 사내1을 비춘다)

사 내 2 (실체가 보이지 않는다) 시끄럽군.

사 내 1 (놀란 모습으로 사내2쪽을 쳐다본다) 누, 누구요?

사 내 2 보면 모르겠나?

(사내1, 엉거주춤한 모습으로 일어선다)

사 내 1 (사내1, 얼굴을 찌푸리며 잘 보려고 노력한다) 안전... 요원인가요?

사 내 2 (침묵)

(사내1, 공포에 떤다)

사 내 1 (뒤로 물러서며) 내...내가 그런 게 아니야.

사 내 2 (건조하게)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네. 자네가 그랬건, 안 그랬건 간에.

사 내 1 (사내2의 태도에 공포를 느끼며) 고의가 아니었어. 그냥 우발적으로 일어

난 일이야.

(13)

사 내 2 그래서? 그래서 뭐가 어떻다는 건가?

사 내 1 나는 지쳐있었어... 몇주일째 야간근무에 파김치가 돼 있었다구...

사 내 2 내게 변명하지 말게.

사 내 1 아내가 기다려... 아내는 걱정할 거구.

사 내 2 아낸 주간 근무야. 그러니까 아낸 기다리지 않아. 자네도 그걸 알지.

사 내 1 (흠칫 놀란다. 사내1 사내2에게 애원하는 느낌으로) 사고였어... 고의가 아 니었다구... (사내1, 사내2의 표정을 읽어보려고 노력하지만 어둠 때문에 사 내2의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사내1 점점 더 겁에 질린다) 사고였어...요. 그 래요 단순한 사고였다구요... 내 말을 믿어요. 내가 다시 고쳐놓겠어요. (사 내1, 급히 바닥에 팽개쳐져있는 모니터를 작업대 위로 올린다. 그리고 허겁 지겁 자판을 두드린다. 하지만 아무런 변화 없다) 금방 고칠 수 있어요. 벌 써 절반은 복구된 셈이에요.

사 내 2 걱정하지 말게. 난 자네에게 책임을 물으러 온 것은 아니니까.

사 내 1 (고개를 주억거린다) 내 말을 믿어 주시는군요. 감사합니다. 이젠 불평 없

이, 1초의 이탈도 없이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허리가 끊어지도록 펴지도 않 고...

사 내 2 나에게 감사하지 말게. 자네 이름이 이수인이지? C - 1구역의 모퉁이에서

살고. 자넨 늘 출근하기 전 파란색 커튼으로 창을 가려놓지. 하지만 오늘 은 그냥 묶어둔 채로 나왔네. 두 번째 커튼핀이 빠져서 늘어지는 것이 보 기 싫었기 때문이었네.

사 내 1 (혼잣말로) 정말 지독한 놈들이군... 나에 대해선 뭐든 알고 있는 모양이야.

사 내 2 틀린가?

사 내 1 (사내2에게 공손한 태도로) 아닙니다. 맞아요. ...놀랍군요.

사 내 2 (사내2, 사내1의 조명 밑으로 걸어 들어온다) 난 자네에 대해서 모르는 게

없지. 자, 날 보게.

(사내1, 작업대에서 벗어나 사내2를 쳐다본다. 사내1, 경악한다. 사내2, 사 내1의 얼굴과 쌍둥이처럼 같다)

사 내 1 많이 본 듯한 얼굴이군. (눈을 비비고, 다시 쳐다본다) 아니야, 그럴 리 없 어. 아무래도 헛것이 보이는걸... 정말 피곤한 모양이야.

사 내 2 자네 눈은 지극히 정상이네.

사 내 1 (눈을 한번 더 비비고 쳐다본다. 83B섹터의 공간이 전체적으로 밝아진다)

말도 안돼! 그건 내 얼굴이라구 !!! 거짓말이야. 모두 환상이라구. (사내1,

(14)

눈을 감고 고개를 흔든다) 그래... 그래, 이제야 알겠어. 지금까지 벌어진 모든 일이 다 환상이었던 거야. 실제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따라 서 난 아무 짓도 하지 않았던 거지. 물론 내 얼굴과 똑같은 얼굴도 내 공 포가 만들어낸 헛것일 뿐이고. 하하... 이제 눈을 뜨고 나면 모든 게 원래 대로 돌아와 있을 거야.

사 내 2 (사내1의 말을 자르며) 믿고 싶지 않겠지만 난 실재하네.

사 내 1 (혼자말로) 거울 속에 있는 나랑 대화를 하다니... 드디어 내가 미쳐버린

모양이야.

사 내 2 난 거울 속에 있지 않네.

사 내 1 (눈을 뜨고 사내2를 노려본다) 그럼, 내가 거울 속에 있는 허상이란 말인

가?

사 내 2 그것도 아니지.

사 내 1 (불안한 시선으로 여기저기를 두리번거린다) 나를 놀리는 거야... 내가 속

을 줄 알고. 그래, 날 시험하려는 짓이야.

사 내 2 둔하군... 아무도 자넬 시험하지 않아.

사 내 1 믿을 수 없어. 자넨 허상이야. 그림자일뿐이지. 음...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 면 자넨 거울과 빛이 만들어낸 일종의 마술 같은 거야.

사 내 2 난 숨을 쉬네. 붉은 피가 온몸을 돌고. 시간이 되면 배가 고파진다네.

사 내 1 ...정말, 정말 실재한다는 뜻인가?

사 내 2 그렇지. 자네가 실재하듯이...

사 내 1 그럼 우린 쌍둥이인가?

사 내 2 후후, 쌍둥이라... 비슷하긴 하지만 좀 다르지.

사 내 1 그럼 넌 누구야.

사 내 2 이수인이지... 공식적인 이름으론.

사 내 1 (큰 소리로) 이수인은 나야 !!!

사 내 2 소리지르지 말게. 자네가 이수인이 아니라고는 하지 않았으니까...

사 내 1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넌 누구야? 누군데 나랑 같은 모습으로 여

기 나타난 거지?

사 내 2 조금 전에도 말했다시피, 난 이수인이네.

사 내 1 (흥분해서) 이수인은 나라니까 !!

사 내 2 말을 못 알아듣는군...

사 내 1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 이수인은 나야... 나 혼자 뿐이라구.

사 내 2 흠, 자넨 내 말을 전혀 이해하려 들지 않는군... 자네나, 나나 둘 다 이수인 이야. 하지만, 또 아니기도 하지.

(15)

사 내 1 넌 어디서 온 거야?

사 내 2 날 보낸 곳으로부터.

사 내 1 그 곳이 어딘데?

사 내 2 그건 나도 모르지.

사 내 1 그럼 왜 나타난 거야?

사 내 2 그들이 판단한 거지.

사 내 1 무엇을?

사 내 2 자네의 끝을.

사 내 1 (어처구니없다는 듯) 끝이라구? 말도 안돼... 난 아직 쌩쌩하다구... 내 나이 이제 겨우 서른다섯이야... 건강하다구. (팔에 힘을 줘서 이두박근을 보이 며) 이것 봐... 아직 근육도 쳐지지 않았어.

사 내 2 자넨 넘지 말아야할 선에 가까이 갔네. 그것이 저들을 불안하게 한 거야.

사 내 1 그게 뭐지?

사 내 2 자유...

(짧은 암전. 무대 전체적으로 밝아지면 83A 섹터의 마네킹은 여전히 같은 모습으로 모니터를 쳐다보고 있다. 83C섹터의 마네킹은, 두 사람의 대화를 엿듣기라도 하는 듯 83B와 83C를 나누는 벽 쪽으로 살짝 기울어져 있다)

사 내 1 아득하군... (생각하는 모습) ...당신은 그걸 알고있나?

사 내 2 뭘 말인가?

사 내 1 자유...

사 내 2 자네의 행동을 통해서 유추해 보면... 그건 일종의 장난이지.

사 내 1 장난이라구? 후후... 당신도 이해하지 못하는 게 있군.

사 내 2 (사내1의 말을 인정할 수 없다는 듯) ...어리석군. 자네가 한 짓이라곤 고작 잠시동안 모니터 바깥으로 고개를 빼는 것이 전부였네.

사 내 1 고작 그 정도라고? 내가 지금까지 한번도 사용해 보지 않은 자유라는 것

이.

사 내 2 내가 아는 한...

사 내 1 그게 전부라면 왜 당신을 보낸 거지?

사 내 2 나도 그게 궁금해. 하지만 적어도 그들이 원하는 대로 자넨 움직여 주지

않았네. 그것만은 확실하지.

사 내 1 그래서 83A섹터의 한기원도 제거된 건가?

사 내 2 난 그저 또 하나의 이수인에 불과하네.

(16)

(사내1이 이수인은 나야 라고 소리지르려고 하자, 사내2가 재빨리 덧붙인 다)

사 내 2 (손을 들어 저지하며) 시끄럽게 굴지는 말게. 굳이 설명해본다면 제거는

아니네. 교체라고나 할까.

사 내 1 교체라구?

사 내 2 그렇지. 다시 설명하네만, 그도 그의 이름 안에선 현재도 존재하네.

사 내 1 (도전적으로) 누구의 시각으로 보느냐에 따라 다르겠지...

사 내 2 누구의 입장에도 서지 않으면 이해할 수 있을 걸세.

사 내 1 엉터리 궤변일 뿐이야. 그는 어제까지만 해도 분명히 나를 알고 있었어.

나와 말도 나눴구.

사 내 2 자넨 어제까지의 그를 알고 있을 뿐이네.

사 내 1 그는 어떻게 된 거지?

사 내 2 그는 존재하네. 단, 자넨 새롭게 그의 위치를 설정해야 할걸세.

(사내1 뭐라고 되물으려는 것을 사내2가 자르며)

사 내 2 내가 모르는 것을 더 이상 물어보진 말게.

사 내 1 이건 음모야.

사 내 2 아니, 이건 지금까지 계획되어진 것이네.

사 내 1 믿을 수 없어. 당신이 무슨 목적으로 내 얼굴을 하고 여기에 왔는지 모르

지만 넌 내가 될 수 없어...

사 내 2 같은 말을 되풀이하게 만드는군... 난 자네가 될 필요가 없지. 원래 난 이

수인이니까...

사 내 1 말장난은 그만 둬...

사 내 2 후후후, 나도 이 피곤한 대화를 그만하고 싶네.

사 내 1 (사내2를 인정할 수 없다는 듯) 얼굴만 같다고 나라고 할 수 있을까?

사 내 2 (여유 있게) 글쎄, 그럴까?

사 내 1 다른 사람은 몰라도 아낸 금방 알아챌 거야.

사 내 2 아니, 자네도 아내가 바뀐 걸 알지 못했잖나.

사 내 1 (어이없다는 표정) 무슨 소리야 !!!

사 내 2 자넨 두 달 전쯤 아내와 크게 다퉜네. 내 말이 틀린가?

사 내 1 다툰 게 아니야... 잠시 의견충돌이 있었을 뿐이지.

사 내 2 그래, 뭐라 불러도 좋네. 그때 아낸 자네에게 판에 박힌 듯 사는 게 싫다

(17)

고 했지, 기억나나?

사 내 1 그렇게 심각한 수준이 아니었어... 그리고 금방 아낸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

왔고.

사 내 2 그렇게 생각하나?

사 내 1 (의혹에 찬 표정) 네 말 대로라면... (손가락으로 귀를 막으며) 아니야... 지 금부터 난 당신 이야길 듣지 않겠어 !

(사내2 입을 벌리려 하자, 사내1 노래를 부른다. 음정에 맞지 않는 노래. 노 래 점점 커지고 사내2 그런 사내1을 물끄러미 보고 있다. 사이. 사내1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노래를 멈추고 사내2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사 내 2 시끄럽군.

사 내 1 그렇다면 말이지... 넌 어떻게 이 모든 걸 자세히 알고있는 거지?

사 내 2 자네 때문이지.

사 내 1 나 때문이라구?

사 내 2 그래, 자네가 규칙적으로 처리되는 디지털자료에 엉뚱하게 아날로그적 기

호들만 마구잡이로 끼워 넣어 버그를 만들지만 않았어도 그래서 시스템이 다운돼서 엉키지만 않았어도 모든 건 일정대로 흘러갔을 거네.

사 내 1 일정대로 흘러갔으면 어떻게 되는 거지?

사 내 2 그랬으면, 난 식사시간을 끝마치고 지금쯤 자네가 되어 모니터를 들여다보

고 있었겠지.

사 내 1 넌 내가 아닌 걸 까맣게 모르고?

사 내 2 (고개를 끄떡이며) 까맣게 모르고.

사 내 1 내 자리에 니가 서있으면 나는 어디로 가는 거지?

사 내 2 모르지...

사 내 1 죽는 건가?

사 내 2 죽음... 소멸은 아니네. 내가 자네가 되어 있을 테니까.

사 내 1 (머리를 감싸며) 당신의 표현에 따르면 교첸가?

사 내 2 굳이 정의를 내리자면 그렇지.

사 내 1 후... 이 거짓말을 내가 믿을 거라고 생각하나?

사 내 2 (건조하게) 사실이네.

(사이)

사 내 1 혹시, 그래서 그들이 당신을 보낸 건가? 내가 버그를 만들어서?

(18)

사 내 2 아니, 아까 말한 대로 내가 온 것은 그들의 판단일 뿐이네. 그리고 이 것 은 이미 오래 전부터 준비되어 있던 일이지... 자네가 지금 여기에 있는 것처럼.

사 내 1 (놀라며) ...그럼 나 이전에도 누군가가 여기서 지금의 나처럼 있었단 말인

가?

사 내 2 (웃으며) 기쁘군, 이제야 내 말을 이해하다니...

사 내 1 (당당하게) 그렇다면 당신 거짓말에도 한계가 있군...

사 내 2 무엇이?

사 내 1 당신 말이 사실이라면 왜 난 기억이 없는 거지?

사 내 2 계속해서 말했지 않나. 예정대로 됐다면 내가 자넬 만날 일도 없었고, 또

이 피곤한 기억도 자네처럼 없었을 것이라고.

사 내 1 (조금 위축돼서) 믿을 수 없어.

사 내 2 자네가 믿든 안 믿든 간에 중요한 건, 모두 결정되어져 있다는 거네. 시스

템이 복구되어 정상적으로 작동이 되면 우리 문젠 곧 해결이 되겠지.

사 내 1 그렇다면 넌 다시 기억을 잃구?

사 내 2 내가 예측할 수 없는 걸 물어보진 말게. 간단히 말하자면, 우린 그저 부분

일 뿐이네.

사 내 1 이수인은 나야 ! 나 혼자 뿐이라구 !!

사 내 2 다시 원점이군. 누구도 자네가 이수인이라는 걸 부정하지 않지.

사 내 1 그래, 바로 내가 이수인이라구 !!

사 내 2 하지만, 아무도 자네가 이수인의 처음과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네.

사 내 1 그럼 당신이 이수인의 처음과 끝인가?

사 내 2 물론, 나 역시 처음도 끝도 아니지...

사 내 1 혼돈스러워...

사 내 2 너무 혼란스러워 하지 말게. 자네가 망쳐놓은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가동되

면 모든 게 해결 될 것이네.

사 내 1 (바닥에 주저앉는다) 해결이라구?

(세 개의 섹터 모두를 비추던 조명 어두워지고, 83B섹터만 비춘다)

사 내 2 그렇지, 그게 자네가 바라지 않는 것일 수도 있네만...

사 내 1 (냉소적으로) 당신이 말한대로라면 해결이 아니구 정리겠지.

사 내 2 뭐든...

(사내1, 침울하게 앉아 있다. 그러다가 무엇인가를 찾아낸 듯 일어서서 사

(19)

내2에게 한 걸음 다가간다)

사 내 1 (미소를 지으며) 당신의 말을 전부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난 너와는 달라.

사 내 2 (사내1의 변화에도 냉소적이다) 어떤 점이 다르다는 것이지?

사 내 1 내가 오리지널이란 거지. 넌 저기 거울에 비춰진 수많은 나에 불과해. 그

저 복사본일 뿐이란 뜻이지.

사 내 2 (조소하듯) 하하하... 오리지널은 없네.

사 내 1 (확신하듯) 아니 있어 ! 당신은 그저 내가 전송하는 데이터에 의해서만 내

그림자처럼 존재할 뿐이야.

사 내 2 자넨 뭔가 착각하고 있는 모양이군. 그럼 쉽게 이야길 하지. 자네의 모든

생각들이 데이터화 돼서 나말고 다른 이수인들에게 똑같이 전송된다면 누 가 오리지널 데이터를 수신한 거지? 대답할 수 있겠나?

사 내 1 (의기양양해서) 물론, 내 생각들이 전송되는 것이니까, 당연히 보낸 내 데

이터만이 오리지널이지.

사 내 2 하하... 그렇군. 하지만 자네도 나와 별반 다르지 않게 똑같이 전송 받은

이수인중에 하나 일뿐이라면? 그래도 오리지널이라고 생각하나?

(사내1, 바닥에 주저앉아 무릎을 두 팔로 감싼다. 그리고 멍하니 객석 쪽을 본다. 따뜻한 느낌의 빛이 사내1을 감싸듯 비춘다)

사 내 1 난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았어. 어렸을 땐 꿈이 있었지.

사 내 2 나도 알고 있네. 우린 오지를 여행하는 탐험가가 꿈이었지.

사 내 1 당신도 탐험가가 꿈이었나?

사 내 2 그건 우리 꿈이네.

(사내1을 감싸주던 따뜻한 빛이, 차가운 느낌의 빛으로 바뀌면서 83B섹터 전체로 넓어진다)

사 내 1 미치겠군. 그러니까... 넌 나와 똑같다는 말인가?

사 내 2 아마도...

사 내 1 넌 나에 대해서 어디까지 알고 있지?

사 내 2 존재하고 있는 만큼.

사 내 1 (일어선다) 존재라고? 내가 존재하고 있기는 한 건가?

사 내 2 물론, 자넨 이수인이란 이름으로 존재해왔네.

(20)

사 내 1 그럼, 실제의 난 존재하고 있지 않다는 뜻인가?

사 내 2 아니, 자넨 이수인이란 이름으로 분명히 존재했네.

사 내 1 그럼, 내가 이수인이란 이름 밖에선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로군.

사 내 2 나 역시 그 밖에선 존재하지 않네.

사 내 1 (사내2의 주위를 맴돌며) 재미있군... 그렇다면 현재 우린 존재하지 않는다

는 뜻이군.

사 내 2 우리 둘 중에 하난 허상이네.

사 내 1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자신의 팔뚝을 잡으며) 이렇게 만져지는데.

사 내 2 만져진다고 다 실재한다는 것은 아니지. (사내1의 움직임에 따라 시선이

움직이며) 어지럽게 굴지 말게.

사 내 1 우린 마치 마주보고 있는 거울처럼 아무리 거울 깊숙이 들어가도 다른 허

상을 만날 뿐이로군. (멈춰서며) 피곤하군.

사 내 2 나 역시.

(기계의 낮은 소음. 무대 뒤편 영사막에 2진수의 숫자들이 일그러진 채 일렁거리다 다시 꺼진다)

사 내 2 상당부분 복구가 된 모양이군.

사 내 1 (불안해하며) 이제 곧 정리가 되겠지?

사 내 2 피곤한 상황도 이제 곧 끝나겠군.

사 내 1 (도전적으로) 그럼, 넌 네가 원하는 대로 내 모든 것을 갖게 되겠군.

사 내 2 너의 모든 것이 아니고, 내 것을 새로 할당받는 것뿐이지.

사 내 1 (자조적으로) 후후후... 그럼 난 소멸하게 되겠군.

사 내 2 나를 원망하지는 말게. 나 역시 끝은 아니니.

(사내1, 침울하게 생각에 잠긴다. 사이)

사 내 1 (중얼거리듯) 끝도 아닌 인생을 산다는 건 얼마나 소모적인가...

사 내 2 (침묵한다)

사 내 1 난 아내를 사랑해...

사 내 2 나도 아내를 사랑하네...

사 내 1 (신경질 적으로) 아무리 그래도 넌 내가 아니야 !! (어조를 낮춰서) 넌 아낼 만난 적도 없잖아.

사 내 2 만나는 것이 사랑을 좌우하지는 않지.

(21)

사 내 1 어떻게 그럴 수 있지? 한번 본적도, 대화를 해본 적도 없는 사람을 어떻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거지?

사 내 2 자네의 사랑 역시 감정이 아니라 기억이네. 나와 다를 것이 없지.

사 내 1 기억이라고?

사 내 2 그렇지. 처음부터 자넨 아내를 사랑한다는 기억을 갖고 있었던 거지.

사 내 1 너의 말이 다 진실이라고 해도, 감정이 복제되지는 않아.

사 내 2 사랑은 감정이 아니네. 기억이지.

사 내 1 (불안함을 감추며) 하하하... 여기까지가 너의 한계로군.

사 내 2 자네의 한계네. 하지만 이쯤에서 그만두기로 하지.

사 내 1 (불안의 극대화) 넌 내가 아니야 !!!

사 내 2 짜증스럽군. 난 자넬 납득시킬 필요가 없네.

(사내1, 무대 모서리에 웅크리고 앉는다. 무대는 전체적으로 어두워지고, 빛 한줄기가 사내1을 비춘다. 그 빛 속에 갇힌 사내1은 오히려 관속의 어 둠 같은 고독에 빠진다)

사 내 1 (방백) ...어차피 나를 타인 속에서 확인 받을 필요는 없는 거야. 옆 섹터의 사람이나, 아내에게서나. 난 그저 나로 온전한 거야.

(긴 사이)

사 내 1 이봐, 자넨 지금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아나?

사 내 2 모르지. 이미 전송은 중단된 상태니.

사 내 1 그렇다면 자네와 나는 지금 다른 객체로 존재하는 것이군.

사 내 2 우린 서로 다른 객체일 뿐 존재하는 건 아니네.

(사내1이 일어서면 83B섹터, 전체적으로 밝아진다. )

사 내 1 (사내2에게 다가간다) 한가지만 묻지. 나는 너이고 너는 나인가?

사 내 2 (흔쾌히) 그렇지. 이제 이해가 되나?

사 내 1 (사내2의 말을 자르며) 그렇다면, 나는 네가 될 수 있고, 너는 내가 될 수 있다는 뜻인가?

사 내 2 틀리진 않지. 하지만 궁극적으로 말하자면 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벌써

되어있는 것이네.

(22)

사 내 1 (눈빛을 번득이며, 사내2에게 다가간다) 그렇단 말이지?

사 내 2 (불안감을 느끼며 뒤로 물러선다) ...자네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

가?

(사내1, 달려들어 사내2의 목을 조른다)

사 내 1 후후, 어차피 시스템이 다운되어버렸다면 내가 사라질 필요는 없지.

사 내 2 (억눌린 목소리로) ...자...네...살인...을...할...셈인...가?

사 내 1 (섬뜩한 미소를 지으며) 네 말대로면 살인이 아니라 자살이지. 난 시간이

없어.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해 내 섹터를 불량으로 인식하기 전에 모 든 걸 원래대로 돌려 놔야해.

(목을 졸린 사내2 꿈틀거리다 이내 축 늘어진다. 사내2바닥에 쓰러지고 사내1, 무릎을 꿇은 채로 앉아서 자신의 손을 한참 들여다본다. 사내1, 공 포에 질린 창백한 얼굴로 비틀거리며 일어서서 무대를 서성인다)

사 내 1 (불분명한 발음으로 계속해서 중얼거린다) 이수인은 나야... 나 혼자 뿐이

라구... 이수인은 나야... 나 혼자 뿐이라구... 이수인은 나야... 그래, 자살일 뿐이야... 자살일 뿐이라구...살인을 한 게 아니야...

(사내1, 주머니에 손을 넣고 무대를 이리저리 서성거리다가 멈춰 서서 사 내2의 시체를 쳐다본다. 사내1, 천천히 움직여서 죽은 사내2의 옆으로 온 다)

사 내 1 이봐, 이수인은 나야... 나 혼자 뿐이라구... 앞으로도 나 혼자 뿐이야...

(사내1, 시체를 무대 밖으로 힘들게 끌어낸다) (암전)

(무대 밝아지면 무대는 원상태로 완전히 복구된 모습이다. 사내의 공간을 중심으로 양쪽 옆의 섹터에 있는 마네킹들도 처음과 같이 모두 허리를 숙 인 채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다. 잠시동안 무대는 비어있다. 무대 뒤 영사막 에는 2진수의 숫자들이 규칙적인 배열로 정지해있다. 사내가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한 자연스러운 표정으로 등장한다. 영사막의 2진수들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23)

사 내 (시계를 들여다보며) 너무 늦장을 부렸군. 밥 먹고 어쩌다 보면 식사시간이 너무 짧단 말이야. 담배 한 대 필 여유가 없구만.

(영사막 붉게 변한다)

기 계 소 리 작업이탈시간 30초, 속히 작업대로 돌아가십시오.

사 내 (주머니에 습관적으로 손을 넣으려고 한다. 하지만 작업복에 주머니는 없 다. 사내 어색한 동작으로 팔짱을 끼고 마주선 거울 사이에 선다) 나는 나 를 감시하고, 나는 너를 감시하고, 너는 나를 감시하고, 너는 너를 감시하 고, 또 감시하고...

(이때, 83C의 마네킹이 허리를 편다)

기 계 소 리 작업 이탈시간 60초, 지금까지 총 이탈시간 47분 00초. 작업 효율 92%

사 내 돌아가지요. (사내 작업대로 돌아간다)

83 C (83B 섹터 쪽을 쳐다보며) 이봐요, 내 말이 들려요? 들리면 대답을 해줘요.

사 내 (살짝 웃는다. 혼잣말로) 당신도 자신 속에서 온전한 근거를 가져야 할거야.

...당신이 찾아낼 미소가 보고 싶군.

(사내, 대답하지 않고 허리를 숙여 모니터를 들여다본다. 영사막 다시 파란 색으로 바뀐다. 사이)

(사내, 고개를 살짝 들어 관객들을 향하여 한참을 미소 짓는다.

0.9의 미소이다)

- 막

(24)

Ⅱ. 고 분 을 찾 아 서

인 물

사내1 사내2

무 대

경주 근방. 멀리 야트막한 산 그림자.

그 산자락의 어디쯤. 달빛. 밤새 소리. 풀벌레 소리.

무대 좌측에 소나무 한 그루. 무대 중간쯤엔 예전엔 제법 넓은 품을 가졌을 나무가 베어진 흔적.

너른 산묘지. 산자락은 완만한 경사를 이루며 멀리 갈수록 높아진다. 군데군데 돌보지 않아 무너져 가는 무덤 몇 기. 멀리까지 작게 흩어진 봉분들 몇. 봉분 은 가까울 수록 크게 느껴진다.

산자락 중간에 흙을 파헤친 흔적. 비석.

막이 오르면, 비어있는 무대. 달빛.

멀리 돌구르는 소리, 밤새 소리, 산짐승 소리 고조되는 가운데, 마른 나뭇가지 가 부러지는 소리나고, 일순 모든 소리가 정지한다. 적막.

사내1, 무대 왼편에서 더듬거리며 등장한다. 사내1, 등산복 차림이다. 사내는 품속에서 낡은 지도 한장을 꺼내 후래쉬 불빛에 비춰본다.

사 내 1 …여긴가? (후래쉬불빛으로 한참동안 지도와 무대 여기저기를 대조해 보다

가) 아무리 들여다봐도……모르겠네. 젠장, 여기도 저기 같고 저기도 여기 같구. 아주 돌아버리겠군. 하긴 훤한 대낮이래도 종로통에서 김서방 집찾기 지. 더군다나 발등도 제대로 안보이는 밤인데 어련하려구. (소나무 아래에 가서 기대앉는다. 허리춤의 수통을 꺼내 물을 한 모금 마신다) 날씨 한번 더럽게 푹푹 찌네. (흙을 손으로 만진다. 찰기라고는 없는 모래처럼 흙이 부서진다. 먼지가 인다. 기침을 한다) 콜록, 콜록, …나무 밑인데도 땅에 물

(25)

기라곤 하나도 없군. 이러다 몽땅 말라죽지. (하늘을 쳐다본다) 소나기라도 한번 쫙 뿌려주면 천국이 따로 없겠는데… (사내, 수통의 물을 소나무에 조금 붓는다. 사이. 이내 괜한 짓을 했다는 듯 서둘러 수통의 마개를 닿고 다시 허리춤에 찬다. 사내, 다시 후래쉬를 여기 저기 비추며 지도와 대조해 본다) 어디 이걸 보고야 뭘 알겠어. 뭐가 뭔지... 젠장. (말과는 다르게 낡은 종이를 접어 품속에 소중하게 갈무리한다. 사방을 둘러본다) 오밤중에 무덤 가에 있으려니 어째 머리가 쭈뼛거리는데... (일어나서 무대 안쪽으로 걸어 간다)

무대 중간 흙더미에 후래쉬 불빛이 머물고 뒤에서 유령처럼 한 사내가 일 어난다. 사내는 흰옷을 입었는데 얼핏 수의처럼 보인다.

사내1, 놀라서 후래쉬를 떨어뜨린다.

사 내 1 (놀라서 주저앉는다) 사람이냐? 귀신이냐?

사 내 2 호들갑은... 귀신이라고 하면?

사 내 1 ...사람이냐?

사 내 2 (혼잣말처럼) 허, 그놈. 아주 편하게 말을 까누만. 얼핏 봐도 내가 지 애비 뻘은 되겠구만.

(사내2, 다가서면 사내1 앉은걸음으로 뒤로 물러선다)

사 내 1 누, 누구요?

사 내 2 (사내1의 후래쉬를 주워서 자신의 얼굴에 비추며) 아나, 귀신이다 ! 사 내 1 (뒤로 계속 물러서며) ...가....가까이 오지 말아요.

사 내 2 (후래쉬의 불빛으로 사내1을 비춰본다) 아주 질질 싸는구만. 사내놈 간담

하고는...

사 내 1 (멈춘다. 후래쉬 불빛을 손으로 막으며) 누구세요?

사 내 2 너 잡으러온 저승사자다 !

사 내 1 뭐 하시는 거예요? 누구세요?

사 내 2 (후래쉬를 끈다) 내가 누구라고 하면 니가 알구?

사 내 1 (공포를 느낀다) 설마 여기까지...

사 내 2 뭐라고 중얼거리는 게냐?

사 내 1 (침착을 가장한다) 오밤중에 여기서 뭐하세요?

사 내 2 뭐하면, 니가 도와줄래?

사 내 1 (공포에 질린다) 저, 전 아무것도 몰라요.

(26)

사 내 2 (황당한 표정) 모르긴 뭘 몰라? 내가 뭘 물어보기나 했냐?

(구름 그림자. 두 사내의 얼굴 어두워진다)

사 내 1 (조금 안심한다. 사내2를 살핀다. 사내2가 나이 많은 노인임을 알아본다)

...영감님은 여기서 뭐하세요? ...혹시...접...선...?

사 내 2 (사내1의 머리를 한대 쥐어박으며) 햐, 싸가지 없는 놈. 수상하긴 지나내나

마찬가진데 나만 간첩으로 몰아. 너는 뭐 하는 놈이냐? 뭐 하는 놈이길래 한맺힌 귀신 마냥 오밤중에 무덤가를 떠도냐?

사 내 1 뭘 좀 찾으러 왔어요.

사 내 2 오밤중에 묘지서 찾긴 뭘 찾아? 처녀귀신 찾아? 이놈 이거 진짜 수상한

놈이네. (장난치듯) 지서에 전화 넣어서 신원조회나 해봐야겠다. 너, 핸드폰 있지? 거 좀 이리 내봐 !

사 내 1 (필요이상으로 당황한다) 저, 저 핸드폰 없어요. 그리고 수상한 사람도 아

니구요.

사 내 2 그럼, 솔직히 불어. 뭐하러 왔는지.

사 내 1 (당황하며) 저, 전, 무덤을 찾으러 왔어요.

사 내 2 (농담하듯) 나는 무덤을 파러 왔다. 이놈아.

사 내 1 정말이에요. 전 무덤을 찾으러 왔어요.

사 내 2 (진지해지며) 너 혹시 호리꾼이냐?

사 내 1 호리꾼이요?

사 내 2 도굴꾼 말야.

사 내 1 (손을 저으며) 아녜요. 그냥 전 무덤을 찾으러 왔어요.

사 내 2 이 밤중에 누구 무덤을 찾아?

사 내 1 그냥, 아는 사람 무덤이요.

사 내 2 이놈 봐라. 점점 더 수상하게 구네.

사 내 1 (일어나서 옷에 묻은 흙을 털어내며) 수상할 거 없어요. 영감님은 영감님

일이나 보세요.

사 내 2 너 도둑놈이나 밀수꾼이지?

사 내 1 생사람 잡지 말아요.

사 내 2 내가 가만 보니까 아까 무슨 지도 같은 걸 꺼내 보던데.

사 내 1 (당황하며) 아무것도 아녜요.

사 내 2 아무것도 아니긴. 너 옛날에 한탕한 거 땅속에 묻어둔 거 아냐? 크게 한탕

하고 잠수 탔다가 세상 잠잠해지니까 지금 빼먹을려고 온 거 아니냐구?

(27)

사 내 1 아녜요.

사 내 2 뭘 묻어놨냐? 누런 금괴냐? 아님, 다이아? 설마 뽕은 아니겠지?

사 내 1 (어이없다) 그런 거 아녜요 !

사 내 2 아까 그 지도 이리 내봐라. 넌 백날 가야 못 찾아.

사 내 1 그런 거 아니라니까요 ! (오던 길로 되돌아가려 한다)

사 내 2 고집은... 숨쉬는 것들도 사람모양 세월이 흐르면 다 바뀌게 돼있어. 땅도,

나무도 마찬가지야.

사 내 1 (뒤돌아 서서 사내2의 말에 관심을 보인다) ...

사 내 2 (반응을 보이자 과장돼서) 너 어릴 때 헤어진 친구를 커서 만나면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애? 어림도 없는 얘기지. 그런데 그 친구랑 쭉 보고 살았으 면 바보천치 아닌 담에야 알아보겠지. 같은 이치야.

사 내 1 (솔깃하다) ...

사 내 2 이쪽 지리는 내가 빠꼼이니까 물건 찾으면 반땅하자.

사 내 1 정말 그런 거 아녜요.

사 내 2 좋다. 그럼 6대 4다. 어때? (사내1의 손을 잡아 무대 중심에 있는 나무등걸 에 앉히고 자신은 흙바닥에 앉는다) 어차피 못 찾으면 말짱 황 아냐?

사 내 1 (사내의 손을 뿌리치며) 물건 같은 건 없어요 !

사 내 2 (귀를 후빈다) 자식, 성질은. 아니면 아니지. 그럼 대체 뭐하러 온거냐?

사 내 1 무덤 찾으러 왔다고 했잖아요.

사 내 2 누구 무덤? 지 애비 무덤이면, 아무리 후레자식이래도 못찾을 리는 없구.

사 내 1 ....(한숨을 쉰다)

(사이)

사 내 1 영감님은 여기서 뭐하세요?

사 내 2 아까 얘기 해줬잖아. 무덤 판다구.

사 내 1 도굴꾼?

사 내 2 예끼, 이놈아... 내 무덤 파는 것도 도굴이냐?

(사내1 흠칫 놀라며, 몸을 뒤로 뺀다)

사 내 2 허, 참. 사내놈 간담하고는...

사 내 1 (사내2를 쳐다본다. 사내2의 말을 믿지 않는다) 비석까지 있는데요?

사 내 2 내꺼지.

(28)

사 내 1 말이 된다고 생각하세요?

사 내 2 뭐야, 그럼 내가 자식 같은 놈한테 공갈치고 있다는 게냐.

사 내 1 이상하잖아요.

사 내 2 뭐가?

사 내 1 살아있는 사람 무덤이 있다는 건 억지로 이해한다 쳐도, 오밤중에 자기 무

덤을 파고 있는 걸 어떻게 이해합니까.

사 내 2 그럼 벌건 대낮에 파리? (비꼬듯) 쯧쯧, 그런 너는 퍽이나 이해되는 짓을

하고 있다.

사 내 1 그래도 전...

사 내 2 (자신이 파던 흙더미로 걸어가 소주병을 가지고 온다) 마실래?

사 내 1 전 술 안마셔요.

사 내 2 나 보구 자빠질 때부터 알아봤다. (병나발을 분다) 사내자식이 기집애처럼

허옇게 생겨가지고. 목 안타냐?

사 내 1 물 마셨어요. (주저한다) ...혹시, 돌아가실 준비하세요?

사 내 2 헛허... 그러고 보면 그것도 죽을 준비는 죽을 준비다.

(사이)

사 내 2 (하늘을 쳐다보며) 별이고 달이고 훤한 거 보니 내일도 바짝 마를 모양이

네. 뭔놈의 비가 몇 달 동안 찔금거리지도 않냐. 하늘님이 노하신 게야. 세 상 돌아가는 꼴을 보면 알지.

사 내 1 (심드렁하게) 곧 오겠죠. 나라 여기저기서 기우제 지낸다고 난리고, 높으신

양반들도 팔 걷어붙인 모양이니.

사 내 2 ...예전엔 가뭄이 들면 산 위의 무덤을 파헤쳐 일부러 궂은 일을 보였다.

사 내 1 들어 봤어요. 산 위에 무덤을 만들어 파헤치면 하늘이 궂은일을 씻으려 비

를 내렸다는 거죠?

사 내 2 그래, 맞다. 비는 하늘님이 내려주시는 거지. 그깟 높으신 양반들이 뭘 안

다던?

사 내 1 (빈정거리듯) 그래도 말끝마다 국민을 위한 일을 한다고 하는데요.

사 내 2 클클클... 너 되게 순진한 거 같다. 아님 바보든가.

사 내 1 (생각에 잠긴다. 자조적으로) ...어차피 땅 위에서 시간은 어떻게 흘러갈 지 아무도 모르는 거예요.

사 내 2 무슨 소리냐? 땅 위의 시간이라니?

사 내 1 아녜요.

(29)

사 내 2 (혼잣말처럼) 개 풀 뜯어먹는 소리하고 자빠졌구만. (사내1에게) 그러니까 한 마디로 말해서 넌 높으신 양반들이 훌륭해서 곧 비가 온다는 게냐?

사 내 1 ...

사 내 2 바보 같은 놈, 그래서 올 비 같으면 이렇게 가물지도 않는다.

(사이)

사 내 1 (사내2가 파놓은 흙더미를 쳐다보고) 정말 영감님 무덤이에요?

사 내 2 햐, 이놈 이거 속고만 살았나.

(사내1 흙더미로 걸어가 파헤쳐진 흔적을 들여다본다. 조심스럽게 후래쉬 불빛을 비춘다. 후래쉬를 끈다.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사내 2 쪽으로 온다.)

사 내 1 아무 것도 없는데요?

사 내 2 아무 것도 없긴...

사 내 1 정말, 흙구덩이밖엔 없어요. 벌써 다 챙기셨나?

사 내 2 뭐야? 이놈이. 아주 날 호리꾼 취급을 하네. 내 아무리 궁해도 죽은 사람

집 털어먹을 만큼 잡놈은 아니다.

사 내 1 (생각 속에 있다) 영감님?

사 내 2 왜?

사 내 1 거긴 뭐가 묻혀있죠?

사 내 2 ...내가 묻혀있지.

사 내 1 (사내2를 쳐다보며) ...??

사 내 2 (헛헛한 시선을 허공에 보낸다) 거긴 진짜 내가 묻혀있다. 이 허깨비 같은

몸말고, 진짜 나...

사 내 1 (사내2의 말에 진지하게 대응한다) 진짜 내가 묻혀있다고요?

사 내 2 (진지함을 과장해서) 그래... 내 젊었을 때... (뜸을 들인다) 사 내 1 예에...

사 내 2 ...불끈불끈하던 잠지가 묻혀있지. 푸핫하...

사 내 1 (사내2의 장난에 당한걸 깨닫고) 영감님 ! 사 내 2 (술병을 주며) 한 모금해라. 그럼 가르쳐 주마.

사 내 1 (술병을 받는다. 기분이 상해서) 술 마시는 거랑 무슨 상관이 있다구...

사 내 2 계집애들은 입이 가벼워서... 니가 동네방네 떠들고 다니면 내가 뭐가 되

(30)

냐.

사 내 1 뭔가 켕기는 게 있군요.

사 내 2 (표정 어두워진다) 넌 뭐 하는 놈이냐?

사 내 1 (장난치듯) 무덤 찾아다니는 놈이요.

사 내 2 (술병을 뺏듯이 해서 한 모금 마신다) 말 좀 섞었다고, 벌써 상투꼭지 잡

고 흔들래?

사 내 1 (움찔해서) ...전 고고학도예요.

사 내 2 남의 무덤 파헤치고 나서, 지가 뭐 대단한 걸 찾았다는 듯이 재는 놈 말이

냐.

사 내 1 무덤을 파헤치는 게 아니고, 발굴하는 거죠.

사 내 2 오른쪽 불알이나, 왼쪽 불알이나 흔들리긴 매한가지지...

사 내 1 (진지하게) 고고학은 발굴을 통해 출토된 유물의 연대를 조사해서 지난 시

대의 생활상이나 역사를 알아내는 중요한 학문이에요.

사 내 2 (손을 휘저으며) 알았다, 알았어. 그쯤 해두자. (빈정거리듯) 그런 훌륭한 일을 하는 고고한 고고학자 나리가 이 시간에 여긴 어인 행차십니까?

사 내 1 (머뭇거린다) ...

사 내 2 너 혹시 날 아직도 호리꾼으로 의심하고서 엉까는 거냐? 내가 먼저 낼름

집어 먹을까봐.

사 내 1 (머뭇거리다 결심한 듯) ....전 신라의 고분을 찾고 있어요.

사 내 2 고분? 무덤 말이냐?

사 내 1 맞아요. 아직 누구 손도 안탄 신라시대 무덤이에요. 처녀분이죠. 어쩌면 이

발견으로 신라의 역사가 바뀔지도 몰라요.

사 내 2 역사가 바뀐다...? 이미 지나간 시간이 바뀐다는 게냐?

사 내 1 정확하게 말하면 바뀌는 게 아니라 비로소 올바른 역사가 되는 거죠.

사 내 2 무덤 파헤치는 걸로 올바른 역사가 이루어진다고?

사 내 1 그렇죠.

사 내 2 (잠시 생각에 잠긴다. 그러다 돌연 열에 들떠서) 무덤 속에서 정말 올바른

시간이 나올까?

사 내 1 (표정 어두워진다) 그건 모르죠.

사 내 2 (표정 어두워진다) 니가 있다며?

사 내 1 ...

사 내 2 (은근하게) 너 발굴이라는 거 해봤냐? 역사를 바꿀만한 발굴이라는 거 말

이다. (사내의 얼굴을 빤히 쳐다본다) 그러고 보니 어디서 본 것 같다. 너 혹시 유명한 사람이냐?

(31)

사 내 1 (시선을 피하며) 아뇨... 전 지금까지 수몰지구 구제발굴에서 돌도끼 하나 찾아낸 게 전분데요.

사 내 2 이 자식 이거 아주 초짜구만. 역사가 어쩌고 시간이 어쩌고 씨부렁대길래

대단한 뭐라도 해본 줄 알았네...

(사이. 두 사람 어색하게 앉아있다. 새소리, 달빛, 풀벌레 소리... 적막. 사내 1, 흙장난을 한다. 먼지가 인다. 사내2 멍하니 사내1이 하는 양을 본다. 사 내1, 손을 툭툭 턴다)

사 내 1 (못참겠다는 듯) 영감님, 경주 시내에 있는 신라시대 고분이 전부 몇 갠지

아세요?

사 내 2 (주변 무덤을 둘러보며) 참 많기도 하지... 다들 먼저 갔구만...

사 내 1 (목소리를 조금 높여 주의를 환기시킨다) 경주시내에 있는 신라고분 말예

요.

사 내 2 (퍼뜩 정신을 차린다. 사내1을 쳐다보며) 그건 왜? 사람 사는 집만큼 많은 게 죽은 사람 집인데 내가 그걸 어떻게 아냐.

사 내 1 일제시대 지적도에 표시된 바에 따르면 경주 평지에 있는 무덤은 마지막

천마총까지 총155기래요.

사 내 2 웬 훈장질이냐? 나한테 지금 먹물 티내는 게냐?

사 내 1 전 신라시대 156번째 고분을 찾고있어요.

사 내 2 (잠시 생각하다가 ) 그런데 말이다, 여긴 평지도 아니고 경주시내에서 벗어

난 곳인데 왜 여기서 156번째 고분을 찾는 게냐?

사 내 1 조사당시 여기서도 신라의 것으로 추정되는 무덤이 발견됐는데, 평지가 아

니라서 기록에서 누락된 거죠. 그리고 잊혀졌죠.

사 내 2 하여간 먹물들은 펜대나 굴리면서 그저 지가 세상 전부를 알고 있는 줄

안다니까... 지들 맘대로 죽은 사람 집에다 번지를 떡하니 메겨놓지를 않나, 평지가 아니라고 있는 무덤을 없는 것처럼 만들질 않나... 클클클

(사이. 사내2 생각에 잠겨있다)

사 내 2 그런데 왜 기록에서 누락된 무덤이 있다는 걸 너만 알고 있냐? 그것도 초

짜가.

사 내 1 아버지 때문이죠.

사 내 2 아버지?

(32)

사 내 1 아버진 156호 고분을 찾느라 한평생을 돌아다녔죠.

사 내 2 아버지도 호리꾼이냐?

사 내 1 (벌떡 일어선다) ...누가 뭐래도 아버진 유물같은 걸 팔아먹진 않았어요.

사 내 2 농담이다, 농담. 그놈 성깔하곤. 나도 옛날엔 한 성질 하던 놈이야.

(사내2, 사내1을 붙잡아 앉히며)

사 내 2 그래, 그래. 이젠 말 안끊고 잘 들으마. 그래서 아버지가 어쨌다고?

사 내 1 아버진 일제시대 기록중 누락된 무덤 하나를 찾으셨어요.

사 내 2 그런데?

사 내 1 실제 확인도 해보기 전에 사건이 터졌죠.

사 내 2 뭔 사건?

사 내 1 (생각하기 싫다는 듯 고개를 흔든다) ...됐어요. (혼잣말로) 내가 무슨 얘길 하고 있는 건지...

사 내 2 안 마시련? (잠시 사내1을 보다가 병을 기울여 한 모금 마신다. 그러다 눈

을 반짝인다) 무덤을 찾으면 ...보물도 있겠네?

사 내 1 (단호하게) 꿈도 꾸지 말아요.

사 내 2 내가 무덤 찾아주면 눈 딱 감고 호리병 하나만 주라.

사 내 1 안돼요. 그건

사 내 2 그럼, 난 뭐 미쳤다고 내 할일 제쳐놓고 오밤중에 무덤 찾는 걸 도와주냐.

사 내 1 영감님보고 도와달라고 한적 없어요.

사 내 2 너 혼자선 백날 가야 못 찾을 텐데?

사 내 1 그래도 안돼요.

사 내 2 내가 호리병 한 개쯤 갖는다고 해도 역사가 바뀌는 건 아니다.

사 내 1 (흥분해서) 그 호리병 하나로 시간이 왜곡될 수도 있어요. 그리고 인간사

도 왜곡될 수 있고.

사 내 2 (빤히 쳐다보며) 무슨 말이냐?

사 내 1 아녜요. 제가 또 쓸데없이 흥분했군요. (일어선다) 전 시간이 없어요. 빨리 찾아내야 해요.

사 내 2 왜 누가 파간다고 소문이 났냐?

사 내 1 (시무룩해진다) ...

사 내 2 (사내1을 일부러 자극한다) 너 호리꾼이지. 그래서 밤에 몰래 무덤 가를

배회하다가 날 만나니까 구라치는 거지? 무식한 늙은이라구 막보구.

사 내 1 아녜요.

(33)

사 내 2 (빙글거리며) 니가 고고학자면 나는 니 애비다. 근데 난 너같은 아들을 둔 적 없네.

사 내 1 놀리지 말아요.

사 내 2 놀리긴.... (빈정거리며) 그럼, 혹시 니가 어릴 때 집나간 내 아들이냐?

사 내 1 (짜증을 내며) 아뇨 ! 그건 아니죠.

사 내 2 그러면서.... 무슨...

사 내 1 (짜증스럽게) 영감님은, 영감님, 갈 길로 가세요. 전 제 갈 길로 갈테니.

(사내1, 거칠게 일어나 무작정 산쪽으로 올라간다)

사 내 2 허, 그 자식 성깔하곤. (큰 소리로) 너 혼자선 백날 가봐야 못 찾는다니까.

(사내1, 못 들은 척 발걸음을 옮긴다)

사 내 2 야 이놈아 노인넬 이런데다 팽개치고 가는 싸가지 없는 놈이 어딨냐?

사 내 1 (어이없다는 듯이 사내2를 돌아본다) ...

사 내 2 (서둘러 사내1을 쫓는다) 이 놈아 같이 가자.

사 내 1 영감님은 영감님 볼일 보세요. (말과는 다르게 사내2가 가까이 오도록 기

다려 준다.)

(사내2, 사내1이 서있는 곳에 다다른다. 사내2, 사내1의 팔을 붙잡고 거친 숨을 몇 번 토해낸다. 사이. 사내2 허리를 꺾고 발작적으로 기침을 해댄다) (이때 멀리서 붉은 빛이 희미하게 타오른다)

사 내 2 (가쁜 숨을 쉬며) 그놈 발걸음 하난 더럽게 재네. (허리를 편다. 심호흡을

하다가 하늘을 보고 굳어진다) 사 내 2 너 저기, 불그스름한 빛 보이냐?

사 내 1 어디요?

사 내 2 저기 말이다. 하늘밑에 노을 끼듯이. 안보이냐?

사 내 1 벌써 해뜰 때가 됐나요?

사 내 2 (어이없다는 듯이 사내1을 본다) 거긴...서쪽이다. 동서남북도 구별 못하 면서 혼자 뭘 찾겠다고?

사 내 1 ...무슨 빛이죠?

사 내 2 몇 달째 비가 안 오더니만... 우라질, 드디어 산자락에 불이 붙었나보다.

(34)

사 내 1 (당황한다) 불길이 여기까진 안 오겠죠?

사 내 2 산세가 이어져있으니 장담할 수야 없지. 요즘처럼 빠싹 마른 땐 순식간이

다. (검지 손가락에 침을 묻혀 바람을 가늠한다. 사이) 그래도 바람은 자니 다행이다.

사 내 2 (서두른다) 불길이 오기 전에 무덤을 찾아야 되요.

사 내 2 내 애국하는 기분으로 도와주마. 지도 이리 내 봐라.

사 내 1 (의심스러운 듯 머뭇거린다) ...

사 내 2 이놈이 그래도 날 막보고... 만약 그 무덤에서 내가 부러진 은수저 하나라

도 건들면 (자신의 가슴을 치며) 지랄병에 걸려 사흘을 개지랄을 떨다가 애비 무덤에 오줌 싸고 뒈질 놈이다. 됐냐? (사이) 근데, 무덤 찾아내면 신 문 같은 데 날까?

사 내 1 그럼요. 4대 일간지 1면에 영감님 얼굴이 턱하니 나갈 걸요.

사 내 2 ...이름도?

사 내 1 그럼요. 우선 제목이 신라시대 156호 고분발견 쫙 나가고, 밑에 사진이 대

문짝만하게 실리는 거예요. 사진 밑엔 설명이 들어가죠. 좌는 이번 발굴에 있어 커다란 공헌을 한... 영감님 성함이 뭐죠?

사 내 2 나, 이종택 아니, 아니, 고종기야. 꼭 고종기라고 써줘.

사 내 1 (의아해 한다) 예. 좌는 이번 발굴에 커다란 공헌을 한 고종기씨. 우는...(고 개를 떨군다. 표정 어두워진다)

사 내 2 (흐뭇해한다) 정말 그렇게 나가는 거야?

사 내 1 (사내2의 기분에 맞춰주기 위해 쾌활함을 과장한다) 그렇대두요. 어쩌면

T ,V에서도 인터뷰하자고 난리 날 걸요.

사 내 2 난, 그냥 내 사진 밑에 고, 종, 기 석자만 실리면 더 바랄 게 없어. 세상사 람들한테 내가 고종기라고, 이종택이가 아니고 고종기라고 한번만 알려주 면 돼... (사내1, 사내2에게 무언가 물어보려 하자, 사내2, 사내1에게 손을 내민다) 지도 이리 줘봐라.

(사내1 머뭇거린다)

사 내 2 이 자식이 그래도. 어른이 한번 그렇다고 하면 그런 거지.

사 내 1 ... (품속에서 지도를 꺼내 사내2에게 내민다) 조심해서 보세요.

사 내 2 그놈, 기집애처럼 앵앵대긴. 불 좀 비춰봐라. (사내1, 후래쉬 불을 켜준다.

사내2, 지도를 자세히 살핀다. 마치 알겠다는 듯 몇 번 고개도 끄덕인다) 사 내 1 어딘지 알겠어요?

(35)

사 내 2 그럼, 이 산자락은 다 내 친구다.

사 내 1 도와주시는 거죠?

사 내 2 후래쉬는 꺼라. 파리끼면 니나 내나 고생이다.

사 내 1 영감님 하시던 일은 어떻게 하죠?

사 내 2 고양이 쥐생각 해주긴... 어차피 그 일은 시작도 끝도 정해지지 않은 일이

다. 서둘자.

(사내1 후래쉬를 끈다. 사내2, 지도를 보며 방향을 가늠한다. 그리고 천천히 움직인다. 사내2, 따라서 움직인다. 두 사람 천천히 무대를 가로질러서 퇴 장한다)

(암전)

(무대 밝아지면 무대 중앙에 있던 흙더미가 봉분의 모양을 하고 있다. 잠 시 후 두 사람 객석의 출입문을 통해 등장한다. 사내2, 사내1의 도움을 받 아 무대로 간신히 올라간다)

사 내 2 (이마의 땀을 닦으며) 옛날에는 펄펄 날았는데 이젠 정말 늙었구나.

사 내 1 좀 쉬었다 가죠. (서쪽 하늘을 쳐다보며) 하늘이 더 붉어졌는데요. 이렇게

강 건너 불구경 하듯 가만히 있어도 될까요?

사 내 2 (두 사람 모두 편하게 주저앉는다) 큰불은 하늘이 꺼주는 게다.

사 내 1 (빈정거리듯) 영감님은 언제나 하늘만 쳐다보고 사셨어요?

사 내 2 난 적어도 주둥이만 나불거리고 살진 않았다.

사 내 1 ...

(두 사람, 어색한 침묵 속에 있다. 새소리, 풀벌레 소리, 산짐승 소리)

사 내 2 (사내1의 눈치를 살피다 툭 내뱉듯) 그런데 왜 무덤들이 평지에 모여있는

게냐?

사 내 1 뭐가요?

사 내 2 이상하잖아. 명산 다 놔두고 왜 평지에 묘를 썼는지.

사 내 1 (미소짓는다) 영감님, 봉황대 아시죠?

사 내 2 그럼, 떠돌이여도 고향이 경준데. 그걸 모를까봐.

사 내 1 미추왕릉을 중심으로 근방에 큰 무덤이 20여 기가 있잖아요. 모두 신라 말

에 어떤 도사의 말을 듣고 축조된 거래요.

사 내 2 도사가 뭐라고 했는데?

(36)

사 내 1 어느날 도사가 나타나 충고하길 (도사가 직접 사내2에게 말해주는 듯) 듣 거라, 봉의 지형을 가진 경주의 땅기운이 다해 봉황이 날아가려 한다. 그러 니 속히 봉의 알을 많이 만들어 봉을 잡아 두어라.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 면 봉이 날아가 나라가 망하게 될 것이다 그랬다는 얘기죠.

사 내 2 그래서 봉황의 알이라고 만든 게 봉황대의 큰 무덤들이라는 거구나?

사 내 1 그렇죠.

사 내 2 그런데 왜 신라가 망했냐? 봉의 알을 많이 만들어 뒀는데.

사 내 1 그게 고려편을 드는 도사의 계략이었죠. 결과적으로는 경주가 배 모양을

하고 있어 무거운 알을 많이 싣게 되는 형상이 되어 오히려 망했다는 거 죠.

사 내 2 쯧쯧, 한마디로 도사 뻥에 나라가 녹았구나?

사 내 1 어떻게 보면 땅 아래 죽은 사람들 때문에 땅위의 산 사람들 운명이 바뀌

었죠.

사 내 2 그러길래 자고로 계란은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고 했다... (사이) 니 얘긴

그래서 무덤들이 평지에 모여 있다는 말이구나.

사 내 1 일설에 의하면 그렇다는 거죠. (잠시 뜸을 들인다) ...저...영감님?

사 내 2 왜?

사 내 1 여쭤봐도 되요?

사 내 2 뭘 말이냐?

사 내 1 무덤 말예요...

사 내 2 (눙친다) 온갖 먹물은 다 퉁겨놓고, 무식한 늙은이한테 뭘 여쭐게 있냐?

사 내 1 아까 무덤 말예요...

(사이)

사 내 2 (하늘을 본다) 불 냄새가 나는구나. (손가락에 침을 묻혀 바람을 가늠한다)

바람도 좀 부는 게... (한 모금 마신다. 사이) ...아까 무덤을 파면, 아니, 니 말대로 발굴이라고 해두자... 그걸 하면 올바른 시간이 나온다고 했지?

사 내 1 예...

사 내 2 나도 막연하게 그런 생각을 했다. 무덤 속에 올바른 시간이 있지 않을까

하는... 그 속에 껍데기말고 진짜...

사 내 1 (말을 가로채서) 불끈거리는 잠지요?

사 내 2 그래, 잠지... 헛허허.

사 내 1 ...영감님?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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