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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Study of the Planning Process, Design Idea and Implementation of the Gwanghwamun Plaz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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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ademic year: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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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기 작품은 2009년 International Public Design Award에서 수상한 작품이다.

Corresponding author: Kyung-Jin Zoh, Dept. of Environment Landscape Architecture, Graduates School of Environmental Studies, Seoul National University, Tel.: +82-880-1358, E-mail: [email protected]

광화문광장 조성과정 및 설계 연구

신현돈*․조경진**

*서안알앤디 디자인(주)․**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A Study of the Planning Process, Design Idea and Implementation of the Gwanghwamun Plaza

Shin, Hyun-Don*․Zoh, Kyung-Jin**

*Seo-Ahn RnD Design Group

**Dept. of Environment Landscape Architecture, Graduates School of Environmental Studies, Seoul National University

ABSTRACT

This study aims to investigate the complex planning processes and design ideas of the Gwanghwamun Plaza which was opened in 2009. The opening of the plaza was significant as it was built in order to restore the symbolic meaning of axis in the historical Joseon Dynasty that was distorted during the Japanese Imperialism. The plaza itself attracts many citizens and tourists by providing the empty ground carrying historical ambiences around.

In this paper, the story of the Gwanghwamun plaza will be summarized. Particularly, the background of promoting the project will be discussed and the whole planning process will be dealt with. The plaza was realized through several stages. First, the planning stage will be reviewed. The planning stage had been a quite long process since the initial idea was discussed. Since the early 90s, the political decision of making the plaza was made through the change of people’s understanding toward public space. At this stage, the city government worked together with diverse citizens and professionals to share the vision and to realize the right decision in making the plaza.

Second, the design stage will be elaborated in detail. This is the second design stage. The former was the idea competition and the latter was the turn-key base. The final design scheme emphasized the restoration of symbolic axis and the forgotten Yukjo Street. The scheme consists of four zones such as history restoration zone, prospect and history representation zone, culture zone, and the urban zone. Through the whole design process, the original idea remained as it was. The design concept was “a place of memory and prospect.” It emphasizes the history representation, view corridor, cultural activities platform as well as the emptiness and flexibility of the basic premise of the plaza. Finally, the construction stage will be discussed. There were some additions and omissions in the construction process. The design chances in the construction stage will be reviewed in detail. After the opening of the plaza, there were some changes in the detail design. We will discuss how and why these modifications were made.

In the end, the social and cultural implication of the plaza will be discussed. The storytelling of the Gwanghwamun Plaza will contribute to the clear understanding of planning and design process of pubic places. Based on this reflection, we are able to think about some suggestions of public projects for the future.

Key Words: Sejong Ro, Jujak Boulevard (朱雀大路), National Symbolic Street, Yuk-jo Street, Public Sp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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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초록

본 연구는 2009년에 개장한 광화문광장이 조성이 되기까지의 과정 및 설계 아이디어 도출에 대한 제 전반의 사항들을 다룬다. 광화문광장 조성은 일제에 의해 왜곡되었던 조선왕조 국가상징축을 복원시키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광화문광장 조성은 여러 단계를 거쳐 진행되었으며, 크게 세 단계로 나눌 수 있다. 첫째, 광화문광장 조성 논의 단계로 세종로를 광장으로 만들기로 확정짓기 전까지 논의 단계이다. 광화문광장사업이 2007년에 현실화되기 전까지 세종로를 광장화 하고자 했던 여러 시도와 함께 행정 주체가 광화문광장 사업을 조성하기로 확정짓고 설계공모에 들어가기 전에 주요 결정사안들을 시민과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결정해 나갔던 단계라고 볼 수 있다.

두 번째 단계는 광화문광장 기본구상 및 설계 단계로 최종 설계안은 아이디어 현상설계와 턴키 설계 공모 두 단계를 거쳐 확정되었다. 최종 설계안은 국가상징도로로서의 세종로 축과 육조거리를 복원하는 등 역사적 맥락을 회복하는데 주안점을 두었으며, 역사복원 존(zone) , 조망 및 역사재현 존(zone) , 문화 존(zone) , 도시 존(zone) 으로 주제를 설정하 여 구성하였다. 광장 조성은 역사성의 재현, 조망권 확보, 일상 문화공간 창조에 주안점을 두었으며, 아이디어 현상공모 단계에서 턴키 기본설계 단계에서 시공에 이르기까지 ‘기억과 전망의 장소’라는 기본 개념은 유지되었다. 더불어 광장 고유의 비움 및 유동성의 특성을 반영코자 하였다.

세 번째 단계는 시공 및 조성 단계로 광화문광장이 실제로 만들어지는 단계이다. 이 단계를 거치며 몇 가지 요인으로 인해 광화문광장은 최종설계안과 일부 다른 모습으로 완공되었다. 본 연구에서는 광화문광장 조성 논의 단계부터 완공하기 까지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을 살펴보고, 그동안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던 당초 설계안, 설계안이 변경될 수밖에 없었던 여러 요인과 이유, 완공 이후의 광화문 광장의 공공성에 대한 논의까지를 모두 종합적으로 다루고자 한다. 더불어 이를 통해 도시 공공 공간 조성에 있어 합리적인 방안을 도출해 갈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해 보고, 추후 유사 프로젝트에 참고자료가 될 수 있도록 하였다.

주제어: 세종로, 주작대로, 국가상징가로, 육조거리, 공공공간

Ⅰ. 서론

광화문광장은 2009년에 완공되었으며, 서울 도심에 서울광 장, 청계광장에 이어 등장한 서울을 대표하는 광장형 공공공간 이다. 광화문광장이 조성된 세종로1), 광화문 네거리 일대(그림 1 참조)는 600년 고도(古都)인 서울의 중심 가로이자 국가 상 징가로이다. 일제 강점기엔 뒤틀어진 서울 상징축의 시발점이 었으며, 해방 이후 개발 시대에는 시민들의 접근이 어려운 권 위적인 공간으로 대한민국의 역사, 정치의 요람이자 상징이라 고 할 수 있다. 조선 왕조가 이곳에서 시작된 이후 서울의 역사 가 이 일대를 중심으로 펼쳐졌기 때문이다. 또한 주요한 정치 적 사건들이 광화문광장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광화문광장은 사업2)을 확정하기까지도 장기간의 다양한 논 의를 거쳤고, 설계안을 확정짓기까지도 많은 단계를 거쳤다.

본 연구에서는 새로운 공공 공간으로 태어난 광화문광장이 조성되기까지의 사회적 논의와 전반적인 조성 과정을 살펴보 고, 광화문광장이 갖는 상징적 의미를 다시 점검하고자 한다.

더불어 아이디어 현상설계 및 턴키 설계, 실시설계 과정을 거 치면서 기본계획부터 설계(안)이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지 상 세히 정리하여 조경가의 고민이 담긴 계획과정들이 실제 공간

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을 기록할 것이다. 이를 위해 연구의 구 체적인 내용적 범위는 아이디어 현상설계, 턴키 기본설계 당선 작 ‘기억과 전망의 장소, 광화문’ 의 설계안을 위주로 다룰 것이 다. 이를 통해 우리나라 도시 공공공간의 조성 과정에 있어 합 리적인 방안을 찾아가는 방법을 살펴보고, 추후 유사 프로젝트 에 참고자료가 될 수 있도록 한다.

Ⅱ. 광화문광장 조성 논의 과정

기본적으로 광장은 서구 도시문화의 산물이다. 서구 사회에 서 광장은 시장, 정치집회, 종교의례, 문화예술 축제 등 포괄적 인 사회적 기능들을 수행하고 있다(Mancuso, 2009). 반면, 우 리에게는 광장보다는 일상생활 속에 녹아있는 골목길에 광장 문화의 원류가 있다고 볼 수 있다(김현미와 송흥근, 2002). 따 라서 해방 이후 광장문화가 익숙하지 않던 우리에게 광장은 항 쟁의 장소로 표상되어 왔다. 우리나라에서는 1960년대의 근대 화과정과 맞물려 광장의 개념이 보편적으로 이해되었다. 특히 현재 여의도 공원의 전신인 ‘5.16 광장’에서 알 수 있듯이 당시 는 상당히 정치적인 성격이 배태되어 있었다(하상복, 2009).

우리나라 대중들이 광장에 대한 인식을 가장 크게 변화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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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광화문광장이 조성되기 전 세종로 위치도 및 현황

된 계기는 바로 2002년 한일 월드컵과 함께 시작된 월드컵 거 리응원이었다(조경진, 2009). 온라인을 통한 자발적인 거리응 원의 참여 독려는 광화문과 시청에 대규모 집회를 만들어냈고, 이를 통해 도로를 일시적으로 공공 공간화 하였다. 이 사건은 대중들에게 광장 문화를 보편화하는 계기가 되었고, 자동차를 위한 도로광장을 시민을 위한 녹색 광장으로 변신하게끔 하는 데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는 오랜 시간 을 거치면서 다양한 요인이 작용한 결과이기도 하다. 여기에는 여가시간의 증가, 도시축제의 보편화, 오픈스페이스에 대한 잠 재적 욕구 확대로 인해 휴먼스케일의 공간인 도시 광장이 활착 되게 되었다. 서울광장, 청계광장 등이 조성되고, 현재 일반 시 민들에게 광장은 일상휴식, 전시, 문화, 축제, 응원, 시위 등을 위한 공간으로 생활 속에 밀착되어 가고 있다.

원래 광화문광장의 전신이었던 세종로를 광장으로 만들려는 노력은 이미 오래전부터 있었다. 1994년 서울시가 정도(定都) 600년을 맞이했을 때 서울을 상징하는 역사성, 대표성을 갖는 국가중심 가로 조성계획의 일환으로 발표3)됐지만, 광화문과 경

a: 양측 배치안 b: 중앙 배치안 c: 편측 배치안

그림 2. 광화문광장 조성을 위해 고려된 세 가지 배치(안) 자료: 중앙일보, 2006년 12월 28일 세종로 중앙에 만든다.

복궁 권역 복원계획과의 조정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완성되지 못했다. 이후 2000년에 광화문 문화포럼 세미나에서 한양대 서 현 교수가 광화문광장 구상 발표를 하면서 다시 잠깐 논의가 되었으나, 사회적으로 큰 이목을 끌지는 못했다. 2001년에 ‘문 화개혁을 위한 시민연대(이하 문화연대)’가 ‘살고 싶은 서울 만 들기’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광화문을 서울의 공간적 중심으 로 설정4)했고, 한일 월드컵 이후 2002년 7월 초 문화연대가 가 장 먼저 ‘세종로를 문화광장으로’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었다 (김현미와 송흥근, 2002).

이후 활발한 논의가 이는 듯 했지만, 민선3기 발족 이후 광 화문광장 사업 추진은 오히려 교통 문제로 인하여 진척을 이 루지 못했다. 시민광장조성 기본계획 수립결과에 따라 2004년 5월 시청 앞 서울광장, 2005년 5월 숭례문광장이 조성되었으며, 2005년 10월 청계천 복원사업 준공과 더불어 청계광장 등이 조 성되었다.

그러다가 광화문광장 조성에 대한 논의는 2006년에 다시 시 작되었다. 당시 서울시는 2006년부터 2009년까지 추진 중인 광 화문 복원계획과 연계하여 2008년까지 광화문광장 조성사업을 완성키로 하였다. 광화문광장 조성사업은 본격적으로 2007년부 터 시작되었는데, 진행 초기부터 사업화 자체만으로도 큰 의미 를 지니고 있었다. 16차선 도로를 보행자를 위한 광장으로 조 성한다는 것은 도시 계획을 바라보는 우리 시민사회 의식 변화 를 드러낸다는 점에도 시사하는 바가 컸다(Zoh and Shin, 2009).

당시는 광화문광장이 아니라 ‘세종광장’이라고 보도되었었는데, 세종로를 광장으로 조성함으로써 시민들이 청계천과 세종로, 경복궁까지 보행이 가능하도록 보행환경을 조성하고자 구상이 었다. 이후 광장명칭은 여론조사5)와는 결과가 달랐지만, 역사 성 있고, 간단 명료하고, 부르기 쉽고, 시민들에게 친숙한 광 화문광장 으로 확정하였다(서울특별시, 2011).

당시 서울시는 광화문광장 배치와 관련하여 ‘양측 배치안(세 종로 양측보도를 확장, 광장으로 조성)’, ‘중앙 배치안(세종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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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도 주최 주요 내용

1994 서울특별시 상징거리 조성계획

2000 광화문 문화

포럼 세미나 광화문광장 구상 발표 2001

문화연대

‘살고 싶은 서울 만들기’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광화문을 서울의 공간적 중심으로 설정 2002. 7. ‘세종로를 문화광장으로’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 걸음 2003. 12.

서울특별시

시민광장조성 기본계획 수립 2004 한양정도 600년을 맞아 시민상징거리

조성계획 수립

2006. 12. 27. 광화문광장 조성방안(중앙배치안) 및 광장명칭 확정

2007. 9.~12. 아이디어 현상공모 및 턴키 기본설계를 통해 설계안 확정

2008. 4. 23. 공사 착공

2009. 8. 1. 완공

표 1. 광화문광장 관련 논의 및 조성 전개 과정

중앙에 광장조성)’, ‘편측 배치안(세종문화회관측 광장 배치)’, 을 놓고 고심하다가(김선웅, 2006) 인터넷 여론조사와 전문가 의견 등을 종합해 가장 많은 찬성(전체 응답자의 44%)을 얻은 중앙 배치안을 채택6)하였다(그림 2 참조). 중앙배치안과 편측 배치안은 각기 장단점이 있었는데, 전자의 경우 일제에 의해 왜곡된 국가 상징 축을 회복하고, 상징성을 강조하는 의미를 중 시했고, 후자의 경우 기능적으로 기존 가로에 연접한 형태가 광 장 이용의 측면에서 실용적이라는 장점이 있었으나, 편측에 배 치된 건물에 차량진입으로 광장이 분절되는 문제점이 있었다.

당시의 여론과 전문가 의견은 실용성보다는 상징성에 무게를 두는 판단이었다. 2007년 아이디어 현상설계와 턴키 기본설계 를 거쳐 설계안을 확정짓고, 2008년 착공에 들어가 2009년에 완공하였다. 이와 같은 과정을 간단히 표로 요약하여 정리하면 표 1과 같다.

Ⅲ. 광화문광장 기본계획 및 설계, 조성 과정

1. 설계를 위한 사전조사 및 분석 1) 공모지침

공모 지침서는 아이디어 현상공모 당시 지침서와 턴키 설계 시의 지침서가 있다. 먼저 아이디어 현상 설계 공모 지침서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설계 지침은 크게 기본방 향과 조성원칙으로 나뉜다. 이 중 기본방향의 내용을 살펴보면 첫째, 서울시청-청계천-경복궁을 연결하는 국가 상징 축으로서 인접 역사․문화자원과의 연계를 고려하고, 도심부 주요 시설 들의 연계 강화를 위해 보행연결체계 및 구상안을 제시하여야

한다. 둘째, 조선왕조 5백년 역사를 담은 물리적 기반(육조거리 등)을 되살리는 방향으로 계획한다. 셋째, 평상시는 휴식 및 역 사․문화체험 공간으로 이용하고, 경축행사나 대규모 문화행사 시는 광장과 차도, 보도까지 통합적인 광장으로의 활용이 가능 한 시설물을 배치하되, 경복궁․북악산을 조망할 수 있는 경관 축이 확보되어야 한다. 넷째, 세종로공원과 광화문 열린마당 등 의 주변지역까지 정비 구상안을 제시하여야 한다고 제시되어 있다. 더불어 조성원칙7)에 관한 내용들 역시 기본방향과 마찬 가지로 광화문광장에 상징성을 부여하는 설계안들이 나올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서울특별시, 2007a).

턴키 설계시의 지침은 아이디어 현상 공모의 지침과 유사하 였으며, 조금 더 구체화 되었다. 그리고 세종문화회관 지하차도 부와 광장 연결로 설치를 추가하여야 한다는 항목이 부가되었 다(서울특별시, 2007b).

2) 광화문광장 맥락의 이해, 축의 왜곡과 잘못된 복원 광화문광장 설계에 있어 가장 중요시 된 사항들은 바로 세종 로라는 장소가 지니고 있는 상징성 및 역사성에 관한 것들이었 다. 세종로는 조선왕조의 태조가 한양을 건설할 때부터 정도전 설계 하에 너비 58척(尺) 규모로 조성하였던 대로였다. 한양은 백악주산설에 의해 도시가 결정되었다. 새 도읍에는 조산(祖 山)인 삼각산, 그 앞에는 아침에 임금을 알현하는 조산(朝山) 인 관악산이 있고, 좌청룡 용마산, 우백호 덕양산이 있으며, 외 수(外水)인 한강이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 주산(主山) 인 백악산이 있고, 남쪽에 안산(案山)인 목멱산이 있으며, 좌청 룡 낙타산, 우백호 인왕산이 있는 내명당 속에 내수(內水) 청 계천이 흘러가고 있었다. 여기서 관악산과 백악산이 한양의 축 으로 설정된다(그림 3 참조).

세종로는 정부 관서인 6조(曹)와 주요 관아가 길 양쪽에 있 다고 하여 ‘육조 앞’ 혹은 ‘육조거리’라고 불리기도 했다(이재 현, 2005). 한양의 육조거리가 경북궁의 배치 축과 일치하지 않 는 것은 삼각산과 관악산을 연결하는 도시형성과 생명의 상징

그림 3. 북악산 백운대와 관악산

연주대 축에 조성 그림 4. 화기를 막기 위해 틀어진 육조거리 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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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이 갖는 의미를 살리면서 동시에 관악산의 화기에 대한 대 책을 담은 것이다. 일반적으로 도성을 조성할 때, 왕궁의 정문 에서 도성의 정문까지 넓고 곧은 주작대로를 건설한다. 대다 수의 도시들이 주작대로를 지니고 있으며, 이는 남쪽의 수호신 인 주작(朱雀)을 향해 내뻗는 도로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하지 만 한양의 경우 백악산을 주산으로 하고, 그 앞에 경북궁을 배 치하게 되면서 전체 도시에서 경복궁이 서측으로 치우치게 되 었다. 이에 따라 경복궁 앞의 주작대로는 도시의 중앙에 놓을 수 없었고, 육조거리에서 운종가의 중앙까지 옆으로 온 다음 다 시 숭례문까지의 길로 만들게 되었다. 이는 육조거리와 숭례문 까지의 길을 직통으로 연결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화마가 길을 따라 오지 못하도록 계획적으로 우회시킨 것이다(서울특별시, 2005)(그림 4 참조).

국가 중심축을 따라 관아행정구역을 형성한 조선시대의 육 조거리는 단순히 도로의 기능뿐만 아니라, 동대와 서대 같은 무대가 있어 문화공간의 다양한 기능을 수행한 비워진 광장 의 개념이 도입되어 있었으며, 백두대간을 따라 이어진 한남 정맥의 정기를 한양의 주산인 북악산에서 받는 것이었다(그 림 5 참조).

이후, 일제 강점기에 들어 국가 상징 축은 크게 훼손되기 시작한다. 일본은 강제 합병 직후 한양을 조선 왕조의 정당성 과 권위를 훼손시키고, 식민지 통치에 적합한 수도로 만들고자 하는 정치적 의도 하에 서울시의 공간구조를 계획적으로 재편 한다. 총독부가 관악산과 삼각산을 연결하는 상징축선과는 5.6 8)틀어져 건축되면서 조선총독부, 경성부청, 조선신궁의 중

그림 5. 조선시대 육조거리

그림 6. 왜곡된 국가상징축 (세종로) -1979년

앙부가 연결되는 일제의 축이 형성되었다(이태진, 1995). 이 후 육조거리 또한 황토현이 사라지고, 일제의 축을 기준으로 직선화되고 태평로까지 확장되어 갔으며, 축 선상에 은행나무 가 식재되었다. 이로 인해 한양의 도시형성 상징 축과 육조거 리는 없어지고, 일제에 의한 새로운 축선이 도시를 형성하게 되었다.

전통 축에 대한 정확한 이해 없이 일제 강점기에 훼손된 경 복궁의 축선을 복원하지 못하고, 광화문은 원래 위치에서 10.9m

a: 조선시대(1394~1910)

b: 일제시대(1910~1945)

c: 권위시대(1945~1995)

d: 시민의 품(1995~2007) 그림 7. 왜곡된 국가상징축의 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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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겨진 곳에 자리하게 되었다. 육조거리의 전통을 잇기 위한 도로의 확장 역시 일제가 심은 은행나무를 그대로 두고 왜곡시 켜놓은 축을 기준으로 확장하게 된다. 그 후 일제의 기를 누를 수 있는 이순신 동상이 세종로에 세워졌다(그림 6 참조).

세종로는 600년이라는 국가의 상징성에도 불구하고, 이후 수십 년 동안 특성 있는 장소로 우리에게 다가오지 못하였다.

하지만 1995년 조선총독부 철거를 기점으로 경복궁 복원과 광화문 복원이 이루어진 이후, 광화문 일대는 2000년 새천년 행사, 2002년 월드컵응원, 촛불집회 등을 통해 도시의 역동적 인 힘을 보여주었으며, 청계천, 삼청동 길의 에너지가 광화문 에 활력을 더하면서 생명력 있는 장소로 변모하고 있었다(그 림 7 참조).

2. 아이디어 현상공모, 광화문광장의 기본구상과 설 계개념 설정

광화문광장 아이디어 현상공모는 2007년에 진행되었으며, 14개 업체가 제출하였다. 최종 당선작은 5개 작품9)이 선정되 었으며, 아이디어 공모 당선작 응모자가 해당사업의 턴키 설 계에 참여시 가산점을 부여토록 하였다. 결과적으로 현상 설 계 최종 당선작 다섯 작품 중 하나였던 ‘기억과 전망의 장소, 광화문광장(Memory & Prospect)’이 턴키 설계 당선작의 기 초가 되었다. 이는 광화문광장은 과거를 기억하는 역사문화 의 터전이자, 서울이라는 시공간적 정위를 전망하는 장이라 는 의미를 담고 있다. 아이디어 현상공모의 내용 중 턴키 설 계로 넘어가면서 광화문광장의 설계 안은 대부분 바뀌었지 만, 기본구상 및 설계 개념과 설계 전략 등은 턴키 설계에도 대부분 차용되었다.

1) 지우기, 드러내기, 상상하기

광화문광장 공간조형을 위한 설계 과정은 기본적으로 지우 기(efface), 드러내기(trace), 상상하기(imagine)의 단계로 나 누어 진행하였다. 설계는 먼저 부적절한 공간의 질서를 지우는 것에서 출발했다(그림 8 참조). 스카이라인과 우리의 정궁 경 복궁의 조망을 가리며, 국가 상징 축을 훼손하고 있는 은행나 무를 이식하고, 광화문을 점령한 도로를 지워낸다. 보도에 면한 중앙정부청사 주차장과 외면 당한 세종로 공원, 닫혀 버린 광 화문 열린 마당 역시 새로운 요구와 질서에 의해 사라진다.

다음으로 조선시대의 육조거리 흔적을 찾아서 발굴하여 드러내기 작업을 한다(그림 9 참조). 광화문의 축을 바로잡 고 월대를 복원하여 육조거리를 재현하고, 광장의 기본 형태를 잡는다. 해태상은 남산이 아니라 상징축선상의 관악산을 다시 바라보게 되며, 사라졌던 황토현 역시 상징적으로 재현된다.

역사적 흔적들은 광화문광장에 물리적 형태와 상징적 의미를

그림 8. 지우기 맵핑

그림 9. 드러내기 맵핑

그림 10. 상상하기 맵핑

부여한다.

마지막으로 광장의 설계는 기억 속의 시간을 상기하는 단서 와 단편을 곳곳에 형상화하는 상상하기를 통하여 완성될 수 있 도록 하였다(그림 10 참조). 광화문은 600년의 역사적인 시간 과 사건 그리고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 개개인의 단편적 기억 을 담고 있다. 메모리얼 수로를 통하여 600년 역사적인 시간과 사건을 현재와 연결하고, 새로운 문화를 담아내는 비워진 광장 을 통해 미래를 위한 여지를 남겨둔다. 더불어 도시 속의 국가 상징적인 새로운 경관을 창출할 수 있도록 한다.

2) 두 개의 축과 하나의 판

광화문광장의 공간구성 개념은 두 개의 축과 하나의 판, 즉 국가 상징 축과 광화문 주변의 도시 축을 따르는 광장 조형을 통해 역사문화의 판을 조성하고(그림 11 참조), 공간의 가변성 을 도입하여 육조거리와 같은 비워진 공간을 통해 개인적이고 집합적인 행위를 수용하는 가변적 공간을 만들고자 하였다.

마지막으로 북악산, 경복궁, 광화문, 세종로, 청계천, 덕수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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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1. 두 개의 축과 하나의 판 다이어그램

남대문을 네트워크화 하는 중추적 기능을 수행하는 역사문화 네트워크로 만든다.

3. 턴키 설계공모, 광화문광장 기본계획 및 설계 1) 기본계획 및 마스터플랜

턴키 기본설계에서는 광화문광장을 역사복원 존(zone) , 조 망 및 역사재현 존(zone) , 문화 존(zone) , 도시 존(zone) 으로 주제를 설정하여 구성하였다(그림 12 참조). 광장 조성은 역사의 복원, 조망권 확보, 문화공간 창조에 주안점을 두었으

그림 12. 현상설계 당선작

며, 역사복원 존 은 광화문 전면부 구간(103m)으로 북한산과 관악산으로 이어지는 국가상징축이자 경복궁의 생명축이 담 긴 육조거리와 월대를 재현하였으며, 해태상을 원위치에 복 원하고, 노두석을 설치하며, 국가상징축이자 경복궁의 역사축 을 전통적인 포장 패턴과 LED 조명으로 재현하고자 하였다.

이는 장소의 기억을 알리며, 600여 년 전 우리의 선조들이 육 조거리에서 봐왔던 별자리를 상징하는 것이다. 조망 및 역사 재현 존 은 세종로공원 주변 구간(210m)으로 육조거리의 흔 적을 재현하여 국가상징가로의 의미를 부각시켰으며, 육조거 리의 영역을 나타내는 포장 및 흔적을 전시하는 공간을 확보 함은 물론 육조 미니어처를 설치하는 등 역사적인 사실 재현에 중점을 두었다. 문화 존 은 세종문화회관 전면부 구간(130m) 으로 세종대왕 동상을 두고, 대한민국 중심공간으로 의미를 부여하며, 세종문화회관의 문화 활동 범위를 확대하고, KT 및 정보통신부의 첨단 IT를 문화 활동과 연계하고자 하였다.

도시 존 은 이순신 장군 동상 주변으로, 이곳은 세종로의 상 징이자 도시경관축의 중심지로서 세종문화회관과 이순신장군 동상 사이로 광화문광장과 지하철 광화문 역을 연결하는 지 하통로를 활용하여 조성하는 선큰광장(해치마당)을 계획하 여, 광장 이용객을 위한 화장실 등 편익시설과 전시장 등 문 화갤러리 공간(세종이야기, 이순신이야기, 충무공이야기)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청계천으로 이어지던 옛 물길, 즉 중학천과 백운동천의 물줄기를 상징하는 물길을 설치하여 청계천 복원의 의미를 한층 배가시키고자 하였으며, 관악산의 화기를 막기 위해 비뚤어지게 만든 육조거리의 축인 황토현 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새로운 도시가로경관 연출을 통해 서울투어의 시작점으로 만들고자 하였다(그림 13 참조). 설계 의 전략 및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아이디어 현 상공모에서 턴키 기본설계로 넘어가며 변경된 설계 요소를 표로 정리하면 표 2와 같다.

그림 13. 현상설계 당선작 마스터플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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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4. 턴키 기본설계 마스터플랜

구분 현상공모안 턴키 기본설계

계획

역사성 - 육조거리와 어도의 상징적 복원

- 월대, 해태상 복원 및 황토현(누루재) 재현

- 메모리얼 수로를 통한 조선왕조 연표 표현 - 유턴차량 동선을 위한 광장바운더리 축소로 인한 평면도 변경 상징성 - 역사적 상징 : 미디어폴, 메모리얼 수로 - 반영

관광 - 관광네트워크의 중추적 기능을 수행하는 공간으로 계획 - 반영 전시 - 세종문화회관 등 인접시설과 연계된 세종갤러리 계획 - 반영

접근성 - 5호선 광화문역과 연결된 선큰계획 - 지하보행로 내 광장 진입 연결로 설치 도입

- 청계천광장 전면부에 교통섬 설치로 청계천광장과 광화문광장의 직접적 연결 도입

연계성 - 경복궁, 덕수궁, 창덕궁 등 궁궐(종묘)과 숭례문, 인사동길, 청계

천과 같은 선형적 공간의 네트워크 연계 - 반영

공간 선큰부

- 5호선 광화문역을 통한 연계

- 경사로를 따라 광장으로 접근하면서 광화문, 북악산에 대한 점진적 경관체험

- 선큰공간 양측에 스탠드를 조성하여 무대공간으로 활용

- 선큰부 내 화장실 및 편의시설계획 도입 - 선큰부 양측 스탠드 규모 축소(보행로 폭 확대)

세종

갤러리 - 현재 지하보도로 이용되고 있는 지하공간을 리노베이션을 통해

역사문화갤러리로 활용 - 광장 내 세종갤러리 진입계단 설치 검토

- 공사비를 고려한 마감처리 계획 검토

식재

은행나무 - 역사성이 있는 세종로의 은행나무는 광화문광장으로 이식 - 광장부 양측의 보행로 및 대상지 외부공간으로의 이식 가로수 - 세종로 가로변으로 느티나무 열식으로 상징성 강화와 유보도 조성

- 북악산으로의 녹지 연결과 도심의 녹시율 증진 - 조망권 및 상징성 등을 고려하여 광장 내 가로수 식재계획 검토

시설물

경관시설 - 북악산에서 청계천으로 연결되는 바람길을 체험하는 풍기대 설치

- 미디어폴 설치를 통한 다양한 정보전달장치로 활용 - 도심(C.B.D)에서의 조망을 고려한 사신사(四神砂)개념의 경관계획 편의시설 - 가로시설물(Street Furniture) 계획 - 해치마당에 화장실 및 편의시설 설치 도입

수경시설 - 메모리얼 수로, 이순신동상 하단부 캐스케이드계획 - 반영

조명시설 - 세종대왕동상 좌대에 경관조명 - 세종대왕동상의 상징성을 고려한 경관조명계획

표 2. 현상공모안과 턴키 기본설계안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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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설계의 전략 및 내용

턴키 기본설계에서 광화문광장 설계를 위한 전체 개념은 아 이디어 현상설계 공모에서 차용하였던 ‘기억과 전망의 장소, 광 화문광장 (Memory & Prospect)’으로 설정하고, 지우기, 드러 내기, 상상하기의 단계 역시 그대로 도입하였다. 구체적인 설계 전략은 현상설계 공모와 대체적으로 비슷하지만, 공간 구상은 턴키 기본설계 과정에서 많은 부분 수정되었다.

(1) 역사를 회복하는 광장

600년의 역사를 가진 고도 서울은 본래 역사․문화에 대한 입지적 특성을 많이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1960년대 이후 의 양적인 성장 위주의 개발과 역사 의식의 결여로 인해 제 모 습을 갖추고 있지 못했다. 일제 강점기 시절, 비뚤어진 축과 더 불어 사라졌던 광화문은 물론 도심의 곳곳에 있는 많은 역사적 인 장소들이 파괴되거나 잘못된 모습으로 복원되는 등 그 의미 를 잃거나 퇴색되어 있었다. 광화문광장은 다시 국가 정통성을 살리고, 한국의 혼을 되찾기 위해 없어진 옛 모습, 잊힌 문화를 회복하는 것을 최우선적인 설계원칙으로 한다.

① 국가상징축의 복원

한양의 도시조형원리는 인위적인 축이 아니라, 산과 물, 자 연지리체계에 의해 조성된 축에 따른다. 이러한 국가상징축에 따라 경복궁축과 일치된 과거 육조거리의 광장선형을 유지하 고, 광장 전체에 포장과 조명으로 재현하여 국가정통성과 전통 경관을 회복하고, 그 의미를 부여한다.

② 월대와 해태상 복원

광화문 복원사업과 함께 문화재청 복원계획을 확대하여 광 장연결부까지 월대 복원과 함께 해태상, 노두석을 정 위치에 배치하여 광화문광장과 경복궁을 자연스럽게 연결하여 일체화 하고, 경복궁의 옛 모습 재현을 완성한다(그림 15, 16 참조).

그림 15. 국가상징축의 복원 및 월대 재현, 해태상 정위치 복원

그림 16. 광화문광장, 해태상 입단면 계획

③ 육조거리 재현

광화문 전면부의 예조에서 청계천 측면의 기로소까지 11개 의 육조관아 거리의 물리적 영역을 포장재로 구현하고, 옛 관 아 터를 표지석을 통해 표현하고, 육조관아의 옛 모습을 회랑 복원을 통해 재현한다. 또한 육조거리에 옛 풍경을 형상화하여 광장부 바닥에 육조 미니어처를 조성하고, 육조거리의 원형유 물 발견 시 그 원형을 전시한다. 또한 기존 세종로 지하유턴공 간은 역사 문화갤러리로 활용한다(그림 17, 18, 19 참조).

④ 황토현 재현

경복궁과 백악산(白岳山), 광화문과 육조거리의 경관을 조망 할 수 있고, 황토현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황토현 마당을 넓 게 조성하여 서울투어의 시작점으로 휴게와 안내시설을 도입하 였다. 정궁 경복궁의 실질적인 안산(案山)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는 과거 황토현의 흔적을 살리기 위해 조산을 조성하였다.

⑤ 백운동천․중학천

광화문광장과 청계천의 연결을 위한 교통섬(소규모광장)을

그림 17. 육조거리 재현

그림 18. 유구전시

그림 19. 육조회랑에서의 광화문 조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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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하여 옛 물길을 형상화하고, 도시경관의 상징성을 부여하 기 위해 중학백운동분수와 선형 수경요소로 계획하였으며, 광 화문 사거리를 가로지르는 물길을 조성하였다.

(2) 새로운 경관을 담아내는 광장

광화문광장을 광화문의 역사적 풍경은 물론 서울의 대표적 인 경관회복과 더불어 현재의 도시문화를 함께 담아내는 상징 적 공간으로 조성하고자 하였다.

① 역사적 풍경의 재현

경복궁 앞마당은 향토현으로 가리고, 동․서대문을 연결하던 종로로부터 직각으로 방향전환에 의하여 접근할 수 있으며, 매 우 넓으나 닫힌 공간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이러한 역사적 풍 경을 재현하기 위하여 광화문과 하나 된 넓은 마당을 조성하여, 앞에서 언급한 역사적 복원과 함께 정조 능행차, 수문장 교대식 등의 프로그램 계획으로 옛 풍경을 재현한다(그림 20 참조).

② 자연으로의 경관 회복

옛 육조거리 어느 곳에서나 북악산과 경복궁이 하나의 국가 상징경관으로 조망되었다. 이러한 북악산의 스카이라인과 600년 고도의 풍경이 어우러진 원 경관을 회복하여 조망권을 확보하고, 다양한 경관을 접할 수 있도록 조성한다. 또한 광화문과 청계천 을 잇는 경관 및 바람길 계획으로 그동안 잊힌 산과 궁, 도시 그 리고 하천을 잇는 조망 축을 회복하도록 한다(그림 21 참조).

③ 도시문화경관의 창출

광장만의 어메니티는 일정 규모의 장소를 필요로 하는 각종

그림 20. 왜곡된 국가상징축의 복원

그림 21. 북악산 스카이라인의 투영

문화 및 레크리에이션 행위와 참여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광 화문광장에서도 역사적 체험은 물론 시민들에 의해 만들어지 는 다양한 문화경관을 창출하고자 한다. 세종문화회관, KT(Art Hall 등), 교보빌딩을 새로운 문화의 축으로 조성하여 문화네트 워크를 형성하고, 세종로 가로와 광화문광장의 통합된 문화경 관을 창출한다. 평상시에는 지하보도를 리노베이션하여 역사문 화갤러리로 활용하여 지하공간까지 하나의 문화공간으로 확장 하였다(그림 22 참조).

(3) 서울을 상징하는 광장

세계의 주요 도시는 각기 다른 랜드 마크가 있다. 파리의 에펠 탑, 시드니의 오페라하우스,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 등 도시의 아 이콘이다. 서울의 아이콘으로 600여년 전통의 광화문과 새로운 환경도시 모델인 청계천 그리고 월드컵을 이끈 시민의 열정 그 리고 그것을 담을 수 있는 광화문광장으로 조성하여 서울의 품 격 있는 브랜드와 랜드마크적 이미지를 창출하고, 서울관광의 중심지이자 세계 속의 광화문광장이 되는 관광 상품을 개발한다.

① 미디어폴, IT 메시지 보드

21세기 한국문화의 대표라 할 수 있는 IT 상징시설로 전통 의 미를 극대화한 상징조형 기둥으로 미디어 폴을 설치하여, 정보전달은 물론 행사규모에 따라 스크린, 배너의 기능을 수행 한다. 광화문 탐방로에는 IT 메시지 보드를 설치하여 핸드폰을 통해 시민들이 보내는 영상, 사진들을 담아낼 수 있는 공간으 로 계획한다(그림 23 참조).

② ‘’브랜드

세종대왕동상을 세종문화회관 앞으로 이전함에 따라 한

그림 22. 노후한 지하 유턴차선을 역사․문화갤러리로 활용

a: 미디어 폴 b: IT 메시지 보드

그림 23. 미디어 폴과 IT 메시지 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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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4. 메모리얼 수로 계획 이미지 그림 25. 메모리얼 수로 자료: 손석범, 2009

글, 한복, 한식 등 ‘’브랜드를 체험할 수 있는 관광 상품 등 의 개발과 서울 정도(定都) 600년과 미래의 역사를 새겨나 갈 메모리얼 수로를 조성하여 자긍심 고취와 내․외국인의 한국문화와 역사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그림 24, 25 참조).

3) 부문별 계획

(1) 동선 및 가로경관계획

동선은 최단동선 계획을 통해 편리한 광장진입을 도모하고, 에스컬레이터, 엘리베이터 등의 승강시설 설치를 통해 이용자 들의 입체적 편의를 도모한다. 교통약자 및 대중교통 이용자를 고려한 동선체계를 수립하도록 한다. 더불어 보행자의 동선체 계와 연계하여 상징적인 도시 광장을 거점으로서 세종문화회 관, KT, 교보 등 가로공간을 이어가는 문화루트를 조성하고, 경복궁, 청계천과의 유기적인 보행로 조성과 조망점 계획으로

a: 원경관 및 평면계획

b: 기존 가로수 식재 선을 후퇴하여 광화문 조망

c: 수직적 요소 최소화로 광화문과 육조거리 조망 그림 27. 가로 경관계획

그림 26. 조망점계획

경관 시나리오를 구성하였다(그림 26 참조).

광화문광장의 경복궁, 북악산으로의 열린 경관 확보를 통한

‘원경관(조선시대 기준)’을 600여 년 전 우리의 선조들이 봐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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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 경관을 연출하여 시민들에게 역사적 동질성을 느낄 수 있도 록 한다. 이를 위해 기존 가로수 식재 선을 후퇴하여 광화문을 조망할 수 있도록 하고, 수직적 요소의 최소화로 광화문과 육 조거리를 조망할 수 있도록 한다(그림 27 참조). 또한 시설물 공간점용의 최소화를 통해 충분한 보행공간의 확보를 할 수 있 도록 한다.

(2) 식재 및 이식계획

북악산, 시민열린마당, 세종로공원, 청계천으로 이어지는 그 린네트워크를 구현하고, 세종로-덕수궁-남대문으로 이어지는 경관가로축을 연계한다. 광화문과 북악산으로 열린 조망권을 위해 건물과 근접한 위치로 가로수를 이식하도록 하고, 경복궁, 효자동 , 삼청동으로 이어지는 가로수 경관을 연계하는 수종과 식재패턴을 계획하였다(그림 28 참조).

(3) 시설물 계획

월대, 해태상, 육조거리 회랑 등 전통시설에 대한 복원을 재 현하고, 역사적인 모티브와 색상을 도입하며, 궁궐관련시설을 제외한 이질적인 시설물은 지양한다. IT문화를 담는 상징시설

그림 28. 식재계획 다이어그램

그림 29. 시설물계획 다이어그램

물인 미디어폴 등을 통해 하이테크한 광장을 연출한다. 광장에 서의 조망권과 가로경관을 고려하여 시설물을 배치하고, 보차 분리의 안정성을 도모하고, 안전의 문제와 일상적 및 비일상적 행태를 고려하여 공간상황에 따라 매립이 가능한 상하이동식 볼라드(bollard) 등 가변적인 시설물을 도입한다. 편의시설은 지배적인 경복궁 지붕을 모티브로 통합적인 경관을 연출하되 공간점유면적을 최소화하고, 대상지의 주요경관을 해치지 않는 바닥사인시설로서, 역사해설 등 서울의 역사성을 담는 공간을 연출한다(그림 29 참조).

(4) 포장계획

광화문광장의 포장은 조선왕조 500년의 역사와 전통을 담는 포장재들로 선정하였다. 월대부 포장, 소포석 포장 등 포장패턴 을 통해 전통포장의 원형을 복원하고 재현하였으며, 차도부 돌 포장과 광장 돌포장을 통해 국가 상징광장으로서 정통성을 부 여하였다.

경축행사 등 대규모 행사시 보차도 통합기능을 고려하고, 차 도부는 돌포장으로 하여 다양한 문화행사를 담아내는 광장기 능을 수행하기에 적합한 포장재를 선택하였다(그림 30 참조).

(5) 지하공간 계획

광화문광장과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을 연결하는 썬큰광장 (해치마당)과 무장애를 위한 광화문 탐방로(경사램프)를 계획 한다. 해치마당은 문화갤러리로 구성하고, 이용객이 경사램프 를 따라 지하공간에서 광장으로 이동하면서 점진적으로 펼쳐

그림 30. 포장 계획 다이어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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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1. 해치마당에서의 북악산 뷰(view) 자료: 손석범, 2009

지는 북악산과 정궁의 서사적 경관을 체험하며 정도600여년의 서울의 역사성과 박진감을 느낄 수 있게 하였다(그림 31 참조).

노후화된 지하보․차도는 입체적 이용을 위한 광장지상부와 지하공간을 연결하기 위하여 ‘세종이야기’, ‘충무공이야기’라는 지하 파빌리온을 조성하여 보행자의 편의를 입체화하였다10).

(6) 수경계획

북악산에서 청계천으로 이어지는 명당수 개념-서입동류(西 入東流)을 모태로 수평축을 통한 역사의 기록, 다양한 수경연 출과 영상장치를 통한 부흥의 반영, 분수의 상승형태를 통한 격동의 역사, 그리고 청계천으로의 물 흐름의 연계를 통해 서 울 중심공간으로서의 상징적인 수경관을 연출한다(그림 32 참 조). 또한 3호선 경복궁역 지하철 유출수를 활용한 클린로드,

그림 32. 수경 계획 다이어그램

관수, 청소용수를 공급하는 수순환 계획을 수립한다.

4. 실시설계와 완공

현재 완공된 광화문광장은 기존 16개 차로를 10개 차로로 줄 여 양쪽으로 배치시키고, 중앙부를 폭 34m의 광장으로 조성했 다. 차도와 보도, 광장부 등 세종로 전체를 화강석으로 포장해 특별한 행사가 있을 때는 차량통제를 통해 폭 100m의 가변형 광장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조성되었다. 차도를 제외한 중앙부 에는 육조거리의 토층 원형을 복원한 해치마당, 이순신 장군의 기상을 묘사한 분수 12․23(이순신 장군 분수), 광장의 양 가 로변에 서울 617년 역사를 617개의 돌판에 기록한 ‘역사물길’이 조성되어 있다(손석범, 2009).

광화문광장은 실시설계 과정 중에 최종안이 변경되어 진행 되었다. 설계안에서 없어진 요소와 변경 혹은 추가된 요소가 있다. 없어진 요소는 크게 육조거리 회랑, 도로원표, 노두석, 미

그림 33. 턴키 기본설계 당선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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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폴, 임금만 다니는 길이었던 어도, 세종대왕 동상 투영연못 등이 있다. 세종대왕 동상 투영연못의 경우는 세종대왕 동상 건립 사업이 조성 이후 따로 진행되면서 원래의 계획이 많이 변형되었다11). 세종대왕 동상의 경우, 크기와 위치와 관련하여 광장 설계가가 반대 의견을 피력하기도 하였으나, 반영이 되지 않았다(신현돈 등, 2009)12). 하지만 현재 세종대왕 관련 역사문 화갤러리로 활용되고 있는 ‘해치마당’, ‘세종이야기’, ‘이순신 이 야기’ 파빌리온은 현상설계부터의 계획이었다.

추가된 요소는 크게 역사물길, 잔디 광장(플라워 카펫)을 꼽 을 수 있다. 원래 기존 설계 안에서는 광화문광장 왼쪽에만 역 사 물길이 조성되어 있었는데, 실제로는 양쪽에 조성되었다. 원 래 설계안에서는 동측엔 역사물길이, 서측엔 보도경계로 계획 되어 있었는데, 이는 과거 육조거리의 폭을 표현한 것이었다.

역사 물길의 경우, 과거 육조거리에는 물길이 없었지만, 주변에 중학천과 백운동천이 흘렀으며, 이러한 물길과 정궁인 경복궁 의 명당수 개념을 재해석해서 광장 한쪽에 역사 물길을 설계하 였던 것인데(신현돈 등, 2009), 광화문광장에 물이 더 있었으면 좋겠다는 서울시의 요구로 서측에도 역사물길이 추가되었다.

또한 지금은 유지관리비로 인해 잔디광장으로 되어 있지만, 광 화문광장 개장 당시 조성되어 있던 플라워 카펫 역시 원래 설 계와 달리 중간과정의 의견으로 도입되었다. 현상공모안에서는 북악의 스카이라인을 투영해 놓았었지만, 턴키 기본설계 당선 안에서는 그냥 비워진 광장이었다(그림 33 참조). 소통의 광장 으로, 시민들이 가꾸어 가는 광장으로, 문화적으로 유연한 광장 으로의 활용을 기대하였다(신현돈 등, 2009). 하지만 이 역시

구분 내용 원인

없어진요소

육조거리 회랑 디자인위원회에서 반대

노두석 문화재 심의위에서 반대

가석과 폐석

중학․백운동천 수경 설계 심의위에서 반대

도로원표 다른 위치에 도로원표가 이미 존재한다 는 이유로 자문 위원회에서 반대 미디어폴, 매립식 볼라드 수직적 요소는 최대한 배제하라는 이유로 디자인 심의위에서 반대 세종대왕 동상 투영연못 세종대왕 동상 건립 사업별도로 진행

추가된요소

서측 역사물길

서울시 요구 잔디 광장

(플라워 카펫) 그늘막 물확

변경된 요소

해태상의 위치 복원 문화재 심의위에서 반대

월대, 어도 유턴차량동선을 위한 광장경계 축소 12.23 분수 크기 분수와 선큰 광장이 맞닿는 부분에 보행

동선을 내기 위해 크기가 축소 표 3. 실시설계 및 조성 과정에서 변경된 내용

광화문광장이 시위 점거의 장소가 될 우려 및 그늘 부족의 민 원 요구로 인해 그늘막 등의 시설과 함께 추가되게 되었다.

원래 설계안에서 변경된 요소들도 있다. 관악산의 화기를 막 는 역할과 경복궁의 영역표시 역할을 했던 해태상과 육조거리 에서 경복궁으로 진입하는 첫 관문이었던 월대, 어도 등을 원 래 위치하던 곳에 복원하고자 하였으나, 유턴 차량동선을 위한 광장경계 축소와 바닥포장 시공성 등의 문제가 제기 되었다.

화강석 장대석 포장의 월대 구현, 전돌 느낌의 어도는 한양의 역사성에 걸맞지 않는 바닥 페인팅으로 왜곡되어 표현되었다.

이순신 장군과 함께 있는 12.23 분수의 경우도 분수와 선큰 광 장이 맞닿는 부분에 보행동선을 내기 위해 크기가 축소되었다.

위의 내용들을 정리하면 표 3과 같다.

Ⅳ. 광화문광장과 광장문화, 공공성 실현

완공 이후 2009년 8월 1일 개장한 광화문광장은 개장 100일 이 채 되지 않아 500만 명의 방문객이 다녀갔고(서울경제, 2009.

11. 6.), 이제는 광화문광장이 조성된 지 4년이란 시간이 흘렀 다. 광화문광장은 광장 조성으로 그 자체로 자기 완결적인 사 업이 아니라, 새로운 원도심 구조의 재편을 촉발하는 발화점이 되는 하나의 시발점이자, 현대판 육조거리의 비종결적 설계로 서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남기준, 2009). 이는 도시 공간과 시 민의 삶의 소통을 회복하기 위한 시도였으며, 역사적인 축의 개념을 상기시키려는 시도 역시 높이 평가되고 있다(홍은영과 이찬, 2011). 더불어 광화문광장은 그 이전에 조성된 청계광장 과 함께 공공장소가 지니는 장소성과 사회적 가치가 문화와 결 합하여 구도심을 활성화시키는데 기여했다는데 그 큰 의미를 둔다고 볼 수 있다(신현돈, 2012).

광화문광장은 조성되기 이전에도, 이후에도 관련하여 몇 가 지 쟁점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광화문광장의 설계안이 결정 되기 전에는 광장의 배치 및 광장 명칭과 함께 세종로의 중앙 분리대에 있던 은행나무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대 표적이다. 원래 세종로 중앙분리대에 은행나무 29주가 식재되 어 있었는데, 광화문광장을 세종로 중앙에 조성하기 위해서는 이식 여부를 검토하여야 했다. 은행나무와 관련하여 시민들 기 억 속에 친숙한 풍경이므로 존치해야 한다는 의견과 함께, 기 존 자료들에 의하면 세종로상의 은행나무는 일본이 한반도를 영구히 지배한다는 의도로 수명이 길어 살아있는 화석이라는 의미로 식재하였다는 기록이 있어 역사성 회복 차원에서 이식 하여야 한다는 주장이 우세하였다(서울특별시 2011). 서울시는 결국 시민들의 여론조사13)를 통해 은행나무를 이식하기로 결 정했다.

완공이 된 후에는 광화문광장이 공공 광장답지 못하다는 것 이었다14). 이 논란은 다시 두 가지 차원의 비판이다. 첫째, 광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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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광장이 공공 공간 혹은 광장의 역할을 해내고 있냐는 비판이 다. 시설물이 너무 많이 놓여 있다는 지적(신현돈 등, 2009)과

15), 차도와의 경계가 애매하여 비워진 안전한 광장의 역할을 해낼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경계부를 고려한 광장 디자인에 비판이 있다. 그러나 설계자들은 경계부에 유압식 볼 라드를 구상하면서 반드시 필요한 시설로 제안하였으나, 디자 인 심의과정을 통하여 삭제되면서 중요한 디자인요소가 없어 지게 되고, 나중에 시공 후 이동식 화강석 플랜터로 경계안전 을 처리하여 시각적으로 불량한 경관을 연출하고 있다. 또한 너무 많은 시설과 현시적 효과에 치중한 잦은 행사와 시설 변 경으로 인해 형태와 시설 면에서도 당초에 의도했던 역사성 회 복과 공공 공간으로서의 광장 기능이 인지되지 않으며(장성준, 2012), 광화문광장이 세종로의 양쪽 10차선 도로의 중앙에 위 치하여 이 대로를 지나가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감으로 진입 자 체에 어려움이 많기 때문에 광장기능으로의 활용성 측면에서 아쉬웁이 많다는 것이다(문현영, 2011).

두 번째는 광화문광장이 권력, 정치의 공간으로서의 제 기능 을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직까지도 서울광장과 청계광장에 는 원칙적으로 시위나 집회가 불가능하다. 사실 광장의 정치적 기능에 관련하여서는 유동인구, 주변의 정부기관, 공간의 규모 및 특징, 조례의 영향이 가장 크다. 2011년도 서울광장에서의 시위 및 집회 횟수는 54회, 청계광장의 경우 8회16)인 반면, 광 화문광장의 경우 한 번도 없었는데, 이는 일간신문 등에서 보 도된 바와 같이 광화문광장과 청계광장의 경우 광장관리방법 이 서울광장과 달리 허가제인 것이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다(최우석과 김기호, 2013). 때문에 광화문광장이 서울 시가 주장하는 바와 같이 탈정치적인, 문화와 일상의 공간이 아 니라고 주장하는 의견이었다. 광화문광장의 역사적 원형은 그 곳이 통치자와 피치자 간의 정치적 의사소통이 이루어진 공간 이었음을 말해주고 있고, 광화문광장의 현대사는 그곳이 시민 들의 민주적 정치참여의 무대였음을 부여주고, 광장이 시민들 을 위한 정치적 소통과 참여의 기능을 회복할 수 있도록 노력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하상복, 2009).

이러한 논의들은 최종적으로 이 광장문화가 제대로 된 공공 성을 발현하고 있느냐의 문제와 귀결된다. 의미적, 상징적으로 공공적 성격을 잘 드러내고 있는지와 함께, 이용자들이 행태적 측면에서 공공적인 행위를 부담 없이, 한편으로 편안하게 누릴 수 있느냐의 문제이다. 공공공간은 공간을 지칭하는 용어로 시 민들이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이고, 불특정 다수 가 제약 없이 접근할 수 있으며, 자율적인 활동이 가능한 실체 적 공간이라는 점(전영훈과 신동철, 2010)에서 가시적으로 광 화문광장이 공공공간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해 내지 못하고 있다고 볼 순 없다. 광화문광장이 실제로 완공되어 대중에게 공개 된 후에, 설계자의 의도와 사용자의 필요 사이에 적합한

그림 34. 완공 직후의 광화문광장 자료: 손석범, 2009

것뿐 아니라 적합하지 않은 것도 있었다. 공공의 장소를 다루 는데 있어 설계자의 의도는 설계 과정에서 많이 사라지고는 한 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광화문광장도 이러한 일련의 과정 을 거쳤다. 우리 시대에 광화문광장을 만들어 가는 것은 아직 끝나지 않은 진행형이다. 공공 공간은 상호인식을 가능하게 하

그림 35. 2013년 8월 현재 광화문광장 자료: 한소영, 2013

수치

그림 1. 광화문광장이 조성되기 전 세종로 위치도 및 현황 된 계기는 바로 2002년 한일 월드컵과 함께 시작된 월드컵 거 리응원이었다(조경진, 2009)
그림 11. 두 개의 축과 하나의 판 다이어그램 남대문을 네트워크화 하는 중추적 기능을 수행하는 역사문화 네트워크로 만든다. 3. 턴키 설계공모, 광화문광장 기본계획 및 설계 1) 기본계획 및 마스터플랜 턴키 기본설계에서는 광화문광장을 역사복원 존(zone) , 조 망 및 역사재현 존(zone) , 문화 존(zone) , 도시 존(zone) 으로 주제를 설정하여 구성하였다(그림 12 참조)
그림 14. 턴키 기본설계 마스터플랜 구분 현상공모안 턴키 기본설계 계획 역사성 - 육조거리와 어도의 상징적 복원 - 월대, 해태상 복원 및 황토현(누루재) 재현- 메모리얼 수로를 통한 조선왕조 연표 표현 - 유턴차량 동선을 위한 광장바운더리 축소로 인한 평면도 변경상징성- 역사적 상징 : 미디어폴, 메모리얼 수로- 반영관광- 관광네트워크의 중추적 기능을 수행하는 공간으로 계획- 반영 전시 - 세종문화회관 등 인접시설과 연계된 세종갤러리 계획 - 반영 접
그림 24. 메모리얼 수로 계획 이미지 그림 25. 메모리얼 수로 자료: 손석범, 2009 글, 한복, 한식 등 ‘’브랜드를 체험할 수 있는 관광 상품 등 의 개발과 서울 정도(定都) 600년과 미래의 역사를 새겨나 갈 메모리얼 수로를 조성하여 자긍심 고취와 내․외국인의 한국문화와 역사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그림 24, 25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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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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