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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미학과 현대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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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ademic year: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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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초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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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차

1. 들어가며

2. 현대 도시 공간에 대한 철학적 담론 3. 자본주의 도시의 공공 공간 속 현대예술 4. 나가며

<국문초록>

자본주의 사회는 건설, 개발, 풍요, 생산과 소비 등 거대한 근대화의 물결에 휩 싸였으며, 그 이면에는 탈인간화, 범죄, 오염, 혼잡, 불평등, 소외 등을 야기한 야 누스적인 메시지를 표출시켰다. 이러한 결과들은 물리적인 도시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도시적 경험’ 속에 농축되어 있는 근대성과 사회 불평등을 야기하는 자본주의의 본질에 있다. 이러한 모든 특징들이 집약적으로 이루어지고, 근대 사 회의 서로 다른 측면들이 가장 선명하고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장소가 바로 도시이 며, 도시 예술은 이러한 논쟁의 중심에 있다.

이 연구는 도시 공간 안에서 제기될 수 있는 문제들을 논의하기 위해 앙리 르페 브르의 ‘사회적 공간’으로서 도시 공간의 의미에 대해 살펴보았다. 특히 연구자는 르페브르가 근대 공간으로서 주목한 ‘추상 공간’에 대한 논의와 더불어 근대적 도 시 공간의 한계에 대면해서 요구되는 예술적 실천에 주목했다. 다시 말해 우리는 근대적 공간의 한계, 사회적 변화와 소외 현상에 주목하면서, 후기 자본주의 사회

* 본 논문은 서울대학교에서 개최된 세계미학자대회 발표를 수정․보완한 것임 : YANG Chorong, “Contemporary Art and Urban Aesthetics”, International Congress of Aesthetics

ICA, Seoul University, 07. 25~29, 2016.

** 조선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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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 예술 역시 도시 공간 안에서 어떻게 추상화 되는지 분석했다. 하지만, 자본 주의와 추상 공간이 진행되고 있는 현 상황에서, 진정한 예술은 여전히 자율성과 아방가르드 정신을 가지고 스스로 비판적 사유를 발현하며 제도권과 도시 공간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제시하며 탈소외의 전략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이 들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제도권의 태도와 정책의 보완이 시급하다.

따라서 이 연구는 지방의 도시 리옹의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이론적 논의를 확장 시키고자 했다. 무엇보다도 정부에 의한 문화예술정책만이 도시 공간을 점유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리옹시가 도시 공간의 사용자들의 다양한 차이를 받아들이면서 도시의 ‘열린’ 가능성을 어떻게 보여주는지 살펴볼 것이다. 이러한 연구를 통해, 우리 는 한국의 지역 예술가들이 스스로 자유롭게 도시 공간을 점유할 수 있고, 예술의 자율성과 다양한 예술적 표현이 보장받을 수 있는 영역이 확대되기를 기대한다.

주제어 : 도시 공간, 추상 공간, 도시 예술, 예술적 중재, 문화예술정책

1. 들어가며

1950-60년대 프랑스에서 이루어진 국가 주도의 공간 구획은 도시의 중심 부를 금융 산업을 위한 공간이나 지배층의 향유를 위한 공간으로 변화시켰 고, 그에 따라 다수 시민들은 도시의 주변부로 내쫓겼다. 국가 주도의 도시 계획은 도시 공간을 이윤 창출이 가능한 공간으로 인식했다. 공간은 종종 상품처럼 소유되었고, 이에 따라 공간의 사용가치를 향유하는 것은 일부에 게 허용되었다. 1970년대에 이르면서 점차적으로 도시 공간에 대한 사유 방 식은 바뀌어 갔지만, 지방 도시들은 1980년대에 이르러서야 특징적인 도시 개발의 장소들이 존재했다. 단순한 ‘개발’에서 비롯된 도시계획이 수많은 사회적, 정치적 문제를 야기하자, 지방 정부는 중앙정부와의 관계 안에서, 그리고 지역 사회의 문제 속에서 새로운 고민을 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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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이르면서 도시외곽의 초대형 쇼핑몰과 자동차 연결망 등은 ‘비 장소적’ 도시를 예고하면서 도시생활을 변화 시키고 있다. 새로운 도시공간 은 건축형태뿐만 아니라, 그것이 구현하고 있는 문화적 가치의 측면에서도 새롭게 논의되었다. 단순히 도시 ‘개발’의 문제에서 벗어나 도시 ‘재생’을 위 한 건축물의 재사용과 문화예술이 정책적으로 개입되었기 때문이다. 그러 나 수많은 도시들이 문화예술정책으로 인해 공간에 대한 새로운 구성을 보 여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이러한 공간들은 여전히 소비와 소외의 공간 으로 전락되는 것일까? 특히 공간의 재배치, 재점유, 그리고 새롭게 재편성 하는 과정에서 프랑스의 각 지역의 도시들은 ‘타자’에 대한 관심과 함께 예 술을 하나의 해결안으로 제시하며 실행했다. ‘작품으로서 공간’은 정부에 의해, 예술가 스스로에 의해, 혹은 다양한 프로젝트나 페스티벌에 의해 진 행되었다. 국가의 공공문화예술정책이 급성장하는 현대사회에서, 왜 개개 인의 예술적 실천은 오히려 제도화되는가?

가장 중요한 특징은 건축물의 내부와 외부의 공간에서 독자적으로 이루어 졌던 활동들이 건축물 내ㆍ외부 사이의 공간의 구분이 모호해지면서 사회적 경계 역시 재구성된다는 점이다. 그러나 경계가 흐려지면서 새롭게 등장하는 공간의 형태들의 이면에는 문화자본으로 기능하기 위해 부를 과시적으로 드러내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 앙리 르페브르(Henri Lefevre)가 언급했던 것 처럼, 현대 도시(탈근대적)의 공간 역시 ‘자본주의적 추상 공간’으로의 ‘재-변 모’됨을 주지한다면, ‘관’의 주도적 문화 예술정책의 필연성 속에서 창조적 개인들은 어떻게 자신들의 주체적 실천을 보장받고 실현할 수 있을까?

이러한 물음들에 답하기 위해 연구자는 먼저 앙리 르페브르의 이론에 주 목할 것이다. 르페브르의 공간에 대한 시각을 토대로, 이 연구는 특히 지방 의 정부가 기존의 도시계획의 한계를 벗어나기 위한 새로운 요구(문화예술 프로그램에 대한 정부 정책의 변화, 공공미술 정책의 변화 등)로서 도시 공 간 속 현대 미술을 재활용함에도 불구하고 제기되는 문제들은 무엇이고,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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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공간의 질적인 차원을 위한 정부의 정책과 태도가 무엇인지 언급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논의는 도시의 ‘도시성’(도시계획, 도시의 정체성 등)과 기능적이고 미적인 작용으로서 도시 미학을 고려하는 것을 넘어서 내적인 심미적 공간으로서 도시 미학의 가능성을 살펴보는 데 있다. 마지막으로 이 연구는 도시 속 공공 공간의 기능적인 공간에서 예술적 공간으로 연동시키 는 원인이 무엇인지 분석하는 것이다.

자본의 축적을 가속화하고 그 과정을 고착화시키고자하는 도시 공간에 대한 연구는 앙리 르페브르의 뺷공간의 생산 La production de l’espace뺸 (1974)에서 논의되었다. 르페브르의 ‘자본주의적 추상 공간’ 개념을 토대로 우리는 현대 도시 공간이 추상 공간을 더욱 확장시키고 재생산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는 특징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공간이 지니는 의미와 가치에 대한 철학적 접근과 ‘추상 공간’의 문제들에 대해 비판적 접근을 토대로 그가 삶 의 변화에 대한 ‘열린’ 가능성 역시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1)

이 연구는 또한 르페브르의 이론이 경험적인 논의를 형성할 수 있도록 실제 도시 사례, 즉 프랑스의 지방 도시 리옹이 어떻게 도시 공간을 문화․

예술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는지 살펴볼 것이다.2)물론, 프랑스 현대 예술은

1) 앙리 르페브르는 뺷공간의 생산뺸, 뺷리듬분석뺸, 뺷일상생활 비판뺸(1961), 뺷현대세계의 일 상성뺸등의 저서에서 개개인의 자율적 의지와 예술적 실천의 중요성을 피력한다. Henri Lefevre, La production de l’espace, 4e édition, Paris : Economia, 2000; Éléments de rythmanalyse, Paris : Syllepse, 2015; Critique de la vie quotidienne, Paris : L’Arche, 1997; Le droit à la Ville, 3e édition, Pairs : Economica, 2009, 뺷현대세계의 일상성뺸, 박정자 역, 기파랑, 2006, 참조.

이에 대해 김민지는 르페브르의 이론에 대한 분석을 토대로 그의 영향을 받은 드보르 와 상황주의자들의 전략들을 분석한다. 김민지, 「도시공간과 실천적 일상전술의 예술적 실행」, 뺷현대미술학논문집뺸 Vol. 16, No. 2, 현대미술학회, 2012, 37~84면 참조.

2) 연구자의 지속적인 연구의 대상이 될 광주시가 본격적으로 도시재생프로그램, 미디어 아트 페스티벌, 빛 축제, 공공미술 정책(특히 벽화와 조형물) 등을 실행해 가면서 서구의 몇몇 지방 도시의 문화예술정책을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광주와 리옹의 문화 예술정책의 프로그램 유사성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문화예술정책 예산과 행정 의 문제에 관한 분석, 그리고 광주와 리옹시의 정책에 관한 비교 분석에 관해서는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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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본질인 자율성 - 자동비판(autocritique)과 창조성(créativité) - 을 통 해 창작과 실천적 행위의 가능성을 열어주면서 도시 예술(L’art urbain)3)의 역사를 만들어 왔다. 일부 프랑스 예술가들이 제도권에 대한 비판적 태도 및 자유로운 예술 활동을 위해 지속적으로 거리로 나왔기 때문이다. 그러한 활동이 대부분 ‘파리’에서 이루어져 왔지만, 1980년대 이후 지방의 도시들이 조금씩 주목을 받기 시작하면서 그르노블, 니스, 마르세이유의 예술가들이 파리뿐만 아니라, 자신의 지역에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에 반해 리옹은 예술가들 스스로의 주체적 활동과 자유로운 예술적 움직임이 저조했다. 리 옹은 19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시’를 중심으로 문화예술에 대한 ‘주도적’

지원을 진행해 나갔다. 그러나 연구자는 2000년 초 이후 리옹시의 도시계획 속 예술정책의 변화에 주목할 것이다. 특히 연구자는 도시 공간 속에서 리옹 시가 현대미술을 어떻게 실현화시키는지 그 역사적 과정에 대해 비판적으로 살펴볼 것이다. 이를 위해 이 연구는 공간에 대한 인식, 그에 따른 예술의 개입, 그리고 예술가들 스스로의 자율적인 활동을 위한 시의 태도에 대해 논의할 것이다.

의 논의를 위해 제외시켰다. 또한 지역 작가들이 수도권에서의 활동을 시도했던 2000년 초까지의 상황과 달리, 오늘날 지역작가들과 지방도시는 활동 영역을 확장시키기 위한 다양한 고민(지역들간의 교류, 해외직접교류)으로서 지역 도시의 문제에 집중하고 있다.

따라서 광주시의 문화예술정책의 방향의 단초를 제시하기 위해 이 연구는 리옹시를 연 구 대상으로 선택하였다.

3) 임성훈 교수는 환경 예술의 하부 장르를 크게 대지 미술, 자연 미술, 생태 미술, 공공미술, 그리고 길 위의 미술로 접근하였다. 특히 저자는 도시 환경과 관계되는 ‘길 위의 예술’의

‘목적’과 ‘기능’에 대해 비판적으로 접근했다. 본 연구는 도시 환경과 관련되는 다양한 장르를 포섭하는 의미로 ‘환경 예술’에 대한 명칭보다는 ‘도시 예술’이라는 명칭을 사용하 고자 한다. 프랑스의 도시 예술은 2000년 이후 스트리트 아트 운동 또한 주요 논의로 부각되고 있다. 스트리트 아트 운동에 대한 예술적ㆍ역사적 맥락에 대한 연구는 연구자 의 논문을 참조할 것. 임성훈, 「도시미화와 예술 : ‘길 위의 예술’에 대한 비판적 소고, 뺷미술이론과 현장뺸 제10호, 2010, 47~61면 참조; 양초롱, 「스트리트 아트 운동의 등장과 전개에 대한 역사적 고찰 : 1980년대 이후부터 오늘날까지 파리를 중심으로」, 뺷현대미술 학 논문집뺸 Vol. 19, No. 1, 현대미술학회, 2015, 167~2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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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 지역 도시들이 많은 예산을 투자하며 수많은 예술정책을 진행시키 고 있는 ‘필연적인’ 상황 속에서 한국의 지방 도시 역시 ‘글로벌화’를 위한 다양한 정책들을 진행시키고 있다. 만약 광주시가 ‘필연적’으로 ‘관’ 주도의 예술정책을 집중적으로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관’은 어떻게 예술의 자율성을 보장하고, 개개인의 주체적이고 실천적인 예술 활동을 제공할 수 있는지에 관해 고민 되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이 연구는 현대 도시 공간이 예술을 통해서 어떤 심미적, 경험적 공간으로 재편성 되는지, 이를 토대로 일상에서 예술이 가지는 창조적 의지와 현대인들에게 비판적 인식의 계기 를 형성해 줄 수 있는지에 대한 예술적 실천의 가능성에 주목할 것이다.

2. 현대 도시 공간에 대한 철학적 담론

2.1. 근대적 도시 공간에 대한 인식론적 시각

일반적으로 도시에 대한 다양한 연구가 건축학적, 사회학적, 철학적 방법 으로 논의되어 왔다. 다시 말해 근대성과 탈근대성에 관한 인식론적 접근을 토대로 하는 자본주의적 경제조직, 건축과 도시의미, 도시의미의 사회적 구 성, 도시의미와 ‘아우라’ 연구가 진행되었다.4) 이에 연구자는 먼저 공간의 의미와 가치를 이해하기 위해 앙리 르페브르의 뺷공간의 생산뺸에서 “공간이 사회적으로 형성된다”는 그의 이론에 근거했다. 르페브르는 공간적 실천(la pratique spatiale), 공간의 재현(les représentations de l’espace), 재현의 공 간(les espaces de représentation)이라는 세 가지 공간적 요인들 간의 관계

4) 근대성은 자본주의의 출현과 함께 정치, 경제, 문화 등의 총체적 사회과정 속에서 형성 된 생활경험 및 생활양식이다. 자본주의적 경제 질서와 근대성 경험 사이에는 분명한 인과관계가 존재하며, 계급분화가 주요 논의로 대두될 수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도시 공간 안에서 이루어지는 근대성의 모순을 충분히 설명할 수는 없다. Michael Savage and Alan Warde, Urban Sociology, Capitalism and Modernity, The Macmillan Press Limited of London, UK,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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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논의했다.5) 그에 의하면, 공간 생산은 모순과 차이를 교차시키면서 변증 법적 관계를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변화될 수 있다. 즉, 공간 생산의 삼항 관계는 단일한 공간적 체계로 완성되지 않고, 상호 작용하고 변화한다. 공간 은 사회적인 요소들과 문화적인 과정들을 통해 생산되는 것이다. 공간의 사 회적 구성은 장소의 가치가 차별화되는 담론의 과정일 뿐만 아니라, 그 공간 속에서 존재하는 사람들 스스로 제도와 규범, 가치 등을 형성하면서 공간과 상호작용할 수 있는 실제적인 경험 및 변화의 장소이다.6) 이러한 변화과정 을 통해 공간은 하나의 가치나 의미를 갖지 않고 다가적(polyvalence)인 특 성을 갖는다. 따라서 ‘사회적 공간’은 선험적으로 주어지는 자연발생적인 물 리적 특성이 아니라, 인간의 일상적인 삶의 행위가 발생하는 장소이며 타인 과 상호 관계를 형성하면서 생산․변화되어 가는 공간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적 공간은 16세기부터 자본주의적인 생산과정을 통 해 ‘상품으로서의 공간의 생산’을 형성하게 되었다. 르네상스의 시기에 출 현한 ‘원근법적 공간’과 자본주의 공간화에서 지배적인 것은 시선과 시각중 심주의였다. 과학과 자본주의적 지배가 새로운 가시화의 기술과 전략을 선 보이면서 시선의 역사는 자본주의 공간 팽창의 역사와 결합되었다. 이는 신 체 감각의 전적인 배제로 인해 인간의 주관적 느낌과 감성을 바탕으로 형 성되는 공간 조직 양상 또한 사라졌다. 일상의 삶에서 느낄 수 있는 체험된 공간들7)의 부재와 합리적 측량(설계도와 조감도)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공

5) ‘공간의 재현(representaton of space)’은 언어화된 구조에 따르는 지배적 공간 규정의 논리이다. 대표적으로 공간에 대한 이론적 체계화의 시도를 통해 부각되는 ‘과학적’ 공간 인식이 여기에 해당된다. ‘공간적 실천(spatial practice)’은 해당 사회마다 상이한 양상으 로 나타나는 공간 생산 과정상의 응집성을 지시한다. ‘재현의 공간(space of representation)’

은 일상적 체험과 예술 작품을 통해 드러나는 차이의 공간성이다. 이는 ‘상상된 공간’,

‘체험된 공간’, ‘지각된 공간’으로 정의된다. Henri Lefebvre, “Introduction”, La production de l’espace, op. cit.

6) Henri Lefebvre, The Production of Space, Trans. Donald Nicholson-smith, BLACKWELL : Oxford UK& Cambridge, USA, 1991, p.29.

7) 앙리 르페브르에 따르면, 지각공간은 대중이 일상적 행위를 반복하는 공간으로 일상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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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을 토대로 도시는 ‘이미지’와 ‘상징’을 내세우며 계획되기 시작했다. 상업 과 소비의 패러다임의 변화 자체 또한 도시를 형성하는 여러 물리적인 요 소들을 구획하며, 정보의 객관화에 따른 공간 점유를 허용하였다. 이를 토 대로 도시는 ‘공간의 코드화’가 되었다.8)

르페브르는 “역사를 통해 이루어지는 대규모 은유화와 축적 과정을 통해 몸을 몸 밖으로 추방하는 환원화의 과정은 궁극적으로 이 추상 공간에 도 달한다.”9)고 주장했다. 즉, 객관화된 공간에는 위계가 생겼고, 모든 도시들 의 경관은 유사하게 발전하면서 그 형태와 구조를 유지하기 위한 방법들이 사용되었다. 공공공간과 사적공간의 경계를 명확하게 구분하거나, 사적 공 간이 공공공간을 포함하면서 만들어지는 다양한 상업공간의 형태들을 통 해서 만들어낸 중성적인 환경은 점차 추상적인 공간이 되었다. 이미지와 상 징성, 기호 등을 바탕으로 구현된 추상공간은 자신만이 지니는 고유한 차이 를 없애 버리고, 추상적 동질성을 강요했다.

이렇듯, 추상 공간은 공간 자체가 하나의 ‘상품’처럼 여겨진다. 또한 이러 한 공간은 정치적, 제도적인 요소들과 함께 계획가나 권력자들의 의도에 맞 게 관리되었다. 문제는 도시 계획에 따른 공간의 추상화뿐만 아니라, 사고 와 행위에서도 통제의 수단, 즉 지배와 권력의 수단이 될 수 있다는 데 있 다. 지배 전략을 드러내거나 방어 기제들을 은폐하면서, 사회적 공간이 하 나의 사회적 생산물이라는 사실을 은닉하는 이중적인 환상을 내포했기 때 문이다. 다시 말해 ‘투명성의 환영’(L'illusion de la transparence)과 ‘현실주

활이나 상식적인 감각으로 인지되는 일상적 공간이다. 개념공간은 공간의 표상에 대한 이론적인 담론들, 수학자, 지도제작자, 도시계획가, 부동산 투자자 같은 공간 전문가들 이 설정하는 이념과 개념의 공간이다. 이 공간은 권력자들이 전문용어들을 사용해 공간 을 해독하고 공간생산에 개입해 정치권력의 질서를 이념으로 내면화한 결과, 기존의 사회적 생산관계와 질서를 합리화한다. 마지막으로 경험공간은 공간과 대상을 유동적 이고, 상황적인 상징과 심상으로 체험하는 공간으로 사람다운 삶이 구현되는 공간이다.

8) Henri Lefebvre, The Production of Space, op. cit., pp.168~176.

9) Ibid., pp.307~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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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적 환영’(L'illusion réaliste)이 서로를 강화시킴으로써 진실을 드러내지 못하도록 했다.10)일관성이라는 이름으로 비일관성이, 응집성 속에서 분리 와 해체가, 안정적인 것 속에서 유동적이고 일시적인 것이, 효율적인 조합 속에서 공간의 모순이 존재했다. ‘이미지’로 치환된 각종 요소들이 공간의 특성과 성격을 부여하고, 이러한 공간 속에서 사람들은 소외와 같은 역설적 인 형태를 생산했다.

동질성의 확보와 효율적으로 공간을 판매하기 위해, 추상 공간을 탄생시 켰던 사회적․정치적 힘은 다양한 전략을 통해 일상 공간을 잠식하며 통제 하고자 했다. 현대 도시 공간의 추상 공간화 전략 중 대표적인 것은 ‘공공 성’11)이라는 것에서 출발하는 행정정책이다. 공간과 문화가 결합되고, 소비 와 문화가 결합되는 등 다양한 형태로 공간의 가치를 다각화시키고, 이를 통해 ‘소유된 공간’들이 대중들에게는 도시에서 제공하고 있는 ‘공공 공간’

인 것이다. 현대 도시 공간에서 생산되고 있는 공공 공간들은 공공성을 표 방하지만, 실제적으로는 비공공적인 제어를 통해 운영되고 있는 다른 형태 의 ‘탈근대적 추상 공간’이다. 공공성이 가지는 배타적인 속성, 상품화되어 버린 공공성으로 인해 소비 공간과 공공 공간은 서로의 특징을 상호 복제 하면서 개인의 참여와 공간적 실천이 불가능한 배제 전략을 활용했다.

2.2. 탈근대적 도시의 미적․심미적 지각

앞서 언급한 것처럼, 추상공간들은 가시적인 방식으로 공간에 대한 통제 와 관리가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비-가시적인 기제들을 통해서 공간에 대 한 접근성과 행위를 규제했다. 문화에 깊이 파고든 교환가치, 상품, 화폐, 자본이 추상 공간의 생산에 기여했다. 일상생활 속에서 인간의 지각된 체험

10) Ibid., pp.27~30.

11) 공공성에 대한 일반적인 정의는 다음의 저서를 참고할 것. 사이토 준이치, 뺷민주적 공 공성 : 하버마스와 아렌트를 넘어서뺸, 윤대석 외 번역, 이음,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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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의해 스스로 형성되어야 할 문화는 거대 기업의 상업화되고 표준화된 담론적 문화로 대체되었다. 자본주의가 공간으로 확장됨에 따라 야기되는 모순들은 은폐와 회피의 방향으로 나아가며, 새로운 필요와 욕망이 대두되 면서 공간을 상징적으로 차별화시키는 정책들이 재생산되었다. 현대 도시 는 특히 건축물을 통해 다른 장소에 비해 더 매력적으로 보이기 위해서 장 소의 이미지에 대한 투쟁이 발생했다. 하지만 사회 구성원의 참여를 은밀하 게 배제하는 조직적이고 담론화된 틀에서 개인은 ‘은폐된 소외’를 경험했다.

소비는 현대 사회의 구성원들에게 소외의 상태를 의식하지 못하게 만드는 역할을 수행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한 대안으로서 고민되었던 예술 또한 문화 산업이 되면서 이러한 패러다임 안으로 들어갔다. 놀이의 공간, 향유의 공간, 건축 공간, 그리고 전유를 통해 잠재적으로 도시 공간을 재전복할 수 있지만, 자본주의와 부르 주아 계급은 이러한 방법을 역설적으로 장악했다. 다양한 축제와 일상의 욕 구와 피로를 해소하기 위한 일탈의 발현장소였던 공공 공간은 지배계층의 의도에 따라 소비 공간으로 바뀌었다. 장소의 ‘열려 있음’은 공간의 개방성, 공공성, 다양성을 보장하지는 않았다. 공간은 상품처럼 점유와 소비하는 주 체가 이미 존재하며, 이러한 주체는 열린 공간을 의도하고 계획하기 때문이 다. 그렇기에 탈근대적 공간 역시 정신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 공간과 시간, 밖과 안, 필요와 욕망을 일치시키는 투명성을 위해 전념하는 기호와 이미지 의 세계였다. 눈속임으로 결합된 세계는 야기되는 문제들을 은폐하고, 논리 로서의 사고의 단일성을 주장하면서 중요한 것들을 회피시켰다. 예술과 문 화는 사실 돈과 시장, 교환과 권력이 문제이며, 소통은 고독이 문제다.12)

12) 이 과정에 대한 논의는 앙리 르페브르의 이론뿐만 아니라, 장 보드리야르의 뺷소비의 사회뺸와 폴 비릴리오의 뺷소멸의 미학뺸 등에서 더욱 확장된다. Jean Baudrillard, La société de consommation, Paris : Denoël, 1970; Paul Virilio, La bombe informatique, Paris : Galilée, 1998; Paul Virilio, Esthétique de la disparition, Paris : Galilée, 1989;

Henri Lefebvre, The Production of Space, op. cit., p.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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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과 차이의 문제를 일관성과 욕망의 투명성으로 대체하는 추상 공간 에서 사람들의 일상과 공간의 관계는 붕괴되었다. 즉, “일상성은 일상성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을 통합하고, 또 일상성에 실망을 느끼는 사람들도 통합 했다. 좀 더 완전한 일상성을 염원하며 불만을 느끼는 사람들도 곧 일상성 에 의해 덥석 물려 삼켜졌다.”13)단순하게 제공된 공간만을 소비하는 소비 자로 전락한 대중은 선택과 생산의 주체로부터 소외되었다. 새로운 기술들 은 이전의 상상 속에서나 가능했던 도시들을 현실화시키며 문제들을 해결 하는 듯 보였지만, 동시에 매우 위협적이었다. 따라서 자본주의 사회의 인 간 소외와 관료주의의 억압을 비판하고, 극복 방안으로서 일상생활을 강조 한 르페브르의 뺷일상생활 비판 이론뺸은 1968년에 현실의 문제점들을 타파 할 새로운 사회의 실천이론으로 떠올랐다. 그는 자본주의 사회의 생산체계 가 노동자들을 착취함으로써 여러 형태의 소외를 야기했다는 마르크스의 소외 개념에서 더욱 나아가 일상의 의미들을 퇴색시키면서 상품의 물신화 를 사회 전반에 초래했다고 생각했다. 대중들이 소비를 통해 경제체제의 주 체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소외의 상태를 의식하는 것조차 경험하지 못하게 하는 메커니즘이 작용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현대인의 일상적 삶이 현대의 기술문명과 소비적 특성에 의해 끊임없이 소외당하고 불만의 상태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이 이루어지고 있는 대표적인 곳이 도시 공간이 며, 르페브르는 현대인들이 도시의 권리를 찾기를 희망했다.

물론, 21세기에 들어와 도시 중심부의 독창성은 상실되면서 주변적 도시들 이 생명력을 획득하는 듯했다. 그러나 속도와 쾌락이 혼합되며 축제를 교묘하

13) 앙리 르페브르, 뺷현대세계의 일상성뺸, op. cit., p.182.

일상생활이 지배적인 것과 비지배적인 것 간의 경계이며, 소외와 비소외 모두의 근원 이면서 일상생활의 변혁을 언급했던 르페브르의 견해는 기 드보르(Guy Debord)와 같 은 상황주의자들에게 받아들여졌다. 이를 위해 상황주의자들은 ‘일원적 도시주의’, ‘심리 -지리’, 자유롭고 창조적인 활동으로서의 ‘놀이’, ‘표류’, 그리고 ‘전용’ 등을 주요 개념으 로 사용했다. 앙리 르페브르의 이론적 모델의 실천으로서 상황주의자들과 상황주의 예 술가들은 도시 변혁을 위한 여러 가지 모델을 실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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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 변형시키면서 개인의 주체성은 상실되고 양식(style)의 부재를 초래했다.

현대 예술 역시 이러한 문화 공간으로 유입되고 있다. 예를 들어, 초기의 프랑스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은 도시적 경험을 단순히 기록하지 않고, ‘실재’

를 드러내며 전통적인 미술 방식뿐만 아니라 주류 문화에 도전하는 형태로 발전했다.14) 1960년대 이래로 활발히 활동해온 이들은 사회․문화적 관계망 안에서 주변과 소통하고, 관객의 시각에 다양한 의미를 형성하는 것 보다는 자신들의 정치적 사유를 내보이는 사회 변혁(l’attitude angagement)적인 특 징을 더 드러냈다. 그러나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났던 이들의 활동은 1970년대 부터 활발히 지속해온 국가의 공공미술정책15)과 만남으로써 오히려 표현의 제약과 다양성이 침체되는 듯 보였다.

하지만 몇몇 예술가들은 거리의 활동에 대한 국가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확대된’, 그리고 ‘열린’ 지평 위에서 도시의 거리와 공간을 자유롭 게 사용했다. 이러한 예술은 대중의 주체적 참여를 유도하는 방식으로 기능 했기 때문이다. 더불어 ‘적극적’이고 ‘실천적인’ 활동은 역으로 정책을 변화 시키는 데 기여했다. 예를 들어, 어떤 예술가들은 제도적 공간에 대면하여 스스로 도시 공간의 사용에 대한 미시적 실험을 진행했다. 또한 1980년대부 터 본격적으로 등장한 프랑스 스트리트 아티스트들은 더욱 거리를 ‘게릴라 적’으로 이용하며 예술적 실천을 보여주었다. 이렇듯 아방가르드 예술가들 이 ‘제도권’으로의 유입과 저항을 반복해왔다면, 현대 도시와 예술은 어떤

14) 맬컴 마일즈, 뺷미술, 공간, 도시뺸, 박삼철 옮김, 학고재, 2000, pp.327~329; Louis Aragon, Écrits sur l’art moderne, Paris : Flammarion, 1981; Pierre Cabanne et Pierre Restany, L’avant-garde au XXe siècle, Balland 1969.

15) 프랑스 정부는 르네상스시기에서 루이 14세, 그리고 혁명기와 제국시기, 그리고 다양한 공화국을 거쳐 예술에 관한 일에 관여해 왔다. 특히 1984년에서 1991년 동안 정부는 새로운 구매정책 하에 국가적인 차원에서 미술품을 수집․전시하였다. 물론 이러한 정책이 경제 적 침체기에 놓인 현대미술을 존속하도록 하는 데는 기여했지만, 현대미술 창작을 활성화 하는 다양성을 해치는 결과를 가져왔다. 장-루이 쁘아뜨뱅, 「프랑스 현대미술의 정체성」, 뺷중앙대학교예술논집뺸 vol. 15, 중앙대학교 한국예술연구소, 1996, 231~250면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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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1970년대 리옹 페라쉬 역

Ⓒ Ville de Lyon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가? ‘관’은 예술을 항상 제도적으로 유입시키며 획일 화와 추상화의 기여에 가속화하는 중추적 역할로만 남아야만 하는가?

도시 예술이 파리를 중심으로 활발히 전개되면서 그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다면, 지방은 좀 더 뒤늦게, 그리고 느슨하게 진행되었다. 지방 도시의 개 발 및 이미지화는 대도시와 비슷한 속도로 진행되었지만, 자유로운 예술의 발현은 뒤쳐졌기 때문이다. 또한 대부분의 프랑스 지방 도시들이 ‘관’의 주 도 하에 ‘문화 도시’를 지향하며 예술을 문화 공간으로 유입시키고 있기 때 문이다. 그렇다면, 지방 도시의 현대적 추상공간은 본래적 공간으로 돌이킬 수 없는 것일까? 앞으로의 도시 변화의 가능성에 주목하겠지만, 우리는 리 옹시의 도시 계획 하에 진행되는 문화예술정책에 대해 비판적으로 접근하 며 분석 할 것이다.

3. 자본주의 도시와 예술

3.1. 리옹시의 도시 계획과 문화예술정책

프랑스 론-알프스(Rhone-Alpes) 주의 론(Rhone)강과 손(Saone) 강의 합 류 지역에 위치해 있는 리옹은 리옹 근교와 위성도시를 합하면 프랑스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이다. 리옹 도시의 오랜 역사적 명성에도 불구하고, 리옹 은 상대적으로 관광지로서 어떠한 매

력을 얻지 못하였다. 2차 대전 이후, 리 옹 시는 본격적인 도시 개발을 시작했 다. 리옹시의 도시계획은 사회적 관계 에 대한 대안 없이 건물과 거리의 배 치를 달리하며 발생되는 지형적 변화 는 다양한 문제를 유발했다. 도시의 불 균형한 발전을 초래하고 계급대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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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Jean-Pierre Raynaud, Giratoire, 1989, rond point des Buers, Villeurbanne.

심화시킨 공간 구획이 대부분 명확히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리 옹의 페라쉬 지역은 오래된 역으로 이민자와 창녀들이 많고, 대부분 빈민촌 을 형성하였다(<그림 1>).

도시 계획 과정에서 리옹 시는 1951년부터 1970년대까지 도시 공간에 수많 은 공공 조각 설치와 벽화를 조성하였다. 예를 들어 1973년에 시작되었던

<조각 심포지엄 Symposium de sculpture>은 리옹 강변을 중심으로 파듀 (Part-Dieu)나 크로와-후스(Croix-Rousse)에 조각 작품을 설치했다. 이러한 공공미술은 1976년부터 1989년까지 큰 규모의 예술프로젝트로 발전되었

다.16) 예를 들어 <마을 속 조각들 Sculptures dans la ville>(1982)은 베 니슈(Venissieux)의 수영장, 학교, 사 회센터, 경기장, 교회, 지하철, 그리고 지하철에서 내린 후 나온 광장에 조 각 작품을 설치했다.17)(<그림 2>) 그러나 앙드레 뮈르(André Mure)가 7년 동안이나 반복하면서 도시 공간

16) 조각, 벽화, 영상 및 설치작품은 역, 분수대, 건물 벽 혹은 파사드, 공원 등에 설치되어 있다. 뺷L’art contemporain dans les espaces publics뺸의 안내 책자는 1978년부터 2008년 까지 설치된 약 300개의 조형물을 설명하고 있다. 이전의 조형물들이 소외된 지역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면, 1970년대 후반부터는 설치장소가 확대되었다. Marianne Homiridis et Perrine Lacroix, L’art contemporain dans les espaces publics : Territoire du Grand Lyon; 1978/2008, édition La BF15, 2008.

17) 1979년 결성된 씨떼크레아시옹(CitéCréation)은 리옹(Lyon)의 울랭(Oullins)지역에서 시작되어 벽화창작을 주요활동으로 하는 노동자협동조합이다. 벽화 제작수익금과 조합 원의 출자가 자금원이 되면서 현재는 에콜시테(ÉCohlCité) 학교를 설립했다. 초기의 벽화 는 토니 가르니에 단지처럼 소외지역 및 가난한 지역의 벽들을 장식함으로써 외곽 지역의 공간 이미지를 개선하는 데 그쳤다. 리옹시에 의해 주도되었던 제타-주니 지역(quartier des Etats-Unis)의 <8ème art> 프로젝트는 이러한 점에서 많은 한계를 지니고 있다.

(<그림 3, 4>) 그러나 리옹의 벽화 작업은 점차적으로 장소와 역사성을 고려하는 지역을 선정하면서 활발히 진행 중이다. 물론 벽화 수준(재료, 내용, 보존 방식 등) 역시 뛰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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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제타-주니지역, 리옹 8구,

Ⓒ Agence d’urbanisme de Lyon

<그림 4> 제타-주니 역 입구, 리옹 8구,

Ⓒ Agence d’urbanisme de Lyon

에 설치했던 <조각 심포지움>은 상당부분 비판적으로 평가되었다. 대부분의 선택된 장소가 사회적 문제와 정치적 정책과 맞물리면서 소외지역에만 집중 적으로 전개되었기 때문이다.

1990년대부터 리옹 시는 도시재생프로젝트(Renouvellement urbain)를 통 해 도심 내 불균형한 공간을 재정립하는 데 다양한 정책을 펼쳤다. 그러나 문제는 페라쉬 역을 중심으로 한 재개발로 인해 일상생활을 위한 사용가치가 소비논리의 교환가치로 변하였다는 데 있다. 이곳의 주민들의 주거공간이 본래의 기능을 점차 상실하면서 이민자들은 자신의 주거공간이나 그 주변사 회와 같은 삶의 공간에서 또 다시 소외되었다. 물론 도시 공간의 성격을 단순 히 자본이 지배하는 공간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많다. 비록 빈민가들이 주체적 삶에서 소외되었지만, 그 공간에서 개

인들의 삶이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도시 공간은 다양한 개개인이 살아가 는 공간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경험될 수 있고, 예측하지 못한 행위와 계기 들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시의 이미지화 는 앙리 샤베르가 1989년에 공공 디자 인 정책의 일환으로 알랭 귈로 등과 같 은 프랑스 대표적인 조명 디자이너들이 참여한 ‘도시조명계획’을 시도하면서 론 강을 중심으로 도심의 조명을 연출하면 서 더욱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정책이 외부의 대중을 끌어들이는 데 큰 역할을 했지만, 내부의 주민들의 삶 을 질적 효과와 가치의 변화에는 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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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 문제가 많았다.

하지만 2001년에 부임한 제라르 콜롱브(Gérard Collomb) 시장은 1960-70 년대 이후부터 몰락해가던 산업지구를 재정비하기 위해, 파듀(Part-Dieu), 페라쉬(Perrache), 콩플리앙스(Confleunce) 등의 지역을 재개발하는 것보다, 문화예술의 융합의 장소로 ‘다시’ 검토하였다.18)지속가능한 대도시를 조성 하기 위한 도시 계획에서 리옹 시장은 지역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상당 부분을 예술문화정책과 함께 진행시켰다. 콜롱브 시장은 현대예술과 도시간 의 관계에서 혁신을 떠올리며 지역을 개척하는 하나의 방식으로 예술의 중요 성을 인식했다. 그는 예산의 20%를 문화에 투자하였다.19)예를 들어, 축제의 역사적 전통과 장기 프로젝트로 인해 축적된 기술적 노하우로 만들어진 리옹

18) 교수자격증을 가진 제라르 콜롱브는 1977년에 정치에 입문하였다. 1999년부터 론 지역의 상원의원이었던 그는 2001년 3월 25일부터 현재까지 리옹 시장을 맡고 있다. 2015년 1월부터 그는 그랑 리옹의 위원장(Président de la Métropole de Lyon)이다. 리옹은 57개 의 코뮌연합체로 구성된 도시로서, 그랜드 리옹 연합(Grand Lyon Alliance)이 도시발전 전략과 장기구상을 만들어 왔다. 1991년 그랜드 리옹 연합은 지역정비계획의 일환으로

‘블루플랜(Blue Plan)’을 채택해 론강과 손강 주변 지역에 수변 공간을 정비하면서 환경보 전을 염두에 두며 도시 재생을 시작하였다. 또한 1998년부터 현재까지 론 강과 손 강 합류지점인 콩플뤼앙스(Confluence) 지대에는 교도소, 탄약 공장과 빈 창고가 많아 주민 들의 접근이 용이하지 않았 현재 업무지구, 자연친화적 주거지구, 여가공간으로 나뉘어 도시개발 및 재생사업이 진행 중이다. 이를 위해 11억 4,5000만 유로(약 3조 1,000억원)의 사업비를 투자했다. 특히 콩플뤼앙스 지역은 콩플뤼앙스 박물관(Musée des Confluences), 일간지 르 프로그레(Le progrès), 지방 라디오 방송사들, 유로뉴스 등이 이곳으로 이전하 면서 유럽 내 미디어산업의 중심지가 되고 있다.

19) 리옹 시장의 문화 예술에 대한 관심은 다음과 같다. “거의 1억 유로 정도이죠. 다른 도시와는 아주 다릅니다. 비용이 상승되는 이유를 살펴보면, 6개의 미술관과 미술국립 학교가 2천 3백만 유로를 차지하죠. 그리고 그랑 리옹(grand Lyon 도시조직)에서는 비 엔날레(Biennale de la danse, Biennale d’art contemporain)를 위해 2백 68만 유로, 2012 년 빛 축제(Festival du cinéma Lumière)를 위해 1백 1십만 유로를 투자했습니다. (…) 이런 정책으로 인해 내가 처음 시장직을 맡을 당시 4억 3천만 유로였던 부채가 2011년 3억 7천만 유로에까지 줄었습니다. 1유로의 공공요금을 써서 6에서 7유로의 수입을 얻 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도시를 다시 활성화시킬 무언가를 보는 것입니다.” 장-크리스토 프 카스테라(Jean-Christophe Castela)와의 인터뷰, <Le Journal des Arts>, 05,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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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 축제가 1999년부터 시작되었다. 현재 <빛 축제>는 3일간의 짧은 축제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약 400만 명이 넘는 방문객을 유치하면서 리옹을 ‘빛의 도시’라는 타이틀을 제공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다. <빛 축제>는 각 지역에 맞춰 다양한 주제를 구성했으며, 점차적으로 예술적, 연극적, 그리 고 다양한 미학적인 내용을 보완하고 있다.20)

그러나 문화예술의 다양성과 개방성을 보여주고자 계획했던 제도적 장치 들이 대중의 소비와 도시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해 빠른 속도로 진행될 때 발생할 수 있는 다른 문제들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예술은 종종 상업적 이고 스펙터클한 행사, 그리고 문화적 행사에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1980년대에 거리의 아방가르드 예술가들과 스트리트 아티스트들은 미 술을 도시 환경 속에 두루 퍼지게 하였다. 동시에 국가가 공공 주문에 의해 거리에 대한 새로운 시도를 감행하면서 전위적인 예술가들은 제도권으로 유입되었다.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의 거리에서의 자유로운 활동이 ‘공식화’

주문에 의해 제도화되는 과정의 중심에 다니엘 뷔랭(Daniel Buren)이 있다.

뷔랭은 회화와 미술관과의 관계를 조명하고, 감상자와의 소통, 그리고 사회

20) 리옹의 빛은 단순히 도시를 밝히는 조명의 역할에서 벗어나 도시 자체를 예술작품으로 삼기 위해 리옹 시립 조명 컨셉 학교, 리옹 외곽의 필립스와 같은 ‘조명 공장’과 연계한다.

조명 연구 기술을 통한 산업과 문화예술의 만남을 통해 <빛 축제>는 10개의 구- 리옹2구 의 벨꾸르(Bellecour)와 페라쉬(Perrache), 리옹3구의 베르쥬 드 혼(Berges du Rhône)과 파듀(Part Dieu), 리옹4구의 펜트(Pentes)와 크로와-후스(Croix-Rousse), 리옹5구의 뷰- 리옹(Vieux-Lyon)과 퐁 드 주르(Point du jour), 리옹6구의 포쉬(Foch)와 테트 도(Tête d’Or) 공원, 리옹7구의 기요티에르(Guillotière)와 제르랑(Gerland), 리옹8구의 몽플레지 르(Monplaisir)와 메르모즈(Mermoz), 리옹9구의 베이즈(Vaise)와 일 바르브(Ile Barbe) 등- 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정책은 중앙정부와 그랑 리옹 연합과의 상호협력을 통해 진행한다. 예를 들어, 안느-실비 슈나이더(Anne-Sylvie Schneider, 파리시의 정보통신부 장)에 의해 만들어진 백야(La Nuit Blanche)는 리옹의 빛 축제(Fête des lumières)로 이전되었고, 파리의 벨리브(Vélib)는 리옹의 벨로브(Velo’v)로 연계되었다. 또한 그랑 리옹 연합은 리옹시의 비엔날레들(현대무용과 현대미술)과 빌레르반 지역의 <초대(Les Invites)>페스티벌을 차별적으로 지원한다. <초대>는 주민들의 참여와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 - 조형미술가, 음악가, 무용수, 연극인 등 - 을 출현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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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6> Daniel Buren, La place des Terreaux), Lyon, Ⓒvia Karen Ruimy.

<그림 5> 다니엘 뷔랭, <샌드위치 맨>, 1968, 파리 샹젤리제 거리, 프랑스

안에서 존재하는 미술관 제도를 비판 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그림 5>) 그 러나 종종 도시 속 예술은 미학과 도덕 적 신념에 의해서가 아니라 환경의 총 체로서의 미술에 전념했다. 뷔랭이 언 급했던 ‘장소 속의 작품(oeuvre in situ)’

이란 표현은 ‘장소에 적합한 미술’로 오 해하며 장식 미술까지도 포함하는 용 어가 되었다.21)(<그림 6>)

도시 개선 프로그램을 위해 이미지 를 구축하기 위한 ‘공공적’인 것은 국 가가 개입하면서 사적인 행위들이 배 제되고, 도시 공간에 창조적 공간을 창출하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추상화 된 공간을 만들 수 있다. 현대 사회의 비인간적인 도시 풍경이 불러일으키 는 소외와 혐오의 감정 등의 비인간 적인 속성을 중화시키기 위해 완충역 할을 하고자 했던 공공미술 역시 근대적 추상 공간과 맥을 같이 하는 데 그쳤다. 보드리야르는 장 누벨과의 대담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미학화(esthétisation)의 관점에서 문화가 문제입니다. 미학화에 대해 나는 반 대합니다. 왜냐하면 어쨌든 작품이나 창작이 드러낼 수 있었던 비밀의 상실, 미학

21) 카트린느 미예, 뺷프랑스 현대미술뺸, 염명순 옮김, 시각과 언어, 1993, pp.330~327; 도시 속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의 다양한 활동에 대해서는 다음의 저서를 참조할 것. Paul Ardenne, Un art contextuel : Création artistique en milieu urbain, en situation, d’intervention, de participation, Paris : Flammarion,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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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넘어서는 비밀의 상실, 즉 비밀을 잃어버린 오브제가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 그런데 결국 비밀의 미학이 사라지면, 우리는 문화에 직면하게 됩니다. 문화는 도처에 있습니다. 어쨌든 그 순간부터 문화는 산업과 기술에 상응합니다.”22)

예술이 문화로 되는 과정, 예술이 집단화되고 획일화 되는 과정, 예술이 정치화되는 과정 속에 예술의 추상화가 있다. 대부분의 도시들의 문화예술 정책 또한 이러한 과정을 되풀이하고 있다. 도시와 다른 도시와의 문화예술 프로그램의 유사성만이 문제가 아니다. 더 큰 문제는 한 도시 내 구역별들 내에서 예술이 집단화되고 획일화 되는 과정 속에서 예술의 추상화와 획일 화가 있다는 데 있다.

그렇다면, 프랑스 도시 속 예술의 복잡한 맥락 안에서 형성 되어 온 저항 적이고 비판적 행위의 전위적인 예술가들이 현대 예술의 흐름 속에서 자리 매김 되었다면, 리옹 시는 도시 공간 속 예술의 자율성을 어떻게 보장하고 있을까? 제라르 콜롱브 시장의 문화예술정책 시행 이후 리옹 도시 속 예술 은 어떻게 변화되고 있을까? 우리는 획일적․제도적인 정부의 문화예술정 책만이 도시 공간을 점유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예술의 모습과 도 시 공간의 사용자들의 다양한 차이를 인정하며 도시를 계획하고 재정립할 때, 도시의 ‘열린’ 가능성이 제기될 수 있음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저항은 집단적으로, 그리고 정치적으로 조직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언제나 예외적 으로 이루어져왔다고 언급한 보드리야르의 주장처럼, 우리는 자발적이고 의식적인 저항의 가능성을 염두에 둘 것이다.

3.2. 리옹 도시 속 현대 미술의 개입

리옹 시의 도시 재생 프로그램 과정 속, 우리가 주목할 부분은 1983-84년에 진행되었던 두 가지 예술 이벤트이다. 1983년부터 시작된 <10월의 예술

22) 장 보드리야르, 장 누벨, 뺷특이한 대상: 건축과 철학뺸, 배영달 옮김, 동문선, 2003, 39~

4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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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7> 리옹 비엔날레 전시장 외부

October des arts> 프로젝트는 1년 뒤, 티에리 하스파일(Thierry Raspail)의 만남으로 새로운 전환점을 맞게 되었다. 1984년부터 리옹현대미술관(MAC Lyon)의 관장이 된 그는 이 전시를 다른 미술관들과의 협력을 통해 예술 프로젝트로 자리 잡게 했다. 프랑스 문화성이 1985년 이래 중단된 파리 비엔 날레를 리옹으로 옮겨 지원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티에리 하스파일이 기획했 던 <10월의 예술> 프로젝트는 1991년에 리옹 현대미술 비엔날레(la biennale d’art contemporain)로 변형되었다.

리옹 시의 도시 계획 속 예술 정책 중 가장 선구적인 사건은 비엔날레 공간 형성이었다. 비엔날레 추진을 위해 ‘공간’이 먼저 형성된 것이 아니라, 점차적인 발전을 통해 합당한 공간이 개조되고 확장되었다. 즉, 과거 콩플리 앙스의 40만 제곱미터 대지에 세워진 라 쉬크리에(La Sucrière) 설탕공장은 2003년부터 개조해 현대예술 비엔날레를 위한 장소로 전환되었다.(<그림 7>) 더불어 리옹시는 보-장-발랭(Vaulx-en Velin)의 T.A.S.E. 공장(l’Usine T.A.

S.E) 단지를 재-조성하였다. 이 오래된 견직물 제조 공장은 보-장-발랭에서 500헥타르의 규모로 진행되었던 프로젝트의 핵심 공간이 되었다. 현재까지 공간의 확장은 ‘점차적’으로 ‘단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실제 비엔날레가 이루어지고 있는 지역은 현재까지도 폐 허의 장소들(과거 오래된 건물이나 빈 건물들)이 그대로 존재하고 있다. 그러 나 예술을 끌어들이면서 도시의 거주자 들과 외부자들은 주변 환경을 다시 볼 수 있는 계기와 오래된 건물과 장소를 새롭게 인식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예술은 격리 상태의 도시의 일부분을 밖으로 끄집어내도록 하였던 것이다.

오래된 건물의 재사용뿐만 아니라,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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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 비엔날레의 프로그램들 중 몇몇 프로그램은 일례적인 행사로 끝나지 않고, 도시 속 현대예술의 ‘개입’을 적극적으로 펼치기 시작했다. 특히 리옹비엔날 레는 여타의 비엔날레들과 달리, 도시 속으로 예술을 유입시켜 나갔다. 공공 공간에서 예술은 개인적으로 혹은 공동 작업으로 진행되었고, 광장에서 예술 의 실험적인 행사들은 거주민들과 다양한 협업 예술 프로젝트로 진행되었다.

특히 지역민을 위한 공공 예술 프로젝트 베두타(Veduta)는 1997년 리옹 비엔 날레에서 실험적으로 시작되었다.23)베두타는 관객이 참여하는 작품으로 구 성되고, 리옹시를 넘어 론-알프스 지역민과 현대 예술의 소통을 위한 공공예 술 관련 세미나와 컨퍼런스 등을 지속시키고 있다. 이러한 베두타 프로그램은 일회성 행사로 그치지 않고, 현재까지 지역과 소통하는 하나의 창의 역할을 하고 있다. 리옹시민들은 비엔날레를 계기로 관람객들이 국제적 규모의 창작 물을 일상 속에서- 경찰서, 시장, 수영장, 아트센터 등- 접할 수 있도록 소통 의 매개 역할을 했다. 이러한 과정은 리옹 근방의 6개시의 예술 단체와 사회단 체와 기관들과 협력해 이루어졌다.

이렇듯 리옹 비엔날레의 새로운 커미셔너의 프로그램이 진행되더라도, 베두타는 리옹 비엔날레의 정기적인 프로그램이 된 것이다. 이러한 방식이 가능한 이유는 총감독의 지속적인 유지이다. 리옹 시는 재정적 측면만 담당 하고, 관련된 모든 결정은 리옹비엔날레 총감독인 티에리 하스파일의 주도 하에 이루어지며, 현재까지 정치적 외압 없이 지속되고 있다. 거대 담론의 예술전시로 언급되었던 비엔날레를 일상적인 삶으로 유입시키고자 하는 티에리 하스파일의 노력은 현재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이러한 계획이 가능 할 수 있는 가장 큰 요인은 바로 리옹시가 전문성을 인정하면서 관장 및 감독의 위치를 지속적이고 체계적으로 보장해주는 데 있을 것이다.

23) Sous la direction de Veduta Biennale de Lyon, L’Art, le territoire : art, espace public, urbain, Lyon : CERTU,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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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8> 리옹댄스 비엔날레 폐막식 장면, 벨꾸르 광장, 리옹

또한 도시 속 미술이 가능했던 주요 요인은 다른 예술 분야들과의 지속적인 관계이다. 리옹비엔날레와 마찬가지로 1984년에 리옹 댄스 비엔날레(Biennale de la danse)가 개최되었다. 리옹의 댄스 비엔날레가 공공미술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지만, 공공 공간에서 작업하는 무용수들로 인해 미술가들의 ‘자유로 운’ 활동 역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댄스 비엔날레는 여타의 문화적 프로젝 트와 리옹 시민들의 삶, 그리고 문화생활 등에 대한 새로운 도전을 감행했 다.(<그림 8>) 리옹현대미술 비엔날레와 댄스 비엔날레, 이 두 예술 프로젝트 에 의해 리옹 시는 도시 공간, 특히 공공 공간에 대한 새로운 지각을 일으켰다.

더불어 제라르 콜롱브 시장의 취임 이후, 리옹 시는 공공미술프로젝트 보다는 예술가 스스로의 자율성을 보장하며 지원해주는 정책들을 지향하면서 다양 한 예술이 진행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태도는 프랑스 정부의 예술에 대한 이해와 그 맥을 같이 하고 있다.24)이러한 공간을 위해 정부는

24) 1970년대 초 프랑스의 일부 예술가들이 자본주의 사회의 불평등한 관계에 대면해 도시 의 비어있는 공간들을 ‘사용’했다. 예술가들은 1979년부터 현재까지 파리시와 그 주변의 도시에 약 20여 곳의 빈 공간을 사용하였다. 파리의 대안공간은 다양한 성격을 가지는데, 로베르네 집(Chez Robert, Eletron Libre), 프리쉬 누라 빼(Friche nous la Paix), 알터나 시옹(Alternation) 등이 있다. 대안 공간 형성은 불법적이지만, 예술 행위는 불법적일 수 없다는 판단 하에 합법적인 협호를 조직해 활동하고 있다. 예를 들어, 프랑스 파리 14구의 아르꾀이유(Arcueil) 거리 6번지의 대안 공간은 2차 세계 대전 당시 폭탄창고였지 만, 미국, 영국, 독일, 이탈리아 등 각 국의 60여 명의 예술가들이 <아르 크로쉬(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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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주었지만, 뜻밖의 성과로 인해 유사한 모델들이 생산되 었다. 그러나 이러한 모델은 ‘관’의 개입이 아니라 예술가들 혹은 예술전문가 들에 의해 ‘스스로’ 생산되는 형태들을 보존하는 방식으로 지속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가들의 실천적 행동이 프로젝트화 되면서 획일 화된 문화공간으로 탈바꿈되는 경우가 발생될 수 있다. 한국의 경우에도 일 부 문화 예술프로젝트들은 서구의 성공적인 프로젝트의 결과만을 차용해 재생산하였다. 종종 ‘문화’는 자연 발생적인 것이 아니라, ‘인위적’이고 ‘의도 적인’ 계획 하에 진행되며 제도화되었다. 문화 공간의 가능성을 언급했던 장 누벨 역시 과도하게 제도화된 공간들은 헛된 공간들이라고 인정했다. 장 보드리야르는 문화 공간의 긍정적 변화가 오히려 국가의 문화적 계획과 더 불어 추진됨으로써 역효과를 가져다는 준다고 비판했다 : “ (…) 사실 ‘문화 적’이라고 불리는 것은 결국 역효과를 가져다주는 다형적(polymorphe) 활 동의 집합에 불과합니다!…”25) 보드리야르가 언급했던 것처럼, 이러한 대 안 공간은 대부분이 문화적 정책으로 실행되고 있다. 이는 예술가들 스스로 가 공간을 자유롭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마련된 공간을 통해 ‘문 화적’ 공간을 형성하게끔 하는 것이다. 이 두 맥락에는 큰 차이가 있다. 바 로 ‘자율성’과 ‘삶의 예술(art de vivre)’을 위한 ‘창조성’, 그리고 ‘유목적 속 성’이다. 이러한 특징은 예술가들이 공간을 사용할 때, 도시 공간 속 예술 작품을 제시할 때, 그리고 대중과의 소통을 형성할 때도 요구된다.

Cloche)를 만들었다. 이들은 20여개의 작업실을 만들어 강제철거당하기 전까지 약 5년간 다양한 장르의 예술이 포함된 열 두 번의 축제를 개최했다. 이를 위해 예술가들은 사회모 순에 대한 문제제기뿐만 아니라 사회와 예술로부터 소외된 계층등과 함께 삶과 예술을 나누는 시도를 실천했다. 이들의 행동은 당시 창작 공간을 갖지 못했던 예술가들이 활동 을 진행하는 방식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리하여 예술가들은 대안 공간의 개념을 확장시 켜 도심 속의 예술 공간에 대한 새로운 담론을 형성해 나갔다. 하지만 ‘자생적’ 대안 공간은 하나의 모델이 되어 각 국의 도시들은 유행처럼 ‘프로젝트형’ 문화예술 공간을

‘생산’해내고 있다. 대부분의 공간이 상업공간으로 전략되고 있다. 고명직 외, 뺷희망의 예술-젊은 문화, 예술을 향한 다섯 개의 생각뺸, 솔출판사, 2007 참조.

25) 장 보드리야르, 장 누벨, op. cit., pp.7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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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9> 에르네스트 피뇽-에르네스트, 생폴 교 도소, 리옹

프랑스 예술가들의 거리 활동이 종종 정치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그들이

‘정치’와 ‘사회’ 혹은 ‘대중’과 ‘부르주아’를 위해 자신의 작품을 제공했던 것이 아니라, 시대와 제도권에 저항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할 것이 다. 현실의 공간에는 불가피하게 이데올로기가 스며들어 있지만, 서구 미술계 와 국가는 이 은밀한 이데올로기를 드러내 보여주는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기관에 의해 주도적으로 결정하는 도시의 문화예술 프로젝트 안에서 예술가 들의 참여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기관은 예술가들 스스로가 주체적 위치를 가지며 다양한 활동을 펼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주는 것이다.

기관은 ‘모델’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재정적 지원을 위해 고민해야 한다.

더불어 정부가 예술가들의 활동에 대한 정치적 제재를 가하지 않는 태도 또한 중요하다. 예를 들어, 1990년대 중반, 에르네스트 피뇽-에르네스트는 프랑스 리옹 페라쉬 지역의 생폴 교도소에 있는 수감자들을 만났다. 이 교도 소가 가톨릭대학교 건물로 재건축되기 전 2012년에 그는 다시 한 번 이곳을

찾았다.26)(<그림 9>) 생 폴 교도소 에서 많은 죄수들이 유독 교도소 벽에 자신의 억울한 메시지와 다양 한 흔적을 남겼다. 이에 피뇽-에르 네스트는 사형수들의 형상을 로마 군인에 붙잡혀 학대를 당하고 십자 가에 못 박힌 예수의 이미지로 변 형시켰다. 이러한 방법은 그가 생 폴 교도소 수감자들이 당한 국가의

26) 이 공간을 방문했던 목적에 대해 그는 “이 벽들 사이에 수감되어 프랑스 당국 또는 나치에 의해 고문당하고 처형당한 이들을 생각하고, 이곳에 새 얼굴을 부여하는 것, 또한 이곳에서 인권이 침해당하고 때로는 자살에까지 이르게 한 인간의 ‘보편적 권리’에 대해 상기시키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Remi Pignon-Ernest, Ernest David, Ernest Pignon- Ernest, comme des pas sur le sable, A DOS D'ANE,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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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를 폭로하기 위한 것이다. 이는 그들에게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으면서 현대인들의 의식 속으로 과거의 기억을 불러와 ‘범죄의 현현(顯現)’을 제시하 는 것이다. 과거 프랑스 정부의 정책에 반(anti)하는 작업들을 통해 그는 역사 의 거짓 베일을 벗겨내고자 했다. 리옹 시는 그의 자유로운 작업에 대한 어떤 제재도 가하지 않았다. 정부의 공간 혹은 사적 공간은 예술가에게 ‘열린’ 공간 으로 활용되고, 그러한 공간에서 조우한 대중 역시 장소를 재맥락화시켰다.

‘고정된’ 공간은 이들에 의해 ‘다각적’으로 확장되었다. 따라서 피뇽 - 에르네 스트는 ‘자율적인’ 그의 활동을 보장받으며 도시 속 예술을 ‘개입’시키고, 도시 에 남은 흔적들, 역사와 기억, 순간과 덧없음, 인간과 인간의 대화에 관해 작업하면서 도시 공간과 인간의 소통을 야기했다.

이렇듯, 도시를 특별하게 해주는 것 중 하나는 공공 공간 속 예술을 다양 하게 표현할 수 있도록 ‘관’이 자율성을 보장해주는 것이다. 표현의 다양성 은 정부의 일방적인 선택이 아니라, 예술가와 대중들 스스로가 주체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정부가 정치적 외압 없이 지원해주는 정책을 고민해야 되는 것이다. 시의 예산에 대한 관리를 보다 유연하게 하고 예술의 질적인 향상을 위해 다른 기간들과 함께 협력을 하며 시너지 효과를 창출했던 제 라르 콜롱브 시장의 정책은 무엇보다도 각 예술의 장르에 맞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개진시켜줄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다는 것이다. 특히 그는 각 구마다 프로그램들의 유사성이 일어나지 않도록 그랑 리옹(리옹시의 외 곽 도시까지)의 대표적 기관들의 협력을 창출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3.3. 탈소외의 전략, 창조적 상상력의 발현

따라서 공간이 사회적으로 형성될 수 있도록, 도시 공간이 정부에 의한 단일 한 공간적 체계로 완성시키지 않고 상호 작용하면서 변화될 수 있는 다각적인 공간을 형성하는 데 있다. 다시 말해 공간은 사회적인 요소들과 예술적인 과정 들을 통해 새롭게 생산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공간 속에 존재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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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 역시 스스로 실제적인 경험을 통해 ‘변화’의 장소로 체험되어야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도시들 간의 문화예술정책의 획일화뿐만 아니라, 한 도시 내 각각의 지역구들 역시 유사한 형태로 실행되고 있는 정책들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만약 도시 재생을 위해 문화예술정책을 ‘필연 적으로’ 펼칠 수밖에 없다면, 도시의 ‘관’이 행정적 오류에 빠지지 않으면서 예술문화 프로그램의 차이를 제시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르페브르는 추상 공간의 극복을 위해 인간 존재의 주체적 사유의 발현에 주목했고, 체험된 공간을 형성하기 위한 가능성의 대안을 예술에서 찾았다.

그러나 동시에 연구자는 예술이 문화로 소비되고, 대중이 도시 공간 속 스 펙터클로 인해 무비판적으로 소비할 때, 발생될 수 있는 문제들 또한 살펴 보았다. 이는 장 보드리야르의 시각에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났다. 더불어 우리는 프랑스 예술가들이 현실에 개입하고 발언해왔지만, 동시에 이들의 활동이 정부의 정책과 만나면서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살펴보았다. 사회 영 역에서의 예술적 실천을 넘어 문화적 실천의 영역으로 이행할 때, 예술은 도시 공간에서 제기되는 다양한 모순들 및 논쟁의 중심에 있기 때문이다.

도시의 ‘관’은 예술가들의 창조적 상상력을 발현시키기 위해서 ‘관’ 스스로 의 개입의 문제에서 벗어나, 철저히 예술 전문가들에게 일임 하는 방식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도시 속 ‘작품’과 ‘생산물’ 사이의 간극을 극복하는 방법 을 주시하면서, ‘관’은 관행적으로 ‘문화를 위해’ 지어진 건물들과는 반대로

‘살아 있는 문화’에 근거를 둔 ‘열린’ 문화 공간을 창조해야 할 것이다. 그동안 시행했던 수많은 공간들이 과도하게 제도화된 공간들로 상업화되고 헛된 공간들로 전락되었기 때문이다. 더불어 ‘관’ 스스로가 프로젝트나 프로그램을 계획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과정을 전문가들내에서 형성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더불어 도시에 대한 정량적 평가로서 예술을 유입시키는 것보다, 장기적으로 예술 그 자체를 보존하고 발전할 수 있도록 지역 예술의 ‘역사’를 만들어 나갈 수 있는 방법을 지원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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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르페브르에 의하면, ‘인간 존재’는 자신의 공간을 가지고 있으며, 그 공간 안에 자신이 들어 있다는 사실을 지각할 수 있다. 인간 존재는 단순히 시각, 관조, 구경거리만을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라 공간 안에서 움직이며 스스로의 위치를 결정할 수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인간 존재는 공간의 일 부이다. 그렇기에 인간 존재는 서로가 서로를 내포하는 일련의 관계 속에 놓여 있으며, 이렇게 이뤄지는 관계가 바로 사회적 실천을 설명해줄 수 있 다.27) 뺷공간의 생산뺸에서 몸이 그 자체로 이미 공간이면서 동시에 공간을 생산하듯이, 뺷리듬 분석뺸에서 몸은 세계의 리듬을 측정하는 동시에 그것을 구현하는 존재로 제시되었다. 몸은 특정한 리듬을 선택하고 때로는 주어진 리듬에 저항하면서 인간적 삶을 표현하며 갱신할 수 있는 능동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가 세계를 정지된 객체로 만들면서 인간적 삶의 리듬이 근본적으로 부정당하고 있다면, 이에 ‘리듬 분석가’는 자본주의 세계의 양 화되고 위계화한 사물의 질서에 맞설 수 있다. 그렇다면 바람직한 리듬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구현할 수 있을까? 자본주의 사회의 사물화하는 경향은 세계를 가시화된 현재(présent)의 상태에 고착시켰다. 그러나 리듬 분석가 는 가시화된 현재로부터 그 이면에 있는 현전(présence)의 차원, 곧 실재의 리듬을 드러낼 수 있다.28)그렇기에 개개인 스스로가 도시의 권리를 주장 하며, 개개인의 실천적 차원을 통해 정치적이고 관료적인 공간에 저항하며 공간적 실천이 이루어지는 체험된 공간(lived space)을 생산해야 될 것이다.

이러한 공간에서는 예술과 문학의 창조적 상상력으로서의 접근이 가능하 다. 기존의 공간이 동질성을 추구하면서 안정되고자 하는 반면, 저항과 전복 을 통해 일상의 소외를 극복하는 이러한 능동적 주체의 공간은 차이점을 강조함으로써만이 존재감을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에 사회적 실천의 요소들 과 계기들을 결집시킨다.29)일상의 삶과 생활 세계에서 자신들의 삶을 타자

27) 앙리 르페브르, 뺷현대세계의 일상성뺸, op. cit., pp.427~428.

28) Henri Lefevre, Éléments de rythmanalyse, Paris : Syllepse,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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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공유하면서 공간을 ‘전유’하는 공공 공간은 사람들의 적극적인 공간적 실천과 적극적인 의견 개진을 통해서 획득해갈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리옹 시 내에 유지되고 있는 카페 필로(Café Philo)는 정치, 철학, 사회학의 다양한 전문 분야를 초청하면서 시민들 스스로의 자생적 세미나를 형성하고 있다.30)따라서 ‘관’의 문화예술정책에서 관람객(대중)은 중요한 대상이 된 다. 이들의 기호에 따라 문화예술정책이 중구난방 식으로 변화되기 때문이 다. 혹은 이들의 기호를 변화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정책을 펼치기도 한 다. 따라서 ‘보이는 것’, ‘들리는 것’, ‘평가되는 것’ 등의 너머를 분석하고 체험 할 수 있는 ‘심도 있는’ 관람객의 수준 역시 요구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도시는 인간의 존재를 이해하고, 인간의 사고와 경험을 이해하 는 데 중요한 의미를 지닐 수 있는 공간으로 나아갈 수 있다. 특히 연구자가 프랑스의 리옹 시를 선택했던 배경은 현대미술 비엔날레, 빛 축제, 미디어 아트 페스티벌 등의 다양한 정책을 시도하고 있는 광주시의 문화예술정책 과의 유사성에 있다. 하지만 시의 프로젝트 선정, 진행 과정과 평가 방법, 그리고 문화축제와 예술의 만남을 위해 어떻게 예술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지에 대한 고민은 상당한 차이가 엿보인다. 물론 리옹과 광주시의 재정적 수준을 비교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주와 리옹의 유사 전략 프로 그램들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 평가는 정당한 것인가? 재정 보완 을 위한 ‘지속적인’ 증축은 어떻게 해왔는가? 각 도시의 재정의 수준에 따 른 문화예술정책에 대한 평가에 대한 세부적인 논의를 뒤로 한 채, 필자가 주목했던 점은 바로 예술의 자율성 보장과 시행에 따른 ‘관’의 개입문제에

29) 앙리 르페브르, 뺷현대세계의 일상성뺸, op. cit., p.106.

30) 작은 커피 가게에서 주인은 한 달 혹은 두 달에 한 번 정도 자신의 공간을 제공한다.

참여자(토론자)들은 일반 시민이며, 연설자는 전문인들 - 철학자, 예술가, 미술사학자, 사회학자 등 - 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임대료 없이 자체적으로 음료 및 음식 준 비 등을 참고자들 스스로가 조금씩 준비하면서 제시된 주제를 토론한다. 각 구 마다 다양한 인문학적 성격의 카페 필로가 유지되고 있다. 행정적 지원(종종 받는 경우도 있 다)없이 시민들 스스로가 토론의 공간을 형성해 나가기도 한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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