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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후 구성적 진리와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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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S. 지젝의 헤겔 해석을 기초로

권 정 임*

1)

Ⅰ. 서론

Ⅱ. S. 지젝의 사후 구성 이론

Ⅲ. 헤겔 사유에서 진리의 사후 구성적 성격

Ⅳ. 진리의 사후 구성으로서 예술

Ⅴ. 결론: 현대예술의 진리 구성

Ⅰ. 서론

본 연구는 오늘날 절대적 동일성의 철학자로 포스트모더니즘의 주된 비판 대상이 되고 있는 헤겔의 사유에서 진리 규정을 새로이 고찰하고, 이와 연관하여 헤겔 예술철학에서 논의된 근대 이후 가능한 예술의 의미와 기능이 무엇인지를 제시하고자 한다. 이러함에 있어 본 연구는 통상 논리학과 엔치클로페디를 기초로 언급되는 ‘절대적 동일성’이라는 논리적 당위성 내지 ‘이념’으로서의 진리 규정의 측면보다 헤겔 변증법의 과정적 특성과 반성 및 통찰의 측면에 주목하며,

* 강원대학교 교수

* DOI http://dx.doi.org/10.17527/JASA.58.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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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현상학에서 다뤄지는 지의 자기검증의 준거로서의 진리, 대립과 모순을 반성하고 통찰하는 주체의 의식 운동 속에서 부정성의 원리를 통해 구성되는 것 으로서의 진리 규정을 도출하는 데 주안점을 둔다.

논리학과 엔치클로페디는 헤겔이 자신의 철학을 체계화 하고, 절대지의 학 (Wissenschaft des absoluten Wissens)으로서 철학의 성격을 담보하려고 했던 저서이다. 그런 만큼 이 저서들에서 헤겔은 존재와 본질, 이 두 계기의 통합으로서 개념을 규정하고 하나의 대상은 “개념과의 동일성 속에서만 진리를 간직할 수 있다”

1) 보며, “내용의 자기 자신과의 일치”, “개념과 객관성의 절대적 통일”2) 등으로 진리를 규정한다. 이러한 헤겔의 사변적 진리론을 권대중은 종래의 ‘사물과 지성의 일치’를 기준으로 하는 “진리대응론”과 구분하며 “진리정합론”이라고 명한다.

정합성이란 “무모순성” 혹은 “내적인 모순 내지 자기모순으로부터 벗어난 것”을 말하며, ‘진리정합론’은 정합성을 “언명된 것의 외적인 형식에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용 내지 범주 그 자체에 부여”하는 것을 뜻한다.3)

이러한 헤겔의 진리정합론은 몇 가지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이에 대한 논증은 매우 복잡하나 절대적 동일성으로서의 진리 규정이 수반하는 문제를 확인 하는 동시에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기 때문에 여기서 불충분 하나마 선행연구의 논지를 짚어 보면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먼저, 절대 이념과 참된 사물의 관계에서 “개념에 일치하는 현세적 존재자들이” “절대이념의 ‘닮은 꼴’일뿐 ‘합동’이 되지” 못하는 문제이다. 이 문제는 “절대이념에서 이루어지는 개념과 실재성의 일치는 완전한 것인 반면, 참된 사물들에서의 그 일치는 불완전

1) G. W. F. Hegel, Wissenschaft der Logik, zweiter Band: Die subjektive Logik (1816), hg. F. Hogemann und W. Jaeschke (Hamburg: Felix Meiner 1981); 대논리 학 (Ⅲ) - 개념론, 임석진 옮김 (지학사 1982), p. 43.

2) G. W. F. Hegel, Enzyklopädie der phiolosophischen Wissenschaften Ⅰ. Werke Bd.

8, hg. E. Modelhauer und K. M. Michel (Frankfurt a.M.: Suhrkamp 1986), p. 86, p.

367.

3) 권대중, 「관념론적 정합론으로서의 헤겔의 진리관 - 전통적 대응론과의 관계를 중심 으로」, 헤겔연구 17집 (2005), pp. 47-80, p. 53, p. 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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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유한하다”는 것, 즉 “후자의 영역은 여전히 어떤 의미에서의 모순을 품고 있다는 것”에 기인한다.4) 두 번째는 “절대 이념으로서의 진리 존재의 증명”의 문제이다. 헤겔 철학에 절대이념의 외화나 이행에 관한 구조와 논의가 부재하여

“이론지상주의”에 이른다는 비난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문제는 개념과 대상의 무모순적, 절대적 동일성이라는 헤겔의 사변적 진리 규정은 순수 논리학 내에서만 가능하다는 문제와 연관된다. 세 번째는 헤겔이 “논리학을 ‘그 어떤 규정도 주어지지 않은 순수 존재’에서 시작함으로써 해결하고자 한, 체계의 ‘출발 물음(Anfangsfrage)’과 ‘종결물음(Abschlussfrage)’의 불만족스러운 처리 방식”이 라는 것이다. 모든 모순이 제거된 마지막 범주인 절대적 동일성으로서의 절대 이념이 논리학의 영역에만 머물러서는 안 되고 자신의 실재성을 획득하여 현실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실재철학적 대응물을 지녀야 한다고 할 때”, 헤겔이 제시하는

“그 대응물”이 “실재철학의 최종범주”인 철학이지만 “절대이념의 완전한 무모순성과 철학의 무모순성” 사이에는 “부조화”가 있다는 것이다.5)

이러한 문제점은 헤겔 논리학의 결여점이기도 하고, 특히 절대적 동일성 개념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주된 비판점이기도 하다. 주지하다시피 포스트모더니즘은 하나의 기표의 특성은 그 자체 내 있지 않고 다른 기표와의 차이에서 생성된다는 소쉬르의 기호론에 기초한 구조주의를 바탕으로 하지만 나아가 소쉬르의 고전적 기호론인 기의와 기표의 동일성을 부정하고 양자 간의 지속적인 불일치성과 관계 구조(Context)의 변화를 강조하며 오늘날의 문화와 이미지, 예술의 특성을 논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의 견해에 따르면 진리는 기의와 기표, 내용과 형식, 인식 주관과 객관의 동일성이 아님은 물론, 의미가 확정된 것이 아니며 오히려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새로이 발생하는 것이 된다. 이러한 사유는 데리다(J.

Derrida, 1930-2004)와 들뢰즈(G. Deleuze, 1925-1995) 철학에서 두드러지며, 라캉 (Jacques-Marie-Émile Lacan, 1901-1981)은 더 근본적으로 주체의 인식 주관으로

4) 권대중, 「관념론적 정합론으로서의 헤겔의 진리관」, p. 74, p. 75. 이에 대해 권대중은 전자를 ‘거시적 진리’, 후자를 ‘미시적 진리’로 구분하여 부를 것을 제안한다.

5) 권대중, 「관념론적 정합론으로서의 헤겔의 진리관」, p. 75, p. 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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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의 지위 자체를 전도시킨다. 이와 같은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자들은 모더니즘의 동일성 사유의 대표자로서 헤겔을 비판한다.

‘차이(différence)’와 ‘차연(différance)’ 개념을 중심으로 들뢰즈와 데리다가 헤겔을 비판하는 주된 논점은 헤겔의 정-반-합으로 진행되는 변증법이 결국 의식의 자기동일성에 이르게 하는 것이며, 그 과정에서 차이의 다양한 특성을 오롯이 반영하지 못하고 사장시킨다는 것이다.6) 이와 같은 들뢰즈와 데리다의 주장과 헤겔의 사유를 비교 분석하며 이들의 헤겔 비판을 반박한 연구들이 국내에서 진행된 바가 있다. 이 연구들은 포스트모더니즘의 헤겔 비판은 헤겔 철학에 대한 표면적 이해나 오인에 기인한다고 논박한다.7)

본 연구도 선행 연구들의 맥을 이어 헤겔에 대한 포스트모더니즘의 비판에 대응하여 진리와 이와 연관된 예술의 기능에 대한 헤겔 사유를 새로이 조명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 시도에서 중요한 것은 헤겔의 변증법이 진리를 향해 추동 해나가는 논리적 구조라고 할 때 헤겔이 의미하는 진리는 무엇이며, 변증법의 특 성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패쇄적인가 아니면 열린 구조인가 ― 이다. 이 문 제를 고찰하는 데 놓인 어려움이자 동시에 새로운 고찰의 가능근거가 되는 바는 헤겔이 정신현상학에서 서술하는 진리는 논리학이나 엔치클로페디와 다른 성격을 보인다는 점이다.

즉, 언급된 바와 같이 헤겔의 논리학과 엔치클로페디에는 절대적 동일 성에 대한 언급들이 분명히 있다. 또한 개념과 사물의 무모순적 일치 혹은 동일 6) G. Deleuze, 니체와 철학, 이경신 옮김 (민음사 2001), p. 276 f, 차이와 반복, 김상 환 옮김 (민음사 2004), p. 17 외, J. Derrida, 해체, 김보현 옮김 (문예출판사 1996), p. 137 외 참조.

7) 대표적으로 강순전은 헤겔을 “생성의 철학자”로 보며 관점의 차이일 뿐 “헤겔은 들뢰 즈가 말하는 차이의 철학자”이며, “헤겔은 들뢰즈가 하려는 작업을 개념적으로 표현하 고 있다”고 논박한다 (강순전, 「포스트구조주의의 헤겔 변증법비판에 대한 응답: 들뢰 즈의 헤겔 비판을 중심으로」, 이성백 외, 포스트구조주의의 헤겔 비판과 반비판 [이 학사 2006], pp. 65-94, p. 90, p. 76 p. 84). 데리다에 대한 논박은 안재오, 「차연과 지 양: 데리다와 헤겔의 철학적 방법론」, 이성백 외, 포스트구조주의의 헤겔 비판과 반 비판, pp. 299-297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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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은 ‘절대이념(absolute Idee)’으로 규정되는데, 이 “절대이념에서 이루어지는 개념과 실재성의 합일은 오로지 논리적 서술의 지평에서 본 것”이며, “오로지 순수한 구조적 규정일 뿐”이다.8) 따라서 절대적 동일성으로서의 진리는 단지 규범적인 것, 당위적인 것이라고 할 때 현실에서 진리는 어떤 모습이며, 어떻게 작용하는가의 해명이 필요하다. 따라서 본 연구는 헤겔 사유에서 현실 속에서 작 용하는 진리의 성격을 논리적으로 규명하는 동시에, 절대이념이 구체적인 실존을 획득하는 영역인 예술에서 진리가 어떻게 반영되는지를 논구하고자 한다.

필자의 견해로는 논리학에서 전개되는 변증법의 사유는 궁극적으로 동일 성이라는 진리의 이념을 추구하고 있지만, 정신현상학에서는 ‘지(Wissen)’의 검증과정에서 생성되는 진리의 측면이 강조된다. 즉, 헤겔이 논리학에서는 규범적 진리, 정합적 진리의 형태를 제시했다면, 정신현상학에서는 현실에서 발전하는 지의 검증적 진리를 말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는데, 특히 이 진리는 검증의 과정에서 생성됨으로 ‘사후적으로 구성되는’ 성격을 지닌 것으로 추론할 수 있다.

이에 따라 본 연구는 현실에서 자기 검증을 통해 추동하는 진리의 사후 구성적 성격을 부각시키고자 하며, 이러한 관점을 지지할 수 있는 논거를 S. 지젝(Slavoj Žižek, 1949- )의 ‘사후 구성(nachträgliche Konstitution)’ 이론에서 가져오고자 한다.

주지하다시피 S. 지젝은 J. 라캉의 연구자로 라캉의 정신분석학에서 헤겔 철학적 기초를 발견하는 동시에, 라캉의 정신분석학적 사유와 개념들을 통해 헤겔 철학을 재해석함으로써 두 사상가에게서 정치적 행위 주체의 잠세력을 확보하고자 한다.9) 지젝은 이러한 시도를 헤겔 변증법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통해 수행한다.

지젝은 헤겔의 변증법을 모순과 차이를 해소하고 화해의 종합에 이르게 하는 것이

8) 권대중, 「관념론적 정합론으로서의 헤겔의 진리관」, p. 74. 이와 같이 논리학에서 제시 되는 “헤겔의 진리관은 하나의 규범적인(normativ) 성격을 지니게 된다” (p. 67).

9) 지젝은 한편으로 라캉을 포스트모더니즘과 구분하고자 하며, 다른 한편으로 헤겔을 라 캉을 통해 재해석하며 “불가능성을 통해서 실재를 건드리며”, 부정성을 통해 오늘날 행위하는 정치적 주체를 가능하게 하는 철학자로 높이 평가한다 (S. 지젝, 부정적인 것과 함께 머물기: 칸트, 헤겔, 그리고 이데올로기 비판, 이성민 옮김 [도서출판b 2007], p. 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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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라 대립과 모순의 화해불가능성을 통찰하며 대립과 간극을 강화하는 부정성의 원리로 해석한다. 지젝은 이 부정성을 ‘자기관계적 부정성(die auf sich beziehende Negativität)’으로 규명하며 이를 주체의 본질로 본다. 그리고 모순과 대립에 대한 주체의 통찰을 절대적인 것, 그리고 진리로 재규정한다. 그러함에 있어 지젝은 이러한 주체와 진리의 특성을 ‘사후 구성’ 이론을 통해 서술한다.

지젝의 ‘사후 구성’ 이론은 라캉 정신분석학의 ‘사후 작용(après coup)’ 논리에 기초한다.10) 이 논리는 “한 문장의 의미는 과거에서 현재로의 순차적인 흐름이 아니라 최종적인 구두점 찍기에 의해서 거꾸로 소급적으로 부여된다는 것”을 말 한다. 화자가 방점을 찍음으로써 비로소 문장의 의미가 분명해지며, 주체도 이러한 시니피앙 연쇄를 통해 “사후적으로 구성”된다는 것이다.11) 정신분석에서는 분석 가가 분석자(피분석가)의 증상들을 분석함에 있어 현재 결과의 시점에서 과거의 경험들을 외상적 징후들(trauma)로 구성하고 이 징후들을 분석자에게 의식화하게 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지젝은 이러한 ‘사후 작용’을 대상 이해와 사유의 특성으로 정식화 하며, 헤겔 철학에서의 진리도 이와 같이 결과 혹은 현재의 관점에서 ‘사 후적으로’, ‘소급적으로’ 구성되는 것으로 해석한다. 이를 위해 지젝은 한편으로 헤겔

논리학의 본질론을 중심으로 변증법적 구조의 ‘부정성’의 특성을 강조하고, 다른 한편 ‘부정성’을 근간으로 하는, 그 자체는 ‘텅 빔’, ‘무’로서 사후적으로만 그 존재와 의미가 구성되는 것으로 주체 개념과 진리 개념을 재해석한다.12)

이러한 지젝의 헤겔 해석은 헤겔 철학을 포스트모더니즘의 비판으로부터 구제하여 철학적으로나 정치적으로 활성화한다는 점은 적극 환영받을 것이나, 반면 그의 헤겔 해석이 매우 독창적이기 때문에 문제점도 지적받는다. 대표적으로 나종석의 연구가 지젝의 헤겔 해석의 불충분성을 지적하고 있으며,13) 김현의 10) Jaques Lacan, Écrits (Paris: Seuil 1966), p. 256, p. 684, p. 717, p. 808 (Effect de

rétroversion), p. 839 (après-coup).

11) 김석, 에크리. 라캉으로 이끄는 마법의 문자들 (살림 2007), p. 195, p. 197.

12) 지젝의 헤겔 논리학과 변증법에 관한 해석은 Ⅱ장 참조.

13) 나종석, 「슬라보예 지젝의 헤겔 변증법에 대한 비판. 구체적 보편성과 급진 민주주의 비판을 중심으로」, 사회와 철학 27집 (2014. 4), pp. 207-238. 나종석은 지젝의 헤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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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도 지젝의 헤겔 해석이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헤겔 철학 전체를 아우를 수 없다는 문제를 명확히 한다.14)

본 연구에서는 지젝의 헤겔 해석의 타당성 여부를 논하기보다는 헤겔 해석의 하나의 새로운 관점으로 수용하며, 특히 그의 ‘사후 구성’ 이론을 헤겔 사유에서 진리와 예술의 의미를 재규명하는 데 방법론으로 도입한다. 지젝의 관점과 본 연구의 관점이 일반적 헤겔 이해방식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해명하 고자 하는 헤겔 사유의 본질도 사후적으로 구성될 수밖에 없지 않을까. 또한 폴 드 만(Paul de Man, 1919-1983)이 독서의 알레고리에서 주장하듯, 텍스트에 대한 독해는 언제나 오독일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러한 한계와 오독의 위험 때문에 텍스트를 새로이 읽기를 포기해서는 안 될 것이다. 오히려 끊임없는 오독들, 실수들을 통해 텍스트는 숨겨져 있던 의미들을 드러낼 것이다.

이러한 취지에서 수행되는 본 연구의 논점은 다음과 같다. 1. 지젝의 사후 구성 이론과 이를 바탕으로 한 헤겔 해석의 논리를 살펴본다. 2. 지젝의 헤겔 해석에 의거하여 진리의 사후 구성적 특성을 고찰하되 헤겔의 텍스트에서 이러한 해석의 가능전거들을 제시한다. 3. 헤겔의 예술 규정을 사후 구성적 진리와 연관 하여 규명한다. 이 규명은 ‘예술의 과거성’ 이후 예술의 의미와 역할에 대한 헤겔의 사유를 새로운 관점에서 조명하는 것으로, 예술 또한 진리를 사후적으로 구성하는 것임을 보여줄 것이다. 4. 마지막 결론부에서는 오늘날 예술의 진리 구성적 기능과 의미를 고찰하며 헤겔 예술철학의 생동적 의미를 찾는 동시에 현시대 예술의 방향을 제시해 본다.

해석을 ‘창조적 오독’으로 보며 독창적 해석의 노력을 높이 평가하지만, 헤겔의 구체 적 보편성에 대한 지젝의 해석이 정치적 지향의 차이에 심각한 문제를 낳는다는 점을 지적한다.

14) 김현, 「공백으로서의 부정성 - 지젝의 헤겔 해석을 중심으로」, 헤겔연구 25집 (2009), pp. 255-288, p. 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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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S. 지젝의 사후 구성 이론

슬라보예 지젝의 헤겔 철학 해석은 라캉의 정신분석학 이론에 기초한다.

라캉은 존재의 구조를 상상계, 상징계, 실재계로 나눈다. 상상계에서는 어린아이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진짜 모습이라고 상상하는 것과 같은 단계(거울단계) 이며, 상징계는 어떤 체계나 질서가 서로의 차이에 의해 구성된 세계이며 끊임없 이 변화하는 언어를 통해 주체가 자신을 나타내는 단계이다. 그러나 이 때 주체 는 언어를 통해 온전히 표현되지 못하고 은폐된 채 남게 되며, 권력과 이데올로 기로 구성된 사회의 질서체계 속에서 타자의 욕망을 자신의 욕망으로 알고 추구 하게 된다. 이렇게 언어적 기표로 나타나지 못하고 은폐된 채 남은 소외된 주체(대 상a, 언표되지 않은 잔여물) 뿐 아니라 상징적 질서에 포함되지 않는 것들, 언어 기호로 표현되지 못한 채 남아있는 모든 것은 표현 불가능한 것인 실재로서 실재 계에 속하는 것이 된다.15)

지젝은 라캉의 이러한 존재론을 정치적 현실에 대응하며 이데올로기의 구조를 밝히고 이를 파괴하고 혁명을 수행할 수 있는 주체를 요청하며 그러한 주체의 가능성을 헤겔 철학에서 찾는다. 이러함에 있어 지젝은 “헤겔의 변증법과 라캉의

‘기표논리’는 동일한 모체의 두 판본”이라고 본다.16) 이에 따라 지젝은 헤겔의 변증법을 라캉 정신분석학적 구조로 재해석하는데, 주로 모순, 반성, 부정성, 주체, 구체적 보편성 등의 개념을 새로이 분석한다.17) 이 장에서는 의미 및 진리를 ‘사후

15) 라캉의 상징계와 실재계의 특성과 관계에 대해서는 홍준기, 「라캉의 성적 주체 개념 - 세미나 제20권: 앙코르의 성 구분 공식을 중심으로」, 현상학과 현대철학 15집 (2000, 봄여름 호), pp. 116-151 참조.

16) S. 지젝,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알지 못하나이다: 정치적 요인으로서의 향락, 박 정수 옮김 (인간사랑 2004), p. 21.

17) 지젝의 헤겔 해석은 여러 권에 반복적으로 다뤄지나 체계적 서술이 아니라 논점을 파 악하는 것이 쉽지 않다. 지젝이 헤겔 철학을 재해석하고 있는 주요 저서는 위 저서를 포함하여 다음과 같다: The sublime object of ideology (London/New York: Verso 1989);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 이수련 옮김 (인간사랑 2002), For They K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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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의 산물로 규정하는 것과 연관되는 논의들을 중심으로 지젝의 사유를 고찰 한다.

‘사후 구성(nachträgliche Konstitution)’이란 ‘소급적’ 구성으로도 표현되는데, 라캉의 정신분석학의 용어에서 비롯된 개념이다. 원래 명칭은 “사후 작용(après coup)”으로,18) 현재에서부터 시간을 소급하여 과거에 있었던 경험을 재활성화 함 으로써 그 경험이 “외상적이었던 것”으로 드러나게 하는 정신분석의 과정을 뜻한다.

그러나 이 개념은 단순히 “과거가 현재를 결정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고, 보다 중요한 것은 “과거는 현재에 의해 지나치게 결정되는 방식으로 현재를 결정”함으로

“의미는 항상 소급적으로 이해된다”는 것이다. 이는 마치 문장의 첫 부분이 문장의 끝에 가서야 확인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사후 작용의 관점에서는 목적론적인 것은 없으며, “불가피하게 보이는 것도 순수하게 우연한 형세”가 된다.19)

지젝은 이러한 ‘사후 작용’으로 의미와 진리가 생산된다고 본다. 지젝의 관점에 따르면 하나의 증상의 의미는 “과거의 숨겨진 깊이로부터 발굴되지” 않고,

“소급적으로 구성된다”. 또한 “분석은 진리를 생산”하며, “증상에 상징적인 좌표와 의미를 부여하는 의미화의 틀을 생산하는 것”이 된다.20) 이와 마찬가지로 진리도 Not What They Do: Enjoyment As A Political Factor (London/New York: Verso 1991);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알지 못하나이다: 정치적 요인으로서의 향락, 박정 수 옮김 (인간사랑 2004), Tarrying with the negative: Kant, Hegel and the Critique of ideology (Durham: Duke University Press 1993); 부정적인 것과 함께 머물기: 칸 트, 헤겔, 그리고 이데올로기 비판, 이성민 옮김 (도서출판b 2007), The ticklish subject: the absent centre of political ontology (London/New York: Verso 1999); 까 다로운 주체: 정치적 존재론의 부재하는 중심, 이성민 옮김 (도서출판b 2005), Le plus sublime des hystériques. Hegel avec Lacan (Travaux Pratiques 2011); 가장 숭고한 히스테리환자: 라캉과 함께 한 헤겔, 주형일 옮김 (인간사랑 2013), Less than nothing: Hegel and the shadow of dialectical materialism (London: Verso 2012); 헤 겔 레스토랑: 헤겔과 변증법적 유물론의 그늘 (1-7장), 조형준 역 (새물결 2013).

18) 앞의 각주 10) 참조. 프로이트는 이를 “회고현상(Nachträglichkeit)”이라고 부른다.

19) 사라 케이, 슬라보예 지젝, 장현숙 옮김 (경성대출판부 2003), p. 236. 사라 케이는 지젝의 슬로베니아의 라깡에서 “각 독자는 ‘텍스트에 쓰여 있지 않지만 텍스트에 있는 것’을 고유한 관점에서 밝혀낸다”는 (p. 236) 인용을 통해 사후작용을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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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에 앞서는 “주체의 실수, 잘못, 오인이라고 지칭되는 것”을 통해서만 진리가 되는 것이다. 라캉식의 기호론적으로 표현하면 “의미효과는 기표에 대해 소급적”

이며, “항상 거꾸로 사후에(après coup) 창출된다”.21)

지젝은 라캉의 실재나 주체도 사후에 구성적으로 파악된다고 본다. 즉, 실재와 주체는 언표되지 않은 채 ― 기표에서 미끄러져 ― 남아있는 것이기 때문에 ‘텅 빔’, ‘공백’이라 불리지만, 바로 이 텅 빔과 공백을 통해 구성적으로 인지되고 드러 나는 것을 말한다 (도넛의 구멍이 도넛을 도넛이도록 하듯이). 지젝은 이러한 인식과 통찰을 하게 하는 것이 ‘부정성’인데, 이 부정성 개념을 헤겔의 변증법에서 도출하여 적용한다.

변증법은 헤겔의 논리학에서 존재와 본질을 거쳐 두 계기를 통합하는 개념의 반성적 운동 원리이다. 대립적인 것들의 통일과 화해를 통한 진보라는 일반적인 이해와 달리 지젝은 헤겔 변증법의 핵심을 “근본적인 적대, 혹은 화해불가능한 것 으로서의 적대와 불일치 및 이에 대한 통찰”에22) 있다고 본다. 논리학에서 전개 되는 변증법적 운동 구조를 살펴보면, 먼저 시작점인 존재는 그 자체로는 무규정 적임으로 존재에 대립되는 ‘무(Nichts)’와의 관계에서 자신을 부정적으로 ― 무가 아님으로 ― 규정한다. 이 규정은 타자(무)와의 관계에 의한 것으로, 제한적이며 규정적인 부정성이다. 다음 단계에서 존재는 무로 향하고, 무는 존재로 향하면서

‘생성’ 작용이 일어나며, 존재가 타자(무)와의 관계에서 이루어졌던 직접적인 부정을 자신과의 관계에서 다시 부정함으로써, 즉 ‘부정의 부정’을 통해 본질에 이른다.

20) S. 지젝,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 이수련 옮김 (인간사랑 2002), p. 104 (이하 이 데올로기로 약칭).

21) S. 지젝, 이데올로기, p. 109, p. 179, p. 179. 라캉의 언표논리에서도 존재의 의미는 기표에 언제나 미끄러진다. 의미는 고정되지 않고 계속되는 기표의 작용에 밀려날 뿐 이며 결과를 통해 소급적으로 구성된다. 또한 소급적으로 구성된 의미는 확정적이 아 니라 계속되는 기표(언표)활동에 의해 다시 새로이 구성된다.

22) 김현, 「공백으로서의 부정성」, p. 258. 지젝은 헤겔의 변증법이 상징적 질서의 완전한 조화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적대[실재]”에 관한 이론을 제공한다고 보며, 그 근거를 변증법의 부정성 원리에서 찾는다 (S. 지젝, 가장 숭고한 히스테리환자: 라캉과 함께 한 헤겔, p. 185 및 이데올로기, p. 89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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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따라 본질은 존재의 “자기 자신으로부터 자기 자신의 반발 혹은 자기 자신에 대한 무관심성이자 자기 자신에 대한 부정적 관계”로 규정된다.23) 이는 “존재의 고유한 부정성”이며 “존재의 무한한 운동”이다.24) 이러한 본질의 부정성은 “자기 관계적 부정”이며, “절대적 부정”으로 헤겔의 “본질 논리학의 내적 동력”이 된다.25)

지젝은 이러한 ‘자기 관계적 부정’은 긍정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 “부정을 근본화하는 것”이며, “차이와 틈새를 격화시키는”26) 역할을 한다고 본다. 즉, “부 정의 부정에서는 부정성이 자신의 파괴력을 모두 보존”한다는27) 것이다. 이와 함께 지젝은 “부정의 자기관계성 속에 내재된 불화 혹은 차이로서의 적대의 힘”을 강조하며, 변증법의 세 번째 단계를 대립적인 것이 동일성을 이루는 합의단계가 아니라, 오히려 구별과 “대립을 대립으로서 확인하고, 자기에게로 복귀하는” 두 개 항의 존립이라고 본다. 또한 부정의 ‘자기관계’는 ‘타자관계’에 의존하는 불안전성과 타자의존성에 의존함으로 ‘무’이자 ‘텅 빔’으로서만 표현될 수 있는 공허한 형식이 된다.28) 지젝은 “이와 같이 자기관계가 갖는 이 내용적 무, 공백을 자기의 본질로

23) G. W. F. Hegel, Wissenschaft der Logik Ⅱ, Werke Bd. 6, hg. E. Moldenhauer und K. M. Michel (Frankfurt a.M.: Suhrkamp 1986), p. 15.

24) G. W. F. Hegel, Wissenschaft der Logik Ⅱ, p. 14.

25) 김현, 「공백으로서의 부정성」, p. 258.

26) 김현, 「공백으로서의 부정성」, p. 263 f.

27) S. 지젝, 이데올로기, p. 298. 이러한 부정의 부정을 지젝은 헤겔 논리학의 본질론 내의 ‘규정적 반성(die bestimmende Reflexion)’의 특성으로 본다. 정립적 반성과 외적 반성과는 달리 규정적 반성은 “본질 자체가 현상의 자기-균열, 자기-분열에 불과하다 는” 것, 즉 “현상과 본질간의 균열은 현상 자체에 내재한 것”임을 깨닫는 반성으로 해 석한다. 이 규정적 반성의 특징은 “배가(倍加)” 운동인데, 본질이 현상과 다른 본질로 나타나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무효화하는 현상의 형태를 띠고 나타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p. 358). 예로, 신이 실제적인 것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을 어떤 특정 인물(그 리스도) 속에서 육화시켜야” (p. 385) 하는 원리를 보여주는 것이 헤겔의 “반성적 규 정”이라는 (p. 359) 것이다. 또한 S. 지젝, 부정적인 것과 함께 머물기, 4장: 이데올 로기 이론으로서의 헤겔의 ‘본질 논리학’ (pp. 241-312) 참조.

28) “공백으로서의 주체, 자기관계 맺기적인 부정성으로서의 없음은 바로 그것으로부터 모 든 새로운 형상이 출현하는 무(nihil) 자체이다. 다시 말해, 모든 변증법적 이행 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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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각하고 통찰하는 것이야말로 헤겔이 핵심으로 삼았던 절대지의 본질”이라고 주장한다.29)

지젝은 이러한 자기관계적 부정성은 동일성으로 향하지 않으며, 오히려 대립적인 간의 틈을 드러내는데, 주체를 이러한 틈과 같은 것으로 규정한다. 왜냐 하면 상징계 속에서 주체들은 타자관계성을 획득하고 이에 의존하지만, 스스로 형성하는 자기관계는 무이며 공허한 형식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주체는 자신의 텅 빔과 균열을 자각하고 통찰함으로써 사후적으로 진정한 행위하는 주체 30) 구성된다. 또한 주체는 실체 관계에서도 양자가 상호 분리되어 있거나 실체가

전도는 새로운 형상이 무로부터 출현하고, 소급적으로 자신의 필연성을 정립 또는 창 조하는 이행이다” (S. 지젝, 헤겔 레스토랑, p. 422 f.)

29) 김현, 「공백으로서의 부정성」, p. 263, 264. 지젝은 헤겔의 절대지는 “주관적 파악 자체 의 자기 지시적 순환의 무한성”이며 (S. 지젝,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알지 못 하 나이다, p. 30), “‘절대지’는 최종적으로, 모순을 모든 정체성의 내적 조건으로서 받아 들이는 주체적인 위치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본다 (S. 지젝, 이데올로기, p. 27). 또 한 지젝은 헤겔이 의미하는 ‘절대적인 것(절대자, das Absolute)’도 무모순적 동일성이 아니라 해소불가능한 모순과 대립을 자각하는 것이며, 반성 자체라고 본다 (S. 지젝,

까다로운 주체, p. 14 참조).

30) 라캉은 “주체의 욕망을 그 자체로 드러내는 것”을 진리라고 하며, 주체가 “언표 주 체”(분열된, 소외된 주체)와 “언술 행위의 주체”(욕망의 주체, 무의식의 주체)로 분열 된다고 본다 (김석, 에크리, p. 159, 160). 그는 전자에서 후자로의 ‘전이’하는 것을

“주체의 변증법”이라고 한다 (자크 알랭 밀레 편, 자크 라캉, 세미나 11: 정신분석의 네 가지 근본 개념, 맹정현/이수현 옮김 [새물결 2008], p. 366). 전자는 상징적 질서 계 내에 포섭되어 자신을 언어적으로 표현하지 못하고 소외된 주체, 자기관계적으로 는 텅 빔으로서의 주체이다. 후자는 그러한 소외 상태로부터 분리되고자 하는 주체이 며, 상징계와 실재계의 균열을 봉합하는 기능인 환상을 깨트리고자 행위하는 주체이 다. 지젝도 행위 주체가 되기를 촉구한다. 지젝의 라캉 해석에 관해서는 S. 지젝, How to Read Lacan (2005), How to Read 라캉, 박정수 옮김 (웅진 지식하우스 2007) 참조. 이 두 성격의 주체는 두 개의 다른 주체가 아니라 하나의 주체이지만 후 자는 전자의 텅 빔, 무를 통찰함으로써 사후적으로 구성되는 것이다. 주체의 이러한 통찰로 인해 “공백과 부재로서만 존재하는 실재계의 귀환”이 가능하며, 이러한 자각 적 주체를 지젝은 “실재의 응답”이라고 한다 (김현, 「공백으로서의 부정성」, p. 269.

또한 S. 지젝, 부정적인 것과 함께 머물기, pp. 301-307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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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진적으로 주체가 되는 것이 아니라, 원래 하나였던 실체가 자신 내의 공백으로서 내재하고 있는 주체를 인지함으로써 주체화된다. 즉, 사후적으로 주체로 구성된다.31) 지젝은 진리 역시 이와 동일한 방식으로 규정한다. 그는 거짓과 불충분을 경험한 후 앎이 진리에 점진적으로 다가간다고 이해한다면 이는 “앎과 진리 사이의 변증법”의 핵심을 놓치는 것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그렇게 이해한다면 진리는 “실 질적 실체처럼, 즉자처럼 구상된다”는 것이다 (SH, 184). 주체는 “구성적 구멍으 로서의 실질[실체]에 내적”이고 “이 텅 빔, 불가능함”인데, 지젝은 바로 이 “불가 능함 주위로 실질적 진리의 장”이 만들어진다고 본다. 주체와 실체는 ― 헤겔이 말했듯 ― 본래 같은 것이나 실체가 자신 내의 주체의 성격, 즉 자기관계의 공허 함과 텅 빔을 자각할 때 주체로 주체화되는데, 이와 마찬가지로 진리 자체의 장소도 “실수를 통해 구성”되며, 진리도 자각된 주체를 통해 새로이 구성되는 것 으로 서술된다 (SH, 188).32)

지젝은 또한 앎의 변화와 함께 “진리 자체가 변해야 한다”고 보며, “앎이 진리에 일치하지 않을 때 우리는 그것을 진리에 알맞게 만들 뿐만 아니라 양극을 변형시키기도 해야” 하는데, 왜냐하면 “진리에 대한 앎의 목표는 불충분하며, 앎의 결여는 항상 진리 자체 안의 어떤 결여를, 비-완수를” 보여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SH, 184).33) 지젝은 이러한 생각의 타당성을 헤겔의 논리학에서 존재가 본질로 이행하는 계기를 통해 설명한다. 즉, 존재가 본질로 이행할 때 규정불가함이자 무인 즉자적 존재의 이런 “불가능함의 실증화가 한 계기에서 그것의 ‘진리’로서의 다음 계기로 각각 이행되는” 것 내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 중요한다고 본다 (SH,

31) S. 지젝, 가장 숭고한 히스테리환자: 라캉과 함께 한 헤겔, p. 188 참조 (이하 본문 속에 SH와 쪽수로 표기). 지젝은 헤겔의 ‘절대주체’는 “자기 자신의 실체적인 전제들 을 스스로 상정하는 주체”이라고 한다 (S. 지젝, 이데올로기, p. 359).

32) D. J. 귄켈은 지젝이 의미하는 진리는 두 개의 시점을 분리하는 ‘틈(gap)’임을 강조한 다 (David J. Gũnkel, “Žižek and the Real Hegel”, in: International Journal of Zizek Studies, vol. 2, no. 3 [2008], pp. 1-28, p. 19).

33) 지젝은 “지식[지] 자체가 그 대상을 수정한다”고 하는데 (SH, 41), 이는 대상을 지속 적으로 재규정해나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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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 이는 앎[지]의 불충분함, 비완수가 반복적으로 순환된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지젝이 이와 같은 논리를 펼치는 이유는 현실을 어떻게 인식하고 행위 해야 하는가에 대한 그의 정치적 숙고와 연관된다. 그는 하나의 대상은 자신의 실존, 일관성 자체가 “비일치”에 기인하기 때문에 대상은 결코 자신의 개념에 일치할 수 없으며, “개념의 총체성이 근본적으로 전부가-아님(pas-tout)이다”고 (SH, 139, 140)34) 확신하며 현실 역시도 이와 동일한 구조라고 보기 때문이다. 지젝은 이러한 현실을 헤겔의 변증법에 내재된 것으로 보는 “수행적 특성”과 “진술적 특성”의 두 측면을 통해 대처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소급적 수행’이란 “문제의 상황이 이미 전에 주어졌다는 것을 사후에 확인”

하는 과정을 말하며 (SH, 40, cf. SH, 42), ‘진술적 특성’이란 주어진 분열과 모순을 장애물이 아니라 애초에 실존하지 않았던 것으로 명명하는 행위를 말한다 (SH, 43). 즉, 관점을 달리하여 본다는 것이다.35) 지젝은 이러한 헤겔의 변증법을 “기표적 논리”라고 보며, 변증법의 이러한 수행적 특성을 정신현상학의 ‘불행한 의식’에서 예시한다.36)

34) 또한 S. 지젝, 이데올로기, p. 27 참조: “헤겔적인 ‘화해’는 모든 현실이 개념 속에서

‘범논리적으로’ 지양되는 것이 아니라, 개념 그 자체는 […] ‘비-전체’라는 사실에 궁극 적으로 동의하는 것이다.” ‘전부가 아님(비전체)’은 라캉의 개념으로 상징계(세계)가 드 러나지 않는, 불가능한 영역인 실재를 포함하는 모순 상태임을 의미한다. 또한 성차에 서 상징적 거세가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은 사람은 비정상적 신경증 환자로 간주되며 비전체에 속하는 것이 된다.

35) 지젝은 헤겔 변증법의 두 개의 대립 요소는 “하나의 동일한 원소가 자신의 ‘대립규정’

속에서 자기 자신과 대면하는 것”으로, 이 이원성은 하나가 두 부분으로 나눠지는 것 이 아니라 “내부로부터 쪼개지는 분열”이며, “어떤 것[존재]과 아무것도 아님[무], 일 자와 그 것이 차지한 텅 빈 자리 사이의 분열”이라고 본다 (S. 지젝,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알지 못하나이다, p. 31). 즉, 헤겔 논리학의 시작인 존재와 무는 “서로 분 리된 두 개의 존재론적 실체가 아니라”, “무는 다른 관점에서 본 존재 자체”인 것이다 (p. 32). 그러므로 사태를 통찰할 때 관점의 이동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36) 그 예로 지젝은 초월적 신의 즉자로서 절대자와 절대자에게서 배재되어 분열의 고통 을 감내하는 유한한 의식이 어떻게 이 분열을 지양하게 되는가를 설명한다. 지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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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젝은 이와 같은 “헤겔의 수행적 행위(le performatif)”는 (SH, 46) 범논리 주의자라는 헤겔 비판이 잘못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며, 역사 속의 우연성도 소급적으로 필연적 요소로 구성됨으로 헤겔의 “사변철학”은 “본질의 개념 자체 안에 우연성을 포함시키는 절대적 우연의 개념을 인정하는 유일한 철학적 이론”

이라고 평가한다 (SH, 48).37) 이와 같은 지젝의 논리에 따를 때 “진리는 사후에 생기는 우발적 만남에서” 생성되는 것이 된다. 더불어 지젝은 “진리는 원칙들의 보편성의 수준에서 찾아야 할 것이 아니라 특수자의 우연성의 수준에서 찾아야 할 것”임을 강조하며38) (SH, 94) 구체적 삶의 현실에서 정치적 지배구조와 환영에 맞설 수 있는 진리의 구성을 요청한다.

이러한 분열의 지양은 상이한 두 개가 합치되는 방식이 아니라, “‘불행한 의식’이 이미 그 자체로 매개체, 매개의 장, 상반된 두 계기들의 단일성(unité)이라는 간단한 확인”

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본다 (SH, 43). 이는 절대자가 즉자적으로 주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의식 내의 대립적 계기의 하나라는 인식의 “수행적” 특성과 “변증법적 운동 안에서 분열을 결코 존재하지 않았던 것으로 장애물을 실존하지 않았던 것으로 이겨 내는 ‘진술적(constatif)’ 특성”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37) 지젝은 이와 마찬가지의 논리에서 헤겔의 목적론도 “소급적 효과로서의 필연성”을 띤 다고 주장한다 (SH, 52). 일반적으로 우연성이 필연성의 계기들이라든가, “필연성은 일련의 우연적 조건들을 통해 실현”되며 “우연성은 숨겨진 필연성의 한 형식”이라는 견해와 달리 (SH, 3), 지젝은 “실행/실현의 과정을 그것의 결과로부터 파악”한다. 즉,

“실행된 가능성으로부터 나온 실체적 결과는 그 자신이 자신의 전제된 조건들을 상정 하는 한” “필연적인 것처럼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결과로부터 그것의 조건 들[이] 결과 자체에 의해 상정된 것처럼” 나타나듯, 헤겔의 목적론도 소급적 효과로서 의 필연성을 띄며 “기표의 소급적 운동”으로 해석된다 (SH, 54)

38) 이러한 견해에서 지젝은 보편성은 “구체적 보편성”이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구체적 보편성’이란 특수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특수한 하위종들 가운데 그 자신을 포함 시키는” 보편성을 뜻한다 (S. 지젝, 까다로운 주체, p. 154. 그 외 p. 171, p. 163 참 조. 또한 S. 지젝, 헤겔 레스토랑, p. 645 이하 참조). 지젝의 ‘구체적 보편성’ 개념에 관한 논평은 나종석, 「슬라보예 지젝의 헤겔 변증법에 대한 비판. 구체적 보편성과 급 진 민주주의 비판을 중심으로」과 최일규, 「주체 개념과 구체적 보편성 - 헤겔과 지젝 의 구체적 보편성 개념을 중심으로」, 헤겔연구 40권 (2016), pp. 113-136. 참조. 또한 지젝이 기초로 하는 라캉의 ‘개별적인 진리(vérité particulière)’에 관해서는 조선령,  라캉과 미술 (경성대학교출판부 2011), pp. 148-152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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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증법의 이러한 특성을 통해 지젝이 강조하는 바는 우리는 “이미 실존하던 현실의 모습대로 현실에 대한 지식을 갖게” 되는 것이 아니라, “지식 자체가 그 대상을 수정하고 지식 행위를 통해 대상에게 지식의 대상으로 갖는 형식을 제공”

한다는 것이다 (SH, 41). 지젝은 이러한 변증법적 사유를 통해 현실의 문제(상징적 질서의 구조화 혹은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타파할 부정성과 함께 하는 주체와 진리를 구성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살펴본 바의 지젝의 사후 구성 이론과 이를 바탕으로 새로이 해석한 헤겔의 변증법의 특성 및 주체와 지의 활동의 구성적 성격은 오늘날 삶의 현실에서 진리란 무엇인가에 대한 새로운 고찰을 하도록 해준다는 데 의미가 있다. 지젝과 더불어 생각하다면 진리는 고정적이고, 실증적이고, 단순히 주어와 술어의 합치가 아니라 모순과 대립, 틈을 포함하며, 부정성과 더불어 그러한 모순과 대립, 균열을 통찰하는 주체에 의해 반복적으로 재규정되고 생성되는 것이라고 하겠다. 다음 장에서 살펴볼 바와 같이 우리는 이러한 진리의 특성을 헤겔 사유 자체에서 재발견할 수 있다.

Ⅲ. 헤겔 사유에서 진리의 사후 구성적 성격

논리학에서 헤겔은 개념이 절대적 동일성으로서의 절대지에 이르는 원리를 변증법적 반성 운동을 통해 체계적으로 서술한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러한 절대지는 절대이념으로서 ‘순수 논리학’의 영역에서만 가능한 하나의 ‘규정적 이념’에 불과하다. 지젝은 이러한 절대지를 동일성이 아니라 오히려 개념에 내재된 비-전체, 모순과 적대를 통찰하는 지(Wissen)로 재해석하며 헤겔 논리학과 변증 법에 활기를 불어 넣었다. 이 장에서는 헤겔이 의미한 진리가 무엇인지 고찰함에 있어 사유의 최종 지점에 도달한 결과로서 진리 개념보다는 지젝이 말했듯 “변증 법적 과정의 계기적 진리”에 (SH, 35) 주안점을 두고 이에 대해 논하고자 한다.

‘계기적 진리’란 진리가 의식과정에 외재하는 초월적인 것 혹은 절차의 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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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에 다다르게 되는 실체적인 것이 아니라 “그것의 형식 자체에, 다시 말해 형식적 절차 안에, 의식이 그 계기에 도달하는 길 안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SH, 35).39) 더욱이 이 진리는 의식의 사후 구성에 의해 새로이 생성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생성된다’ 함은 없던 것이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사태가 이전에 있었으나 반성에 의한 사후 구성을 통해 새로이 고찰됨으로써 의미가 새로이 부여되는 것을 뜻한다. 다음에서는 변증법의 이러한 계기적 진리의 논거를 먼저 논리학에서 도출하고, 그 구체적 특성들은 정신현상학을 중심으로 고찰한다.

지젝이 주목했듯, 헤겔의 논리학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본질에 관한 논리라고 할 수 있다. 본질론은 존재가 타자관계적 규정을 벗어나 자기관계적 규정으로 이행한 단계이며, 타자관계에서의 규정을 부정하고 자신으로 복귀하면서 본질이 되는 변증법적 과정을 보여준다.40) 이러함에서 중요한 것은 ‘가상(Schein)’과

‘부정성(Negativität)’, 그리고 ‘반성(Reflexion)’ 개념이다.

가상은 말 그대로 가현(假現)하는 현상을 가리킨다. 논리학에서는 존재가 본질로 이행하는 하나의 계기로 논의되며, 가상을 통해 부정성과 반성 운동의 원리가 규명되기 때문에 중요한 개념이다. 헤겔은 가상을 “어떤 타자, 즉 자기의 부정 속에 어떤 존재를 지니고 있는 그러한 부정자”로 규정한다.41) 또한 가상은 39) 지젝은 헤겔이 의미하는 진리는 우리의 생각과 그 대상(사물)이 일치하는 것이 아니 라 우리의 생각의 형식으로서의 개념과 대상의 일치인데, 대상의 실존과 일관성 자체 가 그것의 개념과의 “비일치에서 오기 때문”에 이 일치는 필연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고 본다 (SH, 35).

40) Z. 쓔옹은 존재, 본질, 개념에 관한 논리학을 각각 “오성적 논리학”, “변증법적 논리 학”, “사변적 논리학”으로 구분하고 사변적 논리학은 앞의 두 논리학을 자신의 계기로 포함한다고 보며 헤겔 논리학 전체를 상세히 분석한다 (Zhili Xiong, Hegels Begriff der “eigentlichen Metaphysik”. Systematische Untersuchungen zum Metaphysikverständnis Hegels (Heidelberger Dissertation, München: Wilhelm Fink 2019), p. 20. 이러한 헤겔의 변증법의 특성에 관해서는 편집부 역음, 변증법 입문, (이삭 1983, 1985 6쇄), pp. 159-192 참조.

41) G. W .F. Hegel, Wissenschaft der Logik, zweiter Band: Die objektive Logik (1812/13), hg. F. Hogemann und W. Jaeschke (Hamburg: Felix Meiner 1978); 대 논리학 (Ⅱ) - 본질론, 임석진 옮김 (지학사 1982), p. 29 (이하 WL Ⅱ와 국역본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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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자신에게 있어서 이미 지양된, 공허할 수밖에 없는 비자립성”, 즉 “자체 내로 복귀하는 부정적인 것”, “자기 자체에 있어서 비자립적인 것이 되어 있는 그러한 비자립적인 것”으로 특성지워진다 (WL Ⅱ, 29). 이러한 규정은 가상이 존재의 규정성을 탈피하고자 하지만 그 규정성에 의존해서만 존립할 수 있는 이중적 성격을 말한다. 이와 같이 가상은 존재에 대해 “부정적인 것”이며 본질 속에 존재의 잔여물로 간직되어 있는 것이다.42)

이러한 가상은 자기에 관계하는 “부정의 부정”이며,43) “자기의 부정태 속에 서만 스스로의 존재를 지니는 그러한 것”이 된다 (WL Ⅱ, 31). 가상에서 보이는 부정성은 “자기에 대한 스스로의 관계”이지만 “자기에 대한 부정적인 관계이며 나가서는 자기 자신을 밀쳐내는 부정의 작용”이다 (WL Ⅱ, 29).44) 여기서 중요한 것은 본질이 이러한 가상을 “자체 내에서 무한의 운동으로서 자기 자신 속에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본질에 대한 직접적 규정성을 지양하는 길로서, 본질이 “스스로 자기운동”을 펼쳐나가는 것을 말하는데, 이것은 다름 아닌 “반성”

운동이 된다 (WL Ⅱ, 31).

반성은 “자체 내로 복귀함으로써 스스로 직접성과 소원해진 가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반성은 “본질의 직접성을 부정성으로 규정”하고 “본질의 부정성을 직접성으로 규정”하는 반복적인 “무한의 운동”의 특성을 보인다 (WL Ⅱ, 31). 즉, 반성은 자신의 부정성을 부정하는 동시에 계속하여 “그 자신을 또 다시 규정”해

수로 표시).

42) 가상은 본질이 가현하는 것임으로 본질 자체라고 할 수 있지만, 이 상태의 본질은 “다 만 그 자신의 계기를 이루는 것으로 그치는 피규정 속에 있는 본질일 뿐”이다 (WL

Ⅱ, 30). 본질을 구성하는 요소인 존재의 가상적 성격에 관해서는 미하엘 토이니센,  존재와 가상. 헤겔 논리학의 비판적 기능, 나종석 옮김 (용의 숲 2008) 참조.

43) ‘부정의 부정’이란 가상이 존재의 타자(무)와의 관계에서 규정된 ‘부정’을 자기와의 관 계에서 다시 ‘부정’하는 것을 말한다.

44) 헤겔은 이와 같은 규정작용은 “직접적으로 규정한다는 점에서 오직 자기 자신의 지 양”을 뜻하는 것이며, “자체 내로의 복귀를 의미”하기 때문에 “절대적 부정성”이라고 한다. 더불어 본질은 “절대적 부정성과 직접성의 동일자적 통일(die identische Einheit der absoluten Negativität und die Unmittelbarkeit)”로 규정된다 (WL Ⅱ,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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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는 것이다 (WL Ⅱ, 32).45) 헤겔은 이러한 반성을 “자체 내에 머물러 있는 생성과 이행의 운동”이라고 서술한다 (WL Ⅱ, 31). 특히 “규정적 반성 (bestimmende Reflexion)”은 정립적 반성과 외적 반성과 달리, “전제를 지양하면 서도” 동시에 “새로운 전제를 가하는” 생산적 활동을 하는 반성으로, 변증법의 계기적 진리를 설명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WL Ⅱ, 32).46)

하지만 논리학에서는 반성 개념보다는 궁극적으로 이를 통해 이루어지는 존재와 본질의 통합으로서의 ‘개념’에 이르는 것이 주된 논점이 된다. 더불어 논 리학에서는 이와 같이 대상이 개념 ― 각 계기 내에서 구별된 모든 규정성을 포괄하는 ― 과 동일성을 이루는 것이 ‘절대적 진리’로 강조된다. 또한 이 진리는 일반 학이나 철학에서가 아니라 “논리학”, 특히 “형식적인 학으로서의 논리학”에 서만 가능한 것으로 서술된다 (WL Ⅱ, 44). 비록 헤겔이 논리학의 말미에 개념이

“그의 형식적 추상성 속에서 스스로가 불완전하다는 것을 밝히고 난 연후에”

“실재성”으로 이행해야 한다는 것을 시사하지만 (WL Ⅱ, 43), 논리학에서의 진리는 규범적인(normativ) 것, 하나의 당위적 이념(Idee)으로 머물고 만다는 한계가 있다. 이와 달리 정신현상학에는 변증법의 계기적 진리의 특성이 훨씬 풍부하게 드러나며, 현실적이고 생동적인 진리의 사후 구성적 성격을 적절히 논할 수 있다.47)

헤겔은 정신현상학에서 정신이 의식(감각적 확신, 지각, 힘과 오성), 자기 의식, 이성, 정신(참된 정신: 인륜성, 스스로 소외된 정신, 도야: 자기 자신에 확신 적인 정신, 도덕), 종교(자연종교, 예술종교, 계시종교), 절대지의 단계를 거쳐 발전하는 과정을 서술한다. 각 단계는 지가 생성되는 단계로, 생성되는 지(현상

45) 그러므로 가상으로서의 본질은 그 자체 “순수한 부정성”이며, “이러한 부정의 행위 속 에 깃든 스스로의 부정성 그 자체를 부정하는 것”으로 규정된다 (WL Ⅱ, 32).

46) 헤겔 변증법에 관한 다양한 논의들에 관해서는 Rolf-Peter Horstmann (hg.), Seminar:

Dialektik in der Philosophie Hegels (Frankfurt a.M.: Suhrkamp 1978)와 헤겔연구

31집: 헤겔 대논리학 200년 (2012) 참조.

47) 지젝의 관점에 따르면 정신현상학은 “현상 자체가 진리를 구성한다”는 것과 “진리 는 현상함으로써 비로소 (사후적으로) 진리로” 된다는 것을 보여 준다 (김현강, 슬라 보예 지젝 [이룸 2009], p. 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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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는 절대지에서 마침내 ‘자기 자신을 아는 지(sich wissendes Wissen)’가 된다.48) 그러므로 정신현상학은 생성되는 지에 관한 학이기도 하고 이를 고찰하는 자기 의식에 관한 학이기도 하다.

의식은 대상과의 관계를 통해 자신에 관해 알아 가는데, 그 과정에서 의식이 각 단계에서 얻게 되는 ‘확실성(Gewissenheit)’은 궁극적 진리로 인정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대상은 ― 의식 역시도 ― 변화하는 시공간 속에서 계속 변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잠정적 확실성을 반성을 통해 계속 부정해 나아가는 것이 정신현상학에서 말하는 ‘의식의 운동(Bewegung des Bewußtseins)’이다. 헤겔은 이러한 의식의 운동을 “회의의 도정(Weg der Verzweifelung)”이라고 (PG, 68) 표현하기도 한다.49)

여기서 볼 수 있는 헤겔의 진리 규정은 실체적이거나 패쇄적 규정이 아니다.

진리는 오히려 잠정적 확실성을 부정해가는 의식의 전체 운동과 연관된다.50) 이러한 견지에서 헤겔은 “진리는 실체로서만이 아니라 주체로서” 파악되어야

48) G. W. F. Hegel, Phänomenologie des Geistes, hg. J. Hoffmeister (Hamburg: Felix Meiner 1952. 이하 PG와 쪽수로 인용). 이에 관한 해설은 Otto Pöggeler, Idee einer Phänomenologie des Geistes (Freiburg I. Br./München: Karl Alber 1973) 참조.

49) 지젝은 이러한 사실은 주체에게 “진정한 절대자란 그것을 인식하려는 이전의 실패한 노력들의 논리적 배열에 다름 아니라는 것”, 즉 진리 그 자체는 “진리를 향한 경로들”

과 대면하게 하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S. 지젝, 그들은 자기가 하는 것을 알지 못하 나이다, p. 280).

50) 정신현상학에서 인식은 “그 자신의 실재성을 언제나 조사(Prüfen)하게 하여야” 하는 데, 이것은 “철학적 학의 참된 탁월성에 대한 시험(Probe)이며 자연적 의식의 입장에 서는 이것이 회의주의를 완성시키는 것이다” (한동원, 「정신현상학의 방법에 관한 연 구」, 철학 23집 (1985), pp. 51-71, p. 60). 이러한 인식은 경험하는 의식(für es, 대상 의식)과 경험내용을 학으로 안내하는 우리(für uns, 자기의식)의 관계에서 고찰된다.

“정신현상학의 철학적 독자인 ‘우리’가 할 일”은 자신이 진리임을 주장하는 “현상지의 자기운동을 방해하지 않고 살펴보는 일”이다 (한동원, 「정신현상학의 방법에 관한 연 구」, p. 63). 진리의 사후적 구성은 이러한 고찰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의식이 각 지의 단계에서 진리(das Wahre)를 검증해 나가는 상세한 과정에 대해서는 Frank-Peter Hansen, Georg W. F. Hegel: ‘Phänomenologie des Geistes’. Ein einführender Kommentar (Paderborn/München/Wien/Zürich: Schöningh 1994)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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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다고 본다 (PG, 19). 즉, 진리는 어떠한 확고한 점이 아니라 “자기 내에서 스스 로를 반성하기의 운동(die Bewegung des sich in sich selbst Reflektierens)”이기 때문이다 (PG, 22). 따라서 진리는 그 자체 “단지 변증법적 운동, 자기 자신을 생산하며 계속 이끌고 자기 내로 귀환하는 길” (PG, 53) 자체가 된다. 또한 자기 의식의 전개 과정에서의 진리는 “그 하나의 진리(die eine Wahrhiet)”이지 “그 진리 (die Wahrheit)”가 아니다.51)

본질의 가상적 특성에서 보았듯, 의식의 “자신의 실체와의 비동등성”은 “구분 (함) 일반”으로서 (PG, 34) 진리를 위한 본질적인 계기가 되며, 진리는 이러한 구분에서 생성되는 동등성, 즉 “스스로를 재건하는 동등성 혹은 자기 자신 속에 있는 타자존재에서의 반성”으로 이해된다 (PG, 20).52) 또한 이 구분들의 계기는 의식이 갖는 확실성이 하나의 잠정적 진리가 되는 근거이기도 하지만 개념이 현실 속에서 실현되는, 자신의 실재성을 찾아가는 도정이기도 한다. 그러므로 헤겔은 진리는 “전체(das Ganze)”라고 표명하는 것이다 (PG, 21).

‘진리는 전체다’는 명제는 일차적으로 의식 운동의 과정이 하나의 전체이며, 진리는 이 모든 과정을 포함한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즉, 전체는 의식의 각 형태들을 자신의 계기들로 보유한다는 것이다.53) 헤겔은 이 각 형태들이 “진리의 51) G. W. F. Hegel, Vorlesungen über die Geschichte der Philosophie Ⅰ, Werke Bd.

18, hg. E. Modelhauer und K. M. Michel, Frankfurt a.M.: Suhrkamp 1986, p. 39.

52) 이러한 의식의 운동을 김옥경은 “자기동일성이 부정성의 자기동일성, 다시 말해 차이 를 끊임없이 생산해내는 동일성”이라고 보며, “절대자가 자기를 전개하는 운동”은 “자 기 가신에게로 귀환함으로써 동일성을 유지하고 자신의 과거로 회귀하는 운동이면서 동시에 […] 자신의 내재적인 차이를 끊임없이 전진적으로 정립해 나가는 미래를 향 한 운동”이라고 서술한다 (김옥경, 「헤겔철학에서 과거와 미래의 변증법」, 헤겔연구

31집 [2012], pp. 37-57, p. 48).

53) 지젝은 헤겔의 ‘진리는 전체다’라는 명제에 대응하여 ‘진리는 비-전체’라는 주장을 한 다. 지젝은 헤겔의 명제가 틀렸다고 비판하기보다 이 명제를 ‘진리가 단순히 부분(계 기)들의 집합’으로 이해하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지적한다. 그는 전체에는 차이, 모순이 지속적으로 내재하기 때문에 전체는 틈과 균열을 가진 ‘부정성’으로서, 결코 완전한 전체가 될 수 없고 늘 새로이 구성될 수 있을 뿐이라는 것을 주장한다: “우리가 진리 는 ‘전부’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외적 대상-경계(‘현실’, ‘순수한 사고’ 등)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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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나아가는 발전 형식들”로서 서로 구분될 뿐 아니라 상호 의존적이라고 본다.

또한 이러한 형식들은 “서로 투쟁할 뿐 아니라 하나가 다른 것(타자)으로서 필수 적”이 되는 그러한 “유기적 통일의 계기들”이라고 본다 (PG, 10). 이와 같이 전체는

“자신의 발전을 통해 스스로 완성되는 본질”이라고 할 수 있으며 (PG, 12), 하나의 과정의 마지막에만 결과로서 가능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헤겔은 이러한 전체를

“진리의 참된 형태”인 “학문적 체계”라고 하며, 참된 것은 “단지 체계로서만 현실적”

이라고도 한다 (PG, 23).

이러한 규정에서 중요한 것은 전체로서의 진리가 폐쇄적이거나 고착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궁극적인 진리가 있다면, 헤겔적 용어로 표현한다면 절대적 동일 성으로서의 진리가 있다면 이러한 진리의 실현은 데리다의 차연(différance)처럼 미래의 시점으로 계속 지연될 것이다. 정신현상학에서 헤겔이 강조하는 바는 오히려 “정신은 절대적 분리(Zerrissenheit) 속에서 자기 자신을 발견함으로써만 자신의 진리를 획득한다”는 점이다 (PG, 30). 이러한 관점에서 헤겔은 진리에 이르는 의식의 운동과정을 서술하며, 그러한 반성 운동 자체가 진리라고 규정한 것이다 (PG, 22).

또한 헤겔이 말하는 ‘진리는 전체다’는 명제는 과정 속의 계기들이 전체를 이루는 필수적인 계기들임을 시사하고 있으나 본 연구에서는 각 계기들이 그러한 이유로 중요하다는 것을54) 강조하기보다는 그 계기들이 사후에 진리의 계기로

일치한다고 생각되는 한에서이다. 이에 반해 진리는 ‘전부는-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은 진리는 어떤 외부의 척도와 경제 사이의 외재적 관계가 아니라 언어 자체에 거주한다 는 것, 즉 기표의 내재적 효과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S. 지젝,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알지 못하나이다, p. 296).

54) 필자의 지금까지의 연구들은 이러한 점을 강조하며 역사나 종교, 예술 발전의 정신철 학적 의미를 논구해 왔다 (Jeong-Im Kwon, “Kunst und Wahrheit in der Moderne.

Überlegungen zur Akutlaität der Hegelschen Bestimmung der Kunst”, in: Wege zur Wahrheit. Festschrift für Otto Pöggeler zum 80. Geburtstag, hg. A.

Gethmann-Siefert und E. Weisser-Lohmann [München: Wilhelm Fink 2009], pp.

221-237). 본 연구에서는 이와 달리 ‘사후 구성’이라는 관점에서 헤겔 규정들을 재해석 한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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