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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콜럼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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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콜럼버스’

건축의 도시 콜럼버스를 건축적으로 담아내다

손시내 영화평론가 (sinea0401@naver.com)

영화와 도시 • 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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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콜럼버스>의 배경이 되는 콜럼버스는 미국 동부 인디애 나주(州)의 중남부에 위치한 인구 4만의 소도시다. 바르톨로뮤 카운티의 자치정부 소재지이기도 한 이곳은 화이트강 동쪽에 자리 잡고 있으며 비옥한 초원지대로 둘러싸여 있다. 신록이 우거진 숲, 경쾌하게 흐르는 강과 개울, 자연을 만끽할 수 있 는 공원 등을 따라 산책하거나 자전거를 탈 수 있는 여러 개의 코스도 도시가 자랑하는 요소 중 하나인데, 이곳에는 어김없 이 유명한 현대 건축물이 군데군데 자리하고 있다. 콜럼버스 는 20세기 미국 현대 건축 역사에서 의미 있는 지위를 차지하 는 도시다. 특히 커민스 엔진(cummins engine)의 사장이자 건 축 애호가였던 J. 어윈 밀러(J. Irwin Miller)의 공공건축지원 시 스템에 힘입어 이름 있는 건축가, 디자이너들이 자유롭게 작

콜럼버스(2017)

출연: 존 조, 헤일리 루 리차드슨 감독: 코고나다

콜럼버스의 다운타운

제467호 2020 Septem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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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할 수 있었던 덕이 크다. 밀러 하우스를 설계한 핀란드 출신 의 에로 샤리넨(Eero Saarinen), 그의 아버지인 엘리엘 샤리 넨(Gottlieb Eliel Saarinen), 제임스 폴섹(James Polshek), 데보라 버크(Deborah Berke)와 같은 건축가들이 설계한 아 름답고 다양한 건축물들이 콜럼버스에 다수 남아있다. <콜럼 버스>는 특유의 절제된 형식으로 그 건축물들의 면면을 섬세 하고도 감각적으로 담아내는 영화다.

건축물들의 숲을 거닐며

케이시(헤일리 루 리차드슨)는 콜럼버스에서 유년기와 청소년 기를 보내고 고등학교까지 졸업했지만, 도서관에서 아르바이 트하며 엄마를 돌보느라 콜럼버스를 떠나지 못하고 있다. 우 연히 마주친 친구는 자신이 여행했던 유럽이나 큰 대학이 있 는 대도시에서 경험했던 즐거움에 대해 말하며, 미래에 어디 로 가게 될지는 몰라도 다시 콜럼버스로 돌아오지는 않겠다 고 말한다. 아마 케이시 또래의 친구들에게 콜럼버스는 졸업 과 함께 떠나가야 하는 곳으로 인식되는 것 같다. 더 큰 기회 와 새로운 삶을 위해서 말이다. 그런 친구 앞에서 케이시는 애 써 웃으며 자신은 콜럼버스가 좋다는 대답을 내어놓을 뿐이 다. 한편 방금 콜럼버스에 막 도착한 진(존 조)이 있다. 강연을 위해 콜럼버스를 찾았다가 갑자기 쓰러져 위중한 상태가 된, 건축학자 아버지 때문이다. 본래 서울에 살고 있다는 진의 표 정은 썩 좋지 않은데, 그것이 비단 아버지의 건강에 대한 염려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아버지와 대화한 지 1년이 넘었다고 말하며 자신에게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고 일에만 열중하던 아버지에 대한 원망을 넌지시 드러낸다.

이처럼 어딘가 답답함을 품고 꾸역꾸역 오늘을 살고 있는 것 같은 두 인물이 콜럼버스에서 우연히 만나 서로를 알게 되 고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건축물들의 사이를 걷는다. 이 영화 에서 건축은 이러한 완전히 낯선 타인들을 슬며시 엮어주는 매개가 된다. 진은 건축학자인 아버지 때문에 건축에 대한 관 심이 있건 없건 어릴 때부터 그저 건축이라는 것에 익숙해져 야 했다. 지금은 서울의 한 출판사에서 번역자로 일하고 있지 만, 콜럼버스에선 아버지가 묵고 있던 근사한 ‘어윈 가든(Irwin Gardens)’에서 아버지가 남긴 건축 관련 낙서들을 바라보다 잠든다. 케이시에게 건축은 꿈이자 위안 같은 것이다. 영화의

초반부, 케이시가 처음으로 등장하는 장면을 상기해보자면 이 렇다. 케이시는 담배를 피우며 지금 자신이 보고 있는 한 건물 에 대해 중얼거리고 있다. 이것이 미국 최초의 근대적 교회이 며, 건축가인 샤리넨이 이 건물을 비대칭 속에 균형이 있는 형 태로 설계했다는 내용이다. 그 건물은 엘리엘 샤리넨이 1942 년에 지은 ‘퍼스트 크리스천 교회(First Christian Church)’다.

가이드를 흉내 내는 듯한 케이시는 마치 이러한 말들을 통해 서나마 지금 자신의 상황을 간신히 견디고 있는 것처럼 보이 기도 한다.

그렇다고 울타리를 사이에 두고 처음 만난 둘 사이에서 곧 장 운명적인 무언가가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 각자의 괴로움 과 삶의 조건, 쉽사리 다스려지지 않는 정념들을 껴안은 채로, 때로는 방어적인 자세로, 이들은 그저 상대가 자신에 대해 잘 모른다는 이유로 “오늘 좀 힘들었거든요. 아니, 올해인가”, “그

클리오 로저스 메모리얼 도서관, 앞에는 헨리 무어의 작품 ‘Large A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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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정말 힘든 시기였어요”, 같은 말을 꺼내놓을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모더니즘 양식 건축물들의 숲을 걸으며 케이시와 진은 그렇게 삶의 한 시기를 보낸다. 건축물들의 깔끔한 선, 효율적이고 정돈된 공간 속에서, 약물중독의 과거가 있는 엄 마를 염려하고 사랑하는 케이시의 복잡한 마음, 아버지에 대 한 진의 미움과 원망 같은 것이 넌지시 드러난다. 여기서 건축 물들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서 있다. 울창한 나무, 흘러가는 물, 흔들리는 잎, 수직의 선들 사이사이에 걸린 구름과 같은 자연물들이 건축물과 어울려 고요하고도 생기로운 풍광을 만 들어낸다. 그리고 그 아래 부단히 움직이고 생각하고 고뇌하 며 살아가는 사람들, 이 모든 것들이 모여 콜럼버스의 풍경을 이룬다.

삶과 감정이 담긴 건축 이야기

서로에 대해 알게 된 케이시와 진은 종종 콜럼버스의 건물들 을 보러 다닌다. 이 여정은 대개 자신이 좋아하는 건축물을 보 여주고 싶어 하는 케이시에 의해 시작되며, 케이시는 조금은 들뜬 얼굴로 그것들에 대한 설명을 진에게 늘어놓곤 한다. 이 들이 거주하고 일하는 공간, 함께 보러 다니는 건축물들만 세 심히 살펴도, 근사한 투어 코스가 완성된다. 진의 아버지가 묵

었고 지금은 진이 잠시 머물고 있는 어윈 가든은 건축가 헨리 필립스(Henry A. Phillips)가 1910년에 재건축한 저택이다. 본래 1800년대 중반에 빅토리아 양식으로 지어졌던 저택과 정원은 20세기 들어 고대 문명과 유럽의 다양한 양식이 고루 어우러 진 새로운 공간으로 거듭났다. 지금은 일반 시민들에게도 숙 소와 정원이 개방되어 있다. 케이시와 진이 처음 만나는 것도 어윈 가든의 울타리 부근에서다. 일 때문에 짜증 나는 통화를 하는 진과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케이시. 가벼운 오해 와 통성명, 진의 아버지에 관한 대화와 함께, 진의 숙소인 어 윈 가든에 대한 이야기도 슬쩍 스쳐 지나간다.

둘의 발걸음은 곧 퍼스트 크리스천 교회로 이어진다. 케이 시는 영화 초반부에 혼잣말로 연습했던 것처럼, 이 건물이 비 대칭적인데도 균형 잡혀 있다는 설명을 진에게 들려준다. 영 화 전반에 걸쳐 이러한 동행이 이루어지는데, 건축물에 대해 두 사람이 두런두런 나누는 대화가 퍽 흥미롭다. 첫 만남 이 후, 어느 날 길에서 우연히 만난 둘은 케이시가 두 번째로 좋 아한다는 건물을 보러 간다. 에로 샤리넨이 1954년에 설계한

‘어윈 컨퍼런스 센터(Irwin Conference Centre)’다. 케이시는 또다시 설명을 시작한다. 이것은 최초의 근대적 은행이며, 어 둡고 딱딱했던 과거 은행 건물들과는 대조적으로 전면이 통유 리로 이루어져 있다는 설명이다. 그런데 이때 진이 가이드 노

제467호 2020 September

퍼스트 크리스천 교회 두 주인공의 배경이 된 노스 크리스천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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릇은 그만하라며 그 설명을 멈춰 세운다. 여기 얽힌 그런 이야 기 말고 당신의 이야기, 정말 당신의 마음을 사로잡은 그 무언 가에 대해 말해달라는 것이다. 케이시는 잠시 망설이는가 싶 더니 무언가 말하기 시작한다. 관객에게는 들리지 않는 그 말 에는 아마도 케이시의 진심이 담겨 있을 테다. 이처럼 <콜럼버 스>는 단순히 도시와 그 도시 안의 유명한 건축물들을 소개하 는 것을 넘어 건축과 감정, 건축과 삶을 엮으며 이야기를 쓰고 인물의 마음을 들여다본다.

<콜럼버스>가 공간성을 구현하는 방식

영화를 연출한 코고나다(kogonada)는 한국계 미국인 비주얼 아티스트로, 첫 장편 영화인 <콜럼버스>를 만들기 전에는 영 화사를 수놓은 유명한 감독들에 대한 비디오 에세이로 유명 했다. 그는 일본의 영화감독 오즈 야스지로에 대해서도 애정 과 존경을 드러낸 바 있는데, 오즈 야스지로에 대한 코고나다 의 비디오 에세이는 오즈 영화에 등장하는 통로와 복도, 골목 을 다루고 있다. 스크린 안쪽으로 쭉 뻗은 복도나 스크린을 수 평으로 가로지르는 통로는 오즈 야스지로 영화에 자주 등장하 는 공간이다. 코고나다는 그것을 현대적인 생활공간이자 오즈 의 영화가 기거하는 공간이라고 보았다. 이러한 통찰을 통해

우리는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가 특정한 서사를 효율적으로 표 현하는 수단으로서의 매체라기보다는, 인물들이 그 안에 거주 하고 있는 입체적 건축물에 더 가깝다고 말해볼 수도 있을 것 이다. 코고나다의 <콜럼버스> 또한 그러한 방식으로 설명될 수 있는 영화다.

<콜럼버스>가 공간성을 구현하는 방식은 섬세하고도 과감 하다. 주의 깊게 찍힌 복도, 골목, 통로와 같은 공간들은 평면 의 스크린 위에 원근법적인 깊이를 더한다. 여러 겹의 벽, 문, 거울과 같은 사물들 또한 그런 깊이감을 만들어내는 중요한 요소이다. 인물들은 이러한 공간을 수직, 수평으로 오가며 삶 을 살아간다. 그러니 <콜럼버스>는 건축물에 대한 영화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건축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는 영화이기도 하 다. 혹은 도착하고 머물고 떠나는 거주자들의 영화라고도 말 해볼 수 있을 것이다. 영화의 카메라가 종종 건물 안팎에서 묵 묵히 일하는 사람들, 잔디밭을 뛰노는 아이들을 애정 어린 시 선으로 바라보는 걸 볼 때에도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영화는 그처럼 입체적인 공간에서라면 이러한 제약이 생기는 것이 당 연하다는 듯이 종종 소리와 시야를 차단한다. 그러나 그것이 답답하게 느껴지는 일은 없다. 오히려 그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어떤 공간에야말로 진정한 삶이 있다고 느끼게 된다.

공간을 구성하는 그러한 특별한 방식 덕분에, 이 영화에선

현재는 어윈 컨퍼런스 센터로 활용 중인 어윈 은행의 1950년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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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7호 2020 September 때로 시공간적인 비약처럼 느껴지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한

다. 영화 후반부의 한 장면이 있다. 이따금 만나 건축물을 보 고 바람을 쐬며 속마음을 얘기하지만, 이들의 삶에 극적인 변 화는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여전히 케이시는 낡은 차로 엄 마를 태워다 주고 도서관에서 일하며 새로운 일을 찾아봐야 한 다. 의식을 잃은 상태인 진의 아버지는 조금이라도 회복될 조 짐을 보이지 않는다. 이래저래 심난한 두 사람이 어느 밤, 맥주 를 나눠 마시고는 케이시가 다녔던 학교에 몰래 들어가 보기 로 한다. 불 꺼진 학교의 복도를 조심스레 걷는 두 사람, 그런 데 그다음에 바로 이어 붙은 쇼트는 진이 머물고 있는 어윈 가 든의 복도이다. 이러한 장면 구성은 마치 학교 복도의 맞은편 에 어윈 가든의 복도가 연결되어 있는 듯한 착시를 불러일으킨 다. 이러한 장면들이 주는 각별한 공간감 덕분에 <콜럼버스>는 마치 거대한 직육면체처럼, 입체적인 건축물처럼 느껴진다.

도착하고 머물고 떠나는 공간

이후 영화에서 드러나듯, 과거 케이시에게는 콜럼버스를 떠나 건축을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었다. 그러나 엄마를 부 양해야 한다는 의무를 스스로에게 부과하면서 케이시는 지금 껏 콜럼버스에 머물러왔다. 그녀는 어지러운 마음을 다잡고

싶어질 때마다 자신이 좋아하는 건축물들을 보러 가서 그 앞 에 우두커니 서 있기를 반복했다고 한다. 한편 진은 여전히 아 버지에 대한 원망을 거두지 못하고 있으며, 콜럼버스를 좋아 한다고 말하기도 아직은 어렵다고 이야기한다. 변화하지 않을 것 같던 이들의 상태와 마음은 특별한 사건을 통해서가 아니 라 반복되는 만남과 동행, 진심을 터놓고 말할 수 있었던 시간 들 덕분에 서서히 변화한다. 콜럼버스를 좋아한다던 케이시의 말은 물론 진심일 것이다. 그녀는 힘든 시기를 견디면서 콜럼 버스의 건축물들을 통해 위로받았다. 그렇다고 그녀의 선택이 콜럼버스에 영원히 머무는 것이 되어야 하는 건 아니다.

영화의 마지막에 이르러 그녀는 마침내 콜럼버스의 바깥을 바라본다. 사람들이 끊임없이 들고나는 건축물처럼, 콜럼버스 또한 케이시에게 도착하고 머물고 다시 떠나는 건축적인 공간 으로서 인지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떠나는 케이시를 배웅하는 진은 이곳에 조금 더 오래 머물기로 결심한다. 각각의 건축물 들이 그렇듯이, 그 건축물들을 품은 콜럼버스라는 도시 위에 도 그렇게 멈추지 않을 삶이 흐른다.

제467호 2020 September

콜럼버스 시청 앞의 두 주인공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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