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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다임이 바뀌면 세상이 달리 보인다
정우성 국토연구원 연구위원 ([email protected]) 연구자의 서가 •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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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혁명의 구조
(원제: 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s)
토머스 쿤 지음
세상은 변화하고, 우리는 새로운 기술이나 사회 변화를 패러다임의 전환이라 이야기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 인구감소 시대 등 메가트렌드적 변화에 대한 새로운 풍조(風潮)나 사 조(思潮), 정부의 정책변화 등에도 패러다임이라는 용어를 쉽게 붙이곤 한다. 이 패러다임 (paradigm)이라는 용어는 토머스 쿤(Thomas Samuel Kuhn)의 「과학혁명의 구조」(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s, 1962, 1970)에서 사용된 이후 관용적으로 널리 쓰이 는 말이 되었다.
거의 60년 전 과학사 분야에서 만들어진 철학적 용어가 다양한 학문 분야를 넘어 지금 까지 회자되는 이유는 이 용어가 가지는 묘한 매력 때문일 것이다. 과학은 개개의 발견이 나 발명이 누적되어 점진적으로 발전해 나간다는 것이 당시의 통념이었다. 하지만 가장 엄 격하고 객관적인 진리를 추구하는 자연과학조차, 그 실상은 기존의 판을 뒤집는 혁명과 비 교될 만한 불연속적인 과정을 통해 발전해 왔다는 주장은 실로 파격적이었다.
토머스 쿤에 따르면, 과학은 여러 이론이 공존하고 경쟁하는 전 과학(pre science) 단계 에서 한 이론이 우월적(prior) 지위를 차지하면서, 이것이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아 정상 과 학(normal science)의 단계로 전개된다고 하였다. 과학자들은 이 패러다임이 제공하는 이 론과 가치체계의 토대 위에서 현상들을 설명하기 위해 노력하며, 이러한 과정을 통해 그 패러다임은 더욱 공고해진다. 즉, 정상 과학단계에서는 정립된 패러다임의 이론과 방법론 에 기반한 퍼즐(puzzle) 풀기를 통해 기존 패러다임이 좀 더 정교하게 다듬어지고 설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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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확장성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기존 패러다임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이상(anomaly) 현 상들이 등장하게 되면, 처음에는 기존 패러다임을 변형해서라도 이를 설명하기 위해 노력 한다. 그러나 이후에도 이상징후들이 계속 나타나 위기상황에 놓이면 이를 설명하기 위한 새로운 이론이 ‘혁명적’으로 등장한다. 새 이론이 이상 현상을 설명하면서 우월적 지위를 차지하게 되면 패러다임의 전환이 이루어지고 새로운 정상 과학으로 정립되는 것이다.
더 나아가 토머스 쿤은 패러다임 간 혹은 이론 간의 공약불가능성(incommensurability) 을 제시했다. 기존의 패러다임과 새로운 패러다임 간 또는 이론 간에 무엇이 더 우월한지 는 판단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는 과학이 진보한다는 통념을 깨는 흥미로운 주장이었다.
이렇듯, 토머스 쿤은 과학의 발전을 과학적 결과물에 초점을 둔 기존의 경험주의 과학철학 에서 벗어나 패러다임이 전환되는 거시적 변화의 과정 전체로 이해하는 틀을 새롭게 제시 하였다. 즉, 과학은 불변하는 진리를 정립하고 수호하는 것이 아닌 진리를 향해 끊임없이 전진하는 과정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토머스 쿤의 이론 자체가 과학철학에 있어서 패러 다임 전환이라고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철학과는 거리가 멀고, 편견 어린 시선으로 이 책을 피상적으로 읽은 필자가 이 책을 추 천하는 이유는, 이 책이 2020년 9월 현재 12만 회가 넘는 인용횟수(google scholar 기준) 를 가질 정도로 과학철학이나 과학사, 과학계를 넘어 인문사회 분야를 포함한 다양한 분야 에서 고전으로 읽힐 만큼 보편화되어 있고, 여전히 인문 · 사회 · 과학 등 다양한 학문 분야 와 정책연구 분야에 의미있는 시사점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과학의 진전이 패러다임 간의 경쟁과 ‘혁명적’ 교체를 통해서 이루어지며, 패러다임이나 이론 간의 우월성을 가늠하기 어렵다는 토머스 쿤의 패러다임 이론은 사회과학의 연구 분 야나 연구활동에 어떻게 적용되고 이해될 수 있을까?
패러다임을 연구의 전제가 되는 이론적 토대, 가치체계의 틀로 이해한다면 연구자는 그 분야에서 제공하는 패러다임을 통해 세상을 보는 관점을 정립한다. 즉, 각 분야의 연구자 들은 그들이 어떤 패러다임을 가지느냐에 따라 하나의 세상을 서로 다르게 보기도 한다.
가령, 정책연구를 주업으로 하는 연구자들에게 연구대상인 정책이나 사회현상은 그들의 관점에서 해석되고 이해될 것이다. 경제, 정치, 사회, 심리, 환경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들 사이에서 하나의 현상에 대해 다양하고 때로는 정반대의 문제 진단과 해결책이 나올 수 있는 이유 역시 이러한 관점이나 인식, 이론체계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사회과학에 서의 정답은 과학적(scientific) 결론이나 기술적(art) 처방 그 중간 어디쯤 존재할 것이고, 사회의 맥락 속에서 균형점을 찾는 과정으로 여겨지는 이유 역시 이러한 다양한 관점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데에는 해당 전문 분야에서 연구활 동을 하는 연구자 공동체(scientific community)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즉, 과학이 패러 다임의 전환을 통해 혁명적으로 변화하는 현상의 이면에는 연구 공동체의 인식 전환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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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는 점을 시사한다. 가령, 한국의 국토 · 도시 분야 정책 패러다임이 개발과 성장에서 재 생과 지속가능성으로 전환되었다고 한다면, 이를 주도하는 주체인 해당 연구 분야의 학회 등 전문가 집단의 공통된 인식이 그렇게 변화되었다는 반증일 수 있다.
사회과학 영역에서 다루는 사회문제는 대부분 복잡하여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wicked problem)에 해당한다. 특히 세계화로 인해 기후변화, 전염병, 에너지 부족, 전 세계적인 부(富)의 격차, 인구폭발과 기근 등 그 어떤 문제도 어느 하나의 학문만으로 해법을 찾을 수는 없다. 좀 더 거시적으로는 과학, 인문학, 사회과학, 심지어 예술 분야 등을 포함하는 다학제 간(multi-disciplinary) 연구를 필요로 하는 복잡하고 다층적인 문제들이 속속 등 장하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런 다학제적 연구는 성공적이기 어렵다. 각 학문 분야 가 쌓아 올린 기존 지식체계에 대한 이해는 물론, 이들 이론과 개념에 전제되는 가정에 대 해 서로 공감하기가 사실 쉽지 않기 때문이다.
복잡한 사회문제를 어떤 단일의 학문만으로 이해하고 해결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인정 해야 한다. 각 학문 분야의 연구 공동체들이 인간과 사회가 처한 절박한 문제들에 대한 인 식을 공유하고 현상에 대한 원인 규명 못지않게 처방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데 초점을 맞출 때, 다학제적 연구는 인류의 문제해결에 큰 기여를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토머스 쿤이
「과학혁명의 구조」를 통해 보여준 과학의 변천에 대한 통찰력은 과학사뿐만 아니라 다양한 이론들이 난무하는 학문 분야에서 다학제적 노력의 철학적 기초를 제공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연구자의 서가 30회 예고
정동재 한국행정연구원 부연구위원이 다음 호 필자로 나섭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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