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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의 사후 구성으로서 예술

문서에서 사후 구성적 진리와 예술 (페이지 24-32)

헤겔은 베를린 예술철학강의에서 예술을 여러 측면에서 규정하고 있다.

다음에서는 그 가운데 본 연구의 주제와 연관하여 ‘가상’으로서의 특성과 ‘이념’의 구체화로서의 예술 규정을 통해 ‘진리 매개’와 진리를 ‘사후적으로 구성’하는 것으 로의 예술의 의미와 역할을 제시하고자 한다. 세부 논의에 앞서 논지를 간략히 약술하면 예술은 가상을 통해 본질적인 것, 즉 진리를 담아내는 것이라고 볼 수 있는데, 중요한 것은 역사의 흐름 속에서 진리에 대한 이해가 바꿔졌다는 것, 그리고 이에 따라 오늘날 예술은 더 이상 보편적 진리를 구현할 수 없으며 새로운 57) 또한 지젝은 “역사적 필연성 자체가 오인을 통해서 구성된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

데올로기, p. 113).

역할로 ‘형식적 도야’의 일환이 되어 기존의 진리 내용을 비판적으로 검증하고, 다른 한편 진리를 새로이 구성하여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먼저 ‘가상(der Schein)’으로서의 예술의 특성을 살펴보면, 예술은 “가상을 산출하고”, 가상은 “예술의 실존방식”으로 서술된다.58) 하지만 “예술의 외면성의 방식”으로서의 가상은 단순한 기만이 아니라 본질의 가현이 된다. 헤겔은 “모든 본질, 모든 진리는 공허한 추상이지 않으려면 현상해야만” 한다고 본다. 신적인 것도 현존재를 가져야만 하는데, “그 현존재는 [신적인 것] 그 자체인 것과는 구별된 것으로, 가상”이듯이 예술에서 다뤄지는 현존재도 그러하다는 것이다 (Ä, 78). 논리학의 본질론에서도 언급되었듯, “가상은 비본질적인 것이 아니라 존재 자체의 본질적인 계기”이다 (Ä, 78).

이렇듯 예술은 자신 속에서 대자적으로(für sich) 있는 정신을 가상으로 현현하게 함으로써 타자에 대해 현존하게 하는 것이 된다.59) 또한 헤겔은 철학적 사유와 구분이 되나 “우리는 사유에서처럼 예술에서 진리를 발견하므로 예술이 외적인 실존의 방식보다 장점을 갖는다”고 한다. 이를 종합하면 예술은 “그 가상 에서 자기 자신을 통해서 더 지고한 것, 즉 사유를” 보여주며 (Ä, 79), 현실의 직접적 감각성과 달리 “그 표현 속에” “지고한 것”을 지시하는 것으로 규정된다 (Ä, 79).

이처럼 예술은 “가상방식”이라는 (Ä, 80) 고유성을 통해 철학과 성격은 다르 지만 사유를 진술하며, “종교와 철학과 함께 최고의 규정을 공유한다” (Ä, 81).

58) G. W. F. Hegel, Vorlesungen über die Philosophie der Kunst. Berlin 1823.

Nachgeschrieben von Heinrich Gustav Hohto, hg. A. Gethmann-Siefert (Hamburg:

Meiner 1998); 헤겔 예술철학. 베를린 1823 강의. H. G. 호토 필기록, 한동원/권정임 옮김 (미술문화 2008), p. 78 (이하 Ä.와 국역본 쪽수로 표시). 가상 개념은 라캉에게 서도 예술의 특성으로 중요하다. 라캉에게서 가상으로서 예술은 실재성(진리성)을 구 성하며, 상징계의 균열을 은폐하는 표면적 조화를 보존하는 환상을 깨트리는 또 다른 의미의 환상이 된다. 이에 대한 상세한 논의는 조선령, 라캉과 미술, p. 7, p. 19, p, 99, p. 106 참조.

59) 진리는 “단지 현현의 방식에서만 차이가 있을 수 있다. […] 예술은 그 고유성을 가상 일반이 아니라 가상의 [특정한] 종류와 방식에서만 갖는다” (Ä, 78).

이러한 관점에서 헤겔은 예술은 종교와 철학과 마찬가지로 “신적인 것, 정신의 최고의 요구들을 나타내고 의식하게 하는 방식”이며, “여러 민족들은 예술에서 그들의 최고의 표상들을 기록으로 남겼다”고 본다 (Ä, 81). 이는 오늘날에서도 예술작품의 정신철학적 및 문화철학적 고찰의 의미를 시사하는 부분이다.60)

사유, 정신적인 것을 반영하는 예술의 특성은 ‘이념’의 구체화로서의 예술의 규정을 통해서도 재확인된다. 헤겔은 논리학에서 개념이 참다운 것이 되려면 실재성을 가져야 하며, 개념이 실재성을 갖춘 것이 ‘절대(적) 이념’이라고 하였다.

헤겔은 예술철학강의에서 이와 연관하여서도 예술의 특성을 규정하는데, 예술은 개념과 그 실재성의 통일인 ‘이념’을 구현하는 것이 된다 (Ä, 127).61) 예술에서 이념은 ‘미 이념(die Idee des Schönen)’으로, 진과 선 이념과 같이 “그 자체 개념과 실재성의 통일이며 개별성”이라는 것이 특징적이다. 개별성이란 이념이 인간의

“주관성으로 인해 현존재에서 나타”나는 방식을 말한다 (Ä, 154). “주관성은 자기 자신과의 부정적인 통일” (Ä, 154), 즉 “자신을 부정적인 통일로 정립하기 때문에 단순한 직접자, 개별자가” 되며, 주체의 이러한 배타적 “직접성으로 인해 이념은 현존재 속으로, 외적인 것 및 타자와의 무한히 다양한 연관 속으로 들어서게 되는 것”이다. 헤겔은 이로 인해 예술에서 이념은 “정신적인 것 또한 주관적이며, 개별 성의 양상을 띤다”고 한다 (Ä, 155).

다시 말해, 이념은 개념과 실재성의 통일이기 때문에 한편에서는 개념의 추상성과 다른 한편으로는 존재의 실체적 측면을 이중적으로 가지고 있는데,62) 그 실체적 측면이 예술에서 미 이념으로서 예술가의 주관성을 통해 현존재로 나타나면서 개별성을 띠며, 구체화되는 것이다. 이와 연관하여 ‘이념’의 구체적인 상 혹은 실존으로서의 “이념상(das Ideal)”으로 “예술미”가 규정된다 (Ä, 160). 이

60) 그래서 헤겔은 예술은 “민족종교를 인식하는 유일한 열쇠가 된다”는 것을 강조한다 (Ä, 81).

61) “이념은 개념과 실재성의 통일, 즉 양 측면의 구체적인 일치이다” (Ä, 127).

62) 개념의 특성을 존재와의 관계에서 고찰하는 연구로는 남기호, 「헤겔 논리학에서의 개념의 개념」, 헤겔연구 31집 (2012), pp. 125-150이 있다.

이념상은 세계상태, 상황, 행위, 시공간의 외적인 규정들을 통해 다양한 “현존재”를 (Ä, 162) 가지게 된다.63) 예술은 역사와 특정 시공간에 속하는 행위하는 인물을 통해 ‘이념상’을 구체적으로 나타냄으로 이념상의 현존재로 규정된다.

따라서 이념상의 현존재로서의 예술은 “표면의 모든 지점들에서 현상하는 것”을 “정신을 현상하게 하는 눈으로 고양시켜야” 하며 (Ä, 160), “현상들을 어디 서나 영혼의 기관으로, 영혼의 표명이” 되게끔 만드는 것이 된다. 또한 예술은

“산문적인 의식에 대해 유한한 것으로만 현전하는 것을 어디에서나 투시되게 만 들어야” 하며, “그것이 모든 기관들에서 영혼의 색조, 정신적인 것을 계시하도록”

하는 것이 된다 (Ä, 161, 70).

이러한 규정은 예술이 정신적인 것, 본질적인 것, 최고의 진리라고 생각하는 것을 가상을 통해 현존재 속에서 직관되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헤겔은 예술은 “현존재가 즉자대자적인 것으로 있어야 하는 개념에 적합한 한에서 이 현존재의 진리를 나타내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고 명시한다. 이 때 예술 속에 가상으로 다뤄지는 현존재는 “가치 있는 내용을 통해서만 자신의 제한성 속에 어떤 참된 내용”을 포함하게 된다. 그리하여 보다 “규정적이고 실체적인 내용이 하나의 현존재 속에” 있게 된다 (Ä, 162, Ms. 71).

예술이 현존재 속에서 드러내는 ‘규정적이고 실체적인 내용’은 이념이 그 본성에 따라 구체화되기 위해 개별성이라는 외적 형태로 표현되는 것이다. 이 내용은 예술의 중요한 관심이며, 이는 곧 “한 민족의식의 실체적인 방식”이기도 하다 (Ä, 291/188). “실체적인 것이란 정신 및 그 형식들의 본성에 정초되어 있는 어떤 보편적인 힘”을 말한다 (Ä, 177, 85). 헤겔은 이러한 예술의 내용인 이념은

“한 민족의 세계관, 종교들”이며, “이 세계관과 종교는 민족정신들”이라고 본다 63) 따라서 ‘이념상’은 고대 그리스 예술에서 구현된 내용과 형식의 최고의 조화만을 의미 하는 이상적 미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고 봐야 한다. H.-G. 가다머도 예술미인

“이념의 감각적 가상”으로서의 이념상은 “어떤 특정한 양식의 이상을 정식화하는 것 이 아니라 […] 예술의 영원한 본질에 대한 철학적 표명이다”고 본다 (H.-G. 가다머,

「예술의 종언? 헤겔의 ‘예술의 과거성’ 이론으로부터 오늘날의 반예술에 이르기까지」, 김문환/권대중 편역, 예술의 죽음과 부활 [지식산업사 2004], pp. 123-144, p. 131).

(Ä, 291/188).64) 이렇듯 이념은 ‘민족정신(Volksgeist)’으로 현시되며, 종교와 철학 에서뿐 아니라 예술에서도 동일하게 다뤄진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진리 내용으로서의 이념 혹은 민족정신으로서의 이러한 이념에 대한 사유가 역사의 흐름 속에서 바뀐다는 것이다. 이는 예술에서 이념상 으로 구체화되는 ‘이념’은 규범적인 절대적 동일성 그 자체가 아니라 ‘역사적 이념’으로서, 각 역사적 단계에서 한 민족이 가장 절대적인 것, 가장 참된 것(진 리)이라고 ‘사유한 정신적 내용’임으로 부분적(partial)이며, 특수성(Partikularität)을 띤다는 것이다. 앞의 Ⅲ장에서 살펴본 의식의 발전과 연관하여 서술하면, 특정 시대에 의식의 주체나 한 민족이 절대적인 것, 가장 참된 것으로 여기는 것은 “변 증법적 계기의 진리”이며, 그 때 그 때의 역사 및 정치적 상황에서 사후적으로 구성된 진리라고 볼 수 있다. 더불어 예술에 표현된 진리도 그 자체 “단지 변증법적 운동, 자기 자신을 생산하며 계속 이끌고 자기 내로 귀환하는 길” (PG, 53) 가운데 있는 진리이며, ‘그 하나의 진리(die eine Wahrheit)’이지 ‘그 진리(die Wahrheit)’가 아니다.

또한 그러한 진리가 고대에는 한 민족 전체에게 보편적인 것으로 받아들여 졌으나 근대에는 보편성을 상실하게 된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가장 참되다고 생각된 ‘실체적인 것’은 ‘보편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졌으며 그리스 신들을 통해 표현되었다. 호메로스는 그리스 신화에서 신들의 얘기를 만들었으며, 그리스 조형 예술은 그러한 신들을 가시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헤겔은 이러한 고대 그리스 미술은 인간적으로 이해한 신들을 ‘인간 형태’로 표현함으로써 내용과 형식이 가장 조화롭게 이루어졌고, 그런 의미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술이라고 보았다. 하지만

또한 그러한 진리가 고대에는 한 민족 전체에게 보편적인 것으로 받아들여 졌으나 근대에는 보편성을 상실하게 된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가장 참되다고 생각된 ‘실체적인 것’은 ‘보편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졌으며 그리스 신들을 통해 표현되었다. 호메로스는 그리스 신화에서 신들의 얘기를 만들었으며, 그리스 조형 예술은 그러한 신들을 가시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헤겔은 이러한 고대 그리스 미술은 인간적으로 이해한 신들을 ‘인간 형태’로 표현함으로써 내용과 형식이 가장 조화롭게 이루어졌고, 그런 의미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술이라고 보았다.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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